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월 7일 본회의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 원문을 캡처했다.
국회가 다시 ‘친일’ 문제를 꺼내 들었다. 국회는 5월 7일 본회의를 열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을 처리했다. 표결 결과는 재석 188명 가운데 찬성 187명, 기권 1명이었다. 공개 반대는 사실상 없었다.
법안의 핵심은 2010년 활동 종료 후 해산됐던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를 다시 설치하는 것이다. 친일재산 신고 포상금 제도와 은닉 재산 추적 규정까지 포함됐다. 형식상으로는 여야 합의 처리였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입법을 단순한 재산 환수 문제가 아니라 현 정부의 역사 인식과 정치적 방향성을 드러내는 신호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신기남 김희선 논란 속 출발한 친일 청산 입법
친일 청산 입법의 출발점은 2004년 제정된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다. 2003년 8월 김희선 의원 등 155인이 발의한 이 법은 국가 차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관련 사료를 편찬·공개하도록 한 첫 본격 특별법이었다. 법안 제안 이유에는 “해방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이 미비해 왜곡된 역사가 바로잡히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법안은 2004년 3월 국회를 통과했고, 같은 달 공포됐다.
그러나 친일 청산 정국은 곧 여권 내부의 가족사 논란으로 번졌다. 먼저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부친 신상묵의 일제강점기 일본 헌병 복무 전력 논란으로 2004년 8월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친일 청산을 앞세우던 집권 여당 지도부의 가족사가 도마에 오르면서 정치적 파장이 컸다.
당시 김희선 의원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 의원의 부친 김일련이 만주국 특무경찰로 독립운동가 탄압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 의원이 독립운동가 김학규 장군의 후손임을 강조한 선거 홍보물을 둘러싸고 혈연관계 논란까지 겹쳤다.
이 일련의 논란은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 정의의 구호가 정치권 내부의 가족사 검증으로 되돌아오는 역설적 장면이었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친일 문제와 과거사 청산 논쟁이 얼마나 민감하고 복합적인 사안인지를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친일재산 환수 논의가 본격화된 직접 계기는 1990년대 이후 이어진 이른바 ‘친일파 후손 땅찾기 소송’이었다. 친일 인사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토지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실제로 35건 가운데 9건에서 승소 사례가 나오자 사회적 충격이 컸다. 당시 여론은 단순 민사 분쟁으로 보지 않았다. “독립운동가는 가난하게 죽었는데 친일 협력 재산은 후손에게 고스란히 상속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의식이 급속히 확산됐다. 이 흐름 속에서 2005년 제17대 국회는 최용규 의원 등 167인이 공동 발의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2005년 12월 29일 공포된 현행법은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 체결·조인·모의 관여자,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중의원 활동자,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참의 활동자 등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단순 친일 성향이 아니라 식민통치와 국권 침탈에 적극 협력한 행위를 법적으로 특정한 것이다.
여의도 1.3배 환수… 그리고 멈춰 선 조사위
법 시행 이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2006년 출범했다. 위원회는 2010년까지 활동하며 친일 인사 462명과 후손 3만여 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총 2357필지, 약 1109만㎡ 규모 토지가 국가에 귀속됐다. 여의도 면적의 약 1.3배다. 당시 공시지가는 약 959억원, 시가는 2100억원대로 평가됐다.
그러나 위원회는 애초부터 한시 조직이었다. 활동 기간은 4년으로 제한됐고 2010년 해산됐다. 이후 법무부가 일부 소송 업무만 승계했지만 신규 조사 기능은 사실상 중단됐다. 실적도 급감했다. 친일귀속재산 수탁 실적은 2009년 719필지, 2010년 663필지였지만 이후 급감해 2011년 3필지, 2012~2013년 전무, 2024년 1필지 수준에 머물렀다.
친일재산 환수법은 제정 당시부터 재산권 침해, 평등원칙 위반, 연좌제 금지 위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합헌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해당 입법이 “3·1운동의 헌법 이념 구현”이라는 공익 목적을 추구한다고 봤다. 또 선의의 제3자 보호, 불복 절차 보장, 입증 기회 제공 등이 마련돼 있어 재산권 제한도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연좌제 논란과 관련해 헌재는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친일행위의 대가로 형성된 재산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고 판단했다.

표결 결과, 재석 188명 가운데 찬성 187명, 기권 1명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가 이견없이 합의처리 했다.
다시 등장한 ‘친일’… 역사 정의인가
그렇다면 왜 지금 다시 친일 문제인가. 정치권에서는 이번 재가동을 단순 행정 조치 이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진보 좌파 정권은 전통적으로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역사 정의, 과거사 청산 서사를 정치적·도덕적 정통성의 중요한 기반으로 활용해왔다. 반면 보수 진영은 산업화, 안보, 반공 서사를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친일 문제는 단순 역사 논쟁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정통성 경쟁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지금 상황은 2000년대 초반과는 다르다. 친일 청산 자체를 공개 반대하는 정치세력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이번 법안도 압도적 찬성으로 처리됐다. 대신 법조계 일각과 정치권 안팎에서는 “실질 환수 효과보다 상징 정치 성격이 강하다”, “이미 친일 당사자는 대부분 사망했고 후손도 고령이다”, “현 시점에서 다시 친일 문제를 전면화하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신중론도 나온다.
특히 현 정부가 출범 이후 역사 서사와 독립운동 계승, 국가 정통성 문제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입법 역시 단순 과거사 정리를 넘어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친일재산 환수 체계 부활 논쟁은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다. 이미 친일 당사자 대부분이 사망했고, 재산 역시 여러 차례 상속과 매매를 거쳤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환수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법안의 진짜 의미를 단순한 재산 환수보다, 진보 좌파 정부가 다시 ‘친일 청산’을 주요 역사 의제로 전면화하고 있다는 정치적 선언에서 찾는 시각도 적지 않다.
기자와 통화한 서울소재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는 “이재명 정부가 스스로를 실용 정부로 규정한다면 친일 문제 역시 과거 진보 정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친일·과거사 문제가 정치·진영 담론과 강하게 결합돼 있었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이재명 정부는 역사 문제는 역사대로 다루되, 외교·경제·안보 문제와는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친일재산 환수 역시 ‘역사 응징’이나 감정 정치보다 미정리 재산의 법적·행정적 정리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진보 정권 특유의 도덕 담론보다 법치와 실무를 앞세우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대규모 환수 가능성은 높지 않은 만큼, 정치적 상징성만 부각되는 방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며 “친일 청산 문제를 다시 꺼내더라도 진영 동원 정치로 비치지 않도록 절제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