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6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첼리스트 심준호(1987년생)와 피아니스트 신재민(1988년생)이 무대에 올랐다. 이날 프로그램은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2시간이 넘는 긴 프로그램이었지만 만석을 이룬 객석은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연주를 지켜봤다.

1번, 2번, 3번 소나타를 연주하는 동안 심준호의 활털이 여러 차례 끊어졌다. 악장이 끝날 때마다 그는 끊어진 활털을 손으로 뜯어냈다. 연주의 강도를 보여주는 작은 신호였다.

"재밌었어요."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만난 관객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피아노와 첼로가 대등한 관계였다" "두 악기의 교감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첼리스트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26세부터 45세까지, 베토벤의 여정을 한 무대에서

베토벤이 첼로를 위해 남긴 소나타는 5곡.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첼로는 이 작품들로 인해 이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음악적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곡들의 작곡 시기는 베토벤이 작곡가로 활동하던 초기, 중기, 후기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번과 2번(1796년, 26세)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 아래 있던 젊은 베토벤의 우아함이 돋보인다. 이 시기 작품은 여전히 "피아노포르테와 첼로를 위한"이라는 제목으로 피아노 중심이었다. 3번(1808년, 38세)에 이르러 처음으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으로 순서가 바뀌며 두 악기가 진정한 파트너가 된다. 그리고 4번과 5번(1815년, 45세)에서는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베토벤의 내면적이고 철학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초기작의 고전적 우아함에서 후기작의 철학적 깊이로 나아가는 베토벤의 여정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한 살 차이, 서로 지지 않으려는 에너지

이날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심준호와 신재민, 두 연주자의 관계였다. 한 살 차이의 30대 연주자들은 각자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균형을 보여주었다.

두 연주자는 한 살 차이다. 평소 어떻게 지낼지 궁금하다. 말을 놓을까, 아니면 말을 높일까. 아니면 친구처럼 지낼까. 사회 현실에서 한 살 차이는 높은 문턱이 있는 게 사실이니까.

한 관객은 "서로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느껴졌지만, 그것이 대결이 아니라 대화였다"고 평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는 본래 화려한 기교보다는 두 악기 간의 지적 대화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멜로디가 첼로와 피아노를 오가며 변형되고, 때로는 역할이 뒤바뀌기도 한다. 이날 연주에서 그 대화는 더욱 생생했다. 심준호의 첼로가 질문을 던지면 신재민의 피아노가 답하고, 피아노가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면 첼로가 받아 발전시키는 식이었다.

30대는 연주자에게 특별한 시기다. 20대의 기교적 정점을 유지하면서도 해석의 깊이가 생기는 나이다. 더 이상 증명할 것이 많지 않으면서도 아직 관성에 빠지지 않은, 가장 모험적이고 진정성 있는 연주가 나올 수 있는 때다. 두 연주자는 각자 "왜 이렇게 연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답을 찾으려는 듯 보였고, 그 진지함이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첼로 소나타인데 피아노가 더 인상적"...그것이 정답

흥미롭게도 일부 관객들은 "첼로 소나타인데 피아노가 오히려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에서 피아노가 인상적으로 들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1, 2번은 '피아노포르테와 첼로를 위한'이라는 제목처럼 피아노가 중심이었고, 3번부터는 제목 순서를 바꿔 두 악기를 대등하게 다뤘지만 피아노의 역할은 여전히 ‘적극적’이었다.

또한 베토벤 특유의 "웅장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었다. 교향곡의 웅장함과 달리, 첼로 소나타는 실내악적인 친밀함을 강조한 작품이기 때문이리라. 작은 공간에서 두 악기가 속삭이듯 교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기교나 규모가 아닌 정신적 깊이로 베토벤다움을 드러내는 작품이 첼로 소나타였다.

이날 공연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 한 해를 정리하는 시기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30대 두 연주자가 베토벤의 26세부터 45세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며 들려준 이야기는, 단순한 연주를 넘어 인생과 예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다만 일부 관객들은 연주 스타일이 다소 절제되고 엘리트적이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두 연주자 모두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은 만큼, 가벼운 대화조차 무게감 있게 다뤄진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허리띠를 풀고 즐기는 듯한 여유보다는, 진지하게 악보와 대면하는 자세가 더 강했다는 지적이다. 완성도 높은 연주였지만, 그만큼 격식을 갖춘 느낌도 함께 남았다.

만석 객석이 증명하듯,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