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월 30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조직개편 앞두고 정책 연속성 택했다."
기획재정부가 새 정부 출범 5개월여 만에 첫 1급 고위직 인사를 단행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
내년 초 예정된 조직개편을 앞두고 '정책 연속성'이라는 명분 아래 내부 승진 위주로 판을 짰다. 외부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핵심 라인은 손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부처 안팎에서는 "너무 안전한 선택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3일자로 발표된 이번 인사는 1급 직위 7자리 가운데 4자리를 교체하고, 나머지 3자리는 유임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차관보, 기획조정실장, 재정관리관, 대변인이 새 얼굴로 바뀌었고, 예산실장, 세제실장, 국제경제관리관은 자리를 지켰다.
행시 39회가 장악한 기재부 1급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건 행시 39회의 약진이다. 신규 발탁된 4명 모두가 39회 출신이다. 강기룡 신임 차관보(55), 황순관 기획조정실장(52), 유수영 대변인(57), 강영규 재정관리관(56)이 그 주인공이다.
행시 39회는 1993년 입부한 기수로, 기재부에서는 이른바 '황금 세대'로 불린다.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굵직한 경제 위기를 현장에서 다뤄온 실전 경험이 풍부하다. 예산, 세제, 국제금융을 두루 거치며 '멀티플레이어'로 성장한 인물들이 많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39회가 이제 본격적으로 1급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7명의 1급 가운데 5명이 39회다. 유병서 예산실장(38회)과 최지영 국제경제관리관(40회)만 다른 기수다.
차관보 강기룡, 기획조정실장 황순관, 대변인 유수영, 재정관리관 강영규
신임 차관보에 임명된 강기룡 전 통계청 기획조정관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DI 국제정책대학원과 미국 듀크대에서 정책학 석사를 마쳤다. 기재부에서 산업경제과장, 정책기획관, 경제구조개혁국장 등을 거쳤다.
차관보는 기재부 내 실·국을 총괄 조정하는 자리다. 차관을 보좌하며 정책의 큰 틀을 잡고,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조직 개편을 앞둔 시점에서 차관보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기획조정실장에 승진한 황순관 국고국장은 고려대 행정학과 출신으로 복지·교육·고용 예산을 두루 다뤘다.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지방 출신이 기재부 예산 라인을 거쳐 실장급에 오른 것은 드문 사례다.
기획조정실은 부처 내 기획·인사·예산·법무·감사·정보화 등을 총괄하는 핵심 부서다. 조직 개편을 앞두고 기획조정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다.
대변인에 발탁된 유수영 미래전략국장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상경대에서 경영학 석사, 베르사유대에서 국제법 석사를 받았다. 새만금개발청 기획조정관과 주프랑스대사관 재정경제관을 거친 국제 경험이 풍부한 관료다.
대변인은 정부 정책의 방향을 대외적으로 설명하고, 여론을 파악해 정책에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 홍보·국제·경제정책을 두루 경험한 유 대변인의 이력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기존 대변인이던 강영규 관리관은 재정관리관으로 수평 이동했다. 고용환경예산과장, 공공정책국장 등을 거친 재정분야 전문가다.
재정관리관은 국가재정법 운영, 공공기관 관리, 정부 부채 관리 등을 총괄한다. 최근 국가부채와 공공기관 부실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만큼, 재정분야 전문성이 있는 인물을 배치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임된 3명, '정책 연속성' 고려
유병서 예산실장과 박금철 세제실장은 각각 자리를 지켰다.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세제개편안이 본격 심의 중인 만큼, 정책의 연속성과 국회 대응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예산실장은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야당과 협상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한다. 박금철 세제실장 역시 법인세 인하, 상속세 개편 등 민감한 세제 이슈를 다루고 있어 연속성이 필요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최지영 국제경제관리관도 유임됐다.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과 APEC 후속 논의를 조율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재무부, IMF 등과의 협상 라인이 구축된 상황에서 중도 교체는 업무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부처 안팎에서는 최 관리관이 조직 개편 후 신설되는 재정경제부 2차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여성 관료로는 드물게 국제금융 분야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조직개편 앞둔 '과도기적 인사'
이번 인사는 내년 초로 예정된 기재부의 조직개편을 염두에 둔 과도기적 성격이 짙다. 정부는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2026년 1월 2일부터 시행 예정이다.
예산·세제·국제경제 라인의 핵심 인력들은 분리 후 신설 부처의 주요 보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유병서 예산실장은 기획예산처 차관 후보로, 최지영 국제경제관리관은 재정경제부 2차관 후보로 각각 거론되고 있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계류 중이고, 세제개편안도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고위직을 대거 교체하면 정책 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다. 내부 승진과 정책 연속성에 무게를 둔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사는 외부 인사 영입 없이 전원 내부 승진으로 이뤄졌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5개월이 지났지만, 민간 전문가나 학계 인사 영입은 전혀 없었다.
기재부는 전통적으로 '내부 승진 문화'가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인사가 고위직에 오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번 인사도 이런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대응, 새로운 산업정책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 외부 전문가 영입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사진=조선DB
내년 상반기 추가 인사 예정
기재부는 조직 개편이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에 추가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되면, 각 부처의 차관, 실·국장급 인사가 대거 이뤄진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새 정부의 첫 고위직 교체인 만큼 안정 속 쇄신의 메시지를 담았다"며 "조직 개편 이후 본격적인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 개편은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각각 독립된 부처로 출범하면, 차관·국장급 보직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기획예산처는 국무총리실 산하로 새로 출범하는 만큼, 조직 구성 과정에서 새로운 인사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인사는 기재부가 '쇄신과 안정' 사이에서 안정을 택했음을 보여준다. 조직 개편을 앞두고 정책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내부 승진을 통해 조직 사기를 북돋우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국회 예산심의가 진행 중이고, 세제개편안이 논란인 상황에서 대대적인 인사 개편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내년 조직 개편 이후 본격적인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의 다음 선택이 주목된다. 내년 상반기 추가 인사에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조직 문화를 쇄신할 것인지, 아니면 내부 승진 문화를 이어갈 것인지. 그 선택이 향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의 방향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