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신문 기자가 “추석명절 내내 욕설이 난무하는 조폭 영화가 방영되어 눈살을 찌푸렸다”는 칼럼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이 칼럼을 쓴 기자는 “‘가문의 위기’(5일) ‘투사부일체’(7일·이상 SBS) ‘싸움의 기술’(6일·MBC) 등 ‘조폭 영화’에서는 육두문자나 잔혹한 장면이 걸러지지 않았다. ‘투사부일체’에서는 ‘이 ××× ×아’라는 욕이 그대로 방영됐고, ‘싸움의 기술’에서는 맨손으로 칼날을 잡아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이 나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적절한 지적입니다. 어린 아이까지 보는 지상파 방송이 이럴진대 케이블 TV의 상황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케이블 TV에서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방영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위 기자 지적처럼 이 영화에서 수시로 튀어 나오는 쌍욕이 전혀 걸러지지 않고, 전파를 타고 있었습니다. 새벽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TV를 많이 보는 시간대였습니다.
어른들이 하도 험한 꼴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모두 양심이 마비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 자식들에게 이런 영화를 보라고 험한 대사를 지우지도 않고 백주 대낮에 틀어줄 수가 있습니까.
올해 초 재미 저술가인 조화유 선생님이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올드보이가 형편없는 영화”라고 비난했습니다. 조 선생님은 “이런 영화를 잘 만든 줄 알고, 스크린 쿼터제 축소 반대 운동에 나선 박찬욱 감독은 과대평과 되었다”고 혹평을 퍼부었습니다. 조화유 선생님은 “피비린내 나는 사디스트적 폭력 영화는 이제 그만 만들고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그런 영화를 만들면 보지 말라고 해도 영화를 볼테니 제발 영화나 잘 만들어 달라”고 한국의 감독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폭력 영화, 특히 그 중에서도 깡패(조폭) 영화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깡패의 세계를 그린 ‘친구’라는 영화가 나온 뒤, 한동안은 제작되는 거의 모든 영화가 깡패 영화일색일 정도였습니다. 영화 ‘친구’는 ‘친구의 의리’를 내세워 ‘깡패의 의리’가 마치 남자들이 가져야 할 의리의 표본인 것처럼 비춰지는 이상한 현상을 낳기도 했습니다.
요즘 모 방송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깡패들이 나와서 '무슨 뉴스'라는 코너를 진행하면서,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깡패가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서 코미디 프로그램에 이 코너를 배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코너에 나온 깡패들이 옳은 소리를 할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를 보내고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TV 프로그램의 문제는 깡패가 등장하여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것 자체만으로 깡패를 미화할 수가 있다는 데 있습니다. 자칫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에게 깡패나 조폭문화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줄 수 있습니다.
저도 '깡패'나 '조폭'을 '우리 사회의 필요악'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깡패나 조폭은 없어져야 할 '절대악'이지 '필요악'이 아닙니다.
그들이 먹고 살기(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량한 국민 누군가는 그들의 폭력앞에 희생물이 되어야 합니다. "술집의 영업권을 보호해준다"느니 "밤 업소의 질서를 잡는다느니"하는 것은 또 다른 깡패로부터 영업권을 보호해 준다는 의미지, 이 깡패들이 무슨 합법적 방법으로 술집이나 시민을 보호해 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 누나는 미국에서 큰 술집을 두 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미국에서 술 집을 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깡패의 보호가 아니라, 법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법대로 장사해서 세금만 잘 내면 깡패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와서 수많은 깡패조직들이 기업을 운영하면서 일종의 합법화 과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본질이 폭력 속에서 태어난 이들 기업이 얼마나 합법적으로 운영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을 괴롭히지 않고 정당하게 돈을 벌고 세금을 내면 그 또한 애국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 깡패들이 하는 사업들이 대부분 검은 커넥션이나, 불법과 탈법 속에서 형성되거나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검은 자금이 정치권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정치권도 쉽게 이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일종의 검은 생존 사슬이 형성됩니다.
일본의 야쿠자나, 러시아의 마피아들은 국가를 우습게 알면서, 어떤 면에서 국가조직의 비호를 받고, 또 어떤 면에서는 국가조직과 공생을 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국가가 초반에 깡패 같은 사적인 폭력 조직을 제압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손쓸 수 없을 단계에 이른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그동안 깡패 조직이 일정세력 이상으로 크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대처를 해 왔습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러시아처럼 무시무시한 조직 폭력배들과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조직화 되고, 기업화된 깡패 집단들이 지금 어느 정도 어떻게 성장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깡패들도 일본이나 러시아의 깡패들 같은 조직을 같추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을 하고 있을 텐데, 경찰이 얼마나 이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들이 경찰과 정치인까지 합법을 가장한 검은 돈으로 조정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나라도 어느 순간 깡패들의 힘을 사실상 인정 해야만 하는 세상에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대구의 한 병원 영안실에서 깡패들의 실체를 보고 분노로 치를 떤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깡패들이 자기들끼리 패 싸움을 했는지 한 명이 죽어서 그 병원에서 영안실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깡패 대원의 초상을 치르는 3일 동안 병원 영안실은 수십 명의 깡패 패거리들에게 점령당해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영안실 문마다 덩치 큰 깡패 졸개들이 두 명씩 지키면서 자기 조직원들이 들락거릴 때마다 90도로 인사를 해댔습니다. 그들은 좁은 영안실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고 자기들끼리 고성을 질렀습니다. 무려 3일 동안 다른 유가족들은 이들의 위압적이고 안하무인적인 행동에 곡소리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하루는 발인을 하려고, 밖에 내놓은 어느 고인의 관(棺)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깡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약 깡패가 걸터앉은 그 관의 주인이 우리 가족이었다면 저는 반사적으로 그 깡패 놈에게 달려들었을 것이고, 그놈들과 싸우다가 저도 칼을 맞아 죽었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남의 집 관이지만, 고인의 관 위에 걸터앉은 깡패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을 보도고, 그들의 물리적 힘이 두려워 말 한마디 못한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법이 있지만, 무법천지인 세상을 보았습니다. 불의를 보고도 폭력이 무서워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고,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의 심성을 그렇게 파괴하는지는 전에는 몰랐습니다.
당시 제가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내가 깡패입니다' 하는 사람들이 3일동안이나 영안실을 휘젓고 다닐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전까지는 깡패들이 최소한 공공장소에서는 신분을 감추면서 나타나는 줄 알았습니다.
살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경찰이 영안실을 왔다 갔다 했지만, 그들의 무법천지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이들의 영안실 집단 난동을 제지하지 않으니 우리같은 시민들이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좋은 강패는 없습니다. 돈과 조직을 위해 남을 해치는 깡패의 세계를 '남자의 의리'로 보는 사람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의리'는 돈과 폭력에서 나오는 노예화된 의리입니다. 그런 폭력적 의리를 우리가 간혹 목숨까지 버리면서 지켜야 할 고귀한 ‘의리’와 동급으로 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깡패를 미화하는 영화가 난무하고, 반윤리적이고 변태적인 폭력물이 관객동원 1위가 되는 나라는 정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좋아 할 수 있지만, 전 국민이 무슨 최면에 걸린듯이 아무 비판 없이 그런 폭력물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국민들의 심성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거나, 뒤틀려 있거나, 교양이 곱게 함양되지 않을 때 가학적이고 비정상적인 영화에 쉽게 빠져든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좋은 영화를 찾으면 감독들도 변태적이고, 삐딱하고, 뭔가 좀 뒤틀린 영화를 만들어야 대접받는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아름다운 모습을 더 많이 보며 자라야 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서라도 깡패를 영웅시 하거나, 그들이 펼치는 폭력의 잔치가 정의로 표현되는 영화가 다시는 제작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 칼럼을 쓴 기자는 “‘가문의 위기’(5일) ‘투사부일체’(7일·이상 SBS) ‘싸움의 기술’(6일·MBC) 등 ‘조폭 영화’에서는 육두문자나 잔혹한 장면이 걸러지지 않았다. ‘투사부일체’에서는 ‘이 ××× ×아’라는 욕이 그대로 방영됐고, ‘싸움의 기술’에서는 맨손으로 칼날을 잡아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이 나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적절한 지적입니다. 어린 아이까지 보는 지상파 방송이 이럴진대 케이블 TV의 상황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케이블 TV에서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방영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위 기자 지적처럼 이 영화에서 수시로 튀어 나오는 쌍욕이 전혀 걸러지지 않고, 전파를 타고 있었습니다. 새벽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TV를 많이 보는 시간대였습니다.
어른들이 하도 험한 꼴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모두 양심이 마비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 자식들에게 이런 영화를 보라고 험한 대사를 지우지도 않고 백주 대낮에 틀어줄 수가 있습니까.
올해 초 재미 저술가인 조화유 선생님이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올드보이가 형편없는 영화”라고 비난했습니다. 조 선생님은 “이런 영화를 잘 만든 줄 알고, 스크린 쿼터제 축소 반대 운동에 나선 박찬욱 감독은 과대평과 되었다”고 혹평을 퍼부었습니다. 조화유 선생님은 “피비린내 나는 사디스트적 폭력 영화는 이제 그만 만들고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그런 영화를 만들면 보지 말라고 해도 영화를 볼테니 제발 영화나 잘 만들어 달라”고 한국의 감독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폭력 영화, 특히 그 중에서도 깡패(조폭) 영화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깡패의 세계를 그린 ‘친구’라는 영화가 나온 뒤, 한동안은 제작되는 거의 모든 영화가 깡패 영화일색일 정도였습니다. 영화 ‘친구’는 ‘친구의 의리’를 내세워 ‘깡패의 의리’가 마치 남자들이 가져야 할 의리의 표본인 것처럼 비춰지는 이상한 현상을 낳기도 했습니다.
요즘 모 방송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깡패들이 나와서 '무슨 뉴스'라는 코너를 진행하면서,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깡패가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서 코미디 프로그램에 이 코너를 배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코너에 나온 깡패들이 옳은 소리를 할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를 보내고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TV 프로그램의 문제는 깡패가 등장하여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것 자체만으로 깡패를 미화할 수가 있다는 데 있습니다. 자칫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에게 깡패나 조폭문화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줄 수 있습니다.
저도 '깡패'나 '조폭'을 '우리 사회의 필요악'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깡패나 조폭은 없어져야 할 '절대악'이지 '필요악'이 아닙니다.
그들이 먹고 살기(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량한 국민 누군가는 그들의 폭력앞에 희생물이 되어야 합니다. "술집의 영업권을 보호해준다"느니 "밤 업소의 질서를 잡는다느니"하는 것은 또 다른 깡패로부터 영업권을 보호해 준다는 의미지, 이 깡패들이 무슨 합법적 방법으로 술집이나 시민을 보호해 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 누나는 미국에서 큰 술집을 두 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미국에서 술 집을 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깡패의 보호가 아니라, 법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법대로 장사해서 세금만 잘 내면 깡패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와서 수많은 깡패조직들이 기업을 운영하면서 일종의 합법화 과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본질이 폭력 속에서 태어난 이들 기업이 얼마나 합법적으로 운영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을 괴롭히지 않고 정당하게 돈을 벌고 세금을 내면 그 또한 애국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 깡패들이 하는 사업들이 대부분 검은 커넥션이나, 불법과 탈법 속에서 형성되거나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검은 자금이 정치권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정치권도 쉽게 이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일종의 검은 생존 사슬이 형성됩니다.
일본의 야쿠자나, 러시아의 마피아들은 국가를 우습게 알면서, 어떤 면에서 국가조직의 비호를 받고, 또 어떤 면에서는 국가조직과 공생을 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국가가 초반에 깡패 같은 사적인 폭력 조직을 제압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손쓸 수 없을 단계에 이른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그동안 깡패 조직이 일정세력 이상으로 크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대처를 해 왔습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러시아처럼 무시무시한 조직 폭력배들과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조직화 되고, 기업화된 깡패 집단들이 지금 어느 정도 어떻게 성장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깡패들도 일본이나 러시아의 깡패들 같은 조직을 같추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을 하고 있을 텐데, 경찰이 얼마나 이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들이 경찰과 정치인까지 합법을 가장한 검은 돈으로 조정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나라도 어느 순간 깡패들의 힘을 사실상 인정 해야만 하는 세상에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대구의 한 병원 영안실에서 깡패들의 실체를 보고 분노로 치를 떤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깡패들이 자기들끼리 패 싸움을 했는지 한 명이 죽어서 그 병원에서 영안실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깡패 대원의 초상을 치르는 3일 동안 병원 영안실은 수십 명의 깡패 패거리들에게 점령당해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영안실 문마다 덩치 큰 깡패 졸개들이 두 명씩 지키면서 자기 조직원들이 들락거릴 때마다 90도로 인사를 해댔습니다. 그들은 좁은 영안실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고 자기들끼리 고성을 질렀습니다. 무려 3일 동안 다른 유가족들은 이들의 위압적이고 안하무인적인 행동에 곡소리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하루는 발인을 하려고, 밖에 내놓은 어느 고인의 관(棺)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깡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약 깡패가 걸터앉은 그 관의 주인이 우리 가족이었다면 저는 반사적으로 그 깡패 놈에게 달려들었을 것이고, 그놈들과 싸우다가 저도 칼을 맞아 죽었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남의 집 관이지만, 고인의 관 위에 걸터앉은 깡패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을 보도고, 그들의 물리적 힘이 두려워 말 한마디 못한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법이 있지만, 무법천지인 세상을 보았습니다. 불의를 보고도 폭력이 무서워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고,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의 심성을 그렇게 파괴하는지는 전에는 몰랐습니다.
당시 제가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내가 깡패입니다' 하는 사람들이 3일동안이나 영안실을 휘젓고 다닐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전까지는 깡패들이 최소한 공공장소에서는 신분을 감추면서 나타나는 줄 알았습니다.
살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경찰이 영안실을 왔다 갔다 했지만, 그들의 무법천지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이들의 영안실 집단 난동을 제지하지 않으니 우리같은 시민들이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좋은 강패는 없습니다. 돈과 조직을 위해 남을 해치는 깡패의 세계를 '남자의 의리'로 보는 사람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의리'는 돈과 폭력에서 나오는 노예화된 의리입니다. 그런 폭력적 의리를 우리가 간혹 목숨까지 버리면서 지켜야 할 고귀한 ‘의리’와 동급으로 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깡패를 미화하는 영화가 난무하고, 반윤리적이고 변태적인 폭력물이 관객동원 1위가 되는 나라는 정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좋아 할 수 있지만, 전 국민이 무슨 최면에 걸린듯이 아무 비판 없이 그런 폭력물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국민들의 심성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거나, 뒤틀려 있거나, 교양이 곱게 함양되지 않을 때 가학적이고 비정상적인 영화에 쉽게 빠져든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좋은 영화를 찾으면 감독들도 변태적이고, 삐딱하고, 뭔가 좀 뒤틀린 영화를 만들어야 대접받는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아름다운 모습을 더 많이 보며 자라야 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서라도 깡패를 영웅시 하거나, 그들이 펼치는 폭력의 잔치가 정의로 표현되는 영화가 다시는 제작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