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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인천상륙작전 戰勝 67주년 특집

맥아더 원수가 쓴 선글라스 색깔은 검정색이 아닌 진한 녹색이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美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희귀자료에서 밝혀진 인천상륙작전의 새로운 사실들

오늘(15일)은 제67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일이다.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는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인천 팔미도 천년의 광장에서 '팔미도 등대 탈환·점등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KLO·8240부대 전우회 주관으로 실시된 이번 행사에는 전우회원과 가족, 인천보훈지청·중구청·지방해양항만청 등 지자체, 보훈·예비역 단체, 인천해역방어사령관 등 11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개식사를 시작으로 국민의례, 전황보고, 참전용사·내빈 소개, KLO·8240부대 전우회장 기념사, 인방사령관 축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1950년 9월 15~28일 사이에 진행된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초기 전세(戰勢)를 뒤집고 자유 대한민국을 구한 세계적 상륙작전이다. 맥아더 원수가 총지휘한 이 작전에는 연합군 함정 261척과 7만1339명의 상륙군이 동원됐다. 그동안 《월간조선》이 보도한 인천상륙작전 관련 기사를 소개한다.

 월간조선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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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2016년 2월호] 최초발굴 / 최초공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美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희귀자료에서 밝혀진 인천상륙작전의 새로운 사실들

맥아더 원수의 선글라스 색깔은 진한 녹색이었다

 
 
글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 미 연방정부 기록물 비밀해제 협상 및 국내입수 담당.  2012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파견연구원. 2013년 워싱턴 DC 미 육군군사연구소(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교환연구원.
⊙ 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역사자료 분석장교.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제작자를 수소문했다. 전쟁과 관련한 책은 대부분 1만부 이상 팔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영화는 잘만 되면 몇 백만에서 금세 천만이다. 이렇듯 영향력을 가진 영화라는 매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시나리오를 사전에 확인하고 사실과 다른 부분을 고쳐 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전쟁사 연구자에게 보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영화 제작자부터 가요 작곡가들까지 전화를 다 돌렸다. 수소문 끝에 영화감독의 전화번호를 확인했으나 나의 문자메시지에 그는 답장하지 않았다. 어느 날,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사료열람실에 낯선 남녀가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럴 수가. 그들은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조감독들이었다.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영화의 시놉시스와 대본을 먼저 받았다. 대본의 각 장에는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수령인의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워터마크 처리되어 있었다. 이후로 제작부장, 각 팀장과 조감독들을 차례로 만나 영화 조언을 시작했다. 촬영장에 나가 있는 이들과는 주로 SNS 메신저와 이메일을 이용해서 의사소통을 했다.
 
  담당분야는 군사 전반에 관한 고증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작전, 전술과 같은 교리분야는 물론이고 한국 해병대 단추의 색깔까지도 함께 토의해야 했다. 미술, 의상팀의 연락도 종종 왔다. 국내 군사고증 분야에 전문가가 없는 데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내용들은 영상이나 사진이 희귀하여 고증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여기에 싣는 사진과 글, 설명들은 상당수가 최초 발굴이자 최초 공개임을 미리 밝힌다.
 
 
  상륙戰團은 어떻게 인천으로 들어왔나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원수 역할을 맡은 할리우드 액션 배우 리엄 니슨.
  인천상륙작전의 고증이 어려운 이유 중 첫째는 당대 D데이 H아워의 영상,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의 기습이 관건인 비밀작전이었기에 군사작전 이외의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이다. 5분 내외의 영상 한 컷과 5장 내외의 사진이 전부다.
 
  둘째는 인력 부족, 편제 미편성을 들 수 있다. 즉, 영상, 사진을 찍을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다. 1945년 9월 9일까지만 해도 미군은 강하고 컸다. 제2차 세계대전의 관성이었다. 전투 및 전투근무 지원부대가 완편 상태였기 때문에 항공사진 촬영 등이 가능했다. 그러나 곧 동원이 해제되고 국방 관련 인력과 예산이 감축되면서 미군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극동군사령관이 운용할 수 있었던 사단이 24사단 겨우 하나였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래서 인천상륙작전의 상륙장면을 촬영하기로 했을 때 영화 〈진주만〉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처럼 현장감 넘치는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원천소재가 없어 제작진의 고민이 컸다. 영화촬영 과정에 수차례 문의가 와서 KBS와 국방홍보원 자료실까지 탐문하였으나 결국 못 찾았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상륙부대의 편성과 진입 순서는 어떠했는지, 맥아더 장군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었는지 어디에도 그 기록이 없었다.
 
  그렇기에 여기에 제시하는 사진들, 1945년 9월 9일 미군이 인천에 진주할 당시의 기록들이 유용하고 귀하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RG59 국무부 파일과 RG338 육군 파일에 관련 문서와 사진이 보관되어 있다.
 
  1945년 일본군을 무장해제하고 남진하는 소련을 견제할 목적으로 미군은 한반도에 상륙했다. 이날 인천으로 들어온 미군의 편제, 진입루트는 인천상륙작전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 사진(〈사진1, 2〉)을 제작진에 전달했을 때 시각효과(VFX)팀은 만세를 불렀다.
 

 
  김대식 대령의 단추 이야기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상륙전단의 규모, 대형, 방향과 같은 요소는 스케일이 굉장히 큰 것으로, 제작진은 영화에서도 박진감 넘치는 컴퓨터그래픽(CG)으로 표현할 것이다. 크고 시원시원한 상륙전단의 기동에 비하면 해병 제1연대장 김대식(金大植) 대령의 단추 모양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단추 하나에 담긴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 보면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의상팀장과 인천상륙작전 당시 한국군 해병대의 복장과 관련한 세부 고증을 하고 있을 때다.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어서 배우들에게 뭘 어떻게 입혀야 할지 난감했다. 1950년 9월에 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급히 제주도에서 약 3000여 명의 신병을 모아 1개 연대 규모의 편성을 막 마친 참이었다. 그래서 관련 사진이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중 사용하지 않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창고를 정리하다가 종이봉투에 들어 있는 사진 뭉치를 발견했다. 열어 보니 처음 보는 자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연유로 여기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대부분 유일본, 희귀본의 6·25전쟁기, 1960년대 국방관련 사진들이었다. 다음 〈사진3〉부터 보자.
 
  이 사진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 뒤편의 지형과 기존 해병대 전투사를 비교해 보면 이 사진은 부산항에 집결한 한국 해병대를 찍은 것이다. 상륙작전 훈련을 받기 위해 부산에 집결한 9월 6일로 추정된다. 당연히 최초 발굴, 최초 공개다.
 

  〈사진4〉도 함께 있었다. 뒤편의 배경을 보면 이곳은 인천항이다. 상륙작전 부대가 지상작전을 전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뒤 육지에 오르고 있는 한국군 해병대의 모습이다. 방탄철모에는 부대와 직책을 인식할 수 있는 표시를 해 놓았다. 이것 역시 최초 발굴, 최초 공개다. 보물상자가 열린 것이다.
 
  이제 다음 〈사진5〉를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 속의 인물은 제2대 해병 1연대장이었던 김대식 대령이다. 물론 이것 역시 최초 공개되는 사진이다.
 
  복장은 미 육군 복장이다. 왜 육군 복장인가. 한국 해병대가 이때 막 생겨서 그에 맞는 복제가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왼편 가슴에 ‘해병대’라고 도장을 찍어 놓았다. 이름표 대신 왼쪽 가슴 상단에 펜으로 삐뚤빼뚤 ‘김대식’이라고 써 놓았다.
 
  이 사진 한 장으로 6·25전쟁 당시 한국군의 물자와 장비의 실정을 알 수 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에게 타전한 전문 제1호의 내용이 ‘한국군에 총기와 탄약을 보내 달라’였을 정도다.
 

  그런데 김대식 대령의 전투복을 확대한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단추(〈사진6〉)다. 아주 특이하다. 단추 구멍은 보이지 않고 가운데 문양이 있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단추들일까. 왜 이 단추를 달았을까.
 
  원래 미 육군 전투복에 달려 있는 단추는 구멍 4개짜리의 평범한 플라스틱 단추(〈사진7〉)다.
 
  이것은 실밥이 겉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런 단추는 뭍에 오름과 동시에 땅바닥을 포복해야 하는 해병대에 맞지 않다. 얼마 가지 못해 마찰에 의해 실이 헤어지면 단추들이 전부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병대는 실밥이 안쪽에 묻히는 특수 단추(〈사진8〉)를 전투복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답이 나온다. 한국 해병대는 미 육군 전투복을 지급 받았다. 다른 것은 임시방편으로 모양을 내거나 없으면 없는 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추는 문제가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가 미 육군이 가진 물자 중 외출복 단추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을 것이다. 미 육군 외출복 단추는 아래의 〈사진9〉처럼 실밥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김대식 대령이 전투복에 달고 있던 단추와 그 문양이 똑같다. 안에 하얗게 칠한 부분은 초기 미국의 13개주를 뜻한다.
 
 
  맥아더는 파이프로 담배를 피웠을까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상징 중 하나인 파이프. 이것을 어떤 모양으로 제작할 것인가. 맥아더는 이 파이프를 어떻게 물고, 또 어떻게 쥐고 다녔는가, 그것으로 흡연을 했는가 등도 제작진의 고민이었다.
 
  필자는 2009년 버지니아 주 노폭(Norfolk)시의 미 합동참모대학에서 미군들과 군사작전과정을 수료했다. 노폭에는 맥아더기념관이 있다. 단체로 관람을 간 날, 동해가 ‘Sea of Japan(일본해)’으로 기재된 것을 발견했고, 3주 정도 설득하여 ‘East Sea(동해)’로 바꿔 놓았다. 그 3주 동안 전시되어 있던 맥아더 장군의 각종 소장품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꼼꼼히 읽어 외우다시피 했다. 맥아더 장군의 파이프에 대해 답을 줄 수 있었던 이유다.
 
   6·25전쟁기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맥아더 장군의 파이프는 일종의 장신구였다고 보면 된다. 그는 이 기사 첫 장의 사진처럼 콘 파이프를 물거나 들고 다녔다. 〈사진10〉처럼 옥수수대와 수수대로 만든 크고 긴 것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지시봉, 지휘봉과 같은 역할도 했다. 흡연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제작진이 “미국의 리엄 니슨(Liam Neeson,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역)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지휘용 말채찍을 준비해 달라”면서 “고증이 맞느냐”고 했다. 참고로 군대에서는 지휘관이 되면 선물로 말채찍을 주는 전통이 있다. 나는 “고증에 맞지 않다”고 알려주었다. 맥아더 장군의 젊은 시기, 그러니까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말채찍을 들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진을 찍기 위한 소품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제작진은 리엄 니슨 측을 설득해 본다고 말했는데, 영화에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맥아더 장군은 파이프를 들고 다니기만 하고 흡연은 하지 않았을까? 그도 흡연을 했다. 그때는 진짜 파이프를 썼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찍은 것이다. 이 사진(〈사진11〉) 말고 실제로 담배연기가 나오는 희귀 사진도 한 장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파이프가 손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미술팀이 제대로 된 모양을 보고 제작하기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노폭의 맥아더기념관에 전화를 했더니 모델명과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덧붙이길 아직도 판매되고 있는 모델이라고 했다. 다음의 〈사진12〉가 그것이다. 맥아더 장군이 피우던 것과 같은 파이프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다.
 
 
  맥아더, 인천상륙작전 당일 작업복 차림이었던 까닭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고증은 중요하다. 해당 분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틀린 사실을 보게 되면 영화에 곧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이 분야 역시 디테일을 알고 지적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많지 않다.
 
  〈사진13〉은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맥아더를 제대로 묘사했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쓴 모자의 퀄리티다. 처음 보는 분들에겐 ‘도대체 저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손때 묻고 불에 그을린 구겨진 모자. 태평양전쟁에서 그와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한 필리핀 총독의 정모(正帽)다. 맥아더는 필리핀의 총독을 역임했었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서 적시적으로 알려준 것은 선글라스의 색깔이다. 그동안 대부분 흑백사진만 봐 왔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이 검은 선글라스를 쓴 것으로 묘사한 영화, 드라마가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한 녹색 렌즈를 즐겨 썼다.
 
  이 사실을 알려주자 제작진은 신이 났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장군은 줄곧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시커먼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면 리엄 니슨 특유의 눈빛 연기를 살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눈의 움직임이 드러날 수 있는 녹색 렌즈라니,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방법이 나온 것 아닌가.
 
  〈사진14〉는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 때의 것이다. 다른 건 많이 틀렸지만 와이셔츠를 제대로 입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맥아더 장군은 편한 실내 근무복 차림으로 일본 여기저기를 순시하다가 기자들을 따돌리고 한반도로 출항했다. 비밀이 새나갈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군복이 아니라 작업복 바지에 흰색 와이셔츠, 군용 가죽잠바를 입고 있는 것이다.
 

  〈사진15〉는 맥아더 장군의 작전지휘관으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사진이다. 연합군사령부가 주둔한 도쿄 다이이치빌딩 내 회의실에서 주요 참모들을 모아 놓고 작전 브리핑을 하는 모습이다. 큰 모형을 만들거나 벽에 거대한 지도를 걸어 놓은 것이 아니라, 휴대용 지도에 직접 그려 가며 설명했다. 맥아더는 이런 방식을 좋아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작전도면이 사라졌다
 

  〈사진16~20〉은 미 제10군단의 인천상륙작전 작전계획(Operation Chromite, X Corps Op. Order No. 1) 원본을 촬영한 것이다. 전체 페이지 중 앞 다섯 장이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주력부대는 미 10군단이었다. 6·25전쟁의 지휘체계는 유엔군사령부(극동군사령부)→ 미 8군사령부→ 미 9군단이었고, 1950년 9월 한반도의 낙동강 전역(Campaign)에서 방어작전을 지휘한 것은 월튼 워커 장군의 미 8군사령부였다.
 
  다시 말해 미 10군단은 인천상륙작전과 장차 작전을 위해 새로 창설한 부대였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오랜 전우인 극동군사령부 정보참모부장 에드워드 앨먼드(Edward Almond) 소장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지휘관으로 삼았다.
 
  입수된 인천상륙작전 작전계획을 보면 ‘별지 #2. 작전투명도(Operation Overlay)’가 없다. 즉, 작전계획의 도면이 없다는 말이다. 작전투명도는 작전에 관련된 아군부대의 위치, 규모, 기동, 화력계획 등을 군대부호와 전술적 통제수단을 사용하여 도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필요시 적 부대의 위치와 예상되는 이동경로를 표시할 수 있으며, 통상 대대급 이상 제대에서는 부록으로 작성하고 있다.
 
  이것을 찾기 위해 메릴랜드 주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과 워싱턴의 육군군사연구소(US Army CMH)를 모두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 도면은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우연히 노폭에 있는 미 합동참모대학 지도함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작전계획 도면과 함께 있다는 소문을 듣긴 했다. 오는 3월 경 그곳을 방문해 찾아볼 생각이다.⊙

입력 :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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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해 (2017-09-18)

    맥아더가 썼던 레이번사의 비행사 선글라스’는 녹색 렌즈만 사용해 생산했던 걸로 아는데요. 새로운 사실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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