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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윤석열·유승민에게 ‘배신자 프레임’ 씌운다는 건···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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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유승민 전 의원. 사진=조선일보DB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야권 유력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 “대통령에게 검찰총장 발탁 은혜를 입었는데 배신하고 야당 대선후보가 된다는 것은 도의상 맞지않는 일이라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웠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정치를 염두에 두고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런 식의 배신자 낙인은 정치판에서 비일비재했고, 세력들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화되기 일쑤였다. 특정 정치인의 행위를 두고 배신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YS(김영삼)DJ(김대중)만 해도 3당 합당과 DJP 연대를 놓고 상대를 겨냥, ‘내로남불식 주장을 폈다.

 

# DJ, YS, 김종필(JP), 노무현, 정몽준, 이회창, 유승민 등 대통령 혹은 당 대표를 지냈던 정치인들은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들 뿐일까. 집권당 대선후보 중에 현직 대통령에 맞서지 않은 경우는 드물었다. 정치적 연명을 위해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이당에서 저당으로 옮겨 다녔던 정치인들도 부지기수였다.

 

1997년 대선에선 DJP 연대 추진이 이런 비난을 초래했다. “유신 잔당세력” VS “좌파 용공세력으로 맞섰던 양측이 갑자기 손을 잡겠다는 것이니 보수, 진보 양측에서 배신자라는 반발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 대통령 YSDJP에 맞서 내각제를 고리로 JP와 물밑 교섭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DJJP가 후보단일화 연대를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은 호남과 충청권을 기반으로 지지세력이 견고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권까지 차지하자 DJJP를 겨냥한 비난은 힘을 잃어갔다.

 

DJ는 집권 후 DJP연대의 골격이었던 내각제 합의를 무산시키면서 또 한 번 배신자로 내몰렸으나 그 파장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기도 했다.

 

5년 후인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에게 단일후보 자리를 내주고 중도 사퇴했던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보수 측으로부터 배신자로 몰렸다.

 

DJP보다 앞선 1990YS3당 합당 합류 때도 그랬다. 민주화 투쟁의 지도자였다가 신군부 세력과 함께 하기로 했으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었던 것. 민주화투쟁을 함께 해왔던 DJ의 비난은 물론, YS 자신이 창당했던 통일민주당의 일부 의원들까지 끝내 합당을 거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강력한 지지세력을 갖고 있던 YS는 차기 대선에서 당선됨으로써 반발 기류를 누를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하던 2003, 자신을 대선후보로 선출했던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이에 DJ 측근 세력인 동교동계와 새천년민주당은 배신자라고 맹비난했다.

 

이같은 기류는 이듬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로 까지 이어졌으나 노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함으로써 정국을 주도하게 됐고 배신자 공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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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1997년 10월 22일 당사 기자회견에서 대선의 공정관리를 위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1997년 대선 때 집권당 후보 이회창은 ‘3김 시대 청산을 내세우며 대통령이던 YS를 겨냥, YS인형 화형식까지 했고 결국 탈당으로 몰았다. 이 후보는 YS에 의해 발탁돼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것을 기반으로 집권당 대선후보까지 차지했다는 점에서 배신자란 비난에 직면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 이명박 후보에 맞서 대권 3수에 나섰을 때도 같은 처지에 몰렸다.

 

유승민 전 의원의 경우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2015년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하면서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배신자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증세없는 복지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것.

 

결국 박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이 심판해달라고 호소하는 상황으로 치닫았다.

 

유 전 의원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친 박근혜)계와의 공천갈등 끝에 새누리당을 탈당(사실상 출당)해야 했고, 무소속으로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했음에도 당선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역에서의 지지기반은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던 셈이다.

 

배신자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결정타는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는 것이었다. 대구 출신의 유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 측근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친박계 의원들은 그에 대해 배신자 낙인찍기를 본격화했고 지역 여론을 흔들었던 것. 그의 지지기반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2017년 대선에 바른정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10%안팎의 저조한 득표율에 그쳤으며 2020년 총선엔 아예 불출마했다.

 

배신이 아니라 소신이었단 점을 강조해 왔던 유 전 의원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선언, 또 한 번 정치적 시험대에 올라 있다.

 

# 배신자로 몰렸다 해도 어떤 이는 단기간에 벗어날 수 있었던 반면, 또 다른 쪽은 오랫동안 궁지에 처해 있었다.이처럼 엇갈렸던 정치적 운명은 선거결과에 좌우되기도 했다. 지지세력이 얼마나 많고 견고하냐가 관건이었던 셈이다.

 

배신자 프레임의 약발이 정치판에서 먹혀든다는 건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오늘의 적이 또 내일의 동지가 되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정치 행위가 비난받을 순 있어도, 배신자라는 프레임까지 씌운다는 건 경쟁세력이 쳐놓은 정치적 덫일 수 있다.

 

내년 대권 도전에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유승민 전 의원은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입력 : 202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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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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