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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김은혜가 유은혜, 윤은혜로 불린 사연

“노동계 분들 제 이름 헷갈리시기도 하지만, 노조는 진영 문제가 아닌 만큼 계속 목소리 경청할 것”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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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 간담회 후 사내 식당 아주머니의 "살려달라"는 말에 눈물
◎ 어머니가 베푼 은혜 덕에 특종
◎ 아들 얼굴 흉터 볼 때마다...워킹맘들 사연에 공감
◎ "얼굴로 일한다" 발언 논란에...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저와 마주한 분은 20세기에 머물러 계신 듯
"노조행사에 가면 가끔 저(김은혜)의 이름을, 유은혜(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윤은혜(가수 겸 배우)로 헷갈려 하시기도 한다"고 김은혜 후보는 이야기 했다. 왼쪽부터 김은혜, 유은혜, 윤은혜. 사진=월간조선 편집

MBC 기자 출신으로 뉴스데스크 첫 앵커를 맡은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는 2001년 대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로 꼽혔다. 


20년이 넘은 조사 결과지만 당시 MBC 특종기자이자, 앵커 김은혜는 유명인사였다.


나름 이름 석 자가 알려진 인사지만 특정 장소에만 가면, 유은혜(전 교육부총리 겸 장관) 또는 윤은혜(가수 겸 배우)로 불린다고 한다. 


그곳은 어디일까. 바로 노동조합이다. 일부 노동계는 보수정당을 투쟁의 대상으로 본다. 물론 상대적으로 유연한 자세인 곳도 있지만 여기도 보수정당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란 인식이 강하다. 

MBC 앵커 시절 .jpg

                                             MBC 기자, 앵커 시절의 김은혜

 

낯선 손님으로 느끼는 게 사실


-아무래도 노조는 보수정당에 적대적이죠?


"(노조가 보수정당 정치인을) 낯선 손님으로 느끼는 게 사실이겠죠. 저도 노조 행사에 갈 때 '내가 정말 초대받은 손님일까?' 하면서 멈칫할 때가 있습니다. 행사에 가도 여기 '유은혜(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의원님 오셨습니다, 윤은혜(가수 겸 배우) 의원님 오셨습니다'하면서 헷갈리실 정도니까요. 저야 저보다 대단한 분들과 비교되는 게 영광이지만 그만큼 노조 분들에게 김은혜라는 사람의 이름은 낯선 것이죠."


-그래도 한국노총 등 노조와의 소통을 계속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기업(KT)에 있었을 때입니다. 노조 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는데, 제가 물었어요. '노조 분들은 왜 그렇게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소리를 질러야 하느냐'고. 그랬더니 '우리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뜨거운 텐트 안에서 부르짖는 이유는 평소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노조를 찾는다고 하면 '집토끼'를 한 번 더 살피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그래도 노조는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 김 후보는 노조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 부대변인을 역임한 뒤 2010년 12월 KT에 입사,  KT 콘텐츠전략실장(전무) ‧KT 커뮤니케이션실장(전무)를 맡았는데 노동조합(노조)과의 소통을 위해 사내 '여론 창'(소통 사이트)을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평택 쌍용자동차 노조원들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사내 식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이야기에 김 후보는 손사래를 쳤다. 


"유년 시절 이야기도 계속 거절하기 미안해서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것"이라며 "감성팔이하는 정치인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참모에게 왜 눈물을 흘렸느냐고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노조 간담회를 마치고 사내 식당에서 식사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김 후보가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손을 잡고 '조금만 참으세요.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는 데 한 할머니가 우시더군요. 김 후보 손을 잡고 살려달라면서요. 거기서 감정이 막 올라왔던 모양이에요. 함께 엉엉 울더군요."   


특히 기억에 남는 특종


1993년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MBC 기자로 입사한 김은혜 후보는 ‘지존파 사건’ 보도는 물론, ‘삼풍 백화점 붕괴사건’ 현장 보도로 스타 기자로 발돋움했다. 이후 최초의 앵커, 최초의 정치부 기자 등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이 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특종 보도가 있습니까.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양말을 수집했습니다. 양말 가게를 하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양말을 시장 상인분들에게 나눠주시더군요. 제가 여쭤보니, 삶의 여유가 없는 분들은 자식들 먹일 생각만 하지 양말 같은 본인에게 필요한 사소한 것은 잘 안 사게 된다면서 가장 초라하게 찾아오는 분이 어쩌면 가장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죠."


김 후보가 말을 이었다. 


"94년 상문고 사학비리 사건이 터졌습니다. 당장 그 고등학교로 달려갔는데, 수위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지 않더군요. 그 앞에서 소위 ‘뻗치기’(무작정 기다리기)를 하는데, 갑자기 문을 열어주시는 겁니다. '혹시 양말 나눠주던 분 딸 아니냐면서. 자신도 저희 엄마에게 양말을 받았다면서.'"


- 가장 소중한 사람은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내 곁에 서있다는 모친의 말씀이 증명되는 순간이었겠네요. 


아들 얼굴 흉터에 얽힌 사연


기자, 앵커, 정치인으로 활약하는 김 후보는 대표적인 워킹맘으로 손꼽힌다. 다수의 워킹맘은 화려하지만, 자식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필요로 할 때 늘 같이 있어 주지 못하는 탓이다. 요즘이야 공동육아가 정착하고 있지만 김 후보가 아이를 키울 때만 해도 주 양육자는 엄마였다. 그는 2006년 결혼해, 2007년 아들을 출산했다. 


-워킹맘으로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아이를 낳고 난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기쁨을 느꼈습니다. 엄마로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 슬픔과 괴로움’이 ‘엄마’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축복’이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15살밖에 안 되는 아이의 얼굴에 있는 인디언 주름( 눈 아랫부분에서 앞 광대를 가로지르는, 사선으로 움푹 들어간 주름)을 보면 죄책감에 고통스럽죠."


청와대 부대변인 .jpg

                                              청와대 부대변인 시절 김은혜. 

 

-얼굴에 흉터가 생긴 거군요


"아이가 한 살일 때 소파에서 떨어져서 뺨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제가 청와대로 출근할 때라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아주머니가 당황했겠습니다


"그렇죠. 당황하신 아주머니가 우리 아버지를 찾은 거예요.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당시 저희 아버지가 암 말기라 병원에서 항암제를 맞고 있을 때였거든요. 병환중인 아버지가 수습하는데에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산부인과로 가신 거죠. 진료 온 엄마들이 '여기 오시면 안 된다고. 얼른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가셔야 한다'고 알려주셨다고 하더군요."


-아이의 사고를 모르고 있었습니까?


"대통령 주변에는 전파가 차단되잖아요. 아버지가 저에게 계속 전화를 했는데 제가 받지 못한 거죠. 잠시 전파 차단이 해제됐는데 아버지로부터 부재중 통화가 20번 가까이 와 있더군요. 너무 놀라서 전화를 거니 '은혜야 걱정하지 마. 우리 손자 얼굴이 조금 찢어졌는데'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빠, 제가 병원을 알아볼께요' 라고 말하는 데 대통령이 오셔서 또다시 전파가 끊겼죠. 마음은 급한데 만찬 일정까지 있어서 저녁 늦게야 집에 들어가 아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얼굴 절반에 깁스하고 자는 아이를 보는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엄마가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라고 마음속으로 워킹맘의 정당성을 세뇌하지만 잘 안 되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저와 마주한 분은 20세기에 머물러 계신 듯

 

-혹시 시집살이 해 보셨나요. 


"시집살이라고 살 건 없지만 제가 1년에 제사를 11번 지내는 장손의 며느리입니다. 저희 엄마도 1년에 제사를 12번 지내는 종갓집 며느리였죠. 코로나 때문에 2년은 제사를 지내지 못했는데, 최근 인원 제한이 풀렸잖아요. 다시 제사를 모셔야죠."


-이런 어려움을 헤치며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가요. 


"세상은 진보하고 개선된 것처럼 보여도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죠. 상대를 정치인이 아닌 여성 정치인으로 보는 세대가 아직도 존재하니까요.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저와 마주한 분은 20세기에 머물러 계신 듯 합니다.”


지금의 경기도 소위 '이재명 패밀리'가 장악


경기도는 앞서 3·9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패한 지역이다. 6월 지방선거가 '대선의 연장선'으로 봤을 때 단술 산술적으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힘든 싸움이 예상된다. 


쌍용차 노조.jpg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최근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쌍용차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김은혜 후보는 이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사진=김은혜 후보측 제공. 

 

김은혜 후보로서는 굳이 가시밭길을 걸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도전을 선택했다.


-솔직히 질 가능성이 큰 선거입니다.  


"정권 교체가 되지 않으면 제가 하는 정치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선에 제 모든 걸 갈아 넣었죠. 윤석열 대통령께서 승리하고 쉬고 싶었어요. 아무 직책, 아무 수식어 없이 제 지역구민들께 돌아가고 싶었죠. 초선이 된 첫날처럼요. 그런데 '전쟁의 최전선에 섰던 제가 전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더군요."


-대선에 이어 경기도지사 선거까지 승리해야 완벽한 승리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네요. 


"경기도에서 무너지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있어 한 큰 축이 무너지는 겁니다. 회사에 다닐 때도 늘 저에게는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부를 만큼 어려운 과제가 떨어졌죠. 간단히 말해 지금의 경기도는 소위 '이재명 패밀리'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경기도를 상식적으로 바꿔 도민들에게 안겨드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컸습니다.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된다는 마음이 절 출마로 이끌었죠."


김 후보는 "사실 경기지사 선거 출마라는 제 결정 때문에 혹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참모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며 "사과를 했어도, 죄송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다"고 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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