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워싱턴D.C의 야경 (내용과는 무관함)
미국에 처음와서 겪었던 필자의 에피소드중 하나는 바로 선,후배 관계에서 비롯된것이었다.
필자는 장남(長男)으로 자라왔던지라 위로는 형이나 누나가 없다. 따라서 누군가를 보고 존대말을 쓰는것이 익숙치 않았다. 물론 부모님께는 존대를 쓰지만, 고작 한 두살 위의 형이나 누나에게 존대말을 쓴다는것이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선배한테 맞을뻔한적도 있었고
찍힌적도 여러번 있었다. 여러번의 고비끝에 입에 존대말 쓰기가 익숙해졌다.
한국에서도 아는 형이 있었지만 그 형들에게 조차 존대말을 쓰지는 않았고 그 형님들 조차 존대말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헌데 이 미국이란곳에 와서 깨지지않는 규칙이 바로 이 절대존대말의 법칙이다. 이는 이미 유학생 문화속에 뿌리깊게 박힌지라 이런 룰을 벗어나서 유학생들의 문화를 설명할수 없다.
필자가 2001년 미국에 처음 갔을때는 이런 계급의 룰이 필자의 학교에만 존재하는줄로 알았다. 하지만 이는 유학생들 사이의 오래된 서열제도였다. 유학생들끼리 처음 상대를 만나면, 이때 가장 중요한것은 바로 생년월일이다. 특히 몇년생인지가 관건이다. 처음 만난 한국인 상대에게 묻는 첫번째 질문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저 실례지만, 몇년생이세요?” 그리고 곧장 상대의 년차가 파악이되면 거기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 이 서열따지기는 군대의 계급장도 아니고 직장에서의 직책도 아닌 모호한 형태의 유학생만에 서열제도가 생겨났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서열제도가 확실히 박혀있는지라 서로 나이를 물을때는 “네, 팔오년생입니다, 팔육년생입니다” 의 대답이 보통이다.
이런 유학생들 사이의 서열제도는 어디서 생겨난것일까?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생긴것일까? 사회인으로써 발을 들여놓는 그런 단계의 장(場)이 이런 이국땅에서 부터 행해지는것일까?
한국에서조차 이정도로 깎듯하지 않았던 서열찾기가 미국이란 외국에서 유독 그리도 강하게 뿌리내렸는지, 참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다.
덕분에 필자는 고등학교 4년간 그리고 지금 대학2년째 동안 선배들과 마주칠때면 90도로 깎듯이 인사하곤 했다. 또한 존대말도 꼬박꼬박 썼다. 이런 모습을 보시면 우리의 아버지세대가 웃을법도 하지만, 이런 년생따지기를 막을수는 없다. 그리고 선배들의 역할은 후배를 잘 도와주고 앞에서 당겨준다는 졸업식 노래가사말 같은것이지만, 과연 그런지도 의문이다.
선배의 입장이된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제 오히려 후배들에게 인사를 받지 않으면 불편하다.
그리고 화가 나기도 한다. 왜냐면 그것이 바로 필자가 선배들에게 당했던것이고 선배들에게 했던 대접이기에 그런 반응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간혹 선후배 사이에서 이런 예절문제로 싸우기도 한다. 미국, 무폭력사회에서의 싸움은 상당히 큰일이다. 그래도 일부 학생들은 몰래 싸우기도 하고 집단구타도 행해진다. 그렇다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미국에서의 이런 서열따지기는 한국인 집단의 기강세우기에 일부라고 볼수 있다. 마치 조직폭력배들의 조직같이 이런 서열따지기와 친목도모를 통해 한국인외의 타 그룹을 경계하고 발전을 해나가는 형태라고 할수 있다. 이런 조직내에서의 원할한 활동을 위해서는 선배에 대한 예의는 중요한것이다. 그래야지 선배들이 어려울때 도와주기도 하고 밥도 사주기도 한다.
물론 이에 익숙치 못해 낙오자가 되는 경우는 왕따아닌 왕따로 전락하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왕따는 타 외국인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들에게도 같은 동족 그룹에서 조차 떨어진 외톨이에게는 타 그룹의 환영도 없다. 필자는 이런 그룹생활에서의 방황과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미국이 아무리 모두가 섞인 장벽없는 국가라고 해도 사람은 또래집단끼리 어울리기 나름이다. 흑인은 흑인들끼리, 히스페닉은 히스페닉끼리, 미국인은 미국인들끼리,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이런 이해못할 형태의 태도는 한창 자라나는 고등학교에서는 더 하다. 이런 인종별 그룹이 조직만큼이나의 과시나 집단행동이 많은것이 사실이다.
이런 선 나누기식의 조직형태는 어찌보면 진정한 미국의 모습이라고도 할수있다. 지금 6년정도에 생활을 해본 필자로서는 이런 인종별 구분은 어느정도 납득이 가고 일부 맞다고 할수있다.
미국사회에서 가장 주축이자 핵심이되는 사회는 바로 화이트 카라(white collar)의 백인집단이다. 미국사회에서 평등을 논하며 공정 고용기회 위원회,EEOC(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ission) 라는 기관까지 만들어서 인종이나 성별에 의한 차별을 보호하려고는 하지만 실제로 고용인금의 차이는 존재한다.
어찌되었건 생존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들간에 강력한 협력체제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에는 선후배간에 예의가 중요시 되고 있는것이다. 한번선배는 영원한 선배로 대접 받는다. 나이가 밥 먹여주는것도 아니지만, 실로 미국의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나이가 밥 먹여준다. 처음 어린나이에 유학을 갔던 필자는 이런 사회에서 생존을 하기위해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마치 무형(無形)의 먹이사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눈치보기는 기본이며 선배님들 비위맞추기, 심부름 하기 등등. 필자의 선배들은 늘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당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배들의 선배들은 더 했다며 위로아닌 위로를 통해 우리를 설득하려 하셨다.
대학교에 와서는 대체로 이런 선후배 관계를 회피하는 방법도 있긴하다. 왜냐하면 워낙 넓은곳이고 자유로운 곳이다 보니 개인이 아예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사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내빼기가 쉽지않다. 또한 애시당초 들지 않으면 중간에 끼기도 어렵다. 이 한국인들의 사회를 통해 얻는 이익도 있을테지만 너무 얽히다 보면 자신의 사적인 시간없이 빠져서 살아야 한다. 따라서 각자의 능력이 필요하다.
필자의 어머니께서 늘 말씀해 주신 “불가근 불가원(不街近 不街遠)”의 법칙은 필자가 이런 생활속에 생존하는데 큰 도움을 준 방법이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말 그대로의 뜻이다. 물론 이는 행하기가 쉽지 않으나, 필자처럼 다년간에 숙달을 통하면 익숙해진다. 그러면 곧장 인간관계의 밀고 당기기의 논리를 알게 되는것이다. 너무 가깝고 친하던 친구도 너무 가까우다보면 이내 흐트러지고 싸우기 마련이다. 그리고 너무 멀다보면 나중에는 친구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된다. 이 불가근 불가원의 핵심은 바로 타이밍이라고 필자는 말할수 있다. 적절한 타이밍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이다.
유학생들이 만들어낸 또하나의 문화.
어찌보면 너무 지나칠수도 있는 예절이 남용 되지 않는 선 안에서
실로 선후배의 협력을 도모하는 쪽으로 흘렀으면 하는 바램이다.
워싱턴 D.C. 통신원; 김동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