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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인터뷰

30년 정치인생 마무리한 5選의 정갑윤 미래통합당 의원

“‘우리’가 아닌 ‘나’만 아는 문재인 대통령과 協治 가능하겠나”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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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출마 이유, “총선에서 압승해야 박근혜 전 대통령 풀려나…”
⊙ 2007년 대선 경선 후 승자 측의 은근한 정치적 핍박,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
⊙ 與圈에도 말 통하는 괜찮은 정치인들 많아… 유인태·원혜영이 대표적
⊙ 매월 세비 10% 떼 지역 기부
⊙ 국회의원 임기 끝나면 사전 조정제도 도입 관련 업무 수행할 계획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랑부터 하는 문재인 정부
사진=정광성
  이봉주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마라톤에서 남아공의 투과니에게 3초 뒤진 은메달을 땄다. 결승선이 있는 스타디움에서 메달 색이 결정된 명승부였다. 언론은 ‘2위에 그쳐 분루(憤淚)를 삼켰다’고 전했다. 이봉주도 “100m만 더 있었으면…” 하며 고개 숙였다.
 
  은메달도 엄청난 성과지만 얼마나 아쉬웠을까.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5선의 정갑윤 의원도 당시 이봉주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정 의원은 한 번만 더 당선된다면, 울산 지역의 첫 국회의장이란 ‘꿈’을 이룰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심정으로 국회의원직을 내려놨다.
 
  “저와 함께 정치를 했고, 제가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옥살이한 지 3년이 넘었잖아요. 이젠 나올 때가 됐는데…. 총선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4~5일 고민하고, 이제 그만하자고 결정했죠.”
 
  ― 고지가 눈앞이었는데요.
 
  “저를 5선 의원으로 만들어주신 지역민들을 위해 ‘국회의장’을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의회를 정말 반듯하게 세우고 싶었죠. 그런데 총선이 다가오니 지난날 지역 정가에서 구청장이나, 시의원으로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저에게 도전장을 내고, ‘이제 정갑윤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펼 때 비참하더군요. 이분들이 이렇게 말하고 다니니까, ‘이제 바꿀 때 안 됐나. 또 하려고 하느냐. 이제 후배들 키울 때 안 됐나’라는 여론이 형성됐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현기증이 나더군요. 옛말에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맞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또 ‘비우면 채워진다’는 말도 있고요. 그래서 (불출마) 결정을 내렸습니다. ”
 
  ― 그 지역(울산 중구)에서 4선을 했던 김태호 의원도 비슷한 심정이었겠습니다.
 
  “4선 하시는 동안 ‘오른팔’ 역할을 하면서 도왔습니다.”
 
 
  15대 총선 무소속 출마 이유
 
지난 2월 17일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정갑윤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무소속으로 출마, 고(故) 김태호 전 의원과 맞선 적도 있던데요.
 
  “설명을 좀 드릴게요. 14대 총선 때 제가 김태호 의원님의 오른팔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정주영씨가 대통령 출마를 위해 1992년 창당한 ‘통일국민당’의 후보가 출마하는 바람에 김 의원께서 낙선했죠.
 
  이후 김 의원께서 ‘정치를 그만하겠다’고 했죠. 그러자 김 의원님을 꺾고 당선한 통일국민당 국회의원(차화준)께서 제게 자기를 도와달라더군요. ‘저는 이부종사(二夫從事・두 남편을 섬기는 것)는 못 합니다’고 거절했죠. 그러고 나서 김 의원님에게 상의를 드렸죠. 15대 총선에 도전해보고 싶다고요. 김 의원님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남구가 분구되면서 현역의원이 남구을로 가고 김 의원님이 공천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제가 그만둬야 하는 상황인데, 당시만 해도 선거판에서 누가 양보하면 ‘광 팔았다’고 평가받을 때입니다. 속된 말로 ‘돈 받고 포기했다’는 등 뒷말이 나왔죠.”
 
  ― 그래서 출마를 강행한 것이군요.
 
  “저는 청년 대표로 출마했는데, 광 팔았다는 이미지가 생기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15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합동 연설이라는 게 있었는데, 제가 연설을 위해 단상에 오를 때면 항상 첫마디를 ‘제가 존경하는 김태호 선배님’으로 시작했습니다. 제 지지자들은 난리가 났죠.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느냐고요. 그래도 저는 예의를 지켰습니다.”
 
  ― 그래도 김태호 의원이 서운해하지 않던가요.
 
  “16대 총선 때는 제가 또 도왔죠. 저와 인연이 각별했습니다.
 
  초등학교·중학교 선배고, 김 의원 막냇동생과 제가 동기고, 15대 때도 제게 출마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다면 안 나섰을 겁니다. 15대 때 분구가 돼서 현역의원이 다른 지역으로 가고, 원외였던 김 의원이 다시 공천받게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20대 1 경쟁률 뚫다
 
  ― 김태호 의원이 16대 국회 임기 중에 작고했습니다.
 
  “보궐선거가 200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에 예정돼 있었죠. 김 의원의 부인께서 한 분(며느리)을 추천했습니다.”
 
  ― 당황하셨겠네요.
 
  “지역 주민들이 용납을 안 했습니다. 비공개 후보까지 해서 20여 명이 경쟁했습니다. 여론조사를 세 번 했는데 모두 제가 1등을 해서 공천을 받았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주신 거죠.”
 
  ― 비결이 뭡니까.
 
  “아까 말씀드렸듯 15대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김 의원의 오른팔로 선거도 치렀고, 도의원 경력도 있다 보니 인지도가 높았죠.”
 
  ― 1991년도에 경남도의원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는데요.
 
  “젊은 시절에 JCI(한국청년회의소)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회장일 때, 제가 부회장을 했죠. 1991년 첫 지방의원 선거 때, 김태호 의원이 청년 대표로 경상남도 도의원(당시는 울산이 경남이었음)으로 공천해줬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충남 아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청년회의소(JC) 제61차 전국회원대회에 참석해 정갑윤 국회JC동우회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친박(親朴) 좌장(座長)’으로 통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우연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통령 선거와 같은 날 보궐선거를 치렀지 않습니까. 대통령 선거 지원을 위해 박 대통령이 울산에 오셨죠. 그때 저와 함께 제 지역구 오일장을 함께 돌았습니다. 그때가 처음 뵀을 때입니다.
 
  이후 2004년 제가 재선 의원이 됐을 때 당의 재해대책위원장을 맡았는데, 그때 박 대통령이 당대표였죠. 그분을 모시고 전국의 재해・재난 현장을 수도 없이 다녔습니다. 2005년 양양 낙산사에 불이 크게 났을 때도 같이 두 번이나 방문했습니다. 헬기 타면 위험하다고 했는데도 다녀왔죠. 그때를 생각하니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르네요.”
 
  ― 뭡니까.
 
  “산불피해를 입은 낙산사를 방문하고 식당에 갔는데, 관광객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보더니 반갑다고 하면서 사진을 부탁하더군요. 박 대통령께서 거절을 못 하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사진을 다 찍어주고 계신 겁니다.
 
  그래서 제가 ‘대표님 지금 뭐 하십니까? 지역 이재민들은 속이 시커멓게 탈 텐데 이렇게 한가하게 사진이나 찍으면 되겠습니까? 여러분도 미안하지만, 단체로 한 장만 찍으세요!’라고 말했죠. 이런 기억이 아직 머릿속에 있는데….”
 
 
 
친이계의 핍박

 
  박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떠올린 그가 말을 이었다.
 
  “박 대통령과는 17대 국회 후반기 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같이 의정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그분은 대통령 후보 경선 준비한다고 바빴는데 제가 간사라 편의를 자주 봐 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의 질의순서가 1번인데 바빠서 그 시각에 도착할 수 없다고 하면 7번으로 바꿔주는 식이었죠. 그런 역할을 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는데,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저보고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하고 말씀드렸죠.”
 
  ― 아쉽게 패했죠.
 
  “울산은 지역구가 6개인데, 처음에는 현역 의원을 포함한 6개 당협위원장 모두가 박 대통령을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다 저쪽(이명박 전 대통령 측)으로 가고, 저 혼자 남았죠. 그런 상태에서 경선을 했는데 박 대통령이 전국 대의원 투표에서 480표 이겼습니다. 그중에 120표가 대의원이 얼마 되지 않는 울산표였죠. 물론 후보가 좋으니까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지만 저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까 상대 견제가 섭섭할 만큼 심하더군요.”
 
  ― 소위 친이계로부터 핍박을 받은 겁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임기 기간에 저만 빼고 다른 울산 지역 의원들은 대통령 특사나 대통령과 동행해서 해외를 다녀오는데, 저한테는 묻지도 않더라고요. ‘한번 갔다 올래?’라고 물어볼 만도 하지 않습니까. 지나가서 하는 말이지만 2011년 제가 예결위원장 할 때 외교부 장관이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제가 ‘내가 당장 도와줄 텐데, 귀하(친이)들은 심하게 계파차별하더라’라고 말했죠.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문재인 정부 폭정을 막을 수 있는 결정
 
  ― 결국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 번 도와드린다고 했으면 끝까지 도와야죠. 저는 지금까지 큰 약속이든 작은 약속이든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선거 때도 무리한 공약은 절대 내세우지 않았죠. 참모들에게도 ‘실천 가능성이 없는 공약은 절대 하지 마라’고 당부했으니까요.”
 
  ― 박 전 대통령이 자필로 쓴 옥중 서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분이 3년 넘게 수감생활 하시면서 한 번도 자기 뜻을 피력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런 분이 이번에 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정말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 봅니다. 그야말로 우국충정의 심정으로 문재인 정부의 폭정을 막을 수 있는 결정을 하신 것이죠. 보수 진영 정치인들이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자기 주장과 안 맞더라도 어떤 게 나라를 위한 길인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 박 전 대통령 메시지 후 공천 과정에서 친박계가 피해를 본 것 같은데요.
 
  “친한 후배들이 공천이 너무하다는 볼멘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뭐든지 일을 하고 나면 뒷말이 있기 마련이죠. 다만, 공천 결과를 보면 보편타당성이 결여된 게 아닌가 하고 느껴지는 지역이 있긴 합니다.”
 
  정 의원은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탄핵 때문”이라며 “탄핵은 박 전 대통령한테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한풀이했기 때문에 가결된 것이다. 후배들한테 정치든 사업이든, 무엇을 하든 한풀이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앞에서 싸우지만, 뒤에서 형님, 동생 하는 사이라는 이야기는 지금의 정치판에서는 사실이 아닌 듯 보인다. 현재 한국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이념과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적’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정치인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중 6공 시절 빈배(虛舟·허주)라는 아호에 걸맞게 특유의 친화력으로 절묘한 대야(對野) 협상과 타협을 이끌어낸 김윤환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 의원도 야당 내에서 여당 중진 의원들과 말이 통하는 멸종 위기의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정 의원은 요즘도 여당과 야당에서 적(適)이 없는 국회의원으로 통한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정갑윤 국회의원보다 다선이란 이유로 의장 자리에 앉을 당시, 박지원 현 민생당 의원이 정갑윤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지지한 것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일례다.
 
  ― 적이 없는데 비결이 있습니까.
 
  “정치는 여야가 서로 화합하고, 협상을 통해 간극을 좁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당연히 혼자 할 수 없지요. 협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대를 인정해줘야겠죠. 상대를 적으로 보면 안 되죠. 그런데 최근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영논리에 얽매여서 오직 자기 주장만 옳고 남의 주장은 틀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타협, 협상 이런 게 없어졌죠.”
 
  ― 원래 덕(德)을 베푸는 성격인지요.
 
  “아닙니다. 모두가 비슷하지요.”
 
 
 
유인태·원혜영과의 추억

 
2019년 1월 27일 오후 자유한국당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 등 당 소속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좌파독재 저지 및 초권력형 비리규탄 릴레이 단식’을 4일째 이어가고 있다. 농성장을 찾은 유인태 국회사무총장이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 의원과 유 총장은 각별한 사이다.
  ― 중학교 다닐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도시락을 못 싸가자,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싸다 줬다고 하던데요.
 
  “중학교(제일중학교) 다닐 때 학교 친구 중에 부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갔죠. 철이 들어서 학교에 다니다 보니 친구들이 보기에 제가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덕장’이라는 표현은 제겐 과분하죠.”
 
  정 의원은 5선 의원임이 믿어지지 않게 답변할 때 항상 자신을 낮췄다. 이런 일도 있었다. 2009년 5월 정 의원은 하루 두 갑 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박 전 대통령의 7월 몽골 방문 동행을 제안받은 것이 계기였다.
 
  “4박 5일 동안 박 전 대표를 가까이서 모실 텐데 담배 냄새가 나면 박 전 대표가 싫어할 것”이라는 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 의원은 상임위 질의할 때도 칭찬은 실명으로, 비판은 익명으로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인터뷰하기 위해 밑 취재를 하다 보니 상대 진영의 유인태 국회사무총장(3선 의원 출신)과 가깝더군요.
 
  “앞서 제가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설명하면서 17대 국회 후반기에 행자위 간사를 맡았다고 했잖아요. 그때 유인태 의원이 행자위원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됐는데, ‘제대로 타협의 정치’를 하는 분이었어요. 제가 의정 활동하는 중에 그런 분을 만났다는 게 행운이었죠. 예를 들어 상임위 회의 때 같은 편인데도 여당 의원들이 똑같은 질의를 반복하면 ‘어이 ○의원, 서면질의라는 좋은 제도도 있어’ 하면서 분위기를 일신했죠. 야당 의원 질의는 잘 들어줬고요. 가까워지고 나서 운동(골프)도 많이 했습니다. 골프를 어떻게 치는가를 보면 그 사람 스타일을 알 수 있는데 유 의원은 정확히 ‘룰’에 입각해서 쳤어요.”
 
  ―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인 원혜영 의원과도 각별한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네. 법안을 함께 많이 냈죠. 그 법안과 관련해서는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공교롭게도 원 의원도 이번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앞으로 두 사람의 ‘협치’는 국회에서 볼 수 없는 ‘추억’이 됐다.
 
 
  ‘나’만 아는 문재인 정부에서 協治 있을 수 없어
 
  ― 여야 의원들이 토론하고 합의하는 정치는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건가요.
 
  “여야 의원들을 보면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은 매우 뛰어납니다. 저 같은 ‘흙수저’는 없죠.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봅시다. 정부나 정치권이 ‘나’ 말고 ‘우리’를 먼저 생각했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겁니다. 언론을 보면 아직 지난 1월 말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이 코로나 확산이 진정됐다는 식으로 성급한 진단을 꺼내놓은 게 한두 차례가 아닙니다. 마스크 한 장 못 구해서 실의에 젖은 국민은 전혀 안중에 없죠. ‘나’만 있는 이런 정치에서 협치(協治)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 의원은 코로나 대규모 확진으로 국민은 힘들고, 겁나고, 화나고 지쳐 있는데 자화자찬만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부 사람들이 답답했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대통령은 봉사하는 자리입니다. 정치가 봉사하는 자리잖아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봉사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랑부터 하는 게 봉사입니까. 절대 아니죠.”
 
 
  기억에 남는 법안
 
2016년 2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연설 주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 1991년도에 정치를 시작하셨으니, 딱 30년 됐습니다. 수도 없이 많겠지만, 혹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법안이 있습니까.
 
  “2006년 11월에 발의한 ‘태평양전쟁 전후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떠오르네요. 그분들이 100% 만족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일제 강점하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들에게 정부가 지원할 수 있게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요.”
 
  이 법안은 2007년 7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안(일제 강점하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한 수정안으로 기습 상정돼 통과되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다른 피해자와의 형평성과 재정 부담, 법안 이름의 부적정성 등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려보냈다. 진통을 겪다가 2008년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 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란 이름으로 의결됐다.
 
  ― 특허 허브국가 추진법인 ‘민사소송법·법원조직법·특허법 개정안’ 통과에도 역량을 쏟아부으셨습니다.
 
  “원혜영 의원과 공동발의를 했지요. 소위 특허 허브추진법은 우리가 건물을 짓고 장비를 투자하지 않고도 전문인력과 제도적 뒷받침만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사안입니다. 관련 산업의 파급 효과까지 합치면, 연간 500조원에 이른다는 특허분쟁 시장의 10%만 우리가 가져와도 한 해 50조원을 벌 수 있지요.”
 
  ― 2014년 국회 내 임의단체로 대한민국 세계특허허브국가추진위원회를 설립했고, 공동 대표를 맡고 계시죠.
 
  “네. 해외에서 사업하려면 해외에 출원해야 합니다. 각 나라에 특허를 출원해야 하고 분쟁이 생기면 일일이 손해배상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번거롭습니다. 그런데 특허 소송은 첫 소송 결과가 중요합니다. 첫 소송에서 어떻게 나오느냐가 다음 소송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결국 특허를 잘 보호하는 나라에 소송이 몰리게 돼 있습니다. 현재 특허 소송이 몰리는 대표적인 곳이 미국 텍사스 동부법원과 독일의 만하임법원입니다. 특허권자에게 유리하고 교통이나 숙소 등 인프라가 좋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히죠. 그런데 아시아에는 아직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 국수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중국은 공산당 중심이지 않습니까.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겠습니까. 결국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 우리가 승산이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한국이나 일본보다 개방적이고 특허 관련 실력도 충분히 쌓은 만큼 승산이 있습니다. 국내 특허법원은 2018년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부도 신설됐죠. 저는 이를 통해 특허 서비스 분야에서 수십만 명의 고급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세계 특허 5대 강국을 넘어 세계 특허 산업의 허브국가로 자리 잡을 것으로 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 특허 관련 재판은 법조인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변리사 역할도 중요하죠. 그래서 제가 변리사도 근거를 가지고 국내 특허 재판과 관련한 활동을 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받은 나눔, 주는 나눔’으로 되갚겠다는 신념
 
  정 의원은 ‘웰다잉(존엄한 죽음)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을 통과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연명의료란 말기 암 환자와 임종기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시술을 가리킨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부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가 해당된다. 환자의 희망과 병명에 따라 환자 자신이나 가족이 네 가지 시술을 모두 안 하거나 일부만 할 수 있도록 자기 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게 연명의료결정법의 핵심이다. 19년 논란 끝에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를 통과한 게 2016년이다.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2018년 2월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법 만드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그만큼 연명의료결정법에 논쟁적 요소가 많아서였다. 막상 법이 생긴 뒤 웰다잉은 빠른 속도로 뿌리내리고 있다.
 
  ―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신데, 기부를 실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매월 세비의 10%를 떼서 지역에 기부해오고 있는데, 이것이 쌓이다 보니 1억원이 넘게 됐고,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자격을 얻게 됐습니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시킨은 ‘오 가난이여, 가난이여! 나를 얼마나 더 괴롭히려는 것이냐’며 가난의 고통을 표현했습니다. 저와 동시대에 태어나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가난’이 주는 배고픔의 고통을 겪으며 자란 세대일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저 역시 산골의 매우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유배달, 신문배달, 과외를 하면서 어렵게 학교를 다니던 유년 시절, 가난을 견디며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 분들로부터 받은 ‘나눔’ 덕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받았던 나눔’을 ‘주는 나눔’으로 되갚겠다는 것이 신념이 되었고, 대학 시절부터 봉사활동, 재건학교 건립, 야학 교사활동 등을 통해 조금씩 실천해가며 행복을 느꼈습니다. 아마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정치를 왜 하느냐’일 것입니다. 제가 쓴 자서전 《나눔으로 크는 세상》이라는 에세이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치는 더 큰 나눔을 위한 길’이었고, 저의 정치 인생의 시작은 ‘받은 나눔’이고, 그 마지막은 ‘주는 나눔’이 될 것입니다.”
 
  ― ‘나눔’은 무엇인가요.
 
  “불교에서 베푸는 것을 보시(布施)라고 합니다. 베푼다고 하니 거창하게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인도에서 극빈자들을 지성으로 돌봤던 고(故) 마더 테레사 수녀가 이야기한 것처럼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가 아니고 주는 행위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담겨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크고 작거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나눔의 마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 제일 큰 행복이며 사랑입니다.”
 
 
  부정선거 의혹에 울산 시민 자존심 크게 상해
 
  ― 울산의 맹주신데 보수의 정권 탈환은 도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럼요. 당연히 도와야죠.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니까요. 열심히 도울 겁니다.”
 
  ― 울산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내 고향이 부정선거 의혹에 연루됐다는 데에 시민의 자존심이 크게 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송철호 울산시장이 민선 7기 광역단체장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부정한 방법으로 당선됐으니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있나’라는 여론이 다수죠.”
 
  지난 3월 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2월 22일부터 27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전국 17개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를 설문조사한 결과, 송철호 울산시장이 26.3%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조사는 유·무선 임의 걸기(RDD) 자동응답전화 방식으로 실시했으며 응답률은 5.2%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포인트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향후 계획
 
  ― 30년 몸담은 정치권을 떠나는데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법원에 접수된 소송사건이 매년 700만 건에 달합니다.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지요. 사법 서비스 질은 당연히 떨어질 것이고요. 일본은 100만 건밖에 안 됩니다. 우리보다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데요. 조정제도 때문이죠. 회기가 끝나면 사전 조정제도 도입과 관련한 업무를 맡아서 할 생각입니다.”
 
  인터뷰가 막바지로 다다르자 정 의원은 후배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했다.
 
  “제가 30년간 정치를 하면서 부정·비리에 연루됐다는 보도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국민은 정치권에 깨끗하고 청렴한 도덕성을 요구합니다. 현실적으로 절대 쉽지 않습니다. 어렵게 지켜온 만큼 고이 간직하려고 노력합니다. 흔히들 TV에 나오는 게 인지도 높이는 데 최고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과거 선배들은 저에게 언론에 노출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틈날 때마다 지역에 가서 지역 주민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동의하고요. 마지막으로 저도 공천을 해봐서 아는데, 공천을 받으면 모두 자신이 잘나서 잘된 것이고, 못 받으면 공관위 탓, 조상 탓을 하더군요.(웃음)”
 
  정 의원의 여운 있는 마지막 말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혈안이 된 정치인들에게는 정신 번쩍 드는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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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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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흥학    (2020-03-30) 찬성 : 0   반대 : 1
무능과 독선 부정과 불법만 저지르고있는 문재인놈팽이 나라와 국민의 삶을 통째로 앗아가는
공산당독재자로 자유민주주의국가 정체성을 사회주의체제로 탈바꿈하려고 혈안이되어있어
코로나19 중국인 입국제한하라는 국민의 청원도 무시하는 문재인놈과 양아치놈팽이들과 지집년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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