영화 <변호인>이 그린 '부림(釜林)사건' 그 진실의 전말은?

피의자 학생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에게서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것"
  • 월간조선 뉴스룸
  • 업데이트 2017-10-05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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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변호인> 포스터
추석특선영화로 지난 4일《JTBC》에서는 <변호인>을 방영했다. <변호인>은 '부림(釜林)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을 모티브로 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는 부림사건을 '고문에 의한 용공조작사건'으로 그리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약자의 편에 선 정의로운 변호사로, 부림사건의 피의자들을 권위주의 정권의 피해자로 연출하고 있다. 
 
조사받던 피의자 학생은 검사에게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에게서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부림사건의 진실, 그 전말을 보도했던 《월간조선》 2014년 2월호 기사 전문을 게재한다. 
 
월간조선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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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의 시각

‘釜林사건’ 변호인은 왜 악마의 변호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가?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左傾의식화 사건을 변호하다가 계급투쟁론의 포로가 된 노무현은 계급투쟁론을 敎理로 하여 세워진 북한정권의 수괴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 조사받던 학생들,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에게서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것”
⊙ “영화 <변호인>은 악랄한 왜곡. 노무현은 인권 변호사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변호한 사람”(高永宙 당시 검사)
⊙ 계급투쟁론이 노무현 정책의 基調, 舊세력 제거하려고 遷都 시도
⊙ ‘통일대박론’으로 계급투쟁론 정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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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규현장에서 연설하는 노무현 변호사. 부림사건 변호사로 참여한 이후 그는 계급투쟁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노무현(盧武鉉) 전(前)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이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生前)에 “‘부림사건’은 내가 재야운동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여보, 나 좀 도와줘》 새터)고 썼다. 그는 1982년 부산에서 있었던 좌경(左傾)의식화 독서회 사건인 속칭 ‘부림사건’ 전에는 시국(時局)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 사건도 선배인 이흥록 변호사의 권유로 맡았고, “사건의 내용이나 성격을 파악하기는커녕 시국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림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학생들은 나에게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착취와 빈부(貧富)격차의 모순 같은 문제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읽다 붙잡혀 온 그 책들을 읽길 권했다. 바쁜데다 경황이 없어 책이 잘 읽히질 않았다. 나 또한 짧은 식견으로 토론을 하여 오히려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땐 잘 이해도 못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나는 그들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에 관해서도 차츰 눈을 뜨게 되었다. 훗날 그들이 석방되어 나올 때쯤에는 나도 꽤 많은 책을 읽고 있었으나 그보다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성실함이 나를 운동으로 끌어들인 것 같다.〉
 
  부림사건은,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미래의 대통령을 의식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대통령의 많은 정책이 국가를 왼쪽으로 기울게 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구속재판을 받는 가운데서 학생들이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착취와 빈부격차의 모순 같은 문제’에 대하여 변호인을 가르치려 들었다는 점은 재판-수사 분위기에 대하여 시사(示唆)하는 바가 있다.
 
 
  高永宙 변호사의 증언
 
부림사건 수사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
  지난해 1월 4일 우파단체 신년 인사회에서 부림사건을 수사하였던 검사 출신 고영주(高永宙) 변호사는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제가 1982년도에 부산지검 공안부 검사로 있을 때 부림사건의 수사검사였습니다. 부림사건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를 했습니다. 부림사건을 변호하면서 최초로 인권(人權)을 알고, 사회를 알고, 정치를 알게 됐다고 해서 굉장히 의미를 두는 사건입니다. 최대한 축약해 말씀드리면 부림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공산주의 운동이었습니다. 그 피의자가 저에게 했던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에게서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곧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사건이라는 것을 저는 아주 확신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文在寅) 의원이나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을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변호한 사건으로 기록을 다 보는데, 부림사건 관련자들의 생각을 몰랐겠습니까.
 
  제가 노무현 정권하에서 5년 동안 내내 핍박을 받다가 검사를 그만뒀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공안검사를 한 것밖에 없습니다. 제가 무슨 다른 비리가 있었습니까? 고문을 했습니까?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의 부산인맥이란 사람들은 (거의가) 부림사건 관련 인맥입니다.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赤化)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확신했습니다. 진짜 우리나라가 국운(國運)이 있어 적화를 면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일에 앞장서 준 여러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容共조작인가?
 
  필자도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학생, 직장인들 중엔 필자가 부마(釜馬)사태 실록을 쓸 때 취재대상으로 삼았던 이들이 몇 있었다. 1970년대 후반 부산에서 반(反)정부 운동을 하던 이들은 1980년 봄 전두환(全斗煥) 정권 등장 이후 독서회를 만들어 학습을 하고 있었다. 공소장엔 필자의 이름도 나온다.
 
  〈81.2.20 같은 곳에서 김○○가 다음 회에는 석유 전문가 전 국제신문 기자 조갑제를 초청, 강연을 듣기로 하고 (중략) 김○○, 송○○, 김○○ 등은 81.2.27 애린 유스 호스텔 도서실에 회원 몇 명과 함께 모여 초빙 강사 조갑제로부터 석유문제에 대하여 ‘한국의 석유탐사 업체인 걸프와 칼텍스 회사의 이윤을 미 본국에 송금하는 사례와 석유정책의 모순에 대한 비판’ 강연을 듣는 등(후략).〉
 
  필자는, 광주(光州)사태를 취재한 후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신군부의 이른바 언론인 숙청 때 또 이름이 올라 언론사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1981년 가을 서울에서 창간된 《마당》이란 잡지사에 취직, 수사가 진행 중일 때는 중동(中東)을 취재 중이어서 조사를 받지 않았다.
 
  노무현 변호사, 고영주 검사의 증언에서 공통되는 점이 있다. 수사-재판을 받던 학생들이 변호인과 검사를 상대로 이념적 설득 내지 선전을 시도하였다는 것이다. 고문을 받고 겁에 질린 상태에선 하기 힘든 행동이다. 이 사건으로 유죄(有罪)를 확정선고 받았던 이들은 이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상당수 언론도 ‘용공조작’이란 표현을 쓴다.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
 
  2009년 부산지법 형사 항소3부는 이 사건 피고인 7명에 대한 재심(再審) 판결에서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관련 법 개정에 따라 면소(免訴) 판결하였지만 사건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판단을 유지하였다. 법원은 재심청구인들에 대하여 집행유예 2년~징역 1년6개월과 자격정지 8개월~1년6개월을 선고하였다(연합뉴스 보도 요지).
 
  그렇다면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유지되는 부림사건의 국가보안법 위반죄는 무엇인가. 1982년 10월 26일 대법원 판결문 중 관련 부분을 소개한다. 이일규 대법관이 주심이었고, 이성렬·전상석·이회창 대법관의 전원 일치 판결이다.
 
  1.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경찰에서 받은 고문에 의한 공포 분위기가 검찰조사 때도 연장되어 검사에게 허위진술을 하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 〈피고인 등에 대한 이 사건 조사과정을 살펴보면, 피고인 등의 경찰수사에서의 자백이 부당한 장기 불법구속과 수사관의 고문 등 가혹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검찰에서도 그와 같은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황에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한 것이라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도 가려낼 수 없다.〉
  
2.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 〈원심판결이 이와 같은 취지에서 그 거시(擧示)증거를 종합하여 피고인 등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민족, 반민주적 파쇼체제로서 노동자, 농민 등 노동대중을 수탈 착취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사회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제국주의, 식민주의 사회로 전락되었다고 분석 평가하고 이러한 모순과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는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서로의 의견일치를 보아 부마사태, 광주사태의 실패에 비추어 대중봉기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면 의식화된 대중조직을 강화하여 결정적 시기인 대중의 경제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현실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졌을 때, 현 체제의 모순이 첨예화하여 합법적 수단으로는 통치가 불가능해졌을 때 대중이 의식화되고 그 조직이 강화되었을 때 등의 시기를 포착하여 대중봉기로서 자유민주주의 현 체제를 뒤엎어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하여야 하고, 이러한 사회주의 혁명에 필요한 여건조성 방안으로 대중조직을 강화하기 위하여 의식화 과정, 즉 현실분석, 비판, 반정부 비판의식 강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의식고양 등을 거쳐 단계적으로 대중을 의식화시키고 이를 조직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학생, 고등학교 학생, 노조원, 여공, 사북탄광 광부, 양서조합 등 협동조합 운동원 등을 상대로 소그룹 활동 프로그램 또는 프라이데이, 새터데이 등에 따라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소위 의식화 교육을 위한 모임을 되풀이하여 (중략)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많은 서적과 중국 공산당중앙위원회가 당 간부 교육을 위하여 발간한 사상방법론, 조선노동당규약 등을 교재로 반국가단체나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여 이를 이롭게 하는 의식화 교육을 하고(후략).〉
 
 
  1부 강연 연사가 조갑제씨
 
부림사건 변호인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영화 <변호인>의 포스터.
  이 사건을 소재로 하여 만든 영화 <변호인>을 보고, 고문에 의한 ‘용공조작’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 영화를 보고 그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주장, 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이용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이라 할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문재인 의원은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 깊게 봤다”면서 “부당한 시대에 지식인이 또 시민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들은 그렇게 하는가를 물어보는 것 같다. 33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가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라고 말하고, 재심이 진행 중인 부림사건에 대해서는 “무죄(無罪)가 선고되리라고 확신하고, 부림사건이 조작됐다는 것은 이미 역사가 밝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한국일보).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영화를 보고 나와 쓴 트위터 글에서, “아, 그런데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눈물이 난다”고 했다.
 
  좌경독서회 사건에 불과한 부림사건은 그들을 만나고 강연도 한 필자에겐 사상적으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나 변호사 노무현을 의식화시키는 데는 성공하였다.
 
  변호사 노무현이 부림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더니 투사(鬪士)로 바뀌는 계기에 필자의 이름이 나온다. 1985년 2·12 총선으로 민주화 흐름이 대세(大勢)가 된 직후 부산에서 일어난 한 사건에 대하여 문재인씨는 2011년에 나온 《운명》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창립대회를 하는 날이었다. 행사는 1부 강연회, 2부 창립대회로 예정돼 있었다. 1부 강연 연사가 조갑제씨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국제신문》 해직기자로서,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경찰이 행사장인 강당을 원천봉쇄해 1부 강연회부터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모두 경찰의 원천봉쇄의 불법성을 규탄했다. 그래도 경찰이 꼼짝 않자 노 변호사는 대로(大路)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혼자서 구호를 외치며.〉
 
  노무현은 ‘그 일로 단번에 과격한 변호사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는, 부산시경국장(지금의 부산경찰청장)과 관할 경찰서장을 형사 고소했지만 흐지부지 넘어갔다. 필자는 강연차 부산역에 도착하였을 때 기다리던 정보과 형사들로부터 ‘강연장이 봉쇄되었으니 돌아가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놔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5월 27일 연세대에서 강연하면서 ‘별놈의 보수’ 운운하는 발언을 했다.
  노무현 변호사가 부림사건의 피고인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좌경의식화’이고 그 이후 좌파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엔 그런 가치관에 기초한 정책을 펴 한국을 좌경화시켰다는 필자의 가설(假說)을 입증하려면 대통령으로서 남긴 언동(言動)을 계급투쟁론이란 잣대로 분석해야 한다. 그도 대통령 시절 좌파를 자처하였는데, 좌파의 핵심 논리는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5월 말 연세대 강의에서 진보와 보수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진보, 보수가 뭐냐. 보수는 힘이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 적자(適者)생존을 철저히 적용하자,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우주의 섭리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쪽에 가깝다. 진보는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냐, 더불어 살자다. 자본주의에 사는 한 보수는 약육강식, 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아주 오른쪽에 있는 나라는 더더욱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해하면 간명하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 만수대 의사당을 방문,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 주권의 전당’이란 글을 남겼다.
  노무현의 보수에 대한 반감(反感)과 진보, 즉 좌파에 대한 생각은 자신의 좌편향된 가치관, 즉 계급투쟁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1961년에 아프가니스탄, 짐바브웨, 캄보디아보다도 못한 국민소득을 가졌던 나라(103개국 중 87등)를 50여 년 만에 세계 7위의 수출대국, 삶의 질 세계 12위의 복지국가로 바꿔놓은 주력(主力)은 ‘보수층’으로 불리는 세력이다. 이들에게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고 극언(極言)을 한 사람이, 변화를 거부하고 무자비한 독재로 인류역사상 최악(最惡)의 인간도살을 자행한 수구(守舊)좌익의 본산(本山) 북한정권에 대하여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를 비교하면 그의 머리에 들어가 있었던 사상의 뼈대를 읽을 수 있다.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 주권의 전당.”
 
  2007년 10월 2일, 방북(訪北) 중 평양 만수대 의사당 방명록에 그가 남긴 글이다. 북한주민들의 행복이, 프롤레타리아가 정권을 잡아 이른바 인민 주권을 행사하는 독재의 전당에서 나온다는 말은 계급투쟁론적인 사고방식의 완벽한 표현이다.
 
 
  한총련 庇護
 
  계급투쟁론이 머리에 박히면 세상을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편을 가른다. 반대 세력을 기득권 세력, ‘계급의 원수’ 등으로 몰고 증오심을 부추긴다. 자기편은 무조건 감싼다. 노무현의 경우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런 계급적 관점을 유지, 정책에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한국의 보수언론을 이렇게 비방하였는데, 대통령이 좌익운동권 수준의 언어를 구사한다.
 
  “지난날 독재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해 왔던 수구언론들은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 세력을 흔들고 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2007년 6월 10일 6월 대시위 20주년 기념사)
 
  한총련은 북한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하던 좌익 학생 운동 조직이었다. 노무현은 이들을 아주 따뜻하게 바라본다. 이 또한 계급투쟁론적 감정일 것이다.
 
  “《한겨레 21》에 올라와 있는 한총련 회장 편지를 읽어봤다. 일부 보도나 사회 일각에서 말하듯이 그렇게 단순히 어떤 사상에 경도돼 우리 사회에 철없는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편지 속에서 확인했다.”(2003년 5월 1일 100분 토론)
 
  계급투쟁론에 빠지면 법을 지배 계급의 압제 도구로 보는데, 노무현은 한총련이나 공산주의자 같은 국가 반역자를 다스리는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특히 냉소적(冷笑的)으로 말한다.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은 폐기하고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2004년 9월 5일 MBC 특별대담)
 
  그는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003년 6월 10일 일본 방문 중)고 했다. 공산당과 대치, 사활(死活)을 건 무장-이념대결을 벌이는 나라에서 적(敵)에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의 주장을 한 대통령이 있었다. 그래도 나라가 유지된 것은 또 하나의 기적이다.
 
 
  북한 비호도 계급투쟁적 사고의 소산
 
부림사건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운동권 변호사’가 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거리시위에 참여한 노무현 전 대통령.
  계급투쟁론 신봉자는 그 계급투쟁론을 교리(敎理)로 하여 세워진 북한정권을 절대로 반대할 수 없다. 성경을 믿는 이가 교회를 비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노무현은 북한의 핵(核)개발을 막아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도 핵개발을 사실상 비호하였다.
 
  “미국의 대북(對北) 군사행동에 반대한다. UN안보리를 통한 제재에도 반대한다. 북한에 경제지원을 보다 더 해주고, 체제안전을 약속해야 한다.”(2006년 8월 18일)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며 남한의 지원 여부(與否)에 따라 핵개발을 계속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2006년 5월 29일 향군지도부 초청 환담 중)”
 
  “(북한에 대해)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합니다. 제도적·물질적 지원, 이런 것은 조건 없이 하려고 합니다.”(2006년 5월 9일 몽골 방문 중)
 
  “1987년 이후 북한은 테러를 자행하거나 테러를 지원한 일이 없다. 지금도 테러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근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2004년 11월 12일 국제문제협의회 LA지부 간담회)
 
  그의 주장과는 달리 1997년 김정일의 본처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씨를 찾아내 암살한 이는 김정일이 보낸 공작원이었다. 암살은 테러가 아닌가?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이 한국정부의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2006년 12월 9일 뉴질랜드 교포 간담회)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북핵(北核)을 말하라는 건 가급적 가서 싸움을 하라는 것이다.”(2007년 9월 11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
 
 
  遷都도 舊세력 거세가 목적
 
  노무현의 계급투쟁론적 인식이 한국 현대사에 적용되면 선악(善惡)과 피아(彼我)개념이 뒤집힌다. 대한민국과 미국을 비판하고 중국을 편든다.
 
  “참여정부의 출범으로 아픔의 근현대사는 막을 내리게 됐다. 지난날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굴절을 겪어야 했다.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2003년 3월 1일 3·1절 기념식)
 
  “몇 년 지나면 용산기지는 우리 국민들의 손에 들어온다.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인 그 용산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손에 들어온다.”(2004년 3월 1일 3·1절 기념식)
 
  그는 2003년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학생들 앞에서 가장 존경하는 중국인으로 덩샤오핑(鄧小平)과 함께 마오쩌둥(毛澤東)을 꼽았다. 한국 대통령이, 북진(北進)통일 직전에 중공군을 보내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막은 자를 존경한다고 한 것은 이스라엘 대통령이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한 것과 같다.
 
  그의 통일관도, 자유민주체제 국가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계급투쟁론의 영향을 받은 듯 헌법 위반이다. 북한 지역을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헌법 제3조), 평화적 자유통일을 하라(헌법 제4조)는 헌법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가연합체제에서 각기 지방정부를 갖게 될 것이며 통일수도는 개성 일대에 대단히 상징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회견)
 
  북한정권을 대한민국과 동격(同格)의 국가로 인정하는 반헌법적 논리이고, 북한의 연방제 공산화 통일 방안을 수용한 것이다.
 
  노무현은 신행정수도로 위장한 수도 이전의 진짜 의도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서는 천도(遷都)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한 시대, 지배 세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 큰 변화를 국민이 선택한 것이다.”(2004년 1월 29일)
 
  ‘세력’을 ‘계급’으로 바꾸면 계급혁명의 한 방도로 천도를 추진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계급투쟁론이 도시계획에까지 전방위적(全方位的)으로 확산된 것이다.
 
 
  ‘왼쪽 정렬 세력’의 비밀
 
  1982년 노무현 변호사가 부림사건 변호인이 되어 좌익운동권을 변호하다가 접하게 된 계급투쟁적 가치관은 그 20년 뒤 대통령이 된 후 국가 정책에 전면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그의 입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이념과 사상은 낡은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무서운 것이다. 이념은 ‘공동체의 이해(利害)관계에 대한 자각(自覺)’이고 ‘자기 정당성을 확인해 주는 이론화된 신념’인 것이다. 증오의 과학인 계급투쟁론 신봉 세력을 상대로 이기려면 종교적 신념이나 삶을 건 신념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이념 갈등 사건에서 자동적으로 한편에 서는 세력이 있다. 광우병 난동-천안함 폭침(爆沈)-연평도 포격-철도노조 불법 파업-한국사 교과서 파동 등으로 편이 갈릴 때 왼쪽으로 정렬하는 세력은 북한정권, 민주당, 통진당(舊민노당), 정의당, 민노총, 전교조, 한겨레 신문, 좌경 종교단체 등이다. 이런 세력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조작하든지 왜곡하여 북한정권이나 불법 세력 편을 든다. 평소 북한정권을 비판하던 이들까지도 대한민국과 북한정권, 법치와 불법의 대결구도가 되면 북한정권과 불법 편을 든다. 좌파라고 통칭되는 세력은 거의가 반대한민국, 반법치 성향이다. 스스로 종북(從北)이 아니라고 하는 좌파도 이념문제에선 대한민국 편을 들지 않는다. 한국엔 ‘반북(反北)좌파’가 없다고 보면 된다.
 
  이런 자동적 줄서기의 비밀을 알면 한반도 상황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 이 비밀을 알면 많은 의문이 풀린다. 예컨대, 휴전선 남쪽에선 용감하던 소위 민주투사들이 왜 반민주의 원흉(元兇)인 북한 독재자 앞에 서면 비굴해지는가? 인권을 신념으로 여긴다는 세력이 왜 북한인권법 통과에 대해서는 적대적(敵對的)인가? 구체적으로 김대중, 노무현은 왜 김정일 앞에서 작아졌던가? 부림사건 변호인은 왜 악마 같은 김정일의 변호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가?
 
  한반도의 가장 큰 수수께끼의 정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계급투쟁론’이다. 계급투쟁론이란 세계관에 물들면 그렇게 행동한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발전시킨 계급투쟁론은 간단하다.
 
  〈역사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투쟁을 동력(動力)으로 하여 발전해 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 계급은 자본가이고, 피지배 계급은 노동자들이다. 세계 노동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단결, 폭력으로 자본가 계급을 말살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을 수립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가 정권을 잡는 건 독재이지만 다수에 의한 독재이므로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자본가 계급을 말살한 뒤엔 계급 없는 사회, 즉 공산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
 
  계급투쟁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를 지배 계급의 도구로 보고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도 대상으로 본다. 국가의 기능, 즉 헌법과 경찰과 군대도 타도 대상으로 본다. 좌파는 계급투쟁론을 신념화한 국가부정 세력이다. 계급투쟁론은 폭력을 통한 혁명을 정당화하므로 폭동으로, 헌법질서를 무너뜨리고, 국가와 국가에 충성하는 세력을 말살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의무가 된다. 좌익이 가는 곳에는 죽음이 있다.
 
 
  1억명을 죽인 증오의 과학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골. 계급투쟁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들은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했다.
  프랑스 학자들이 쓴 《공산주의 흑서(黑書)》(2001년)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이 ‘계급투쟁론’이란 ‘증오의 과학’으로 무장하여 벌인 ‘계급학살’로 약 1억명이 죽었다.
 
  소련에서 2000만명, 중국에서 6500만명, 북한과 캄보디아에서 각 200만명, 동구(東歐)에서 100만명, 남미(南美)에서 15만명, 아프리카에서 170만명, 아프가니스탄에서 150만명, 정권을 잡지 못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약 1만명.
 
  북한의 200만명에 1990년대 후반의 대기근으로 죽은 100만명 이상과 한국전으로 죽은 300만명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포함하면 500만명이다. 한국은 종교나 민족분쟁이 없었던 나라이다. 광복 뒤 공산주의가 들어와 증오심과 분열심을 폭발시킨 결과 처음으로 동족(同族) 간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다. 남한에선 남로당이 주동한 1946년의 10월 폭동이 시작이었다. 북한정권은 1990년대 후반 식량이 부족하자 지배 계급이 사는 평양과 군에만 식량을 주고 적대(敵對)계층이 많이 사는 농촌 지역엔 배급을 끊어 이 계층에서 아사자가 특히 많았다. 이 또한 계급차별에 의한 ‘계급학살’로 분류될 만하다.
 
  좌파선동 세력이 몰려다니면서,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북한정권을 비판적으로 다룬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단 한 권도 고등학교에서 쓰지 못하도록 한 이른바 ‘교과서 학살 사건’은 권력을 잡지 못한 좌파가 우파 정부 아래서 한 짓이다. 이런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진짜 학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利敵, 반역, 賣國
 
  한국처럼 공산정권과 대치,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계급투쟁론으로 무장한 좌파 세력이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惹起)한다.
 
  첫째, 남한의 좌파는 계급투쟁론 신봉자들이므로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데는 북한정권과 일치, 자동적으로 이적(利敵) 세력화한다.
 
  둘째,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이고,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라는 점인데, 좌파는 이를 부인하므로 자동적으로 반체제 반역자가 된다.
 
  셋째, 계급투쟁론은 사회를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자본가와 노동자, 가진 자와 없는 자, 1대 99 식으로 편을 가른다. 좌파가 가는 곳에는 항구적인 분열이 있다.
 
  넷째, 계급투쟁론이 국제 질서에 적용되면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보게 된다. 한국의 좌파는 필연적으로 반미(反美)로 진행, 한미(韓美)동맹을 약화시킨다.
 
  적이 없는 유럽 국가의 좌파·공산정권과 적과 싸우는 한국 내의 좌파는 위험 수준이 다르다. 프랑스의 좌파는 나라를 사회주의로 만들겠다는 게 목표이지만 프랑스를 영국에 넘기겠다는 세력은 아니다. 한국의 좌파는 자유민주 체제를 뒤엎으려는 동시에 적을 돕는다. 반역과 매국을 겸한다. ‘종북은 안 되지만 좌파는 괜찮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의 좌파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만 민주정부로 인정한다.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선택,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세계적 경제-민주-복지 대국으로 키운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정부를 민주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장면(張勉) 정부까지도 민주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장면 정부가 반공(反共)자유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하였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계급투쟁론은 학설이 아니라 권력을 잡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이념이다. 공산주의자이든 사회주의자이든 존재 목적은 권력을 잡는 것이다. 권력 숭배주의자들이다. 권력을 잡지 못하였거나 잡았지만 계급혁명에 성공하지 못한 남한의 좌파는 권력을 잡고 계급혁명에 성공한 북한정권 앞에선 작아지게 되어 있다. 이는 힘의 법칙이다. 조국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좌파는 계급투쟁론의 본산인 북한정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조국이 없는 인간은 뿌리 뽑힌 존재이므로 권력 실체 앞에선 무력(無力)하다.
 
 
  ‘북한은 자주국가, 한국은 분단정부’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과 건배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방북 당시 김정일에게 굴종적인 발언을 많이 했다.
  용감한 민주투사로 알려졌고, 전직 대통령 쪽을 향하여 명패를 던지기도 했던 노무현은 왜 김정일 앞에서 그렇게 굴욕적 모습을 보였던가? 먼저 노무현이 김정일 앞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2007년 10월 평양에서 있었던 노무현-김정일 회담 대화록에서 인용한다.
 
  〈충분히 말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드릴까요,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관해서 마음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저항감도 가지고 있고 새로운 기회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전 대통령들(박정희·전두환)을 죽이기 위하여 여러 차례 테러(문세광 사건, 아웅산 테러 등)를 지령하였던 김정일 앞에서 동맹국인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본다는 실토를 하고 있다. 여기서 노무현, 김정일은 좌파 동색(同色)이다. 이어지는 노무현의 발언은 더 충격적이다.
 
  〈자주의 문제를 많이 제기하시는데 영국도 보기에 따라 자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가 북측에 공화국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덜 자주적인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 왔습니다. 분단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한국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어서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계급투쟁론은 국가를 파괴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을 제국주의, 북한을 자주국가, 한국을 ‘분단정부’라고 표현했다. 부림사건 피고인을 통하여 그의 머리에 들어간 계급투쟁론은 제국주의론의 국제질서관(觀)으로 확장되어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 수준(분단정부)으로 인식하는 데 이르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술회가 나온다.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하는 말). 주적 용어 없애버렸습니다. 작전통수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 보내지 않았습니까… 보냈고요… 나갑니다. 2011년 되면… 그래서 자꾸 너희 뭐하냐 이렇게만 보시지 마시고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가지고 우리에게 거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2012년 되면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단독으로 행사하게 됩니다. 남측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그런데 그것은 되도록 가서 판을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의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민족반역자이고 학살자이며 전쟁범죄자인 김정일 앞에서 “자꾸 너희 뭐하냐 이렇게만 보시지 마시고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라고 말한 사람을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계급투쟁론을 신봉하는 좌파 노무현’이었다. 그렇기에 김정일 앞에서 작아지고 비굴해진 것이다. 그러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고백-“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의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1982년 부림사건을 통해 계급투쟁론을 접하였던 그는 25년 뒤 드디어 악마의 변호인임을 자백하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운동권 변호인이 어떻게 악마의 변호인이 되고 말았는가? 답은 나왔다.
 
  계급투쟁론을 공유하는 좌파는 공산당이든, 사회당이든, 사회민주당이든, 통진당이든, 민주당이든, 정의당이든 본질적으로 같다. 공산주의의 본질과 약점을 정확하게 이해하였고, 급소(急所)를 칠 줄 알았던 레이건과 대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를 구분하지 않았다. 같이 묶어서 ‘좌파’ 또는 ‘파쇼좌파’라고 불렀다. 이승만과 트루먼도 그런 사람이었다. 이승만은 “공산당은 호열자와 같다. 인간은 호열자와 같이 살 수 없다”면서 좌우(左右)합작을 거부, 자유민주국가를 세웠다. 그는 김일성-박헌영을, 스탈린을 위하여 복무하는 매국노로 규정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좌우합작 노선을 소위 ‘민족공조’ 노선으로 부활시킨 사람이다.
 
  국민국가를 건설하여 자유통일을 통하여 완전한 민족통일국가로 완성해야 하는 역사적 단계에서 계급투쟁론의 가장 큰 해독(害毒)은 국가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북한 좌익은 계급과 민족을 국가 위에 놓으려 한다. 이들이 좌편향 역사관으로 무장,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는 목표는 대한민국이란 국가이다.
 
 
  왜 머리 좋은 노예가 생기나?
 
미국 내 공산주의 간첩망을 고발한 휘태커 체임버스.
  계급투쟁론을 신봉하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비굴해지고 필연적으로 조국을 배신하게 된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법칙이다.
 
  1930년대 미국 공산당원으로서 미국 내 소련 간첩망에서 일했던 휘태커 체임버스는 소련 첩보기관에 포섭된 두 고급 간첩-IMF 창설의 미국 측 책임자 덱스터 화이트와 유엔 창립 시 미국 측 실무 책임자 앨저 히스를 관리한 사람이다. 그는 공산당과 결별한 이후 이 사실을 미 하원에서 폭로, 히스를 감옥으로 보냈고 화이트는 하원 조사를 받은 직후 심장마비로 급사(急死)하였다.
 
  체임버스가 1956년에 쓴 《증인》이란 회고록엔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발각되지 않았으면 재무부 장관과 국무부 장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두 엘리트가 소련 간첩망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던 체임버스에게 굴종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체임버스는, 국무부의 촉망받는 엘리트 히스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칼’이라고만 소개했다. 미국정부 안에 심어놓은 다른 간첩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체임버스에 대한 히스의 첫 반응은 냉랭하였으나 며칠 뒤 다시 만났을 때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체임버스를 맞더니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체임버스는 어리둥절하였다. 히스는 처음 만났을 때 실례가 많았다면서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듣자 하니 체임버스를 미국인이 아닌 러시아 혁명가로 착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체임버스는 ‘내가 러시아 사람이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히스는 체임버스의 말투에서 지레짐작으로 ‘이분은 러시아 혁명가다’고 판단하고 무한한 존경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체임버스가, ‘나는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미국인이다’고 고백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혁명의 聖骨’ 앞에서 작아지는 좌파들
 
하원 非美활동위원회에서 선서하는 앨저 히스.
  그는 나중에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히스가 배신감을 갖게 될까 겁이 났다. 소련 간첩 조직의 책임자인 진짜 러시아 혁명가에게 문제를 상의했더니 그는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둬. 나쁠 것 없잖아”라고 했다. 미국인 협조자 사이에선 ‘칼’이 러시아 혁명가라는 소문이 돌았고 덕분에 체임버스는 일하기가 편했다. 아무리 미국정부의 엘리트라도 공산주의를 일단 받아들이면 러시아를 조국으로 여기게 되고 러시아에서 온 혁명의 성골(聖骨) 앞에선 작아지는 것이었다.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들에게 한국의 주사파(主思派)가 보이는 반응과 비슷하다. 공산주의는 일종의 종교이므로 세속(世俗)의 직위에 관계없이 당성(黨性)이 강한 사람이 권위를 갖게 된다.
 
  체임버스가 공산주의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것은 스탈린에 의한 무자비한 숙청을 목격한 뒤였다. 그는 1938년 성탄절 직전 히스를 집으로 찾아갔다. 습관대로 외국인풍의 영어를 쓰면서 히스에게 공산당과 결별한 사실을 털어놓으려 하자 히스는 “더 이상 위장하지 마. 당신의 정체에 대해선 이미 이야기를 들었어”라고 잘랐다. 소련 간첩망으로부터 히스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즉 체임버스가 러시아인이 아닌 미국인이고, 공산당을 배신하였다는 정보를 통보받은 것이다. 히스는 체임버스에게 탈당(脫黨) 결심을 번복하라고 했다. 체임버스는 스탈린의 만행을 설명하면서 오히려 히스를 설득하려고 했다. 다 듣고 난 히스는 “당신은 지금 정신적 자위(自慰)를 하고 있어”라고 소리질렀다. 체임버스가 떠날 때 히스는 준비해 둔 성탄절 선물을 건네면서 눈물을 보였다. 체임버스는 회고록에서 이 눈물이야말로 히스가 그래도 인간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썼다.
 
 
  “국가를 부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영화”
 
  박근혜(朴槿惠) 정부는, 좌파 선동 세력이 들고 일어나 계급투쟁론적 관점에서 쓰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북한정권을 비판한 교학사 교과서를 단 한 권도 고등학교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이 교과서 채택 학교를 협박하는 사태를 막지 못하였다. 학교에선 전체주의적 좌익혁명이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은 자살하였으나 그가 심은 계급투쟁론은 살아 있는 권력을 위협한다. 부림사건 수사검사 고영주 변호사는 조선pub 이상흔(李相欣)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노무현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를 변호한 사람이다”면서 영화 <변호인>에 대하여 이렇게 개탄하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친노(親盧) 세력의 결집을 위한 목적이겠죠.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 아무리 비리(非理)를 저지른 경찰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더라도 나중에는 올바른 경찰이 이를 바로잡는 등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식의 영화는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완전히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정말 악랄하죠.”
 
 
  1對 7000만의 구도로 만들어야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가운데서 “통일은 대박이다”고 선언하였다. 통일 공포증을 한 방에 날린 말이었다. 북한 재개발 방식에 의한 흑자(黑字)통일은 가능하다. 전제조건은 자유통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유통일은 대한민국 헌법 1, 3, 4, 10조의 명령이다.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 연합제나 연방제 또는 혼합 방식의 통일은 헌법 위반이다. 민족은 서로 달라도 통일국가를 만들 수 있지만(미국 등), 이념이 다른 정권끼리는 합칠 수 없다. 평화통일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통일은 종국적으로 북한주민의 선택에 달렸다. 북한주민이 독재나 중국 치하(治下)에서 살지 않고 대한민국의 헌법질서 속으로 들어오겠다는 선택을 해야 한다. 독일 통일도 동독(東獨)주민들의 결단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통일전략은 북한주민들이 독재체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북의 폭압정권을 약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말한 대로 ‘1대 7000만’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한 국민 7000만이 북의 수령 1인 지배를 반대하는 통일전선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은 2대 1 구도를 노린다. 즉 북한 1, 남한 종북 세력 1, 대한민국 세력 1로 만들려는 전략이 연방제 통일방안이다.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방과 개혁의 흐름을 촉진시켜 주민들을 깨우치는 게 통일전략의 핵심이다. 북한에선 시장 확대, 휴대 전화기 급증(急增), 한국 텔레비전 방송 쉽게 보기 등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흐름을 확대시키는 노력을 우리가 해야 한다. 한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북한동포를 해방시키는 자유통일을 결심하였다는 정보가 들어가면 북한주민들은 용기를 얻을 것이고, 권력층은 위축될 것이다. 탈북자를 모두 받아들이고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성공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가 결심만 하면 막강한 국력(國力)을 동원, 북한체제를 와해시킬 수 있다. 무력을 쓰지 않고 평화적으로.
 
  북핵과 종북 척결은 통일의 전제조건이라기보다는 통일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대세가 될 때 이 문제 해결도 쉬워진다. 벌써 종북좌파는 반통일 세력이 되었다.
 
 
  계급투쟁론 對 통일대박론
 
  통일의 힘은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 그리고 내부 단합력이다. 통일외교를 잘 해야 한다. 신라 통일에서 배울 점이다. 신라는 당시 최강국이던 당(唐)과 동맹하여 통일에 성공하고 그 당을 한반도에서 축출, 자주통일을 완성하였다. 독일의 통일도 미국과 긴밀한 협조 아래서 이뤄졌다. 한미동맹과 한일(韓日)우호 관계가 유지되어야 통일이 가능하다. 주변국 중 어느 나라도 한국 주도의 통일을 반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통일된 한반도는 동북아 번영의 로터리가 되므로 주변국에 모두 좋다. 한국의 재통일은 자유통일이면서도 자주통일이어야 한다. 국민들도 주인의식을 갖고서 통일에 따른 비용과 위험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통일은 강대국의 꿈을 이룬 한국인이 일류(一流)국가라는 더 높은 목표로 가기 위하여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關門)이다. 자유통일하면 대박이고 못하면 쪽박이다. 자유통일은 국가의 존재 목적이고 국민의 행복조건이며 삶의 보람이다. 얻을 것은 2300만의 생명과 자유, 엄청난 지하자원, 세계에서 가장 비싼 10만 평방킬로미터의 국유지,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이다. 잃을 것은 휴전선과 분열과 갈등이다.
 
  계급투쟁론을 정리할 수 있는 게 통일대박론이다. 국가와 국민과 국군이 결심만 하면 역사의 쓰레기통에 벌써 들어갔어야 할 남북한의 ‘계급투쟁론 신봉 패잔병들’을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 청산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와 국민의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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