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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K푸드의 선구자 'LA 북창동 순두부(BCD)'

뉴욕타임스, BCD 이희숙 대표 부고 "그의 요리는 미국에서 문화 현상"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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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북창동순두부 본점 앞의 이희숙 대표. 사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수많은 한국인이 '한식의 세계화'에 나섰지만 케이팝(K-POP)의 방탄소년단처럼 케이푸드(K-FOOD)가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중 가장 성공에 근접한 사례라면 역시 'LA 북창동 순두부'가 아닐까.  불고기도, 비빔밥도 아닌 순두부다.
 
1990년대 후반 서울 압구정동에서 'LA 북창동 순두부'라는 간판을 처음 접했을때의 당혹스러움을 잊을 수 없다. 그전까지 북창동의 순두부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대체 LA(로스앤젤레스)와 북창동, 그리고 순두부는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얼마 후 LA에 살고있는 고등학교시절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 LA 코리아타운의 북창동 순두부 본점 존재를 알게 됐다. 1996년 문을 연 이 식당의 정식 명칭은 'BCD Tofu House'. 북창동(BCD) 두부집이라는 이름이다. 공깃밥이 아닌 돌솥밥을 제공하고 조기구이와 날달걀 등 풍성한 밑반찬을 매뉴얼화했고, 순두부찌개는 내용물에 따라 고기, 김치, 새우, 곱창, 굴, 심지어 햄치즈까지 등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메뉴였다. 순두부찌개를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젊은이들, 외국인들이 매장을 꽉 채웠다.  외국인들이 줄서서 찾기 시작하면서 불고기와 갈비, 비빔밥 등 한국음식도 메뉴에 포함됐고, 뉴욕 등 미국 전역에 체인점이 생겼다.
 
90년대 미국 유학파 출신인 이른바 '오렌지족'들은 미국에서 새로운 한식에 빠져들었고 24시간 영업하던 BCD 매장은 그들의 놀이터이자 해장의 명소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귀국한 후에도 BCD의 맛을 잊지 못했고, BCD는 한국으로 역수출돼 여러 곳의 매장을 보유하게 됐다.
 
이 '미국식 한식'은 한국 젊은이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허름한 식당에서 제공하는 간단하고 저렴한 한 끼 정도로 인식되던 순두부찌개를 세련된 매장에서 정갈한 밑반찬과 돌솥밥이 함께 나오는 '반듯한 한 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순두부찌개에 갈비나 보쌈을 곁들이는 세트메뉴도 개발해 반응이 좋았다. 필자의 동네에 이 북창동 순두부집이 있었는데, 손님 중엔 어린이들도 많았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있는 메뉴로 자리잡은 것이다.  
 
북창동 순두부의 창업자인 재미교포 이희숙 BCD 대표가 지난달 사망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 시각) 이 대표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그는 난소암 투병 끝에 지난달 18일 LA의 한 병원에서 6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뉴욕타임스는 "1996년 LA 코리아타운의 버몬트 애비뉴의 한 식당에서 시작된 북창동 순두부 체인은 현재 뉴욕을 포함한 미국 전역 12개 도시에 걸쳐 13개 지점에 이르게 됐다"고 전했다.

1959년생인 이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1983년 변호사 이태로씨와 결혼한 뒤 자녀 유학을 위해 1989년 LA로 이주했다. 1990년대 중반 어느 날 아이들이 예배 후 순두부집에 가자고 조르자 순두부 음식점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상호는 친척 할머니의 두부 음식점이 있던 서울 북창동에서 이름을 따왔다.  의대 교수가 된 이 대표의 아들에 따르면 이 대표는 매일 새벽 도매시장에서 재료를 골랐고, 밥의 온도와 김치 색깔, 두부와 양념의 염도도 하나하나 신경써 완벽하지 않으면 상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요리는 미국에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뿐 아니라 고위 관리들, 스포츠 스타와 배우들도 식당을 찾았고, 24시간 영업에도 늘 기다리는 줄이 늘어섰다고 했다. 또 미국인들도 반드시 가 봐야 할 명소라고 극찬했다.
 
우리 정부는 한때, 그리고 주기적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부르짖었지만 그 영향력은 이희숙 대표 한 명에 못 미쳤던 것 같다. 이 대표는 기본(맛)에 충실하면서 혁신(매뉴얼)을 이뤄내 성공을 거뒀다.  성공을 원하는 이들이 배워야 할 간단한 원리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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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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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욱 (2020-08-30)

    LA를 방문했을때 그 맛에 흠뻑 빠져든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로는 일부러 걸어가서 먹을수 있는 부근으로 숙소를 정했을 정도로. 관제화된 한국 음식문화 전파보다는 이런 개척자들에 의한 문화가 보다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역사적인 인물중에 한분이 되셨다. 그녀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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