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iel Lergon, Untitled, 2025, 130 x 200 cm

서울 강남의 컨템포러리 갤러리 레이지 마이크(Lazy Mike)는 독일 작가 다니엘 레르곤(Daniel Lergon)의 서울 첫 개인전 《Auflösung》을 12월 4일부터 2026년 1월 24일까지 개최한다. 〈Auflösung〉은 독일어로 ‘해체’ 혹은 ‘용해’를 뜻한다.

 이번 전시는 레르곤의 최신 회화 연작을 중심으로 빛과 표면, 관람자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각의 회화(perceptual painting)를 탐구한다.

레르곤은 산업광학 기술인 ‘재귀반사(retro-reflection)’를 회화에 도입했다. 그의 화면은 관람자의 위치나 광원 각도에 따라 색과 형태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움직이는 회화”로 작동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회화가 단순히 ‘무엇을 그리는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보이게 되는가’를 묻는 매체로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흙(Earth) 위에 단일 안료와 회색 재귀반사 안료를 겹겹이 입히고, 붓과 천, 플라스틱 시트 등으로 표면을 긁거나 문지르는 신체적 행위를 더해 지각의 분해와 재구성이 일어나는 과정을 시각화했다. 단순한 형상의 소멸을 넘어, 빛·재료·관람자 사이의 관계가 끊임없이 재편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레르곤은 “회화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반영이 아니라, 빛과 물질이 맞닿는 순간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흙, 프러시안 블루, 재귀반사 안료 등 물질적 재료를 통해 우주적 감각과 철학적 사유가 교차하는 장(場)을 만들어낸다.

 레르곤(1978년 독일 출생)은 베를린 예술대학교를 졸업했다. 베저부르크 현대미술관(브레멘), 폰 데어 하이트 미술관(부퍼탈), 뮤제움 슈티키(로지) 등 유럽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에는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주제로 한 연작을 이어가며, 유럽 추상회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레이지 마이크는 라트비아에서 출발한 국제 갤러리로, 2024년 서울 삼청동에 첫 지점을 개관한 뒤 올해 청담동으로 이전했다. 공동 설립자 마이크 오브차렌코와 타티아나 멜니코바는 “레르곤의 작품은 물질과 감각,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며 “서울 전시는 그가 추구해온 ‘빛의 언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