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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윤석열, 이재명에겐 ‘트라우마’가 있다? 없다?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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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6일 오전 국회헌정회관에서 열린 YTN합동토론회에서 여론조사1,2위를 달리고있는 이인제 노무현 민주당대선경선 후보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직전만 해도 이인제 후보는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대세론을 탔다.

 

당내 주류인 동교동계(김대중 정치계보)의 지원을 받아 집권당의 유력 후보로 꼽혔던 것이다. 앞서 이 후보는 1997년 대선에서 떨어지고 김대중(DJ) 대통령 측에 합류, 2000년 총선에서 집권당 선대위원장을 맡아 자민련 창당이후 불모지였던 충청권에서 8명이나 당선시킨 것을 계기로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대세론은 권역별 경선이 시작되자 흔들렸다. 지지율 하위권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급부상, 세 번째 경선지역인 광주에선 1위까지 차지했던 것이다. 노 후보가 광주에 이어 전북과 전남 경선에서도 1위를 이어가자 이 후보는 ‘청와대 음모론’을 제기하며 경선을 포기하고 탈당해버렸다. 노 후보를 겨냥, “DJ 꼭두각시”라고 비난하는 등 경선에 대통령 의중이 작용했다는 주장을 폈다. 실제로 DJ에게 측근 인사가 영남후보론을 역설하며 노 후보를 밀었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이 후보의 상처는 깊었다. 10여년의 세월이 지나 만났을 때에도 “집권당으로 와서 이용만 당한 뒤 팽(烹)당했다”는 등 감정을 삭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에겐 영·호남 트라우마가 있다”며 “영·호남이 나를 (정치적으로) 죽였다”고 했다. 영남과 호남에 지지기반을 둔 정당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희생됐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는 충남 논산출신이다.


트라우마는 1997년 대선 때 생겼다. 이회창 후보의 한나라당과 김대중 후보의 새정치국민회의가 이인제 후보를 겨냥, ‘YS, 이인제 200억원 지원 의혹’을 제기해 치명타를 입혔던 것.

 

상승세를 타며 선두 DJ를 바짝 추격하던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은 선거를 한달 앞두고 반토막 나버렸고 판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대구경북의 반(反)YS 정서가 기름을 부었던 격. 그가 집권당인 신한국당의 후보경선에 불복, 탈당해 출마했던 게 대통령 YS로부터 지원받았을 것이란 의혹에 힘을 실어준 셈이 됐다. 선거가 끝나고 폭로자 측이 사과, 근거없는 내용인 것으로 결론났지만 사후약방문 격이었다. 


결국 ‘YS, 이인제 200억원 지원 의혹’ 폭로정국에 휘말리면서 영호남 트라우마가 생겼고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계기로 더욱 커졌던 셈이다.


2002년 대선때 민주당을 탈당했던 이 후보는 양대 정당을 멀리하고 자민련 등 충청권 기반 정당이나 무소속으로 옮겨 2012년까지 총선에 세차례 출마해 모두 당선되면서 6선 의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친정격인 새누리당으로 돌아와 출마했던 2016년 총선과 2018년 충남지사 선거에선 모두 낙선, 정치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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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8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광주를 찾아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문 전 대표 옆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다. 문 전 대표는 이날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치 은퇴를 하고 대선에도 불출마하겠다”고 했다. 사진=조선일보DB.

 

# 문재인 대통령은 호남 유권자들의 ‘반문(반 문재인) 정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노무현 정부 때의 호남홀대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노 대통령이 당선 직후 “호남이 날 좋아서 찍었느냐, 이회창이 싫어서 찍었지”라고 했던 발언이나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 시절 노무현 정부를 ‘부산 정권’이라고 했던 것도 호남을 자극했다.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 호남기반의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새정치’ 바람을 탔던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 이은 여론지지율  3위로 부진했던 데도 이런 정서가 작용했다. 여론조사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안 후보를 가장 많이 지지했고 야권 단일후보로도 안 후보 손을 들어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야권 단일후보 협상이 논란을 거듭하던 끝에 안 후보가 출마 포기와 함께 문 후보 지지 입장을 밝히자 호남 민심은 대안 부재상황에 처하게 됐고 문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반문정서는 4년뒤 총선에서 거세졌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시절이던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호남표심에 비상이 걸리자 광주를 찾아 호남홀대론은 오해라며 “이곳에서 지지를 거두면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배수진까지 쳤으나 참패를 당했다. 8석이 걸려있던 광주에선 전패했을 정도였다.

 

2017년 대선에서도 반문정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호남권 지지율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했던 것. 다행히 호남표심이 선거전 막판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찍겠다는 전략적 선택을 했던 덕에 문 후보는 안 후보를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문 후보의 득표율은 호남지역에서 60%에 그쳤으며, 이는 안 후보가 중도 포기했던 직전 대선에서의  90%에는 훨씬 못 미쳤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는 후보단일화 트라우마가 있다.

 

안 대표는 2012년 대선에 새정치 바람을 타고 무소속 후보로 출마, 여론지지율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제치고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등 급부상했다. 반문 정서가 강했던 호남도 안 후보 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대선 막판 야권 후보단일화를 추진했던 게 안 후보에겐 패착이었다. 문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 나서면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였고 협상 과정에서 진통을 거듭하다 중도 사퇴, 대권 꿈을 접었던 것.

 

올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여론지지율에서 야권 선두 주자였으나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의 단일화에 나섰다가 여론조사에서 패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선에선  40% 대의 지지율에도 불구, 5% 안팎의 박원순 후보에게 단일후보 자리를 양보하고 출마를 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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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 합동토론회에 참석한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왼쪽부터)이 2017년 3월 3일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토론회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조선일보DB

 

# 이처럼 대선 후보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에서 각각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을까?

 

이 지사는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각종 현안들을 놓고 문재인 후보에게 날카롭게 맞섰다가 문 후보 지지층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게됐고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다. 내년 대선 당내 경선을 앞두고도 이 지사를 겨냥한 친문연대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족 등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도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윤 전 총장의 경우 출마한 적이 없기에 선거와 관련된 트라우마는 없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트라우마’가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아들 병역비리의혹으로 치명상을 입었고 결국 낙선했던 것. 의혹은 몇 년 후 대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았으나 선거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윤 전 총장도 각종 의혹들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것들이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의 대권가도에 트라우마로 작용할지 여부는 아직 가늠하기 쉽지않다. 분명한 것은 트라우마에 휘말리는 쪽은 대권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입력 : 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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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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