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통령 자리로 돌아온 트럼프는 첫 점심으로 체서피크산 크랩케이크와 오마하산 립아이 스테이크를 먹었다. 디저트는 미네소타산 애플 디저트.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JD 밴스 부통령을 비롯한 상원과 하원의 지도부, 야당 인사들, 전직 대통령들과 주요 기업인들이 함께였다. 대통령과 부통령의 배우자도 물론 함께한다.

 미국 대통령의 '취임 오찬'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2025년 1월 20일, 워싱턴 D.C.는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눈보라로 바깥 의사당 계단은 비워졌고,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은 의사당 돔 안의 로턴다(Rotunda) 홀에서 조용히 거행되었다. 대통령 선서가 끝난 후 풍경이 바뀌었다. 전날까지도 유세장에서 격돌했던 이들이 한 식탁에 둘러앉았다. 이 날 식탁엔 새로운 대통령과 부통령의 출신지를 고려한 음식들이 올랐다. 각 지역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식탁 위에서 조화롭게 연결하는 미국식 정치를 보여준다. 바로 취임 오찬(Inaugural Luncheon)이다.

 대통령이 선서 후 가장 먼저 국회를 찾는 나라, 국회가 합동해 대통령에게 첫 끼니를 대접하는 나라. 거창한 의제도 없고, 격식은 간결하다. 의미는 무겁다. 정치의 시작을 ‘대화’에서 출발하겠다는 신호다.

 취임 오찬은 1897년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 시기 시작됐다. 매킨리 대통령은 취임 후 상원 외교관계위원장의 관저에서 식사를 했다. 일종의 비공식적인 식사 자리였다. 그러다 1953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처음으로 상하원 합동 취임식 위원회(JCCIC)가 주관하는 공식 취임 오찬이 열렸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상하원 지도부가 새 대통령을 초대해 ‘잘 해보자’고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다. 메뉴에는 대통령과 부통령의 고향을 상징하는 음식이 등장한다. 지역과 이념, 소속을 달리한 정치인들이 서로 눈을 맞추는 시간. 식탁 위의 대화가 곧 협치의 출발이다.

우리는 왜 함께 밥 한 끼 못 먹나

트럼프가 취임 오찬에 참석하던 그 시각, 한국의 대통령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의 취임 첫날은 어땠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식사를 참모들과 둘러앉아 먹었다. 메뉴는 전복죽이었다.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이자 나라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의 첫 식사는 하나의 이벤트이자 역사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 식사를 기껏 참모들과 둘러앉아 그것도 죽을 먹은 거다. 우리 조상들이 즐겨 쓴 ‘죽 쒀서 개준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죽을 먹고난 후엔 집무실에서 미국, 일본, 아랍에미리트(UAE)의 경축 사절을 만났다. 그런 다음 국회로 가서 연회에 참석했다. 

 도대체 미국과 일본 아랍에미리트의 경축 사절을 여야 의원들보다 먼저 그 시각에 만나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국회에서 취임식을 치른 후 부랴부랴 떠날게 아니라 국회에서 국민의 대표들과 취임 오찬을 함께 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나. 이건 국회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제안해야 한다.

2022년 5월 10일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후 식장을 떠나는 김건희 여사.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촬영 

 화려한 취임식이 끝나면, 그 즉시 여야는 따로 논다. ‘함께 국가를 꾸린다’는 제스처조차 없다. 대통령이 국회를 찾는 건 국정연설 때 뿐이고, 그마저도 반쪽 박수와 야유로 얼룩진다. 

 미국의 취임 오찬은 단지 외교용 제스처가 아니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행정부와 입법부가 상견례하게 하는 상징적 장치다. 대통령이 정당과 지역을 넘은 인사들과 얼굴을 맞대고 앉는 첫 자리이자, 정치가 ‘사람들 사이의 일’임을 일깨워주는 자리다. 메뉴 구성에도 메시지가 있다. 대통령의 출신 지역, 부통령의 고향, 그리고 참석자의 정치적 다양성이 음식 위에 놓인다. 선거전에서 일어난 난타와 그 기간 부각된 서로의 다름을 문화적으로 녹이는 장치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구동존이(求同存異)를 누구보다 잘 구사해야 한다. 생각이 서로 달라도, 공통되는 부분을 먼저 찾고, 차이점은 인정하는 자세를 말한다. 설사 그런 자세를 못 갖추고 대통령이 됐다 하더라도, 식탁에서 배울 수 있다. 협치와 통합을 백날 입으로 떠들어봤자 한번 만나서 밥 먹는것만 못하다. 물론 과음은 곤란하다.

 내일(6월 4일)이면 21대 대통령이 취임한다. 대통령 취임 첫날 여야 지도부와 전직 대통령, 국회의장과 헌법기관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대화하고 식사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 허울 뿐인 의례라 해도 좋다. 반복되면 문화가 되고, 문화는 의식을 바꾼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음고생을 한 국민들을 그렇게라도 위로해주길 바란다. 같이 밥 한 끼도 못 먹으면서 어떻게 함께 나라를 이끌겠다는 건가.

글=하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