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원 동전. 사진=조선DB
미국 재무부가 1센트 주화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로이터(Reuters) 통신은 11월 12일 자 기사에서 ‘1센트 동전 생산 중단은 미국 조폐국(U.S. Mint)에 연간 약 5600만 달러(약 750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미국 재무부 데릭 듀러(Derek Theurer) 차관보는 “오늘 우리는 ‘페니(penny)’를 역사 속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1센트 생산 중단은 단순히 화폐 디자인을 바꾸거나 소재 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정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액면가보다 비싼 제조비용을 감당하지 않겠다.”
이는 적은 금액의 동전에서 시작된 경제성 판단이자 통화 효율성 선언이다. 세계적 기축통화를 운영하는 미국이 화폐 체계를 손본다는 것은 금융·결제·정책 사고방식 전체를 재설계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렇다면 한국의 10원·50원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11월 12일 미국 조폐국 필라델피아 지부에서 마지막 페니, 즉 1센트를 찍기 위해 압연판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연합뉴스
◇동전은 사라져가는 낡은 물건이 아니라 ‘가격 시스템의 최소 단위’
일반 국민에게 동전은 이제 “카드와 앱 결제가 되지 않을 때 쓰는 예비 수단”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책 측면에서 보면 주화(동전)는 여전히 국가 가격 시스템의 최소 단위이자 시장 가격을 지탱하는 기초단위다.
2020년대 들어 이 기초 단위는 체감 효용보다 생산비용이 더 높아지는 역전 구조에 갇혔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주화 제조비는 2020년 182억 원 → 2022년 158억 원 → 2024년 56억 원수준으로 내려오고 있다. 금액만 보면 ‘절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동전을 덜 찍어서 생긴 감소”일 뿐, 제조비 절감의 성과를 의미하지 않는다.
핵심은 액면가 대비 제조원가 역전 현상이다. 10원 제조비는 10원을 훨씬 초과하고 50원·100원·500원 역시 비슷한 구조다.
이 종류의 동전은 찍는 순간 재정적 손실이 발생하는 화폐가 됐다.
하지만 10원만큼은 여전히 실수요가 존재한다. 이는 한국 시장만의 특수성이며 정책 판단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2006년 12월 한국은행이 새 10원을 공개할 당시의 모습. 크기가 줄어들고 색은 옛 동전에 비해 더 짙은 갈색이다. 사진=조선DB
◇미국의 결론, 중국의 경고, 일본의 대안, 한국의 질문
① 미국의 결론
미국 조폐국(United States Mint)은 지난 11월 12일 통화용 1 센트 동전의 생산을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동전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동전의 액면가(1 센트)를 훨씬 초과하고 있어, 예컨대 2024년 기준으로 1 센트 동전 한 개 제작비용이 약 3.69 센트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다. 생산은 중단되나 기존 유통된 동전은 법정통화로 남아 있으며 급격한 현금결제 방식 변화 없이 단계적 전환이 예상된다. 사실미국의 판단 논리는 간단하다.
“효용보다 비용이 높다면 생산 이유가 없다.”
현금 사용이 급감했고, 1센트는 시장 존재는 남았으나 경제적 단위 기능은 사실상 종료됐다.
② 중국의 경고
중국은 과거 0.1위안(약 17원) 동전 발행을 중단했고, 그 과정에서 가격표 단위 상향, 거스름돈 체계 변화, 소비자 체감 물가 상승이 나타났다는 분석이 있다.
일부 지역에선 빵 가격이 2위안 넘게 오르며 소비자 반발 사례도 있었다. 즉, 동전 폐지가 소비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생활물가 체감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③ 일본의 대안
일본은 한국과 미국, 중국의 중간 지점에 있다. 1엔 동전 제조원가가 액면가의 3배 수준이라는 비효율 논란 속에서도, 일본 정부는 즉각 폐지 대신 ‘축소·비유통화 전략’을 선택했다.
즉, 발행량 최소화, 주화 사용 빈도 하향, 전자거래 강화, 단위조정의 점진적 적용을 통해 현금·가격·소비 심리를 동시에 충격 없이 조정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는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현실적 전이 모델”이다.
④ 한국의 질문
한국은 아직 10원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0원 단위는 여전히 아래 영역에서 기능하고 있다.
-편의점·마트 가격 (예: 990원·9,900원)
-동전 기반 자동판매 시스템
-소규모 사업장 현금 정산
-일부 고령층 및 영세 상인의 결제 문화
특히 환수율에서는 더욱 극명하다.
현재 국내 동전 유통 구조를 보면, 50원·100원·500원 동전은 발행량보다 환수량이 더 많은 상태여서 시중 유통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사실상 축소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10원 동전은 환수보다 발행이 더 많이 필요한 구조여서 여전히 실거래에서 수요가 존재한다.
즉, 한국에서 가장 액면가가 낮은 동전이 오히려 가장 필요한 동전이라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책의 갈림길: 세 가지 시나리오
향후 정책 선택지 역시 단순하지 않다.
첫째 미국식으로 생산을 중단하고 기존에 남아 있는 동전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10원 단위 수요가 남아 있어 즉각적인 시행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둘째 일본처럼 발행량을 최소화하면서 시장 가격 단위를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전략으로, 현재 한국 상황을 감안할 때 채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으로 평가된다.
셋째는 동전 대신 모바일 적립·포인트 환급·전자 거스름돈 등 디지털 전환으로 대체하는 방향인데, 이미 일부 유통업계와 금융권에서 활용되고 있어 가장 확산 속도가 빠른 해법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
여기서 일본형 시나리오는 한국의 현실과 가장 유사하며, 정책 충격을 최소화하는 완충전략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제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10원을 없앨 수 있는가? → 가능하다.
둘째, 시장이 즉시 견딜 수 있는가? → 지금은 어렵다.
셋째, 대체 단위·결제 환경 설계가 끝났는가? → 아직 미비하다.
그리고 “작은 동전이 사라지는 순간, 가격 체계와 소비 심리가 바뀐다”, “화폐는 경제 계산 수단이 아니라 생활문화의 반영이다”라는 사실을 잊어선 곤란하다. 10원과 50원은 작고 가벼운 금속 조각이 아니다. 한국 가격 언어의 최소 단위, 시장질서의 바닥 기준선이다. 미국이 1센트를 역사 속에 묻었다면, 한국은 이제 묻는 질문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가격 체계의 최소 단위를 얼마로 설계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