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잘 어울리는 곡 같지만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7월, 잠시 길을 멈춘 방랑객( ‘Stationary Traveller’)을 노래한 연주곡을 들어본다.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카멜(Camel)의 1984년작 10번째 스튜디오 앨범에 실린 동명의 타이틀곡이다. 기자의 음악적 사부(최영무)는 이 록 음악을 ‘사색적 록’으로 구획 지었다. (사부에 따르면 사색적 록으로 램찹의 ‘Listen’, 도어즈의 ‘The End’, 제너시스의 ‘Firth Of Fifth’, 포큐파인 트리의 ‘Arriving Somewhere But Not Here’ 등을 주저없이 꼽는다.)

바로 이때, 조용히 건반이 흐르고 이어지는 기타, 팬 파이프(Pan Pipe) 사운드가 가슴을 따스하게 감싼다. 팬 파이프는 밴드의 리더 앤드루 래티머(Andrew Latimer)가 분다. 사색적이면서도 파워풀한 기타 사운드도 그의 몫이다.

팬 파이프를 부는 앤드루 래티머.

팬 파이프는 마법사의 피리 같다. 얼어붙은 것을 풀거나 녹게 만든다. 심리치료 같은 유머, 우스꽝스러운 흉내를 내기도 하다. 그러다 점점 비트가 강해지는 드럼 사운드 위로 기타 사운드도 격해진다. 단번에 속도를 올리거나 강도를 더하지 않는다. 고약하게도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자, 그렇다면 5분 27초의 여행을 스케치해 보자.

내 안에서 들리는 끙 하는 소리. 음악을 들으며 저절로 끙 소리가 난다. 일상을 떠올리다가 생각이 정지된다. 고장난 정지된 망가진 생각은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끙!

생(生) 앞에 타협하던 기타가 펄펄 뛰며 화를 낸다. 드럼이 불같이 화를 내며 수화기를 내동댕이치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내 안에 잠재된 ‘미운’ 열넷과 열여덟 사이에서 열아홉이 솟구친다. 모든 게 엉망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용케도 버텼다. 이 대목에서 래티머가 팬 파이프를 극적으로 분다. 마치 여러 가지 세세한 질문을 던지고 자문자답하며 음악이 던지는 화집(畫集)을 넘기듯 말이다.

앨범 《Stationary Traveller》의 뒷면. 등을 보이는 여인이 돌아서 골목길을 걷고 있다. 한기를 느끼게 하는 입김이 뿜어져 나와 머리 주변이 영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주먹을 휘두르듯 기타가 밥상을, 식탁을 뒤엎자, 드럼이 막판까지 버텨 볼 양으로 거칠게 더 우기듯 나간다. 티격태격, 설상가상, 풍비박산, 공중분해 하듯 사무치게 싸운다.

이 음악을 들으며 읽고 있던 어느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마저 읽는다. 그리고 책을 던져 버린다.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해피 엔딩으로 방향을 몰다가 마지막에 가서 비극으로 뒤집고 만다. 무슨 의도일까. 책 제목은 비밀에 붙여둔다.

<…차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널 때 그는 이스트 강 건너편의 거대한 건물들을 바라보며 사라진 건물들, 무너지고 불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건물들, 사라져 가는 건물들과 사라지는 손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많지만 밴드 카멜과 앤드루 래티머의 음악에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특별한 장소(a special place)를 지니고 있다. ‘찐팬’들의 이런 표현이 인상적이다.

“카멜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불쌍하다.”(I pity those who'.. never hear Camel's records)

“만약 자신의 심장에서 한번이라도 카멜을 제대로 들어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에서 걸어나와 전설이 될 것이다.”

클래식 전공자들은 이 곡을 어떻게 들을까 궁금해진다.

카멜의 앨범 《Stationary Traveller》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의 동서독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이 담겨 있다고 한다. 심지어 동서독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정치적 테마까지 건들려 했다지만 그런 ‘부고 기사’ 같은 분석은 잠시 잊어도 좋다.

‘낙타’는 1971년 결성됐다가 이 앨범을 끝으로 해체했다. 그리고 1991년 재결성, 지금도 활동 중이다.

현재 멤버는 기타와 보컬, 팬 파이프를 담당하는 원년 멤버 앤드류 래티머, 보컬과 베이스를 치는 콜린 베이스(Colin Bass), 드럼의 데니스 클레멘트(Denis Clement), 키보드의 피터 존스(Pete Jones)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