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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식의 인간증명 2

한국 추리문학의 大山脈, 작가 김성종이 엮어낸 인간 드라마

“셜록 홈즈와 해리 포터가 영국 문학을 망쳤나?… 한국만 순수문학 지향한다며 다른 장르는 무시”

글·사진 : 문갑식  선임기자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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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후퇴 도중 전라남도 여수에서 어머니와 태어난 지 열이틀 된 동생 잃어… 전쟁이라는 비극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 대학 4년 내내 가정교사 생활… ‘가정교사’라는 말만 들어도 지겨웠다
⊙ 미술 전공하려던 꿈, “평생 굶고 산다”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바뀌어… 소설 쓸 때는 한마디도 안 하셨다
⊙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공모전서 〈최후의 증인〉으로 상금 200만원 받아 집도 사고 결혼도 해
⊙ ‘여명의 눈동자’는 국제 여간첩 마타하리의 암호명, 일제시대–광복–6·25를 관통하는 순수소설 쓰고 싶었다
⊙ 〈여명의 눈동자〉로 장안의 지가 올릴 즈음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 권유로 〈제5열〉 동시 연재, ‘秋政’이라는 필명은 장 사장이 직접 지어준 것
⊙ 일부러 연재 ‘펑크’ 내려 지리산 종주여행 떠났다가 노고단 산장에서 헤드랜턴 쓰고 새벽에 연재 원고 완성… 전화로 글 불러주며 연재 이어가
⊙ 부산의 멋진 풍광에 그냥 반해, 서울로 올라와 계약금 들고 부산 내려가 아파트 계약, 그 후엔 사상 최초의 추리문학관 개설
⊙ 부산 《국제신문》에 매주 1회씩 50장짜리 중편 추리 1년간 연재… 그것이 〈달맞이언덕의 안개〉와 〈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
⊙ 우리나라 문학은 장르에 집착… 추리도 순수문학도 층이 두꺼워야 문학이 발전할 수 있다
⊙ 지금도 〈오사카 살인〉이라는 차기작 준비 중… 눈만 뜨면 글 쓰는 게 내 삶
한국 추리문학의 대가 김성종의 서재다. 5만 권의 책이 빼곡하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언덕 꼭대기에 ‘추리(推理)문학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설립된 개인 문학관이다. 셜록 홈스가 파이프를 물고 있는 캐리커처 옆에, 우울한 에드거 앨런 포와 그 밑에 불길한 ‘검은 고양이’가 그려진 포스터가 붙어 있다. 아예 작정한 듯 문학관 홈페이지도 ‘007스파이하우스 닷컴’이다.
 
  5만 권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책들이 때론 서 있고 때론 누워 있었다. 하나같이 추리소설처럼 보였다. 옆에 마련된 카페도 컴컴해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날 듯한 분위기다. 그러고 보니 추리소설을 뒤적이는 방문객들의 표정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뭔가 소설 속 조연(助演)이라도 불러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분명 대낮인데 뽀얀 안개에 싸인 것 같은 그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소설가 김성종(金聖鍾·78). 독자들은 그를 ‘한국 추리문학의 산맥(山脈)’이라 부른다. ‘산맥’은 중의(重義)를 품고 있다. 업적이 크고 넓어 산맥처럼 우뚝하긴 한데 후학들이 넘기엔 너무 험준해 발전을 막는다는 상반된 의미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이다. 백자 달항아리의 장인(匠人) 권대섭(權大燮)씨가 부산 공간화랑에서 신옥진 관장의 주선으로 전시회를 할 때였다. 당시 신 관장은 부산 지역의 명사들을 해운대 조선호텔로 불렀다. 그 자리에서, 서울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던 작가 김성종과 우연히 해후한 것이다.
 
  내심 ‘빨리 인터뷰를 해야지’라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한솥밥을 먹고 있던 모씨가 언론계 용어로 ‘침’을 발라버렸다. 200자 원고지 20장짜리 인터뷰를 한 것이다. 그걸 보면서 “이 정도 인물에게 이런 지면을 할애하다니…” 하고 혀를 찼지만, 상도의(商道義)상 남이 먼저 ‘침’ 바른 것에 또 손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경찰관〉으로 등단했고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작 공모전에서 〈최후의 증인〉이 당선됐다. 그 작품으로 서울의 집 한 채에 결혼비용까지 충당할 정도인 상금 200만원을 거머쥐게 됐다.
 
  이 소설 한 편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그는 이후 노도(怒濤)처럼 추리의 영역을 석권해 나간다. 그가 지금까지 낸 작품은 50여 종에 100권이 넘는다. 대표작 〈최후의 증인〉을 비롯해 〈여명의 눈동자〉 〈국제열차 살인사건〉 〈제5열〉 〈제5의 사나이〉 〈어느 창녀(娼女)의 죽음〉 등 나열하는 것만도 숨이 가쁘다.
 
 
  2015년 신작 두 권 내놓아
 
《국제신문》에 매주 1회 2페이지씩 연재한 작품의 스크랩이다.
  그가 2015년 《달맞이언덕의 안개》 《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라는 두 권의 신작(新作)을 내놓으며 건재를 알렸다. 이 두 작품은 그가 부산의 한 일간지에 게재했던 작품을 모은 것인데, 그 내막을 알고 나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매주 200자 원고지 50장 분량의 중편을 1년간 쉼 없이 쓴 것이다.
 
  특히 《달맞이언덕의 안개》는 모든 작품 제목에 ‘안개’가 들어 있다. 옴니버스 형식이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이다. 그에게 말했다. “안개에선 추리의 냄새가 납니다.” 그는 “달맞이언덕은 여름에 안개가 심하다”고 했다. 다시 물었다. “52주 연재가 쉽습니까.” 그는 “매주 구상에만 골몰했다”고 했다
 
  ― 부산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부산의 신문에 소설 연재하러 왔다 갔다 하다가 남천동 삼익비치라는 아파트를 보고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서울에 올라와서 돈을 1000만원 찾아가지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곧바로 계약했지요.”
 
  —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보면 주인공 최민식이 경찰서에 끌려가서 “너희 서장 남천동 살제? 내 어젯밤에 술도 묵고 밥도 묵고 다 했어”라고 하는데, 이에 형사들이 움찔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살기 좋은 곳이겠죠.
 
  “삼익비치에서 아직도 살고 있어요. 저는 추리문학관 5층으로 옮겼고 남천동 아파트에는 아이들이 삽니다.”
 
 
  추리문학관
 
추리문학관 앞에는 영국의 셜록 홈스 박물관처럼 홈스의 캐리커처가 새겨져 있다.
  — 추리문학관은 어떻게 세우게 된 겁니까.
 
  “서울 목동에 살다 왔는데 달맞이언덕이 처음부터 그렇게 좋아 보였어요. 바로 밑이 청사포라고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됐지만 당시에는 허허벌판이었어요.”
 
  — 부지가 몇 평(m2)입니까.
 
  “480평(1586m2)쯤 돼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외지인들이 확 밀려들어 오더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문학관 주변 땅을 더 사놓을 걸 그랬어요. 그때는 텅 비어 있었거든요. 1992년 추리문학관이 개관했는데 국내에서 ‘전문도서관’ 1호입니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인데 당시 25억원쯤 들어갔어요.”
 
  — 홈페이지에는 보유한 장서가 4만7600권이라고 돼 있네요.
 
  “아마 더 늘었을 겁니다. 홈페이지 통계로는 추리소설이 1만7000권, 일반문학서가 1만3500권, 인문과학서적이 7500권, 아동도서가 3500권, 외국 원서(原書)가 6000권쯤 됩니다.”
 
  — 그걸 다 읽으셨습니까.
 
  “어휴, 이 많은 책을 어떻게 다 읽겠어요?”
 
  — 밖에 ‘헌책방’이라고 쓰여 있던데요.
 
  “처음에는 책이 너무 많아 헌책으로 팔아볼까 했는데, 실제로는 하지 않았어요. 카페만 만들었지요. 커피 마시면서 책 읽는 공간을 제공했어요.”(그날도 대여섯 명의 독자가 침침한 카페 공간에서 추리소설에 흠뻑 빠져들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 서울이 싫어서 부산으로 온 겁니까.
 
  “싫다기보다 북적거리는 게 싫었어요. 부대끼면서 사는 것도 싫었고요. 여기선 바다도 눈만 돌리면 볼 수 있고.”
 
  — 제 눈에는 바다가 안 보이는데요.
 
  “앞의 건물들 때문에 막혀서 그렇지 5층에 올라가면 지금도 보여요.”
 
  — 어느 인터뷰를 보니 태어난 곳이 중국 지난(濟南)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아버지가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특별한 직업은 없었어요. 이 일 저 일 하셨으니까. 거기서 어머니를 만났지요. 어머니는 북한 신의주 출신입니다.”
 
  — 선친의 고향이 원래 전라남도 구례(求禮)지요.
 
  “해방 후 서울로 돌아와서 중구 필동(筆洞)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6·25가 터졌어요.”
 
  — 피란을 가셨겠군요.
 
  “초기에는 점령 치하에서 살았고 1·4후퇴 때 피란을 갔습니다. 처음엔 부산으로. 그런데 거기서 아버지가 제주도로 징용돼 군인들 수발드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여수(麗水)로 거처를 옮겼는데 당시 어머니가 만삭이었어요. 그때 이미 4남 1녀가 있었는데 여섯 번째 아이를 낳고 열이틀 만에 어머니도 동생도 숨졌습니다.”
 
  — 선친은 제주도에 있는 상태로.
 
  “아니, 그때는 여수에 함께 있었지요. 그런데 전쟁 통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니 경황이 없었어요. 무슨 정식으로 장례를 치를 겨를도 없었고, 거적으로 둘둘 말아 마을 사람들이 앞뒤에서 들고 공동묘지에 모셨습니다. 이후 제 가족은 친척들이 있는 아버지 고향 구례로 갔고요.”
 
 
  “가정교사 하는 게 제일 지긋지긋”
 
  — 선생의 작품 가운데 유독 6·25와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전쟁은 참혹하지요. 제가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는데도 여전히 그 기억이….”
 
  — 공부도 제대로 못 했겠습니다.
 
  “중학교는 고등공민학교를 나와 고교 입시 자격시험을 봐 합격한 후에 구례농고에 진학했지요. 그 뒤 연세대 정외과로 진학했고요.”
 
  — 원래 정치에 뜻이 있었습니까.
 
  “처음에는 미술대학에 진학하려 했어요.”
 
  — 오호? 미술에 재능이 많았나 봅니다.
 
  “그렇다기보다, 미술에 흥미가 있었는데 단숨에 삶이 바뀌었지요.”
 
  — 단숨에 바뀌다니요.
 
  “아버지께서 ‘미술 하면 평생 굶고 산다’고 한마디 했어요. 그 말 한마디에 단념했지요. 삶은 이렇게 순간에 변해요. 팔자(八字)라는 게 다 그렇습니다.”
 
  — 그러면 소설을 쓸 때도 반대했나요.
 
  “그때는 아무 말 없으셨는데….”
 
  — 공부를 잘하셨나 봅니다. 당시 연대 정외과가 굉장히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던 곳인데.
 
  “그전까지는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했는데 제 차례부터 시험을 쳤어요. 연대에 합격한 것은 그 덕일 겁니다.”
 
  — 어느 인터뷰를 보니 ‘가정교사 하는 게 제일 지긋지긋했다’고 하셨던데요.
 
  “먹고살 게 없으니까, 이곳저곳에 얹혀살았어요. 당시 학생이 할 수 있는 게 가정교사밖에 없었어요. 4년 내내 했으니 지겨울 수밖에요. 요즘에야 아르바이트할 게 많지만.”
 
  —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로 연세대에, 훗날 유명해진 문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요.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 시인 강은교 같은 분들이 있었어요.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어요, 그분들과.”
 
  —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경찰관〉은 추리소설인가요.
 
  “그건 장르가 추리는 아닙니다. 시골에서 근무하던 경찰관 이야기인데 살인사건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이에 대해 한 평론가는 “‘경찰관’은 김성종 문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그 내용을 본다. “먼저 김성종표 추리소설의 상징인 오병호 형사가 등장한다. 오병호는 대실 해밋(1894~1961)이 창조한 비정한 탐정 샘 스페이드와 달리 시대와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캐릭터다.”
 
 
  ‘남산’에 잡혀 가
 
  — 대학 졸업 후엔 무슨 일 하셨습니까.
 
  “《독서신문》에서 기자로 일했지요. 문학과 관련된 서평(書評)도 쓰고 작품 소개도 하는.”
 
  — 그래도 계속 가난했지요.
 
  “정말 돈이 없었어요. 《독서신문》이라는 회사에서 한 3년 근무하고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께서 발간한 《창조》라는 월간지에서도 한 2~3년 근무했어요.”
 
  — 명동성당에서 낸 잡지라면 진보 쪽?
 
  “저는 보수나 진보라는 구분을 싫어합니다만, 5공 때 저항세력인 것은 맞아요. 그런데 그 잡지가 문제가 생겼지요.”
 
  — 왜요?
 
  “시인 김지하가 ‘오적(五賊)’ 이후에 쓴 시가 말썽을 일으킨 거예요. 제목은 정확히 생각이 안 나는데, 뭐 뱀이 알을 낳고 어쩌고 하는 시였습니다.”
 
  — 기관원들이 잡으러 몰려왔겠습니다.
 
  “당시 《창조》에 저를 포함해 구중서 뭐 이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 남산으로 끌려갔지요. 김지하는 도망가고. 나중에 들으니까 숨겨줄 사람이 없어서 도망 다니다 김동길 선생을 찾아가 그분이 숨겨줬다는데 결국 잡혀 왔어요.”
 
  — 맞았습니까.
 
  “때리진 않았고 하루종일 우두커니 있었지요. 남산에 가보니 김승옥(金承鈺), 이청준 이런 분들도 다 끌려와 있었고.”
 
  — 김지하씨하고 연세가 비슷하지요.
 
  “동갑입니다.”
 
  — 친합니까.
 
  “친하지는 않고, 술 한잔 같이하지도 않았으니까. 언젠가 여기 놀러 온 적은 있었어요. 그런데 말이 오락가락하더라고, 하하.”
 
  — 남산에서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을 때 뭔가 구상한 건 없습니까.
 
  “없었어요. 당시 그런 분위기에서는.”
 
  — 〈계엄령의 밤〉이라는 작품도 그런 경험에서 나온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6·25 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30대 남자가 대통령 암살범으로 몰려 경찰에 쫓기다 갈 곳이 없어지니까 사창가로 스며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 창녀가 6·25 때 헤어진 어머니였다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 〈최후의 증인〉과 비슷하네요.
 
  “창녀와 6·25라는 것만 같지요.”
 
 
  〈최후의 증인〉
 
추리애호가들이 문학관 내부에서 책을 읽고 있다.
  — 그렇게 직장생활만 하다 한방에 선생의 팔자를 바꾼 게 〈최후의 증인〉이지요.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작 공모전에서 〈최후의 증인〉이 당선되면서 한꺼번에 확 풀렸지요.”
 
  — 상금이 200만원이었는데, 어느 정도 금액인가요.
 
  “서울 화곡동에 자그마한 집 한 채를 사고 결혼비용도 충당할 정도였습니다.”
 
  — 결혼비용이라면 이미 혼인할 상대가 있었다는 뜻인가요.
 
  “제가 《독서신문》 다닐 때, 그게 원래 삼성출판사에서 하던 신문인데 아내는 삼성출판사에서 근무했지요.”
 
  — 부인과 연애할 때도 추리적으로 접근했나요.
 
  “아니 그건, 허허허.”
 
  — 선생이 몇 살 때 결혼하셨는데요.
 
  “서른네 살 때요.”
 
  — 그럼 부인과는 몇 살 차이가 납니까.
 
  “여덟 살이요.”
 
  — 그럼 당시 부인이 스물여섯이었는데 너무 빨리 낚아채신 거 보니 추리가 맞네요.
 
  “허허허.”
 
  —신문 연재를 참 많이 하셨지요.
 
  “제가 신문 연재 소설 분야에서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몇 개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부산에 내려와 《부산일보》에만 내리 소설 3개를 연재했습니다. 그것도 기록이라더군요.”
 
  — 대표적인 것을 소개한다면요.
 
  “《일간스포츠》에 〈여명의 눈동자〉를 연재했는데, 그게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한 겁니다. 그러자 당시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께서 ‘《일간스포츠》에 소설을 하나 더 연재하자’고 했지요.”
 
  — 혼자서 두 편을 같은 신문에 연재할 수 있습니까.
 
  “한 편 쓰는 것도 힘든데 두 편을 연재한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지요. 그게 잘 안 되는 건데 장 사장님께서 하도 고집을 부리고 강권을 하는데 작가가 고집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다고 ‘김성종’이라는 이름을 바로 옆에 또 쓸 수는 없어서 장 사장님이 필명을 지어주셨어요.”
 
 
  장기영이 지어준 필명 ‘추정’
 
  — 뭡니까, 그 필명이.
 
  “추정(秋政)이라고 하하, 나중에 책으로 낼 때는 본명을 썼지만요.”
 
  — 추정이면 한문만 다를 뿐이지 ‘추리’를 뜻하는 추정(推定)도 되겠네요.
 
  “장 사장께서 그런 생각을 하고 이름을 만든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 그럼 추정이라는 이름으로 쓴 소설은 뭔데요.
 
  “그게 〈제5열〉입니다.”
 
  — 〈제5열〉은 무슨 뜻입니까.
 
  “스파이(Spy)라는 뜻인데, 제5열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이었습니다. 그분이 항상 ‘저기만 가면 제5열들이 득실댄다’고 했으니까요.”
 
  — 〈제5열〉은 좀 특이합니다. 원래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고 악독한 주인공이 죽으면서 끝나야 하는데 정반대로 마무리됐습니다.
 
  “그렇지요. 〈제5열〉의 주인공은 다비드 킴이라고,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완벽한 킬러입니다. 나쁜 짓은 도맡아 하는데 나중에는 진 형사라는 수사관이 다비드 킴한테 맞아 죽어요.”
 
  — 형사가 어떻게 맞아 죽습니까.
 
  “주먹으로 맞아 죽지요. 원래 해피엔딩이 많은데 이렇게 완전범죄로 끝나는 소설도 가끔 있습니다.”
 
  — 예를 들면요.
 
  “리플리 시리즈라고 패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라는 여류(女流) 작가가 있어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인데 그게 프랑스에서 〈태양은 가득히〉로 영화화됐지요.”
 
  — 미남배우 알랭 들롱이 나오는 〈태양은 가득히〉 말인가요.
 
  “네. 영화에서는 알랭 들롱의 범죄가 밝혀지지만 원작에서는 완전범죄로 끝납니다.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고 재능 있는 작가입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는.”
 
  — 국내 신문 연재도 선생께서 제일 많이 하셨지요.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럴 겁니다.”
 
 
  〈여명의 눈동자〉는 마타하리의 암호명
 
문학관 내부는 어두침침해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날 듯한 분위기다.
  — 선생께서 생각하는 자신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여명의 눈동자〉일 겁니다.”
 
  — 얼마나 팔렸습니까.
 
  “지금까지 500만 부 정도 팔렸을 거예요. 〈제5열〉이 한 200만 부쯤 팔렸고요. 그런데 〈여명의 눈동자〉는 암호명이에요.”
 
  — 암호명? 누구의 암호명인가요.
 
  “국제적인 여간첩 마타하리의 암호명이 ‘여명의 눈동자’입니다. 소설에서는 여주인공 여옥(麗玉)이 마타하리를 생각나게 만들지요.”
 
  — 선생은 추리소설의 대가지만 〈여명의 눈동자〉는 순수문학 아닌가요.
 
  “순수문학이지요. 일제-해방- 6·25라는 통한(痛恨)의 한국사를 관통하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 선생을 두고 추리문학만 한다고 문단에서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문단이라는 동네가 누가 잘 되면 뒤에서 서로 욕하는 풍토니.
 
  “저는 문단이라는 동네와 어울린 적이 없어요. 어울릴 이유도 못 느꼈고요. 순수니 추리니 장르를 나누는 것도 알고 보면 치졸한 것입니다. 다 연결되는 게 문학인데 순수를 하면 그럴듯해 보이고 추리를 하면 속된 겁니까?”
 
  — 그래도 문단의 어른들도 찾아뵙고 해야 하는 식의 분위기던데.
 
  “찾아간 적은 몇 번 있었지요. (김)동리나 장용학씨라고 그분은 굉장히 특이한 분인데, 뭐 이런 분들. 그럴 때마다 괜히 왔다는 후회가 많이 들었습니다.”
 
  — 뭔가 덕을 본 적은요.
 
  “연세대 국문과에 박영준 교수라고 그분으로 인해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은 적은 있지요. 원래는 두 번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신춘문예 당선자는 한 번만 받으면 됩니다.”
 
  — 추천을 받으면 뭔가 달라집니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는 정도?”
 
  — 그런 감정들이 부산으로 내려오게 된 이유입니까.
 
  “그렇지는 않고 앞서 말한 것처럼 복작대는 게 싫었어요.”
 
  — 〈국제열차 살인사건〉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연상케 합니다.
 
  “열차가 들어가서 그렇지 그 소설과는 전혀 연관이 없어요.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 살고 있는 한 사나이가 아들이 납치되자 어쩔 수 없이 국제 범죄 무대에 뛰어들고 유럽의 국제열차에서 처절한 혈투를 하는 내용입니다.”
 
  — 그 국제열차가 실제로 있습니까.
 
  “스위스에서 파리까지 가는 국제열차지요. 작품을 쓰기 전에 한번 타봤다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또 타봤어요.”
 
 
  〈여명의 눈동자〉는 원작에 충실
 
  — 〈여명의 눈동자〉는 드라마로도,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제 소설 가운데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 게 몇 개 있는데 〈여명의 눈동자〉는 정말 원작에 충실하게 잘 만들었어요. 한번은 제게 제작 현장에 놀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소복(素服)을 입고 초가집 앞마당에 앉아 있는 채시라(여옥 역할)를 보는 순간 작중 인물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감동이 확 밀려들어 오더라고. 내가 그린 소설 속의 여옥이랑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었어요.”
 
  — 〈여명의 눈동자〉를 연출한 게 김종학 PD입니다.
 
  “그분 정말 대단한 연출가라고 생각해요. 제가 판권을 팔고도 긴가민가 믿지를 못했는데 정말 원작을 잘 살려놓았습니다.”
 
  — 연기자 중에는 기억나는 사람이 없습니까.
 
  “최대치 역을 맡았던 최재성이라는 배우가 참 잘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살이 너무 쪄서 좀 이상하던데요.”
 
  — 〈여명의 눈동자〉를 보면 정사(情事) 장면이 꽤 등장하는데 그건 다 선생께서 경험하신 겁니까.
 
  “(갑자기 당황하며) 정사 장면이 많이 나오나요? 기억에 없는데.”
 
  — 여옥이가 최대치와 한겨울 들판에서 섹스를 하는데 최대치가 발기가 안 되자 입으로….
 
  “아! 그런 장면이 있었던가?”
 
  — 제가 학창시절에 그 장면을 읽다가 시험을 망쳤습니다.
 
  “허허, 섹스 장면을 가끔 넣는 것은 신문 연재를 하다 보면 독자들의 반응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에….”
 
  — 독자들이 그런 장면을 바란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말은 안 하지만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작가는 느끼지요.”
 
 
  공중전화로 원고 불러 마감하기도
 
추리문학관 앞 탑에서 작가 김성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신문 연재를 그리 많이 했으면 일종의 ‘펑크’를 내신 적도 있지 않습니까, 마감기한 내에 원고를 못 보내는.
 
  “힘에 겨워 펑크낸 적은 없고 친구들과 지리산 노고단으로 종주여행을 떠났을 때, 그때는 일부러 펑크를 내려고 했지요.”
 
  — 그런데요.
 
  “밤늦게 노고단 산장(山莊)에 도착해 보니 갑자기 걱정이 확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남들은 다 자는데 헤드랜턴을 켜고 막 글을 썼어요, 새벽까지.”
 
  — 당시 1회 연재분이 어느 정도였습니까.
 
  “200자 원고지 7장인데 글은 겨우 완성했지만 서울로 보낼 길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자는 친구들 다 깨워서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싹싹 긁어모았어요. 그거 가지고 공중전화에 매달려서 새벽에 자고 있는 서울의 여직원을 불러낸 뒤 잠도 덜 깬 그에게 ‘지금부터 내가 불러주는 대로 원고지에 적어서 신문사에 갖다 주라’고 해서 겨우 펑크를 면한 적이 있어요. 딱 한 번.”
 
  — 최근까지 신문 연재를 하셨습니다.
 
  “《부산일보》에 일주일에 두 페이지를 전부 제 소설로 채웠지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1년을 하니 책 두 권 분량이 되더군요.”
 
  — 1년 동안 일주일에 하나씩 창작을 하려면 정말 힘들었겠습니다.
 
  “한 편 마감하면 다시 그 주에 쓸 작품을 구상하는 데 골몰해야 하지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여기 스크랩이 그때 작품을 모아놓은 겁니다.”
 
  — 미국 작가 헤밍웨이의 삽화도 들어 있네요.
 
  “아! 이것은 프랑스 파리에 가면 ‘셰익스피어 서점’이라고 있어요. 거기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 〈율리시스〉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를 비롯해 유명한 작가들이 찾아와 커피도 마시고 작품 구상도 하는 곳입니다. 언젠가 우연히 들렀더니 지금은 없어진 미국 주간지 《라이프(LIFE)》 1면에 헤밍웨이가 실렸더라고요.”
 
  — 왜 실렸습니까.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전 편이 실린 곳이 《라이프》였어요.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그래서 주인보고 그 잡지를 팔라고 했더니 안 팔겠대요.”
 
  — 그래서요.
 
  “그 다음 날 또 그 서점에 갔지. 안 팔면 훔쳐 오려고까지 생각하고 갔는데 아예 전시해 놓지도 않았더라고요. 내 눈빛을 보고 ‘저 녀석이 훔쳐 가겠구나’ 하고 짐작했나?”
 
  — 많이 아쉬웠겠습니다.
 
  “그 《라이프》 잡지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가 실린 호(號)를 구하긴 했어요. 미국에 살고 있는 큰아들이 뉴욕에서 구해서 보내줬어요.”
 
  — 〈최후의 증인〉도 〈흑수선〉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습니다만.
 
  “그건 그리 잘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원작도 많이 각색했고요. 하지만 〈최후의 증인〉이라는 영화는 잘 만들었어요. 하명중이 주연을 맡았고 이두용 감독이 연출했는데, 30분 정도 잘린 필름이 있어요. 그걸 복원시켜 보니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고의 추리작가는 존 르 카레”
 
  — 그런데 요즘은 신문 연재가 싹 사라졌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전 신문이 일제히. 그게 신문사들이 장사가 안 돼서 그러나?”
 
  — 아무래도 예전만은 못하지요.
 
  “그래도 신문 연재 소설란이 사라진 것은 정말 아쉬워요. 문화 코너에서도 서평은 있는데 월평(月評) 같은 것은 사라져버리고.”
 
  — 학창시절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나요.
 
  “많이 읽었지요. 우리는 추리를 굉장히 무시하는데 그건 장르를 구분하는 성향이 짙기 때문이기도 해요. 영문학 같은 경우는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이 어우러져서 서로가 서로를 포용하는데 우리는 그렇지가 않죠. 그게 문화적 토양이 풍부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를 구분하게 됩니다.”
 
  — 선생께서 하신 어떤 인터뷰를 보니 ‘해방 전에는 김내성, 해방 후에는 김성종’이라고 하더군요. 추리소설에서는.
 
  “김내성 선생의 소설도 여럿 읽었지요. 〈백가면〉 〈마인〉 같은.”
 
  — 선생께서 생각하는 최고의 추리작가는 누구입니까.
 
  “전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쓴 존 르 카레라고 봅니다. 기자 출신으로 〈자칼의 날〉을 쓴 영국의 프레더릭 포사이드도 좋아하고요. 원래 기자 출신들이 추리에 강해요. 〈자칼의 날〉을 보면, 대통령 암살 이야기인데, 어쩌면 그렇게 스토리를 끌고 갈 수 있는지 감탄이 나오지요.”
 
  —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요.
 
  “전 그 작품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고나 할까, 존 르 카레의 작품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닌 그 안에 철학이 담겨 있는 작품이에요. 특히 스파이가 자유세계로 향할 때 내면에서 벌어지는 사상적 갈등 같은 묘사는 압권이지요.”
 
  — 셜록 홈스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그리 재미는 없지요. 단순한 게임 같은 소설이고요.”
 
  — 그렇다면 입구에는 왜 셜록 홈스 캐리커처를 그려놨습니까? 영국 런던에 있는 베이커가 221번지 같은.
 
  “추리문학관을 만들다 보니 아이들이 그렇게 해놓았어요.”
 
  — 추리문학에 관한 한 일본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고 봅니다. 요즘 제 일과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모으는 것입니다만.
 
  “히가시노 게이고도 재미있지만 〈증명(證明)〉 시리즈를 쓴 모리무라 세이치(森村誠一)도 대단한 작가입니다. 그보다 앞 세대인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도 재미있고요.”
 
  — 모리무라 세이치라면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 〈청춘의 증명〉 연작 시리즈를 낸 작가지요. 제 인터뷰 타이틀인 ‘인간증명’도 거기서 차용한 것입니다만.
 
  “일본만 해도 추리작가가 수백 명에 달하니까요. 그런데 문 국장이 좋아한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은 뭐지요?”
 
 
  창녀 자주 등장
 
작가의 노트다. 한때 미술학도를 꿈꿨던 그의 그림 재주가 남다르다.
  — 최근에 읽은 것으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추천할 만합니다. 〈가가형사〉 시리즈도 유명하고요. 그런데 김 선생의 작품 중에는 셜록 홈스나 가가 형사 같은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더군요.
 
  “그렇게 되면 너무 틀에 박히게 되니까, 그리고 낯익은 인물이 계속 나오면 독자들이 앞의 작품을 의식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오병호 형사가 그나마 자주 등장한 경우 아닌가요.
 
  “오병호 형사는 〈최후의 증인〉에서부터 한 세 편 정도 나왔나? 〈최후의 증인〉하고 〈어느 창녀의 죽음〉, 그리고 〈경찰관〉, 또 있는데….”
 
  — 선생의 작품을 보면 창녀가 유독 자주 등장하는데요.
 
  “그런가요? 사창가라는 곳이 인간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니까, 저는 애착이 가는 주인공은 보통 사창가로 숨어들게 만들지요.”
 
  — 애착이 가지 않는 주인공은요.
 
  “엉뚱한 데로 보내지요.”
 
  — 부산에도 유명한 사창가가 있지요, 완월동이라고.
 
  “있지만 가보지는 못했어요. 예전에 종로에 있던 종삼(鐘三·종로 3가가 재개발되기 전 유명한 사창가)은 가봤지만.”
 
  — 청량리588은요.
 
  “거기도 가봤지.”
 
  — 〈어느 창녀의 죽음〉도 전쟁과 관련 있는 작품이지요. 이 작품을 쓰게 된 모티브가 있나요.
 
  “작품을 쓰기 전 신문에 1단짜리 기사가 났어요. 한 창녀가 거리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는. 그 기사를 보고 단숨에 작품을 써 내려갔어요.”
 
  창녀와 건달이 만난다. 하룻밤을 지새우며 건달의 인생역정(歷程)을 듣던 창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건달은 그 이유를 모른다. 창녀는 건달의 이야기를 듣고서 몸을 섞은 이 건달이 6·25 북새통에서 헤어진 자기 오빠라는 사실을 안다. 새벽이 돼 건달은 떠나고 창녀는 인근 간이역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창녀의 시체가 발견되는 시점에서 〈어느 창녀의 죽음〉을 영화화한 〈뜸부기 새벽에 날다〉는 시작된다. 오병호 형사는 그 창녀가 자기 역시 6·25 때 헤어진 동생일지 모른다는 가정 아래 수사를 진행하면서 창녀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밝혀낸다. 이렇게 전쟁이라는 비극은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영화에서 창녀는 원미경, 건달은 김추련, 형사 역은 최윤석이 맡았다. 당시 ‘새 시리즈’가 유행이었다. 정진우 감독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등인데, 김수형 감독은 〈어느 창녀의 죽음〉을 〈뜸부기 새벽에 날다〉로 바꿨다. 그 덕인지 흥행은 성공했지만 작가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오병호 형사
 
파리에서 헤밍웨이의 얼굴이 들어간 라이프 잡지를 보고 구상했던 작품 〈파리의 암살자〉 메모다.
  — 오병호 형사의 모티브가 된 사람이 있습니까.
 
  “주인공을 상정할 때는 입으로 수없이 그 사람 이름을 되뇌어 봅니다. 부를 때는 받침 없는 단어가 좋아요. 일례로 ‘서울 살인’ ‘부산 살인’보다는 ‘시모노세키 살인’ ‘후쿠오카 살인’이 입에 착착 감기지요. 오병호라는 인물은 없었지만 병호라는 이름은 제가 구례농고 시절 불어(佛語)를 가르친 최병호 선생님에게서 따왔습니다.”
 
  —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아실까요.
 
  “제가 책을 보내드리고, 선생님도 소설을 좋아하니 아실 겁니다.”
 
  — 선생께서 지금까지 100여 편 50권이 넘는 작품집을 내셨는데 단순 계산해서 1권에 400장이고 1쪽에 200자 원고지 3장쯤 들어가니까 1200장이고 거기에 50을 곱하면 200자 원고지 6만 장을 쓰셨다는 계산이 나오지요.
 
  “암산(暗算)이 빠르시네.”
 
  — 그런데 제가 32년째 신문기자 하면서 선생보다 글을 더 쓴 거 같은데 왜 저는 가난하고 선생은 돈방석에 앉으셨을까요.
 
  “허허허. 그럼 추리소설에 도전해 보세요. 신문기자 출신들이 추리소설을 잘 써요. 앞서 말한 것처럼 영국의 프레더릭 포사이드도 신문기자거든요.”
 
  — 바로 그 문제를 여쭈려고 합니다. 저도 추리소설 작가가 되는 게 꿈인데 어떻게 하면 추리소설을 잘 쓸 수 있나요.
 
  “좋은 소설을 많이 읽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워야지요.”
 
  — 이런 무성의한 대답에 만족하고 서울로 올라간다면 저는 독자들에게 무능한 기자라고 질타를 받을 거 같습니다.
 
  “일례로 부산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데 카페 같은 데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콜걸 같은 젊은 여성들이 나이 든 일본인 관광객들과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그 장면을 추리소설로 연결시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하지요. ‘그 콜걸이 일본인 관광객들과 몸을 섞으면 에이즈에 안 걸린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콜걸도 나이가 들면 누군가와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한 남자는 숫총각인데 여자 때문에 에이즈에 감염이 된다. 남자는 여자를 의심하게 되고 살인에 이른다…’ 뭐 이런 식으로요.”
 
  — 바로 그렇게 연결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선생과 범인(凡人)의 차이점입니다.
 
  “일례로 제가 지금 집필 중인 소설이 있어요. 〈오사카 살인〉이라고.”
 
  — 어떤 플롯(Plot)입니까.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오사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같은 식당을 다녀왔다는 거지요.”
 
  — 시작부터 재미있습니다.
 
  “범인은 누구일까, 같은 한국인의 짓일까, 아니면 혐한(嫌韓) 감정을 지닌 일본인의 짓일까.”
 
  — 둘 다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능하지만 그렇게 나가면 재미가 없고 한국인이나 혐한 감정을 지닌 일본인은 형사들을 헤매게 하는 미끼로 써야지요.”
 
  — 그럼 진짜 범인은요.
 
  “한국인이 잘 찾는 일본인 식당에서 일하는 베트남 청년으로 정했어요.”
 
  — 와우.
 
  “그 베트남 청년은 왜 한국인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그것을 추적해 보니 그가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일할 때 차별과 학대를 당한 아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 만일 그 이유뿐만이라면 너무 단순해 보이는데요.
 
  “그렇지요. 과거를 캐들어가니 그 베트남 청년은 한국군 파병부대가 저지른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의 피해자 후손이었다… 뭐 이런 식으로 연결시키는 거지요.”
 
 
  음모론과 추리소설
 
김성종의 집필 노트에는 항상 그림이 곁들여져 있다.
  — 언젠가 선생은 한 인터뷰에서 ‘음모론’으로 세상을 볼 때 추리소설이 된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음모론은 그야말로 이 세상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이끌려간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가 자기 입맛대로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인데, 어떤 현상을 볼 때 음모론적으로 관찰한다면 한 편의 추리소설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선생 작품에는 유독 살인이 많습니다. 실제 시체를 본 적이 있습니까.
 
  “봤지요. 한 세 번쯤.”
 
  — 어디서 보셨는데요.
 
  “병원에서지.”
 
  —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기자 생활하면서 1000명 넘게 시체를 봤는데 왜 추리소설을 못 쓸까요.
 
  “언제 그렇게 많이 보셨소?”
 
  — 예를 들면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 때 200구 가까운 시신을 봤습니다. 현장을 봉쇄해 담을 타고 안으로 들어갔지요. 마치 찜질방처럼 더웠는데 저 반대편 안개 속에서 한 여성이 바바리코트를 입고 등장하더군요.
 
  “누군가요? 그 사람이.”
 
  — 일본 신문사에서 온 기자였는데 저도 놀라고 그 사람도 놀랐지요. 제가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을 60일 넘게 종군(從軍)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충격적인 광경 가운데 하나가 옛 영동고속도로로 대관령을 넘자마자 강릉 쪽으로 오기 오른쪽에 단경골이라는 계곡이 있습니다. 거기 끄트머리에 오리구이 식당이 있는데 그곳이 교전 현장과 아주 가까웠어요. 그런데 한 남성이 몸을 피하지도 않은 채 미모의 종업원과 함께 있다가 기자들을 맞이한 뒤 총소리를 듣고 저건 아군, 저건 간첩 이러더군요. 만일 선생이라면 이 장면을 추리소설로 만들 수 있나요.
 
  “흐음~ 미모의 여성과 주인 남성이라. 거 재미있구먼. 만일 이러면 추리소설이 될 거 같은데? 그 주인 남성이 실제는 남한에 머무는 고정간첩이었다. 그래서 총소리를 듣고 교전 중인 간첩들에게 신호를 준다. 뭐 이런 식이면 어때요.”
 
 
  “추리는 혼자서 머릿속으로 하는 것”
 
작가가 현재 쓰고 있는 〈오사카 살인〉의 집필 노트다.
  — 와, 역시 추리소설의 대가(大家)다우십니다. 그렇다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제가 한국 기자론 유일하게 현장에 들어가 수많은 참상을 봤는데 이런 것도 추리소설이 될 수 있나요.
 
  “있지요. 쓰나미가 밀려오고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고 배가 뒤집히고 가옥이 파손되고 거기다 원자력발전소까지 문제가 생겼으니 완전범죄를 저지르기엔 딱 좋은 상황이구먼. 그런 상황이라면 사람 하나 죽인다고 누가 거들떠나 보겠습니까?”
 
  — 네? 완전범죄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어수선한 분위기니 노모가 100세 넘게 사는 것에 지친 아들이 그 상황을 이용해 어머니를 죽이고 내다버리기에 딱 좋은 상황이 아니겠소? 나 같으면 그런 소설을 하나 쓰겠는데요.”
 
  — 와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렇다면 한국 추리소설의 저변이 약한 것만을 탓하지 마시고 후학들을 위해 그런 비결을 가르쳐 주면 안 됩니까.
 
  “추리라는 것은 결국 자기 혼자 머릿속으로 하는 거라서, 제가 추리문학관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강좌를 열고 있긴 하지만 비결이라는 게 별로…. 앞서 좋은 추리소설을 읽으라고는 했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열 가지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한 가지도 못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 결국. 그리고 써오는 작품을 일일이 읽는 것도 고역이에요.”
 
  — 재능의 차이라는 말 아닙니까.
 
  “굳이 한마디로 말하라면 재능의 차이지요.”
 
  — 그렇다면 추리소설가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음침한 성격’이나 ‘의심 많은 성격’은 어떻습니까.
 
  “그것보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플롯을 어떻게 짜느냐가 문제인데 그 플롯이라는 것도 독자가 몰라야 하거든요. 몇 페이지 안 읽고 결말을 알아버리면 그것보다 허무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독자들이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게 하면서도 호기심을 유발시켜야지요.”
 
  — 그게 일종의 함정(陷穽)인데 독자를 함정에 빠뜨리려다가 작가가 빠지는 경우는 없나요.
 
  “그럼 맥이 탁 풀려버리지요. 앞서 말했던 〈오사카 살인〉의 경우도 한국인들도 의심받고 일본인도 의심받게 해야지요.”
 
  — 〈오사카 살인〉 구상 시, 오사카에 자주 다녀오십니까.
 
  “일본은 자주 가지요. 2월 16일에도 삿포로에서 출발해 하코다테, 아오모리를 거쳐 도쿄까지 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취재여행보다는 그냥 문학기행을 가끔 다녀요.”
 
  — 인상 깊은 곳이 있었습니까.
 
  “베를린도 좋고 프라하도 좋더군요.”
 
  — 둘 다 동구권의 음침한 도시들 아닙니까? 냉전(冷戰)시대에 스파이들이 판치던.
 
  “하하하. 나는 체코의 프라하가 그렇게 좋던데. 프란츠 카프카라고 요절한 천재 작가가 자주 다니던 카페도 가보고 했습니다. 여러 나라를 가봤어요. 큰아이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해서 영국도 가봤어요.”
 
  — 여행책을 쓰라는 권유는 안 들어왔나요.
 
  “그렇지 않아도 여행책을 쓰라고 하는데 제가 싫다고 했어요. 지금 추리소설 쓸 것도 많은데 여행책까지야….”
 
  — 선생의 말씀을 듣다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훌륭한 추리소설 소재가 될 수 있지 않나요.
 
  “박 전 대통령 탄핵은 21세기 들어 가장 드라마틱한 드라마지요. 생각을 더 해봐야겠지만 언론에 의해 대통령의 치부가 드러나고 당시 여당 의원들마저 탄핵안 발의에 찬성하고 결국 여판사가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는 말까지 나왔으니까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 정당한 절차에 의해 평화적으로 진행된 것이니 여기에 음모론을 집어넣으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요.”
 
 
  “10·26은 참 미스터리해”
 
  — 그렇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사건도 드라마틱하지 않을까요.
 
  “전 분명히 ‘21세기 들어 가장 드라마틱한 드라마’라고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암살사건도 만일 추리소설로 쓴다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그전부터 겉으로는 대통령에게 복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씩씩댔다, 그래서 살의(殺意)가 싹텄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해야 하는데 왠지 그다음 진행상황을 보면 그렇지도 않고.”
 
  — 어떤 면이 그런가요.
 
  “만일 김재규가 반역을 도모했다면,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쿠데타 시도는 해봤어야 하지 않나요? 게다가 그가 자기 살길을 마련해 놓았다는 증거도 찾기 힘들고. 그렇다고 현장에서 ‘욱’해서 대통령을 죽였다는 것도 설명이 좀 그렇고 아무튼 어려워요. 참 미스터리합니다. 외국에선 대통령의 최고 심복인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암살했으니 대단한 토픽감이 됐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 봐도.”
 
  — 그런데 왜 추리소설에는 평론가가 없습니까.
 
  “있을 수가 없지요. 시장이 좁은데. 추리소설가라 해봐야 저 하나인데 무슨 평을 하겠어요.”
 
  — 소설 집필은 대개 언제 하십니까.
 
  “전 낮에 해요. 대낮에.”
 
  — 의외입니다 다른 분들은 주로 저녁이나 새벽에 한다던데.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사우나하고 곧바로 글을 씁니다. 지치면 책을 읽다가 다시 쓰지요.”
 
  — 집필은 주로 뭐로 하십니까.
 
  “만년필로 쓸 때도 있고 컴퓨터로 쓸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만년필로 쓸 때가 더 좋지요. 만년필은 한 3~4개쯤 가지고 번갈아 쓰고 있습니다. (실제 추리문학관에 전시돼 있는 그의 필체는 매우 유려했다. 한마디로 알아보기 쉽고 잘 쓴 서체(書體)다.)”
 
  — 인세가 요즘도 많이 들어옵니까.
 
  “우리나라는 인세가 정확하지 않은 거 같아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일본에서 발간하는 《월간 미스터리》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제가 장기 구독했거든요. 그런데 그 잡지가 폐간을 하자 그 출판사에서 제가 미리 지불한 비용 가운데 잔액을 보내왔는데 그걸 보고 놀랐습니다. 지폐와 함께 두꺼운 종이에 동전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여서 보내왔더라고요. 일본은 그런 나라지요.”
 
 
  “한국문학, 작품다운 작품 없어”
 
  — 우리나라가 많은 분야에서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뭔가 층(層)이 얇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만 해도 추리소설 작가가 수백 명인데 우리는 아직도 나 하나밖에 없으니. 문 국장 말대로 우리는 인적으로 빈곤한 나라입니다. 인구는 넘쳐나는데 정작 전문 분야에는 사람이 없으니.”
 
  — 전 요새 한국문학은 안 읽습니다. 작가들이 무슨 경향(傾向)을 독자들에게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나도 안 읽소. 한국문학은. 작품다운 작품이 없어요.”
 
  — 연세도 드셨는데 전집(全集)을 발간할 생각은 없나요.
 
  “전집 만들 때가 되긴 했지요.”
 
  —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하면, 고 이병주 선생의 작품들도 거의 절판이 되었더군요. 결국 그런 작품들은 헌책방 사이트에서밖에 구할 길이 없으니. 우리 문화의 수준이 이렇게 경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추리문학관을 자비로 세운 이유가 있어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 문학관이 많이 생겼지요. 이병주 선생 문학관도 고향인 하동(河東)에 있는 걸로 아는데, 사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200억~300억원씩을 들여 너무 크게 세워놓다 보니까 안에 전시할 물건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덩그러니 회의실 같은 거나 만들어놓고 참 어정쩡하지요.”
 
  — 그렇지 않아도 제가 경남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도 가보고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학관도 가봤는데,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은 조금 전시물의 내용이 빈약하더군요, 원주에 비해서.
 
  “제 추리문학관에는 책도 많고 볼 것도 많아요. 제가 직접 쓴 수첩이며 초판본 원고도 전시해 놓았고요.”
 
  — 입구에 보니까 에드거 앨런 포의 ‘고양이’ 포스터가 있던데.
 
  “그거 얼마 전에 세미나 한 겁니다. 에드거 앨런 포가 〈모르스가의 살인〉을 쓴 것이 1841년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 당시에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포는 너무 젊어서 죽었는데 주벽(酒癖)이 심해 길에 쓰러져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를 떠올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작가가 나오지 않을까? 답은 하나밖에 없어요. 문학적 전통이 얕으니 갑자기 그런 작가가 튀어나올 수 없는 겁니다. 앞서 말했던 리플리 시리즈의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도 그렇고요.”
 
 
  “不義 보면 못 참아”
 
  — 본인의 성격을 스스로 정의(定義)한다면요.
 
  “착하고 선하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고나 할까요?”
 
  — 불의를 보면 왜 못 참습니까.
 
  “화가 나니까요.”
 
  — 요즘 화나는 일이 뭡니까.
 
  “5·18이 언제적 이야긴데 아직도 진상조사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하는지.”
 
  — 5·18이 일어날 때 뭐하고 계셨습니까.
 
  “서울 종로에서 동생(김인종)과 함께 남도(南島)출판사를 하고 있었어요.”
 
  — 저는 5·18 때 고3이었습니다. 지금 여당은 야당 탓을 하는 거 같은데, 그렇다면 진보였다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는 왜 진상조사를 해놓고도 제대로 못 했을까요. 그리고 39년이 지났는데 진실이란 게 남아 있기나 하겠습니까.
 
  “그건 그렇네. 그러니 과거의 잘못을 발본색원하는 게 이리 힘든 모양입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안 돼 김성종은 “이러지 말고 청사포로 내려가 한잔하자”고 채근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조금 더 하자”고 그를 설득했다. 인터뷰가 4시간을 향해갈 무렵 선생과 나는 막내아들의 차를 타고 청사포 횟집으로 갔다. 그는 익숙한 안주였는지 바닷장어구이와 조개구이를 시켰다.
 
  둘이 소주 네 병을 깠다. 선생은 모처럼 호적수를 만났다는 듯 “술을 이렇게 빨리 마시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좋아했다. 중간중간, 평소 같으면 받아 적었을 말들을 그는 했다. 그런데 알코올 탓인지 그 명문(名文)들은 지금 기억의 창고 저편 어딘가에서 먼지가 쌓인 채 발굴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거나하게 취했을 때 선생은 다시 커피숍으로 향했는데, 청사포 해변에서 일행을 데려다준 택시기사는 “김성종 선생님이시죠” 하면서 어떤 작품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아는 체했다.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선생은 기사에게 신작을 선사하겠노라고 약속하며 “내일 추리문학관에서 찾아가라”고 했다.
 
  카페에서 추리문학에 대해 떠든 뒤 일행은 정반대 방향으로 헤어졌다. 선생은 달맞이언덕의 안개 속으로 배낭을 멘 채 사라졌다. 잠깐 뒤돌아보니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해운대 바다 쪽으로 향했다. 다음 날 새벽 4시 반쯤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바다에는 해무(海霧)가 자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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