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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인터뷰] ‘이건희 新경영’ 2인자 현명관 전 삼성 비서실장

"위기의 한국경제, 이건희같은 사람 하나만 더 있었어도...."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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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후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세계일류기업으로 만든 ()경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신경영은 19936월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며 혁신을 강조한 프랑크푸르트 선언후 삼성이 진행한 혁신경영을 의미한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의 2인자이자 파트너가 될 그룹 비서실장으로 그룹내 비주류 계열사 출신인 현명관(사진) 당시 삼성건설 사장을 선택했다. 현 전 실장은 이건희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 신경영을 지휘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3년간 삼성그룹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며 이 회장의 이른바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를 함께 했다.

 

이건희 회장은 회장에 취임한 1987년부터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까지 총  7명의 비서실장과 함께 했다. 조직명은 비서실에서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로 이름은 계속 바뀌었지만 비서실은 그룹의 핵심이었다. 소병해·이수완·이수빈·현명관·이학수·김순택·최지성 7명의 비서실장 중 이건희 회장과 웃는 낯으로 떠난 사람은 현 전 실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명관 전 실장은 삼성그룹 공채 출신이 아니며 삼성전자 등 주력계열사 근무경력도 없다. 그런 그를 이건희 회장이 2인자로 발탁한 것은 혁신, 즉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건희 신경영의 2인자이자 파트너, 이 회장과 아름다운 이별을 했던 현명관 전 실장을 25일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만났다.

 

-오늘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큰 별을 잃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 한두명만 더 있었다면 지금같이 우리 경제가 어렵지는 않을겁니다. 그정도로 미래를 예측할 줄 알고 결단력 있는 사람은 보기 힘듭니다. 삼성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를 키워온 사람이죠. 개인적으로는 저를 기업인으로 성장시켜준 고마운 분입니다. 그룹으로 간 후 한 회사에 근무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거시적인 경영관을 갖게 됐고, 삼성 비서실장으로 대관업무를 하면서 더 큰 시야를 갖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동안 삼성을 세계일류기업으로 만든 신경영이 계속 언급 될 것 같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처음부터 함께 했죠. 

 

호텔신라-삼성시계-삼성건설을 거쳐 근무하던 제가 그룹 비서실장이 될 것이라고는 저는 물론 그룹의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 2년여전부터 저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장단회의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기도 했고, 삼성그룹을 특성과 장점에 따라 소그룹으로 나눠야 한다는 얘기도 했고, 이 회장은 제가 감사원에서 근무한 경력도 물어보셨죠. 처음 비서실장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제가 공채 출신도 아니고 외곽계열사에만 근무했고 인맥도 없다고 사양했는데, 이 회장은 바로 그래서 당신에게 비서실장을 하라는 거다라고 했습니다. 과거와의 단절을 포함해 강한 혁신의 의지를 인사에서 보여준 겁니다. 사실 저는 호텔신라에서 오래 근무했기때문에 일부에선 이인희(이건희 회장의 누나, 전 한솔그룹 고문)의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을 2인자로 들인다는 게 보통 결심은 아니었겠지요.”

 

-이건희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보십니까.

 

선견지명과 결단력입니다. 삼성을 먹여살리는 반도체사업이라는게 세계 경기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경기가 좋지 않을때는 삼성전자가 망할 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상황이 나빴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삼성전자 사장을 비롯해 모두가 절대투자불가는 물론 철수를 외칠 때 이건희 회장은 이럴 때 우리가 더 과감하게 해야 한다며 투자했습니다. 결국 삼성의 반도체는 세계 1위를 독점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은 물론, 그걸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결단력이 1등 삼성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견지명에 대해서는 이 회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감탄할 수 밖에 없는게, 30년전부터 배터리 사업을 빨리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인력을 대거 데려와야 한다고 사장단을 닦달했습니다. 그때 저나 사장단은 그게 무슨 소린지 이해가 잘 가지 않던 때였어요.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는 소련의 첨단연구소 인력을 빨리 스카우트해오라고도 했지요. 그런 선견지명과 결단력이 글로벌 일류기업을 만든 이건희 리더십의 근원입니다.”

 

-신경영 초반에는 힘든 일도 많았겠군요.

 

사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죠. 모든 계열사가 국내 1위를 하고 있는데 이건희 회장이 다 틀렸다, 다 고쳐라, 다 바꿔라 하니 임원과 직원들이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또 무조건 양보다 질이라고 강조하니 매출을 올려야 하는 임원들 입장에선 납득하기도 어려웠죠. 그런데 그런 혼란들이 이건희 회장의 단호한 태도로 잠잠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선언 직후 제 전임자인 이수빈 비서실장이 이 회장 지시로 회장과 나눈 대화를 녹음해와서 사장단 앞에서 틀어준 적이 있어요. 이수빈 실장은 질도 중요하지만 양도 중요합니다라는 요지로 이야기했습니다. 사장들은 속으로 잘한다라고 이수빈 실장을 응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쨍그랑 소리가 나는 겁니다. 이 회장이 과일을 먹던 포크를 집어던진거에요. 그 소리에 장내가 얼어붙었습니다. 이 회장이 말도 많지 않고 화를 내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혁신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그 소리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사장단은 신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 회장이 자신의 이야기를 녹음하도록 했나요.    

 

구두 지시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사장단과 나누는 모든 대화와 통화를 녹음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지시가 조금이라도 다르게 진행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한 겁니다.”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았겠습니다.

 

“일단 이건희 회장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르자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서너번씩은 새벽 한두시쯤 전화벨이 울려요. 이건희 회장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전화를 하는 겁니다. 지금 오라고 하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운전기사는 이미 퇴근했고 제가 운전해서 한남동으로 가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곤 했죠. 그러다보면 동이 트고 집에 가서 세수하고 출근하고그런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3년을 그렇게 일하고 나니 어느날 이 회장이 피골이 상접하네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신경영 진행중에 삼성이 정권(김영삼 정부)과 껄끄러운 관계가 돼서 비서실장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었는데요. 이건희 회장이 정치는 4, 관료는 3, 기업은 2라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신경영과 문민정부가 비슷한 시점에 출범하면서 삼성과 김영삼정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새로운 한국을 만들자는 목표는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삼성자동차를 출범시키려 했지만 다른 자동차회사는 물론 여론이나 정치권도 부정적이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지요. 이 회장은 삼성이 잘 되자고 자동차사업을 하려는 게 아니고 경쟁을 통해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거였는데 남들이 그렇게 봐주질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자들은 계속 삼성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이 회장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했고, 그런 과정에서 나온 얘기였죠. 그 발언 때문에 대통령 입장에선 그렇게 도와주려고 했는데 삼성이 이럴 수가 있느냐며 오해를 하게 되고 삼성과 정부의 관계가 나빠진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선거도 있고 영남지역에선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을 원하는 목소리도 높고 해서 삼성이 자동차를 하는걸로 결론나면서 마무리됐죠.”

 

-이건희 회장 사후 삼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미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을 떠나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회장직을 수행한 지 오래 됐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이건희 회장이 일류 글로벌 기업의 틀을 만들어 놓았고 지금은 이재용 체제도 완성돼있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이건희 같은 선견지명과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 한둘은 더 나와야 할텐데라는 아쉬움은 늘 있습니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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