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의 최근 행보가 정치권 안팎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과 고성을 주고받은 데 이어, 다음 날 정치 성향이 뚜렷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미국 관세 MOU 초안을 두고 “을사늑약은 저리 가라 할 수준”이라고 발언한 장면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조용하고 절제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행보였기 때문이었다.

관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실장의 화법 변화는 그의 지난 관료 경로를 함께 보아야 이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약 35년 공직 인생을 다시 불러냈다.

금융정책 정통 라인을 밟은 엘리트 관료

‘실무형 금융통’인가, ‘모피아’의 상징인가

김용범은 1962년 전남 무안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밭에서 고추 따던 손끝의 매운 기운과 함께 떠올랐다. 집안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학교 문턱을 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처럼 찾아온 짧은 기회, 즉 공교육 사다리, 그리고 장학금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광주에서 5·18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충격이었다. 사실 처음의 꿈은 의사였다. 병을 앓던 어머니를 위해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달았다. “한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도 필요하지만, 나라 전체를 지탱할 힘을 만드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는 그렇게 경제학의 길을 택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청소년이던 그는 극심한 경기 침체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 기억은 훗날 경제관료의 길을 선택하는 내부 에너지가 되었다.

김용범은 1987년 재무부 사무관(행시 30회)으로 경제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를 거쳐 경제·금융 정책의 정통 코스를 밟았다. 자본시장국장, 금융정책국장, 금융위 사무처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등은 관가 내부에서 “금융정책 라인의 에이스 자리”라 불린다.

매일경제 1999년 5월 8일 자 15면에 실린 <코스탁시장 활성화 설명회 개최> 기사. 김용범 재경부 증권제도과 서기관이 발표한 코스탁시장 활성화 방안이다. 김대중 정부(1998~2003) 시기는 한국 현대경제사에서 벤처 붐과 코스닥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일어난 시기로 평가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그는 “정책을 굴리는 실무형 금융통”, “국제 금융에 밝은 관료”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개혁 진영에서는 “기득권 금융체제를 지키는 관료”, “전형적 모피아”라는 비판이 빠지지 않았다. 능력과 논란이 교차하는 경로였다.

갈등이 폭발한 시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다.

김용범이 2017년 7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으로 재임하던 2018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의원 20여 명이 ‘김용범 교체’ 연판장을 돌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제재 과정, 거래재개 결정,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개편 등이 문제로 지목됐다. 일부 의원들은 “업계를 대변한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연판장은 청와대에 전달되기 직전 회수됐다.

전해철 의원 등 여당 핵심 인사는 “대통령이 임명한 차관급 인사를 여당이 끌어내리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개 발언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전문성은 인정받지만 개혁진영의 공격 대상이 되는 기술관료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기재부 1차관 임명 – 위기 대응형 테크노크라트의 기용

연판장 사태 직후, 김용범은 2019년 8월 기획재정부 제1차관으로 임명된다. 기재부 차관 자리가 약 7개월 간 공석 상태였고, 이 기간 동안 여권 내부에서 차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는 관가 평가도 나온다.

당시 관가에서는 미·중 무역 갈등으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과 복합 위기 상황에서 실무 조정 능력과 국제 감각을 가진 인사 기용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금융위 부위원장 시절 보인 집행력과 조정능력에 대한 내부 신뢰가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그의 호남(전남 무안) 출신이 인사 검토 과정에서 정무적 고려 요인으로 언급된 바는 있으나, 발탁의 핵심은 전문성과 실무역량이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기재부 차관 시절 김용범은 코로나19 초기 금융시장 붕괴 위기에서 정책 실무를 총괄했다. 그 경험은 2022년 출간된 저서 《격변과 균형》(창비)에 담겼다. 그는 《시사IN》 인터뷰(2022.6.23, <여기가 기재부 나라냐… 기재부 관료가 답하다>)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 빠진 것 같은 공포가 온다. 정부는 침착함을 유지한 채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메시지를 만들어야 했다.”

2020년 3월 원·달러 환율 급등, 뉴욕 증시 폭락 국면에서 한국은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을 통해 금융시장 불안을 진정시켰다. 이 경험은 그를 “실전에서 검증된 위기관리 관료”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손실보상 소급 적용, 재정확대 논쟁에서는 기재부 원칙을 고수하며 비판의 중심에 섰다. 그는 “기계적 손실보상 방식은 시가 산정과 법적 분쟁 위험 때문에 적기 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다.

변곡점의 중심에 선 기술관료… 정책의 언어에서 정치의 언어로?

이력과 달리 최근 김용범의 언어는 분명한 전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책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처럼 정치 전면에 서는 자리가 아니라, 부처 간 정책을 조정하고 국정 우선순위를 설계하는 후방의 전략가이다. 국회 기재위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김용범의 강점은 구조를 읽는 능력과 정책을 실제로 굴리는 힘이다. 그런 인물이 정치적 언어를 앞세우기 시작하면 정책기구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 총선 출마설까지 조심스레 거론하지만, 본인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선택의 시간

김용범은 약 35년간 한국 경제·금융정책의 중심에 서 온 테크노크라트이다. 보수 정부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은 금융통, 문재인 정부에서는 실무 중심 인사, 동시에 모피아 논쟁의 중심, 그리고 팬데믹 위기 대응의 책임자였다.

김용범은 정책의 기술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정치의 전면으로 이동하는 노골적인 친여 정치인이 될 것인가. 그의 선택은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의 향후 방향을 가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