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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위대한 7인의 정치가 5

레이건, ‘작은 정부’로 자유로운 미국 만들다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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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세계를 바꾼 위대한 7인의 정치가>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세 가지다. 첫째, 나라와 국민은 뒷전에 두고 오로지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 정치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둘째, ‘거꾸로 가는 정책만 고집하여’ 잘 나가는 한국경제를 침몰시키고 있는 현 정부와 청와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경종이란 바로 7인의 정치가들의 위대한 통치철학이다. 셋째, 언젠가 오게 될 통일을 염두에 두고 통일된 한국의 정치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7회에 걸쳐 연재한다.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은 국무회의 도중 코를 쿨쿨 곤 대통령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도 그는 최근에 들어와 인기 면에서 부동(不動)의 1위인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앞질렀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정치가로서 일찌감치 두 가지 비전을 제시했다. 하나는 ‘미국인들 모두가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나라 미국’을 만들고, 또 하나는 ‘세계인들 모두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세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레이건은 이 두 가지 비전을 실현했다.
 
레이건은 기독교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근면하고 검소하고 자조적이고 도덕적인 생활을 하면 언젠가는 사회와 국가와 인류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레이건은 고등학교 시절 야외수영장에서 인명구조대원으로 일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그의 부모는 너무 가난했다. 그는 유레카대학 총장을 찾아가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설명하고 장학금을 부탁했는데 빈곤학생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레이건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1930년대의 대공황이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던 1932년에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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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사진=조선DB.
 
스포츠 아나운서를 거쳐 영화배우가 되다
 
대공황으로 구직난이 심각했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던 레이건은 시카고 여러 방송국을 찾아다니며 스포츠 아나운서 잡을 노크했다. 미식축구 아나운서 잡을 얻었다.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영화감독과 영화배우도 만날 수 있었다. 운 좋게 그는 26세에 영화배우의 꿈을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두 번 이혼한 일류배우 제이먼과 결혼까지 했다. 그런데 제이먼은 이류 배우 남편이 일류 배우가 되기를 열망했지만 레이건은 영화배우조합 일에 관심이 더 많았다. 레이건은 제대 후 영화배우조합장으로 선출되었다. 영화배우로서 승승장구하던 제이먼이 함께 출연한 배우와 불륜을 저질렀다. 레이건은 제이먼으로부터 이혼당했다.

당시 미국사회는 미·소 냉전의 영향으로 이념논쟁이 뜨거웠다. 1950년 2월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국무부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침투해 있다며 이들을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카시 선풍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계·학계·언론계·문화계·영화계 등에서 쫓겨났다. 용공분자로 몰린 삼류 영화배우 낸시 데이비스가 조합장 레이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레이건은 낸시의 신분을 보증해 주었다.
 
낸시는 레이건의 관대하고 자상한 성품에 매료되었다. 그들의 결혼은 미국 정계에 새로운 풍속도를 마련했다. 그들의 결혼 이전에 미국에서 정치가들의 이혼이나 재혼 경력은 투표자들에게 용납될 수 없는 금기(禁忌) 사항이었다. 그런데 자상하고 성실하고 훌륭한 남편 레이건이 세 번째 결혼 중에 불륜을 저지른 제이먼 같이 못된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것을 보고 투표자들의 마음이 바뀌게 되었다. 그 후 정치가들의 이혼이나 재혼 경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레이건은 53편의 영화에 출연한 3류 배우였다.
 
낸시와 결혼한 후 레이건은 영화계를 떠났다. 그는 1954∼1962년간 GE 홍보영화 해설가로 고정 출연했다. 레이건은 전국적으로 방영된 이 홍보영화 덕분에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대기업 관련 강의와 홍보를 통해 야망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기업가를 위해서는 정부규제를 반대했고, 근로자를 위해서는 중과세를 반대했다. 그는 ‘자유’라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강연의 핵심 내용으로 내세웠다.’
 
늦은 나이에 정치가의 길에 들어서다
 
레이건은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온 가족이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GE 영화를 찍으면서 그는 규제 선호의 민주당을 싫어했고, 53세 때는 공화당 아이젠하워를 지지하면서 지지 정당을 아예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바꿔버렸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보수주의를, 민주당은 진보주의를 대변한다. 따라서 공화당은 친시장·친기업·반규제·경쟁·작은 정부를, 민주당은 반시장·친규제·복지·평등·큰 정부를 지향한다. 레이건은 진정한 보수주의가 사라져가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부활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964년 10월 27일은 레이건의 인생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날 레이건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배리 골드워터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자금 모금 연설을 유창하게 해냈다. 그 내용은 그가 GE에서 일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한 것이었다. 그는 그동안 미국이 큰 정부를 이룩하여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고, 세계 공산주의가 부상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그는 미국정부의 규모를 줄이고, 미국인과 미국기업에 대한 과중한 세금을 줄이고, 미국기업을 옥죄는 온갖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개혁을 통해 미국경제를 부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제국주의적 공산주의를 해체시키겠다고 단언했다.
 
레이건은 골드워터 지원 연설에서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중심으로 정립한 자신의 정치철학인 ‘자유, 자조, 감세, 작은 정부, 시장경제, 강경한 대소정책’ 등을 내세워 브라운과 맞섰다. 레이건이 압승했다. 레이건은 1967년 1월 56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취임했다. 레이건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 곧 보수주의를 정책에 실현하려고 했다. 그는 정부규모 축소, 감세, 규제 완화에 집중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우위를 점한 주 의회는 브라운 전 지사가 벌려놓은 방만한 각종 프로그램이 사라지게 될 것을 우려하여 레이건의 정책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복지개혁은 크게 성공했다. 복지 개혁 3년 후에 캘리포니아에서 복지비 수혜자의 숫자가 무려 85만 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복지비 지출이 감소했다.
 
대통령 출마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레이건은 1980년 7월 16일에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레이건은 곧바로 온건주의자 H. W. 부시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여 자신의 지나친 보수주의 성향을 완화시켰다. 레이건은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정부규모 축소, 감세, 규제 완화, 경제 안정’을 통해 경제부흥을 이끌고, 공산주의를 물리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카터를 물리치고 제 4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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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여사가 남편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품에 안겨 미소짓고 있다. 사진=조선DB.
 
‘작은 정부’ 실현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미국을 만들다
 
1981년 1월 20일에 로널드 레이건은 70세 나이로 미국의 4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레이건의 등장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 이후 거의 사라져간 미국의 전통적 가치 곧, 보수주의의 부활을 의미했다. 레이건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미국경제가 처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 미국의 ‘큰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레이건은 1981년 2월 18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네 가지 내용의 경제개혁을 발표했다.
 
첫째, 1982년에 연방정부 지출 414억 달러 삭감을 요구했다. 둘째, 소득세를 3년 동안 해마다 10%씩 삭감하여 총 30% 삭감을 요구했다. 셋째, 효과가 없고 부담스러운 정부규제를 철폐하거나 개혁할 것을 요구했다. 넷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긴축통화정책 실시를 요구했다.
 
레이건은 자신의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미국을 위한 새로운 시작: 경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America’s New Beginning: A Program for Economic Recovery)”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곧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레이거노믹스란 경제정책에 반영된 레이건의 철학을 뜻한다. 이는 곧 ‘정부지출 삭감, 감세, 규제 완화 및 철폐, 통화 긴축’을 통한 경제개혁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들은 김대중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김영삼 대통령은 해당되지 않을 것 같음) ‘Reaganomics’에서 ‘nomics’를 따다가 DJnomics, MHnomics, MBnomics, KHnomics, Jnomics라는 신조어를 무절제하게 만들어 썼다. 이들 대통령들의 경제정책이 과연 레이건처럼 내세울 만한 철학을 지녔는지 의심스럽다. 관변(官邊) 학자들의 ‘어휘 장난’은 이제 끝났으면 한다.
 
냉전 종식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다
 
마거릿 대처가 2002년에 펴낸 자서전 『국가경영』(Statecraft) (번역판) 표지를 막 넘기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시선을 끈다. “이 책을 로널드 레이건에게 바친다. 세계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대처는 또 1992년 9월 고려대에서 가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냉전에서 자유세계가 승리한 것에 대한 공로를 주장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레이건 대통령일 것입니다.” 이는 냉전 종식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든 레이건에게 바친 마거릿 대처의 헌사(獻辭)다.
 
레이건은 정계에 뛰어들면서부터 공산주의는 없어져야 할 세력이라고 믿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레이건은 1979년 12월에 벌어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강하게 비판한 후 아프가니스탄을 원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련이 ‘악의 제국을 유지하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레이건이 취한 핵심조치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전략방어계획(SDI: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우주공간에서 낚아채는 방어시스템 구축)이었다. SDI는 실로 대단한 결과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소련 지도자들의 분노와 불안이 폭발했지만 소련 지도부는 SDI에 겁을 먹고 미국과의 경쟁을 포기했다. 레이건이 1987년에 베를린에서 고르바초프에게 “이 장벽을 허물어 버리시오(Tear down this wall.)”라고 놀랄만한 요구를 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공허한 희망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목표를 향한 레이건의 전략은 적중했다. 동서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드디어 1989년 11월 9일에 무너진 후 자유세계의 적인 소련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 결과 마거릿 대처가 쓴 대로, 세계는 자유롭고 평화롭게 되어 레이건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게 된 것”이다.’

레이건이 주는 교훈
 
레이건이 주는 교훈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레이건은 보수주의 이념을 정책에 반영했다. 최근 한국 정계(政界)에서도 보수-진보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참조를 바라며 필자가 정리한 보수-진보 성격 비교를 설명 없이 <표>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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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레이건은 ‘작은 정부’를 실현했다. 그러면 좌파들이 선호하는 ‘큰 정부’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큰 정부’에서는 정부개입 확대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규제가 많아져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방만한 운영으로 정부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조세 증가로 조세부담이 증가하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되어 정부실패가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수없이 보았다.

셋째, 레이건은 복지개혁에 성공했다. 레이건은 세금으로 복지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복지정책을 개혁했다. 첫째,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복지비만 받는 사람에게 주는 복지비는 삭감했다. 둘째, 근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복지비는 없애되, 근로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복지비는 그대로 두었다. 이는 기존의 ‘보편적 복지’에서 ‘선별적 복지’로의 과감한 전환이었다.
 
한 가지만 언급한다. 문재인 정부의 2019년 현금복지비는 33.3조 원으로, 박근혜 정부의 첫 해 11.6조 원에 비해 3배 정도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는 2022년경에 현금복지비는 45조 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현금복지는 한국을, 전 세계 석유매장량 1위 국가이면서도(24.1%) ‘퍼주는 복지 정책’ 여파로 먹을 것이 없어 국민체중이 평균 7㎏나 줄었다는 베네수엘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복지도 좋지만 문제는 이 많은 돈을 도대체 누가 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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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운 저 | 북앤피플 | 420쪽 | 2만 3,000원

입력 :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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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경제 대한민국 가꾸기

1941년 광주 출생, 광주제일고 졸업, 전남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업. 美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 받음.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1979)를 읽고 시장경제’에 빠져들었고, 시장경제’ 강의를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교수로 인정받고 있다.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적잖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대처리즘: 자유시장경제의 위대한 승리』는 마거릿 대처의 삶과 정치를 연구·정리한 중요한 저작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외에도 자유시장경제가 우리를 잘살게 해준다’는 확신을 갖고, 『좋은 정책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성경과 함께 떠나는 시장경제 여행』, 『노동시장 개혁은 슈뢰더처럼, 대처처럼』, 『7인의 위대한 정치가』 등 자유시장경제를 널리 알리기 위한 책들을 30여 권 집필했으며, 지금도 어느 작업실에서 다음 책 집필에 혼신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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