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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다이얼로그, 무엇과의 대화일까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중업(1922~1988)은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사사받고 1956년 프랑스에서 귀국하여 우리나라에 모더니즘 건축기법을 전수한 인물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화가, 조각가, 시인, 이론가, 도시계획가로도 역량을 발휘한 총체예술가였다. 김중업은 스승을 본받아 시를 쓰고 서적을 발간했으며, 건축과 도시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한국 최초로 건축가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8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의 공동주최로 ‘김중업 다이얼로그’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김중업의 인터뷰, 기고, 개인기록에서 피력한 건축론을 모아 《김중업 Dialogue》라는 서적을 출간했다. 육필로 쓴 메모는 안양시 석수동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중업 Dialogue》 속에 수록된 김중업의 말을 통해 그의 건축관을 짐작해보자. 1950년대 초, 르 코르뷔지에의 롱상교회와 안토니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을 본 김중업은 ‘근대에도 이런 벅찬 작품들이 있기에 세계는 아직 희망을 걸만 하지 않은가’라며 건축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가 건축을 대하는 자세는 ‘건축은 인간에의 찬가(讚歌)입니다. 알뜰한 자연 속에 인간의 보다 나은 삶에 바쳐진 또 하나의 자연입니다’라는 말속에 잘 녹아있다. 

  건축가에 대해서는 ‘헤아릴 수 없이 구축한 무질서 속에서도 고고히 자신을 지키고 있는 귀한 존재만을 건축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건축이란 만의 하나 정도의 확률밖엔 없고, 이를 갈아 맞추는 건축가란 시간과 공간 속에 자신을 송두리째 불사르는 이들입니다’라고 정의했다. 

  197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에 대규모 건설 붐이 불었고, 1971년 경기도 광주 대단지 조성이 발표되자 철거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중업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한국의 도시계획이 근대화 정책이라는 정부의 정책 밑에 하나의 시위효과를 노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눈에 뜨이는 일만 하면서, 모든 문제를 파고들어서 현상 자체를 정확히 파악해서 입안하려고 하지 않는 자세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거침없는 발언을 쏟았다.

  ‘도시란 한번 그르치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도시계획이란 허황하고 그럴싸한 도상의 기교에 그쳐서는 안 된다.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현실적인 최상의 방법은 진실로 시민을 위한 정성이 계획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해야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라며 정부 시책을 계속 비판하다가 추방된 김중업은 1971년부터 8년간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김중업건축박물관 김태원 관장은 그 8년의 세월은 한국 건축이 세계적인 흐름에서 다시 멀어지고 뒤처지는 시간이었다고 진단하며 “오늘날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음식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한류열풍이 일고 있는데, 왜 건축분야만은 K건축이라는 용어가 없을까요? 그건 한국의 건축산업이 문화예술의 맥락에서 멀어졌다는 뜻이고, 그 원인 중에 김중업 선생의 해외 추방과 그로 인해 건축예술의 맥이 끊어진 연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삼일빌딩을 비롯한 큰 건물을 많이 설계한 김중업은 도시의 기능을 ‘바람직한 것은 마음 놓고 거리를 거닐 수 있는 것과 옹기종기 그늘 밑에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손쉽게 생활의 편의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몇몇 개인주택을 설계한 김중업은 집을 ‘빛이 쬐는 곳과 그림자 진 곳이 부각되어 시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 가는 흐뭇한 하나의 교향시이며, 마을이란 조각난 집들의 협주로 구성되는 때로는 웅장하고 때로는 비장한 교향시이기도 하다. 비록 그것이 대궐 같은 집들로 즐비한 부촌이 아니라 판잣집으로 다닥다닥한 빈촌일망정’이라고 따뜻하게 표현했다.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멋진 개인주택을 여러 채 설계했지만 아파트에 대한 김중업의 생각은 매우 긍정적이다. 1963년 경향신문이 주최한 좌담회에서 ‘아파트는 한국 주거 생활의 혁신이다. 85%가 산악지대라 주택건설을 위한 공지 조성이 매우 힘든 한국의 주택 정책은 가능한 한 집단 주거 위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김중업은 집단주택에서 자연친화와 공동체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0년대에 짓는 아파트 단지들이 강조하는 대목을 김중업은 1960년대에 설파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김중업은 한국 전통문화 양식을 현대 건축물에 접목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한국에 모더니즘 건축기법을 전수한 김중업이 생각하는 전통과 현대는 이렇게 연결된다.

  ‘현대라는 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부터 이어오는 연속된 시간의 한 과정을 지칭하는 것이기에 전통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맺어지고 전통이 새로운 각도에서 계승되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수많은 건축가들이 한국 현대 건축물의 첫 번째 수작으로 1961년에 지은 주한프랑스대사관을 꼽는다. 모더니즘 건축에 한국의 문화양식이 어떻게 담겨져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재건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한프랑스대사관의 상당 부분 철거되었지만, 다행히 건축모형과 기록을 김중업건축박물관이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수많은 건축물을 남기고 역량있는 제자들을 길러낸 김중업의 마음이 담긴 문구가 그의 건축인생을 대변한다.

  ‘참다운 인간만이 참다운 시인일 수 있고, 충실한 인간만이 보람있는 일을 남겼다. 아름다운 건축을 창조하려면 먼저 너의 마음씨가 아름다워야 한다. 인간은 교양이 높고, 정의감이 강해야만 올바른 일을 한다. 건축에 있어서도 작품 활동이란 일생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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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르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 김중업.

 

입력 :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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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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