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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이번 대선 폭로전 주도할 정치인들 운명은...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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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6일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열린 병무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나선 정동영 의원(국민회의)이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의 차남 수연씨의 병적기록서를 들어보이며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역대 대선 중 폭로전이 가장 난무했던 때라면 1997년이다. 당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판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뒤이어 김대중(DJ) 후보의 비자금 의혹, 김영삼(YS) 대통령의 이인제 후보 200억원 지원 의혹 등도 잇따라 터지면서 선거전을 더욱 혼탁하게 몰아갔다. 주요 후보들 모두가 대형 의혹공세에 쫓겼던 셈이다.


폭로전을 주도했던 정치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 1997년 8월 새정치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집권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폭로,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대세론을 탔던 이 후보의 지지율이 자유민주연합까지 공세에 가세하면서 반토막나버렸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집권당인 신한국당의 후보경선에서 떨어졌었던 이인제 후보가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한 뒤 출마했다. 이회창 후보는 야권후보 단일화(DJP 연대)로 상승세를 탄 DJ를 선거전 막판까지 추격했으나 뒤집지는 못했다. 


그의 대권 꿈을 좌절시켰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은 그러나 몇년후 무혐의로 판결났다.


정 대변인은 DJ가 집권한 후인 2000년 총선에서 당선됐으며 이후 새천년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 후신) 정풍운동을 주도하면서 차세대 리더로 부상하는 등 상종가를 달렸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엔 민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활동했고 당 의장까지 맡았으며 2007년에는 대선후보로 출마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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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13일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DJ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던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의 정치적 위상은 정 대변인과 달리 급격히 추락했다. 


그는 이 후보 아들 병역비리의혹 폭로 2개월 후 맞대응으로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다. DJ가 처조카를 통해 비자금 670억원을 관리해왔고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부터 20억원+알파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대중 후보가 신앙고백을 하면서까지 노태우씨로 부터 20억원 외에 받은 돈은 없다고 했으나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은 DJ를 뇌물 수수 및 조세포탈·무고 등의 혐의로 고발했고 결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으나 하루만에 대선이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해 버렸다. DJ에겐 대형 악재였으나 수사유보 조치이후 비자금 파문은 가라앉았고 지지율에도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DJ는 “검찰이 나의 비자금 수사를 개시하면 (대통령인)김영삼은 퇴임 후 망명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YS는 회고록을 통해 “김대중씨의 부정축재 내용을 조사하면 구속은 피하지 못할 일이었으나 그렇게 되면 전라도와 서울에서 민중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DJ 비자금사건 수사는 대선 직후 재개됐고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무혐의로 종결됐다.


강 사무총장은 DJ 정부때인 2000년 총선에서 당선되기는 했으나, 3년후 의혹폭로와는 무관한 안풍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자 의원직 사퇴와 함께 정계를 은퇴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안풍사건이란 1996년 총선 때 안기부 예산을 신한국당 선거자금으로 불법 지원했다는 것으로, 그는 “표적 수사”라고 반발했었다.


그는 정계은퇴 2년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정계복귀를 시도, 총선에 두차례 출마했으나 잇따라 떨어지면서 정치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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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국민신당 200억원 지원설'과 관련 검찰의 소환을 받게될 김민석 국민회의 부대변인이 1997년 11월 13일 조세형 총재권한대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DJ 비자금사건 수사가 유보된 직후인 1997년 11월. 국민회의 김민석 수석부대변인은 ‘YS의 이인제 200억원 지원의혹’을 제기했고 이인제 후보에겐 치명타가 됐다. 신한국당 측도 국민회의 측 공세에 가세했다.


폭로 직전까지만 해도 DJ의 지지율은 비자금 의혹 등으로 주춤했고 이회창 후보 역시 아들 병역 비리 의혹 등으로 고전하는 상황이었던 반면, 이인제 후보는 여론지지도에서 DJ를 바짝 추격하는 2위를 유지한 가운데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것. 그러나 의혹에 휩싸면서 이인제 후보 지지율은 반토막이 나버렸다.


이인제 후보 측은 김 부대변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으나 뒤집어진 판세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대선 직후 김 부대변인은 국민신당 당사로 찾아가 이만섭 총재와 이인제 고문에게 “당에 접수된 제보를 확인하지 않고 기자들에게 전달, 피해를 줬다”며 사과했고, 고소 건은 취하됐다. 이후 국민신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 후신)과 합당했고 그 과정에서 당소속 의원들을 모두 총선에 공천한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김 부대변인은 당시 총선에 당선돼 30대 중반의 나이로 재선 의원으로 도약, 여권의 차기 대선 유력 주자로 꼽히는 등 상승세를 탔다.


# 정동영 대변인, 강삼재 사무총장, 김민석 수석부대변인의 폭로는 모두 허위사실로 결론났으나 이들의 정치적 운명은 엇갈렸던 것이다. 


주군을 당선시켰던 정 대변인과 김 부대변인은 대선 후 차세대 리더로 떠올랐으나 반대쪽이었던 강 사무총장은 승자쪽 정권이 출범한 후 다른 사건에 연루돼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고, 그후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끝내 정치판을 떠나야 했다.


폭로자의 운명은 주군의 운명과 같이 했던 셈이다. 폭로내용이 사실이었는지 여부와는 무관했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란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선 어떻게 될까?

 

폭로전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정치 생명을 걸고 도박에 나설 면면이 궁금해진다.

입력 :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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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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