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탑뉴스-정부의 북한 인권결의안 찬성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6-11-19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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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모든 일간지에 “우리 정부가 유엔의 북한 인권법 결의안에 찬성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으로 장식되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무 흔하고, 당연한 소식은 뉴스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도 이상한 세상에 살아서 그런지, 정부가 북한의 인권 결의안에 찬성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주요 뉴스로, 그것도 온 나라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뜨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아무리 생색을 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이 정부가 북한 인민들에게 가한 반인권적인 행위는 기록으로 남아 역사가 되어 후세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훗날 자신들이 김정일의 노예가 되어 맞아죽고 굶어죽고 있을 때 철저히 침묵한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행태에 대해 그 죄를 물을 날이 올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 중에서 가장 비참한 것이  굶어 죽는 것일 겁니다. 굶주림은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지켜보는 가족과 이웃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간성을 파괴합니다. 부모 자식이 눈 앞에서, 굶어 죽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힘이 못되었던,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훗날 어떻게 정상적인 삶을 살아 갈수가 있겠습니까. 때문에 자기 인민을 굶겨 죽이는 정권이 있다면 이는 정권이 아니라, 깡패 집단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북녘의 동포들은 지난 50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받아온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이들이 농사가 안 되는 아프리카의 사막에 사는 것도 아니고, 게을러서 노동을 적게 한 것도 아닙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맨 손으로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고, 석탄을 캐고,  공장을 지어온 사람들입니다. 노동의 강도나, 양을 봐서는 도무지 굶어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인데도, 단지 김일성 김정일 두 부자의 권력과 쾌락유지를 위해 희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아이들은 두뇌에 영양이 공급되지 않아 저능아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 인민들의 평균 신장이 우리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조선후기의 사람들보다 작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통일이 된 후 험한 사회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북한 인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김정일 정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이미 그 스스로의 힘으로는 개혁도 개방도 할 수 없고, 인민을 먹여살릴 수도 없다는 것이 판명났습니다. 김대중 정부들어 이런 김정일이가 혹시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대북정책을 펴고 있는데, 삼척동자에게 대북 정책을 맡겨도 이들 보다는 더 나을 것입니다.
 
김정일이 없어지는 날 북한 인민들의 고통은 눈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문제는 김정일이 그 자식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날, 북한 주민들은 또 기약 없이 50년, 1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해야 할지 모른 다는 데 있습니다. 소위 인권운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김대중씨는 북한 인민들의 고통에 동정을 보내는 대신 김정일과 뒷거래를 한 후, 철저히 북한 인민의 고통을 외면해 왔습니다.  
 
김대중씨가 북한 인민의 고통을 단지 외면만 했다면 훗날 핑계라도 댈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그는 독재자를 도와 북한 인민의 고통을 연장시키는데 동참을 했습니다. 김대중이 반인권적인 행동은 우리나라 역사가 지속되는 한 잊지 않을 것입니다.
 
김대중씨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북한에 아무 빚진 것이 없는 노무현 정부는 왜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토록 두려워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 이 닮은 꼴 정권은 그동안 그 많은 돈과 쌀을 북한에 주고도 단 한명의 납북자나 국군포로도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이산가족들의 죽어서도 소원인 북녘 가족들의 생사확인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니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느라 아예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도덕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정권이 들어섰다면 이산가족 생사확인 문제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소련 붕괴 후 남북관계에서 칼 자루는 우리가 쥐고 있었습니다. 지난 10여년 간 남북관계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아쉬운 쪽은 북한이었지,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국제적 여건도 우리편이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진짜 의지만 있었다면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문제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단 한 명의 이산가족이 있더라도 이들의 아픔을 풀어주는 것이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전행 후 무려 1000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가족의 생사조차 모른 채 고통 속에서 눈을 감았거나, 지금 이 시간에도 한을 품을 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상식을 가진 지도자라면 국민의 이런 응어리를 풀어주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역대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흥정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에 오면서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김일성은 애초부터 이산가족과 월남자 가족들을  반혁명분자로 낙인찍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는 이산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당연한 벌로 생각했고, 때문에 이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산가족들을 감시하고, 수용소에 보내고, 북한 사회에서 가장 대접을 못 받는 사회적 약자로 전락시켜 왔습니다.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김정일이가 김대중 정부들어 금강산에서 100명씩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했습니다. 김대중씨는 이런 김정일이를 두고 식견있고, 효심이 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김정일이 개과천선을 해서 갑자기 이산가족의 아픔이 눈에 들어와서 금강산 상봉을 허용했겠습니까.
 
1990년대 들어 아사자가 속출하고, 정권이 궁지에 몰리자, 북한은 황장엽씨 말대로 '빌어먹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우리가 대북 지원물자를 주겠다고 해도 "사회주의 낙원에서 우리는 잘 먹고 잘 산다. 지원같은 것은  필요없다"고 큰 소리 치던 김정일이 대놓고 남쪽에 손을 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대략 200~3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말이 300만 명이지, 김정일은 1000만 명이 굶어 죽었어도 체제 유지만 가능했다면, 눈하나 깜짝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에 없는 대량 굶주림 사태는 김정일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었고, 김정일은 부랴부랴 거렁뱅이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은 이렇게 지원 받은 돈을 주민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당간부와 평양주민, 군에만 식량을 공급하여 동요을 없애고, 주민들은 계속 굶어 죽게 내버려 둔 것입니다. 외부에서 식량이 꾸준히 들어간 1990년대 후반에도 북한에서 대량 아사자가 계속 발생한 것이 이를 잘 증명합니다. 혁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죽을 자유도 없다며, 김정일은 굶어 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것까지 무자비하게 처형을 하고, 수용소에 보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이산가족 문제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김대중이 평양을 방문하자 마치 통큰 인심이나 쓰듯이 "어저께 남쪽 테레비를 보니, 이산가족이 진짜로 막 울더라"면서 "이산가족 상봉뿐 아니라 화상면회까지 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인간입니다.
 
물론 김정일이 이렇게 나온 것은 이산가족 상봉으로 현금도 벌고, 대외적인 선전도 하고, 대북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카드가 되기 때문입니다. 과시적인 성과가 급했던 김대중씨에게 이산가족들의 진짜 눈물이 보이지 않았는지, 김정일 방식으로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쌍방이 한번에 100명씩 만나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정치적이고 기형적인 금강산 상봉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과 서신 교환문제는 입도 뻥긋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강산 상봉식으로 이산가족들이 다 만나려면 100년이 가도 모자랍니다. 이 상봉에 끼지 못한 어느 노인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하기도 하고, 더 많은 이산가족들은 이들의 만남을 지켜보면서 이삼 중의 슬픔을 겪고 있습니다. 가족을 만난 사람들도 얼굴 한번 잠깐 보고는 그후에는 편지 한장 교환하지 못하는 현실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산가족을 이런 식으로 고통으로 내몰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는 지난 100년간 고난한 시절을 겪어 왔습니다.
우리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공부는 고사하고, 생존조차 하기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자식들이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형제자매의 보살핌으로 동생들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런 고단한 세월을 살아와서 그런지 전 세계에서 우리만큼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 간에 깊은 유대를 가지고, 서로에 대해 애틋한 심정을 가지고 있는 민족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김정일은 이런 착하고 불쌍한 백성들이 자기 아버지 때문에 생이별을 하고 있는데도, 무려 50년이 넘도록 그 간단한 생사확인 조차 해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김정일이 바로 악마일 것입니다. 김정일은 100명씩 쇼하듯이 하는 상봉 행사마저 툭하면 그만두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피를 받은 사람 중에 어떻게 김정일 같은 희대의 돌연변이가 생겼는지 이해 못할 노릇입니다. 
 
우리까지 김정일의 악마성에 휘둘려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람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 만큼 이산가족에게 급한 것이 없습니다. 가족의 상봉은 차후의 문제이고, 그와는 별도로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문제는 일분일초도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하다못해 비료 한 포대에 생사확인 한 명이라는 조건이라도 붙여서 우리의 의지를 꾸준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입니다.   

2003년, 월간조선은 국회도서관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6.25 전쟁 납북자 피살자 명부' 발굴하여 이를 책으로 발간했습니다. 이 명부는 전쟁 중이던 1952년 경 이승만 정부가 공무원을 동원해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명부가 발간되자, 한 여름 불볕 더위를 뚫고, 70, 80 넘은 노인들이 월간조선의 좁은 사무실로 꾸역꾸역 몰려들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전국에서 온 노인들은 저마다 돋보기를 꺼내들고 가족들의 명단을 확인했습니다. 월간조선 사무실은 근 한달간 가족의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 노인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명단을 확인한 이는 부모가 살아 온듯이 기뻐했고, 명단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명단을 확인했다고 해서 이들 이산가족들에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모형제를 잃은 그들의 지난 인생이 보상받는 것도 아니고, 명단에 있던 사람이 튀어 나와서 손이라도 덥석 잡아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단지 반세기 전 정부가 자기 부모, 형제의 납북 사실과 피살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는 것 하나에 감격하고, 눈물흘렸습니다.  명단에 없는 사람들은 마치 자기 부모형제가 정부에서 버림받고,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처럼 서운해 했습니다.

명단을 확인하러 온 이산가족들 중 열에 7~8명은 가족의 명단을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명단이 6.25 당시 어수선 할 때 유가족들의 신고로 작성이 되었고, 그 후 정부차원에서 한 번도 납북자 피살자에 대한 정밀한 재조사가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누락된 명단이 너무 많았습니다. 특히 의용군에 끌려간 사람들은 가족들이 신고를 기피해 명단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르는 노인들이 명단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김정일의 멱살이라도 잡고 와서 이들 앞에 꿇어 앉히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 책이 발간 된 후 최소한 통일부에서는 관심을 보일 줄 알았는데,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펜으로 작성되어 등사 된 이 명부를 월간조선은 사람을 동원해 1년 가까이 컴퓨터로 옮기고, 교정을 보고, 대조를 한 끝에 책으로 펴냈습니다. 납북자 피살자들의 이름이 모두 한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의심스러운 글자는 모두 옥편을 찾아가며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정말 지루하고, 고난하고,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피살자 5만9994명, 납북자 8만2959명의 명단이 책으로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당시 이 작업을 주도한 조갑제 편집장은 “정부가 할 일을 월간조선이 했다. 월간조선이 국가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정부는 협회인가”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날 조선일보는 「이 정권이 "북 인권이 보편적 가치"라고 깨달은 날」이라는 사설을 내보냈습니다.  이 정부 사람들은 이런 조롱을 듣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모양입니다. 코미디가 따로 없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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