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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士의 행복 사연②] 무수한 생과 사의 징검다리 건너…

‘박시호의 행복편지’가 펴낸 신간 《행복은 우리 맘에 있어요》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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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이자 ‘행복편지’ 발행인 박시호(朴市浩·65)씨가 각계 인사 118명을 만나 행복 이야기를 듣고 《행복은 우리 맘에 있어요》(DATA POST 刊)라는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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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편지’ 발행인 박시호(朴市浩·65)씨가 각계 인사 118명을 만나 행복 이야기를 듣고 펴낸 《행복은 우리 맘에 있어요》
박시호 이사장의 말이다.
 
“폭풍우와 혹한을 견뎌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사람도 누구에게나 오는 시련과 고통을 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다면 반듯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118명은 이야기하고 있어요.”
 
《월간조선》은 저자와 출판사 양해로 9분의 명사(名士)가 밝힌 행복사연을 소개한다.
 
① 박홍식, 주홍, 진수형
② 이용우, 김무일, 김현심
③ 류호천, 왕효석, 이봉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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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면 되게 하라
 
이용우 삼성생명 대성법인 대표
 
어릴 때 한여름 교회에서 마룻바닥에 반바지로 무릎 꿇고 열심히 기도하고 바로 바닷가로 나가 계속 무릎을 구부려 보말과 게를 잡다가 갑자기 관절염이 생겼는데 그걸로 학교도 몇 개월 휴학했었고, 상당 기간 뻗정다리처럼 깁스하고 다니기도 했었다.
 
나중에 군대 가서 고생을 안 하려고 ROTC를 지원했지만, 학교생활을 하면서 군사훈련도 받고 여름방학 때는 두 차례나 하계병영훈련을 들어가게 되니까 생각보다 고생스러웠다.
 
임관 후 보병학교 수료 후 설상가상 나 같은 약골이 특전사로 배치되니까 주변에서도 모두 걱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 매년 한라산을 넘나드는 원보훈련을 경험했던 덕분에 용기를 내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남들 못해본 공수훈련, 천리행군, 태권훈련, 수영훈련, 유격전, 특수전 훈련 등 특별과정을 두루 거쳤는데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 같은 것도 많았다.

전역할 무렵 훈련장소로 보내온 대기업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더니 《전우신문》에 삼성그룹 1차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명단을 보고 정말 기뻤다. 그러나 삼성그룹 입문 교육을 마치고 하필 동방생명으로 배치되자 크게 실망했다. 그 당시에는 보험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고, 결혼도 기피당한다는 정도였다.
 
갈등이 있었지만, 특전사에서 익혀온 “안 되면 되게 하라”를 되새기면서 나라고 못 할쏘냐 어디 한번 해보자 하다 보니 1년 반 만에 영업소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보험상품도 전혀 모르고 더군다나 숫기가 적은 내가 억척스럽다고 들어온 보험설계사님들을 이끌고 보험영업을 한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상사들 대상의 집합 교육 시 시장개척 영업의 노하우를 초짜인 내가 대신 탐독하고 리포트를 쓰다 보니 이렇게 하면 영업을 잘할 수 있겠다는 도전의식을 갖게 되었고, 일반 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개척 영업을 시도하다 보니 자신감과 확신 그리고 실천 노력 등에 힘입어 상당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고 직역 개척의 표준 모델0| 되다시피 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러다 보니 36세에 최연소 영업국장이 되었고 IMF 때는 더욱 빛을 발했고 1~2년마다 발령 나서 옮기는 영업국마다 모두 최우수 성과를 내어 임원승진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퇴임하여 회사에서 차려준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평생직장으로 행복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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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그날
 
김무일 전 현대제철 부회장
 
어언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무수한 생과 사의 징검다리를 건너, 1년 만에 귀국선에 오르던 날의 행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치열했던 전쟁터를 떠나기 전, 잠깐 말미를 얻어 가까운 성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애를 통해 가장 간절한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백발이 성성한 베트남인 신부님을 찾아 고해성사를 청했습니다.
 
‘나의 수호신 주님의 각별하신 보호로 오늘 무사히 귀국하게 됨을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라고. ‘아울러 치열한 전투 줌에 저와 제 부하들이 저지른 악과 십계명을 어긴 죄를 주님의 크나큰 은총으로 긍휼히 사해 주십사’라고~.
 
이어서 ‘이제부터 남은 생애를 주님께서 뜻하심을 쫓아 올바른 길을 따라 이웃에 봉사하며 열심히 살아가겠노라’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낳아 길러주시고 무사히 돌아올 것을 간곡히 기도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감사의 기도를 함께 드리고 귀국선에 올랐습니다.
 
이후, 여섯 밤 일곱 낮을 지나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밟던 날, 부산 제3부두는 온통 환영 일색이었습니다. 그 한구석에 아들의 장한 귀환을 반기시는 부모님과 전유미자를 만나던 그날의 감격은 아마도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감동이며 행복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비로소 지난날의 소회를 이곳에 간단히 남기는 것 또한 커다란 행복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밝게 다가올 것이다.’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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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칭찬 한마디
 
김현심 전 예금보험공사 차장
 
아버지와 이별한 지 어언 14년이 되었습니다.
 
생전의 아버지는 평소에 감히 곁에 다가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가족들한테는 엄격하시고 보수적이시며, 학교성적이 좋을 때나, 칭찬받을 일을 해도 언제나 칭찬에는 인색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태어나 처음으로 곁에 앉아 등을 쓰다듬어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버지가 세상과 이별하시기 불과 3개월 전쯤부터이었던 거 같습니다. 아픔의 고통을 호소하시면서 거의 매일 새벽이면 잠에서 깨어나셔서 괴로워하실 때마다 저도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 아버지 등을 쓰다듬어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등을 쓰다듬어 드리면 편안해 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서 제게는 처음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것도 세상과 이별하시기 불과 며칠 전에요~~~.

“참 고마웠다. 수고했다.~~~”
 
아버지와 이별한 지 14년의 세월이 흘렀고,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눈을 감고 그 한 말씀 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하고 미소가 지어지곤 합니다.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입력 : 20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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