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한국 작가 이경화(Kyunghwa Lee)가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강단에 섰다. 강연 제목은 〈Future Transformation: Digital Confession / Malleable Bodies: Flusser, Foucault, Plasticity, and the Corset〉. 예술과 건축, 인공지능을 결합해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상과 피난처 개념을 제안하는 자리였다.
강연의 출발점은 소외(Alienation)다. 기후 위기, 팬데믹, 지정학적 갈등, 극심한 사회적 단절이 겹쳐진 지금, 이경화는 현대인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길들이며 살아가는 이중의 감옥" 속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서울에서 로스앤젤레스, 베를린까지 비평가들이 "포스트 젠더 연구와 동시대 예술에 대한 획기적인 전시"라 평했던 작품을 보여준 작가가 이번에는 그 감옥을 허무는 장치를 철학과 앞에서 펼쳐 보인 것이다.
중세 고해소를 AI로 재설계하다
강연의 핵심 작품은 《미래변환: 디지털 고백(Future Transformation: Digital Confession)》이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개념은 도발적이다. 참가자는 3D 프린팅된 가면을 쓰고 나이, 성별, 직업 같은 사회적 신분을 지운다. 익명의 존재가 된 뒤 AI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 AI는 참가자를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의 파동을 읽어 눈앞에 홀로그램 형태의 '사이보그 신체'를 생성한다. 불안과 욕망, 고통과 상처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빛의 예술 작품으로 변환된다.
이경화는 이 장치를 미셸 푸코가 분석한 고백의 권력 구조와 정면으로 대결시킨다. 푸코가 지적했듯 현대인은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평가받는다. 《디지털 고백》은 그 구조를 역전시켜, 고백을 통제의 도구가 아닌 자기 해방의 창조적 행위로 재정의한다.
레퓨지아, 그리고 가변적 신체
이론적 토대는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의 '레퓨지아(Refugia)' 개념에서 가져왔다. 혼란의 시대에도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피난처. 이경화는 이를 '기술-미학적 피난처(Techno-Aesthetic Refugia)'로 예술화한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고통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상처와 불안을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창조의 재료로 전환하는 것이다.
함께 소개된 《멜리어블 바디(Malleable Bodies)》는 이 사유를 '몸'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사회가 규정한 몸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가변적 신체(Malleable Body)'라는 새로운 인간상이 핵심이다. 강연 부제인 "Flusser, Foucault, Plasticity, and the Corset"는 빌렘 플루서의 미디어 철학, 푸코의 신체 권력론, 조각하듯 변형되는 신체의 가소성, 그리고 코르셋이라는 억압의 상징을 하나의 계보로 엮는다.
이화여대에서 하버드 건축까지
이경화의 작업 세계는 그의 이력 자체가 방법론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뒤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MArch)를 받았다. 패션과 건축, 두 장르가 모두 몸을 둘러싼 구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적 질문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2013년 슬라보예 지젝과 알랭 바디유가 내한했을 당시 플라툰 쿤스트할레에서 열린 철학-예술 이벤트의 오프닝 공연과 전시를 맡은 그는 지젝의 사유하는 신체를 그림자로 포착해 건물 외벽에 프로젝션 맵핑하는 독창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후 《멜리어블 바디》는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8년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REDCAT에서 설치·퍼포먼스로 선보였다. 2017년에는 아트바젤 컨버세이션 살롱에 국내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청돼 '지금의 기술과 작업에서의 뉴미디어'를 주제로 패널리스트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UCLA 철학과에서는 '탈신체화의 철학: 포스트휴머니즘 미학'을 강연했다.
현재 이경화는 백남준문화재단 국제이사로 활동하면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코리아타임즈 등에 문화예술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예술과 철학, 기술이 하나의 언어로 수렴하는 지점에서 그의 실험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