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같은 인절미

-이주하

파란 고물 같은 꽃잎이 내리는 봄 길에

누님의 날받이 떡 인절미가 어찌나 밉던지

사주단자 되돌려야 했었는데

들려온 소문의 진상을 팠어야 했는데

그냥 끌어안았다

날받이 떡 받아 놓고 한숨이 절로 나고

녹두 고물 인절미가 어찌나 달던지

누님은 시집을 가버렸다

인절미 고물 뿌려진 봄 길

요양병원에 누워 살아온 날 헤아리지 못한 누님이 걷고 있다

되돌릴 일이 참 많은 누님 오시는 길에

녹두 고물 같은 꽃술 뿌려보았다

--------------------------

불이(不二)

새벽녘 하얗게 질린 달

초저녁 공산(山) 밝히던 노란 달 아니었나

밤새 불이암(不二庵) 나그네 꿈을 쫓던 촛불

창을 열자 납작 엎드려 미간 햇살 받들고

한 모금 바람에 벙그러진 납매(臘梅)

지난밤 달덩이 아니었나

----------------------------

시집 《누님 같은 인절미》는 정겨운 시어로 가득하다. 읽고 싶은 시들이 많다. ‘누님 같은 인절미’가 그렇다. 꽃잎이 내린 봄날, 옛 추억이 떠오른다.

누님이 시집가던 날, 날받이 떡으로 마련한 인절미가 어찌나 밉던지. 시집가는 누님이 원망스러웠다. 뜯어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녹두 고물 인절미가 얼마나 달던지.

그런 누님이 오래 요양병원에 누워 지내셨다. 그 누워 지낸 세월조차 헤아리지 못한 누님이 시인을 더욱 슬프게 한다.

고물 같은 꽃잎이 내리는 봄날, 누님 생각이 간절하다.

이주하 시인을 따라가니 ‘지난 밤 달덩이’ 같은 향이 행간에 진동한다. 인절미 고물 뿌려진 봄 길, 벙그러진 납매(臘梅), 너도바람꽃, 딱 달라붙어 있는 사랑 사이로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시인이 있다. 문 앞 ‘어쩔 줄 몰라 하는 영혼’이 되어 그의 시집을 삼킨다. 그리고 덥썩 사랑에 빠진다.

다음은 최재목 시인(철학자)의 시집 《누님 같은 인절미》에 대한 느낌이다.

“대구 무태(無怠)의 시인 이주하의 시집, 《누님 같은 인절미》는 대지 위의 사물과 인간에 대한 물음과 속삭임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신의 은총이 가득한 지상에서 온갖 생명들이 모두 희망으로 기억되고, 서사 되기 때문이다.

씨앗과 열매와 인절미로 은유되는 복음 가득한 지상의 밭을 애써 가꾸는 시인의 애절한 마음은 스스로 농부가 되어 세상에 쏟는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이다. 지상을 모시고 섬기는 수행자의 노래이자, 나와 남을 향한 소박한 동화이다.”

이주하 시인은 2013년 《시에티카》로 등단해 시집 《호박 잘라 보셨나》와 동화집 《선생님 동화 맛있게 들려주세요》 를 펴냈다. 대학 강단(1989~2022년)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