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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의 인문학 〈6〉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별’을 찾아 프로방스 뤼브롱 산을 縱橫하다

“나는 중얼거렸다. ‘저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었노라고. 그리고 그 별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글·사진 : 문갑식  선임기자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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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과서에 오랫동안 수록된 〈별〉과 〈마지막 수업〉의 작가 알퐁스 도데의 고향은 프로방스 님… 리옹에서 교육받은 뒤 1년간 교단에 섰지만 학생들 등쌀에 스트레스 느끼고 사직
⊙ 작가 이병주 “일제시절 일본인 교장 부인으로부터 이 소설 선물 받고 우리나라도 알자스와 로렌처럼 슬픈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
⊙ 알자스 로렌의 州都 스트라스부르는 국경 도시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 인근 리크위르와 콜마르는 중세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 돼
⊙ 도데를 가장 사랑했던 예술가는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도데의 〈아를의 여인〉 읽고 같은 제목의 그림만 7점 남겨
⊙ 뤼브롱 산을 배경으로 한 목동과 주인집 소녀의 러브스토리는 抒情의 극치… 국내 작가 황순원의 〈소나기〉와 비교하며 읽는 것도 묘미
⊙ 프로방스와 뤼브롱 산을 갈망하던 심정을 알았는지 내비게이션은 자동차를 뤼브롱 산 山上 도로로 안내… 베르동 협곡까지 환상의 드라이브
뤼브롱 산으로 가는 길목.
  장편(掌篇)이라 해도 마땅할, 다섯 장 남짓한 단편(短篇)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는 시간이 늦었다. 아멜 선생님은 그 전날 동사(動詞)에 대해 질문하겠다고 하셨는데 친구들과 노느라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 꾸중을 들을까 몹시 두려웠다. 차라리 수업을 빼먹고 들판을 쏘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다음 순간 분위기가 싹 바뀐다. 조국의 패전(敗戰) 소식을 작가는 암시한다.
 
  “학교로 가는 길에는 면사무소가 있었는데 그곳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꼭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패전이라든가 징용, 프로이센 군 사령부의 명령 등 나쁜 소식만 그곳에 붙어 있었으니까.”
 
  반전(反轉)이다. 등굣길에 만난 대장장이 바슈테 영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얘야, 뛸 것 없다. 학교는 지금 가도 늦지 않았어.”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책상을 쿵쾅거리며 옮기는 소리,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는 선생님의 소리 등이 교실 밖에까지 들리곤 했는데, 오늘은 마치 일요일 아침처럼 고요했다.… 오늘은 여느 날과 전혀 달랐다. 아멜 선생님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프란츠, 괜찮다. 어서 자리로 가 앉아라. 지금 막 수업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었다.
 
  “여러분 오늘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 시간입니다. 베를린에서 명령이 내려왔는데 알자스와 로렌 지방의 학교에서는 독일어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내일 독일어를 가르칠 새 선생님이 오십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여러분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인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새를 잡겠다고 수업을 빼먹은 것이나 강가에서 얼음지치기를 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지겹고 재미없던 교과서와 문법책, 성경(聖經) 등이 이제는 헤어지기 아쉬운 친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프란츠 너를 꾸중하는 게 아니다. 너는 이것으로 충분히 벌을 받았다. 너뿐만 아니라 우리도 날마다 이렇게 생각했지. ‘시간은 충분해, 내일이 있는데 뭐. 내일 공부하지.’ 그 결과가 이것이다. 교육을 다음 날로 미룬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이었다. 프로이센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기 나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슨 프랑스 사람이라고 우겨대느냐’…. 프란츠 그러니까 너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아이는 순간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학교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저 비둘기들도 독일어로 울어야만 하는 걸까?”
 
  결론은 독자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선생님은 무엇인가 목에 걸린 듯 말을 잇지 못하셨다. 거기까지만 말씀하시고 칠판을 향해 돌아서셨다. 선생님은 분필을 하나 집어 들고 길게 팔을 뻗어 될 수 있는 한 큰 글씨로 이렇게 쓰셨다. ‘프랑스 만세!’ 선생님은 그대로 칠판에 얼굴을 기대셨다. 그러고는 우리 쪽은 보지도 못하시고 손짓하셨다. ‘이제 수업은 끝났다… 다들 돌아가거라.’”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무대인 스트라스부르 교외는 온통 와이너리다.
  이 단편소설은 우리 교과서에도 오랫동안 수록됐던 〈마지막 수업〉이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1840~1897)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1873년 쓴 《월요 이야기(Contes du lundi)》에 수록돼 있다. 50대 이상의 독자라면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이 글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생생할 것이다.
 
  소설가 이병주는 《동서양 고전탐사》라는 책에서 〈마지막 수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말하고 있다. 이병주는 일제강점기였던 열두 살 때 일본인 교장 부인에게서 《소년소녀동화전집》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마지막 수업〉을 읽은 후의 감정을 그는 “그 작품은 내게 심각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어린아이에게도 나름대로의 의식은 있다. 열두 살이었던 나는 그 소설에서 받은 충격으로 그때까지 전혀 해보지도 않은 생각에 말려들었다. 첫째, 알자스와 로렌이 어쩌면 우리와 그리 비슷한 처지일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알자스와 로렌처럼 슬픈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뤼브롱 산에서 내려다본 프로방스의 평원이다.
  알퐁스 도데는 프랑스 랑그도크의 님(Nimes)에서 태어났다. 님은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 해안과 가까운 지역인데 서쪽으로는 몽펠리에, 동쪽으로는 아비뇽, 아를, 마르세유와 지척이다. 곧장 남쪽으로 향하면 지중해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뱅상 도데의 별명이 ‘불운을 부르는 뱅상’이었다.
 
  비단 제조업을 했는데 하는 일마다 실패해 이런 재수 없는 별명이 뒤따랐다. 어렸을 적 가난을 겪었기 때문인지, 천성이 예민했던 것인지 장성한 도데는 리옹(Lyon)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다 알레스(Ales)에서 조(助)교사 생활을 했지만 학생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심한 노이로제에 시달렸다고 한다.
 
  1년여 만에 조교사직을 그만둔 그는 훗날 말했다. “알레스를 떠난 몇 달 뒤에도 내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 사이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쓴 〈마지막 수업〉 속의 아멜 선생님의 이미지와는 달라도 너무도 달랐다. 그런데 알자스(Alsace) 로렌(Lorraine)은 이병주의 상상처럼 ‘(일제하) 우리나라처럼 슬픈 곳’일까?
 
  다시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돌아가 본다. 작품의 무대가 된 땅은 알자스 로렌이다. 알자스 로렌은 독일과 살을 대고 있다. 이 거리는 독일인데 길만 건너면 프랑스인 곳이 알자스 로렌이다. 주인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뀐 이 땅의 비극적인 연원(淵源)을 알려면 역사적 지식이 필요하다.
 
  알자스 로렌의 불행은 샤를마뉴 대제(독일어로 카를) 때 시작됐다. 800년 로마제국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럽을 통일한 그는 세 아들을 뒀다. 샤를-피핀-루이다. 샤를마뉴의 영토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북부를 합친 것만큼 넓었다. 교황은 그를 서로마 황제, 즉 신성(神聖)로마제국의 황제로 인정했다.
 
  샤를마뉴 사망 후 신성로마제국은 형제간 골육상쟁 때문에 수시로 영토가 바뀌는데 그때마다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 신세가 된 곳이 알자스 로렌이다. 이 운명은 19세기까지 계속돼 보불(普佛)전쟁(1870~1871)에서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 지면서 이 땅은 독일 품으로 넘어가고 만다.
 
독일과 인접한 국경 지역인 콜마르의 ‘프티 베니스’는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한다.
  알자스 로렌이 최종적으로 프랑스 영토가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그래서 알자스 로렌에서는 “알자스 로렌 주민들은 200년간 국적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고 이병주 선생께 미안하지만 알자스 로렌은 그리 우중충한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동화 속 마을같이 아기자기하다.
 
  교직을 그만둔 뒤 도데는 기자의 꿈을 꾸던 세 살 위의 형과 살며 시를 썼다. 자신이 쓴 시를 모아 펴낸 시집 《사랑하는 여자들》이 꽤 호평을 얻어 《르 피가로》지 기자가 되고 나폴레옹 3세의 대신이자 입법회의 의장 샤를 드 모르니 후작의 후원을 받는데, 그 인연은 후작이 죽는 1865년까지 이어졌다.
 
  도데의 첫 소설은 1866년 나온 〈Le Petit Chose〉로 우리나라에서는 〈꼬마철학자〉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설보다는 이후에 나온 희곡 〈아를의 여인〉과 〈프로몽과 리제르〉로 호평을 받았는데 〈프로몽과 리제르〉는 음악가 비제가 이를 바탕으로 무곡(舞曲)을 만들 정도였다.
 
알퐁스 도데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도데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그는 도데가 쓴 〈아를의 처녀〉에 매료돼 아를 인근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아를’ 하면 생각나는 예술가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이다. 도데와 동시대를 살았는데 고흐는 도데의 작품에 반했다고 한다. 일례가 〈아를의 여인〉이다. 도데가 쓴 〈아를의 여인〉에 감명받은 고흐는 〈알퐁스 도데의 풍차 방앗간〉을 두 점, 〈아를의 여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7점이나 남겼다.
 
  “내가 사는 풍차 방앗간에서 내려가 마을로 가려면, 팽나무가 늘어선 커다란 뜰 저 끝에 난 큰길 옆 농가 앞을 지나게 된다. 전형적인 프로방스 지방 자작농의 집인데, 붉은 기와지붕에 널찍한 갈색의 건물 앞면에는 불규칙하게 창문들이 나 있다. 꼭대기의 지붕 밑 방에는 바람개비와 건초 더미들을 끌어 올리는 도르래가 달려 있고 건초 더미에서 갈색 건초 다발 몇 단이 삐져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장은 스무 살짜리 잘생긴 농촌 젊은이로, 아가씨처럼 얌전했고 건장한 체구에 얼굴이 밝았다. 워낙 잘생겨서 여자들이 그를 유심히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엔 오직 한 여자밖에 없었으니 아를 성벽 아래 장터 길에서 우연히 한 번 마주친, 벨벳 옷과 레이스로 치장한 자그마한 아를 여인이었다.
 
  그의 집에서는 처음부터 이 관계를 마땅찮게 여겼다. 그 아가씨는 바람기 많다고 소문이 파다했고 그 부모도 이곳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은 죽기 살기로 그 아를 여인을 원했다. 그 여자와 맺어질 수 없다면 난 죽어버릴 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
 
  -알퐁스 도데 〈아를의 여인〉 중에서

 
아를에 있는 ‘고흐 카페’다. 고흐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데 사진만 찍고 들어오지는 않아 주인이 불친절하다.
  〈아를의 여인〉뿐 아니라 도데가 쓴 〈타라스콩의 타르타랭〉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도 있다. 〈주아브 병사〉다. 〈타라스콩의 타르타랭〉은 ‘타르타랭’이라는 이름의 병사가 아프리카 알제리로 사자(獅子)를 잡으러 떠나는 모험소설이다. 타라스콩(Tarascon)은 아를 바로 북쪽 마을로 알필르 국립공원과 붙어 있다.
 
고흐가 머물렀던 생 레미 드 프로방스 정신병원은 지금은 관광지가 됐다. 입구에 고흐의 동상이 있다.

생 레미 드 프로방스 정신병원 담에 붙어 있는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다. 도데가 쓴 〈별〉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고흐는 이 작품이 인상 깊었는지 타라스콩과 가까운 아를의 정신병원으로 왔다. 〈주아브 병사〉의 모델은 알제리 병사다. 그는 휴가를 맞아 아를에 왔다가 고흐의 부탁을 받고 포즈를 취했는데 고흐는 그의 머리에 빨간색 세샤 모자를 씌웠다. 다음은 〈타라스콩의 타르타랭〉의 서두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나는 화가였으면 좋겠다.
 
  두 번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를 건너는 사흘 동안 주아브 호 뱃전에서 타르타랭의 머리 위에 얹어진 붉은 세샤 모자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는지 정확하고 명료하게 여러분의 눈앞에 펼쳐 보일 수 있는 그런 재능 있는 화가였으면 좋겠다.… 영웅의 두개골 위에서 두려워 솟아오른 세샤 모자, 광풍과 바다의 짙은 안개 속에서 곤두선 푸른 모직의 술이 달린 그 세샤 모자.”
 
  -알퐁스 도데 〈타라스콩의 타르타랭〉 중에서

 
  도데의 작가로서의 위상은 〈나바브〉를 비롯한 소설과 희곡으로 뚜렷해진다. 일각에서는 도데 작품에 나타나는 감수성이 영국의 찰스 디킨스와 유사하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특유의 서정적 분위기와 현실적 등장인물의 조합이라는 측면은 비슷하지만 모방이라기에는 각각의 오리지널리티가 분명해 보인다.
 
이 모습이 프로방스 산지의 전형적인 경치다. 소설 〈별〉 속의 목동도 저 산 어딘가에서 순수한 사랑을 꿈꿨을 것이다.
  서민적 색채를 띤 디킨스의 작품과 달리 도데의 작품은 보수적 입장을 견지한다. 아버지가 왕당파(王黨派)였지만 도데도 나폴레옹 3세의 비서직을 수행했을 정도로 보수적이었다. 1867년 도데는 쥴리아 아라드와 결혼하는데 그녀에게도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그의 대표작 〈별〉을 즐길 차례다.
 
  “내가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단연코 학생 시절 이 한 문장에 매료돼 프로방스와 뤼브롱 산을 꿈에 그렸다. 그래서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비지팅 스칼라로 갔을 때도, 귀국한 뒤에도, 돈과 기회만 생기면 이곳을 무대로 한 문학책을 챙겨 거기로 달려갔다.
 
  도데는 뤼브롱 산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런 문장이, 그 광경을 안 보면 견딜 수 없게, 그야말로 독자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산꼭대기 드넓은 초원에서 양을 돌보고 있노라면 몇 주씩 사람 구경은 하지도 못한 채 양 치는 개와 둘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산자락의 초록빛 풀밭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 그리고 유유히 흘러가는 흰 구름뿐이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양의 울음소리와 양의 목에 달린 방울 소리, 그리고 내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양 치는 개가 가끔 짖는 소리뿐이었다.
 
  때때로 몽드뤼르 산에서 지내는 수도자들이 약초를 찾아 이곳을 지나가기도 하고 피에몽 마을의 숯 굽는 남자들이 나무를 구하러 가끔 찾아오기도 했다.”

 
  단편에는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소녀(少女)가 등장한다. 이럴 때는 여자아이, 계집아이라는 말보다 소녀라는 단어를 선택해야 문학가요 번역가다.
 
  “식량을 싣고 오는 농장 노새의 방울 소리가 산비탈 아래에서 들려오면 내 마음은 조금씩 들뜨기 시작하고 뒤이어 노라드 아주머니의 다갈색 모자나 미아로의 얼굴이 산등성이 위로 조금씩 보이면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무엇보다 알고 싶은 것이 바로 우리 주인집 아가씨에 관한 소식이었다. 주인집 아가씨 스테파네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목동(牧童)은 짝사랑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자문자답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다.
 
  “그때 누군가 내 마음을 읽은 사람이 ‘너는 가난한 양치기에 불과한데 어째서 그런 것이 궁금하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도 이제 스무 살의 젊은 청년이며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이 세상 여자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단편은 극적으로 변주(變奏)된다. 머슴 미아로나 노라드 아주머니가 아니라 아가씨가 직접 등장하는 것이다.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진짜 소나기도 내린다. 비는 두 소설 속 세상을 바꾸는 매개체요 세상을 깨끗이 만드는 정화제다.
 
  “정오가 되어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자 이번에는 ‘비 때문에 노새가 오는 데 시간이 걸릴 테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오후 3시쯤 되자 하늘은 물에 씻은 유리처럼 청명해지고 비에 젖은 산은 햇빛을 받아 선명하게 빛났다. 정오 무렵에 내린 소나기로 세상은 다시 태어난 듯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산등성이 위로 나타난 사람은 꼬마 미아로도 노라드 아주머니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가씨, 바로 우리 스테파네트 아가씨였다.”

 
프로방스의 특징은 눈이 부셔 쳐다보지 못할 만큼 새파란 하늘과 초원 곳곳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다. 뤼브롱 산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해바라기밭이다.
  소녀는 목동의 가슴에 환희의 찬가(讚歌)가 울려 퍼질 만큼 극적으로 등장하더니 귀갓길에 고난을 만나 다시 회귀한다. 그 감각적인 문장을 황순원의 〈소나기〉의 문장 문장과 비교해 보기로 한다.
 
  “상큼한 공기와 선명한 풍경 속에서 아가씨의 두 볼은 사과처럼 빨갛게 상기되어 마치 숲의 요정처럼 보였다.”
 
  “꽃 모양의 화려한 리본을 머리에 달고 레이스가 눈부신 드레스를 차려입은 아가씨의 아름다운 모습은 길을 잃고 하루종일 숲을 헤맸다는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눈부셨다. 오히려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다가 바삐 빠져나온 모습으로 보였다.”
 
  “아름다운 나들이옷이 더러워질까 봐 치맛자락을 살짝 추켜잡아서 아가씨의 작은 발이 보였다.”
 
  “아가씨는 내가 쩔쩔매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한층 더 짓궂은 질문을 했다. ‘그래, 네 여자친구는 가끔 너를 만나러 오니? 분명히 예쁜 황금빛 산양일 거야. 아니면 산봉우리 위로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닌다는 요정이든지….”
 
  “아가씨는 아까의 명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물에 흠뻑 젖어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제 목동이 ‘기사(騎士)’가 될 차례다.
 
  “아가씨가 목장 한구석의 내 방에서, 내가 지켜주는 양 떼 바로 곁에서, 다른 어느 양보다도 가장 순결하고 가장 소중한 양이 되어 고이 쉬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이불 대신 덮고 있던 양의 털가죽을 벗어 아가씨의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나란히 앉아 있었다.”

 
  ‘별’이 등장한다. 별은 삼라만상을 관조(觀照)하는 절대자다.
 
  “나는 이제껏 밤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날 밤에 바라본 하늘처럼 유난히 깊고 푸르며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밤이 되면 낮과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한 번이라도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아름다운 별빛 아래에서 어둠을 응시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낮과는 전혀 다른 신비한 세계가 고요한 밤의 정적 속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을.
 
  살아 있는 것들은 더욱 깊고 맑은 소리를 내며 연못에서는 작은 불꽃들이 춤을 추고 나무들은 더욱 신선한 공기를 내뿜는다. 산의 요정들이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뛰어다니고 낮에는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까지도 생생하게 들린다.”
 
  “머리 위에서 아름다운 유성(流星) 하나가 방금 소리가 난 쪽으로 흘러갔다. 마치 소리가 유성을 이끌고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저게 뭘까.’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랍니다.’”

 
  이제 이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名文)이자 결말이다.
 
  “우리 주위를 돌고 있는 별들은 순한 양 떼처럼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밤의 성스러운 비호를 받으며 어디까지나 순결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몇 번이나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었노라고. 그리고 그 별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뤼브롱 산을 중심으로 마노스크에서 고르드까지는 라벤더가 만발해 이른바 ‘라벤더 로드’로 불린다.
  나는 뤼브롱 산을 여러 번 봤지만 2017년 8월 라벤더 로드를 취재하기 위해 프로방스에 갔을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 뤼브롱 산의 북쪽은 아비뇽과 카바용(Cavaillon), 서쪽은 아를, 동쪽은 마노스크, 남쪽은 살롱 드 프로방스와 엑상 프로방스다. 하나하나가 보석 같은 프로방스의 명소들이다.
 
뤼브롱 산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고르드는 성채마을로 중세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채(城砦) 도시 고르드에서 때늦은 라벤더 수확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무심코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언뜻 안내문을 보니 뤼브롱 산 산상(山上)도로였다. 해발 수백 미터의 산상도로에서는 드넓은 프로방스의 평야가 보였다. 한껏 즐기려는데 산 위에서도 고속질주를 마다하지 않는 프랑스인들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났다.
 
  얼마나 산상도로를 달렸을까,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에메랄드빛 강물이 보였다. 베르동 협곡을 가르는 뒤랑스 강이었다. 뤼브롱 산을 그렸던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내비게이션은 고속도로 대신 나를 산상도로에서 협곡에 이르는 길로 보냈다. “40년을 기다렸으면 실컷 보고 갈 자격이 있노라”는 듯이.
 
알퐁스 도데는 감성적인 문체와 달리 다혈질이었다.
  프로방스 출신의 정열적인 기질과 본연의 섬세한 성미의 괴이한 조합 때문일까, 소설의 문체와 달리 도데는 결투를 몹시 즐겼다. 쥴리아를 비방한 신문기자는 물론이고 도데 자신이 아카데미 회원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쓴 기자와도 결투를 벌였다. 원래 다혈질인 인간이 감성이 넘치는 문장을 구사하는 법이다.
 
  말년에 쓴 도데의 소설 중에 잘 알려진 소설이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다. 위기철의 《논리야 놀자》 시리즈에 소개된 소설은 황금 뇌를 가진 아이가 우연히 머리를 다쳐 자기 뇌에 황금이 있다는 것을 안다. 황금을 탐내는 이들에 의해 아이가 유괴당할까 두려웠던 어머니는 아들이 자란 후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아이는 머리에 든 황금을 탕진하다가 결국 황금이 바닥나는 것과 함께 머리도 이상해지면서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쓴 배경에는 도데 자신의 고질병인 매독(梅毒)도 있었을 것이다. 도데는 17세에 매독에 걸린 후 평생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39세에 척수 매독으로 진행된 후에는 신경이 손상되면서 다리의 감각이 사라졌다. 몸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어 남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걸을 수 있었고 그나마도 걸핏하면 비틀거렸다. 당시 매독 치료제는 맹독성을 가진 수은이었다. 오랫동안 병을 앓았던 도데는 수은중독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통증을 견디다 못해 잠깐이라도 잠을 자기 위해 모르핀까지 맞았던 도데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1897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그가 남긴 말은 이렇다. “인생을 너무 많이 사랑한 나머지 신이 내게 벌을 주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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