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빠진 언어생활 - 외래어 남용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6-10-19  12:13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몇 달 전 어느 날, 시골에 계신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니 사는데 주소 한번 불러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다른 곳에 살지만, 당시 저는 ‘샤르망 오피스텔’이라는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박또박 주소를 불렀습니다.
 
 “서울시 oo구 oo동...”
 
어쨌든 아버지께서는 여기까지는 적으신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뒷부분에 나오는 ‘샤르망'과 '오피스텔’이 문제였습니다.
 
"샤르망 오피스텔"
"뭐라꼬.. 살구망? 오피수텔?"
"아니요. 샤르망요! 샤~르~망!"

제가 전화기에 대고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샤르망’하고 ‘오피스텔’이란 단어는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았습니다. 결국 아버지께서는 “알았다. 됐다”하시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샤르망’이란 단어를 시골 노인이 들어봤을 턱이 없고, 극히 최근에 생긴 ‘오피스텔’이란 단어도 아버지가 알기는 바라는 것도 무리였습니다. 그 후에 시골집에 들러서 우연히 그때 아버지께서 적어 놓은 주소를 보았습니다.  동네까지는 제대로 적혀 있는데, 그 뒤에 나오는 주소는 아버지께서 도저히 못 알아 들으셨는지 소리나는 대로 비슷하게 적다가 포기하신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칠십 평생 우리말을 쓰면서 살아오신 아버지에게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쓰던 집주소 하나 제대로 불러드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위 오피스텔은 단순히 제가 살았기 때문에 예를 든 것일 뿐이고, 실제로 우리나라의 상당수의 아파트나 공동주택, 빌딩, 오피스텔, 상가, 호텔 등의 이름은 영어나 국적을 알기 힘든 외래어로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잠들기 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느 유선 TV에서 하는 방송을 보고 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비 스타들을 뽑아서 방송 횟수가 지날수록 몇 명씩 탈락시키고, 나중에 남은 사람을 스타로 만든다는 목적의 방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예비 스타들의 사진, 옷, 화장을 담당한 전문가들이 한 명씩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도무지 어느 나라 말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공책을 펴들어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oo이는 글래머러스하게 보일수도, 섹시하게 보일수도, 큐티하게 보일수도 있어요”
“oo이는 골드펄드 썼고, 아이라인 강조했어요”
“oo이는 굉장히 보이시한 얼굴이에요”
“제가 블로셔를 강조했거든요”
“앞머리는 컷했고, 헤어를 뱅하고...”
“보이시한 컨셉을 선택한 oo이...“
“oo이는 빈티지 하고..."
"oo이는 젠티지 했는데 젠틀한 느낌을...”
 
저도 받아쓰기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도무지 한 문장도 제대로 받아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끊어진 말 몇 마디를 적은 것이 위에 나온 문장들입니다. 이들이 한 말 중에 어떤 문장은 조사 빼고 전부 영어식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무슨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런 식의 언어생활을 실제로 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방송에서는 장면이 바뀔 때 넣는 자막조차 'street vote', 'desire', 'chapter1' 식으로 영어로 써 놓았습니다. 이 방송에 출현한 여자 방송 진행자도 "oo씨가 포토그래피에서 워스트로 선정되었는데요" 하면서 영어 반 우리말 반 섞어쓰기를 즐겨했습니다. (영어로 소설을 써서 유명한 번역상을 받은 바 있는 '영어도사' 안정효씨는 이런 식으로 우리 말에 섞어 쓰는 영어-그나마 제대로 된 영어도 없다-를 '꼴값 영어' 라며 강하게 비난했다-안정효의 '영어 길들이기' 참조)

최근에는 ‘라이프 플래너’, ‘웨딩 플래너’, ‘파티 플래너’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시니어 키즈 파티 플래너’란 말을 듣고, 혼자 한숨을 내 쉰적이 있습니다. 몇몇 뜻 있는 노인들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만든 봉사단체의 이름인데, 취지는 훌륭하지만 ' 노인들까지 영어를 써야 뭔가 통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하는 마음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구한말에 거의 모든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한 전례가 있습니다. 해방 전후까지만 해도 상당한 외래어를 우리말로 대체해 온 것으로 압니다. 우리 말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는데도 우리는 도무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 같습니다.  말은 그 민족의 혼입니다. 우리의 혼과 정신은 영어가 아닌 우리 말을 통해서 후손에게 전해집니다. 혼빠진 민족이 되고 있는데도 무감각한 나라가 어찌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프랑스는 언어법을 두어 당국이 나서서 출판사나 방송국에 벌금까지 물려가며 자국어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언론과 방송 종사자, 학자들과 국민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아래에 제가 나름대로 우리말로 대체했으면 하는 외래어와 영어식 단어를 몇개 모은 것입니다.
 
----------------아래-----------------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영어식 말이나 외래어를 몇가지만 나름대로 우리말로 정리해 봤습니다. 제가 생각해서 만든 것도 있고, 기존에 누군가 만든 것을 인용한 것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만들어 쓰는 말은 괄호 속에 ‘北’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중국에서 만든 말도 참고했습니다.
 
아래 나열한 단어들은 전문적으로 조사한 것이 아니라, 이 글을 쓰기 위해 제가 잠깐 동안 조사해 본 것입니다. 때문에 숫자가 많지 않고, 순서 배열에도 두서가 없습니다. 전문기관을 두어 자료를 모으고, 북한과 중국의 외래어 대처에 대한 자료를 찾아서 깊은 연구를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순 우리말과 조어력이 무제한인 한자를 적절히 잘 사용하면 현재 쓰고 있는 상당수의 외래어를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을 겁니다. 아래 임의로 정리한 몇개 단어를  ‘맞다 틀리다’라는 시각으로 보지마시고,  ‘저렇게 바꿀 수도 있다’는 정도로 이해 해 주었으면 합니다.   
 
참고로, 중국인들이 우리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말에 영어가 너무 많다고 비웃는 글을 남긴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외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한자에 비해, 한글이 외국어를 잘 표현하기 때문에 생긴 상대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로터리→ 돌림길, 회전 교차로
인터체인지→ 나들목(누가 만들었는지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새로 만든 말이라도 잘 만든 말은 이렇게 신문 방송에서 사용하면 금방 보급될 수 있다)
아파트→ 하늘 집, 공중주택, 고층 살림집(北)
택시→ 대기차
무슨무슨 센터→ 기관, 협회, ~원, 마당
휴대폰→ 손전화기, 휴대전화기
카드→딱지

인터넷→ 다중통신망
컴퓨터→ 전산기, 고속 전자계산기, (번개)셈틀, 전뢰(中, 같은 한자로 조어를 했지만, 우리가 듣기에는 좀 어색한 면이 있다).
피아노→ 동금(中), 양금
버스→ 공공기차(中), 대중차
원룸→ 단칸 방, 한 칸 방
라디오→ 수성기, 수음기(옛날에는 망원경, 확성기, 축음기, 녹음기란 말을 만들어서 사용해서 이 말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이란 단어도 이렇게 못 만들 이유가 없다. 라디오, 텔레비전도 좀 더 일찍 발명되었으면 반드시 확성기, 망원경 처럼 한자어로 새로 만든 단어가 통용 되었을 것이다).
텔레비전→ 수화기, 수상기

쇼핑→ 장보기(지금도 많이 쓰는 멋진 단어인데, 재래식 시장을 볼 때만 적용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파마→ 볶음머리(北, 우리나라에서도 머리를 ‘볶는다’라고 한다. 우리도 '볶음머리'라고 쓰는 것이 맞다고 본다).
부저→ 신호음(이런 식으로 우리말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까지 영어로 쓰는 것은 잘못된 현상이다).
플라스틱→ 갖풀(갖은 가죽의 옛말. 플라스틱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갖풀’과 유사하다고 실제 이렇게 불렀고, 일부 시골에는 이 말이 아직도 살아 있다).
에어컨→ 냉풍기, 냉방기
리모컨→ 원격 조정기

아나운서→ 방송원(北)
노크→ 손기척(北),
불도저→ 평토기(北)
팬티→ 속옷(당연히 이렇게 써야 한다)
샹들리에→ 장식등(北), 무리등
스카이라운지→ 전망식당(北), 하늘쉼터, 공중식당
스카프→목수건(北), 목도리

스커트→ 잔주름 치마(北)
스크랲북→ 오림책(北, '오림책'이란 말이 어법에 맞는지는 모름). 쪽지책, 정보철
스킨로션→ 살결물(北), 물화장품
스타킹→ 망양말,
스타플레이어→ 기둥선수(北)
스튜디어스→ 비행안내원(北)
에피소드→ 곁얘기(北),
와이퍼→ 빗물닦개(北)
시트→ 홑이불(좋은 우리말이지만 홑이불은 우리에게 따로 있음으로, 시트와는 조금 느낌이 맞지 않는다), 깔개이불, 바닥이불

(옷의)칼라→ 양동정
커튼→ 창가림막(北), 창문 차양막
코치→ 지도원(北)
투피스→ 동강옷(北), 한 벌 옷(옷 한 벌과는 다름)
팬티 스타킹→양말바지(北), 긴 망양말
프라이팬→ 볶음판, 지짐판(北)
필터담배→ 여과담배(北)
핸들→ 운전대, 조향륜(北, 한자를 사용하면 이처럼 대체못할 외래어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줌)
헬리곱터→ 직승기(北)
햄버거→ 고기겹빵(北)
콤플렉스→ 단지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많이 본 뉴스
  • 세계속 코이카'
  • 배진영의 '어제 오늘 내일'
  • 김태완 'Stand Up Daddy'
  • 권세진 ‘별별이슈’
  • 정혜연 ‘세상 속으로’
  • 박희석 ‘시시비비’
  • 이정현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지현 ‘포켓 저널리즘’
  • 하주희 ‘블루칩’
  • 이경훈 현장으로’
  • 김광주의 뒤끝
  • 백재호의 레이더
  • 고기정의 特別靑春
  • 슬기로운 지방생활
  • 이상곤의 흐름
  • 서봉대의 되짚기
  •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 취재본부는 지금’
  •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