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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기자수첩] “이제 그 비가 멈추기를...”

故 김문기 유족 취재기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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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기자님.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남편이 3만원 넘는 선물 절대 받으면 안 된다 했습니다. 여전히 남편 신념 받들고 싶습니다. 진심입니다. 환불 처리 부탁드립니다.”

 

지난 514일 고() 김문기 전 성남고시개발공사 개발사업 1처장의 아내 A씨로부터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다. 이날 A씨에게 91800원 어치 홍삼 상품권을 보낸 이유는 그에게 사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받지 않았다.

 

지난 34일부터였다. A씨와 첫 통화를 한 이후, 집요하게 그의 상처를 헤집었다. 지난 11월호 지면에 실은 것(관련 기사)과는 별개로, 더불어민주당 측이 김문기 전 처장에게 감시용 변호사를 붙였다는 의혹에 대해 취재하던 중이었다.

 

처음엔 드릴 말씀 없다며 전화를 끊은 A씨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마다 그걸 들이밀며 사실 관계를 물었다. 그로부터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취재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기사도 모두 썼습니다.”

 

423, A씨에게 일방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514, 해당 원고의 조판(組版)까지 완성됐다. 매월 17일에 지면이 시중에 유통되니, 이 무렵 송고한 기사는 되돌리기 곤란한 터였다. 이날 A씨에게 “17일에 보도될 기사 송고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쭙고 싶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A씨는 우리 가족들 상처 더 이상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라고 답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A씨가 겪는 고통은 만분의 일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지만, 간신히 마음을 부여잡은 채 생업에 종사하기도 바쁜 그의 기억을 끈질기게 헤집었다는 생각이 들자 멍하니 회사 책상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10분을 그 상태로 있다가 통화 부스(칸막이)로 들어가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A씨로부터 자세한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울음에서 처절함, 억울함, 서러움,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들이 느껴졌다. 국어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감히 글로 표현 안 되는 무엇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 “만 반복했다. 그리고 김 전 처장 관련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아직 어린 그의 자녀들이 더 이상 이런 보도를 접하지 않길 원한다는 A씨의 말에 망설임 없이 데스크로 향했다.

 

보도를 접기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A씨로부터 한 건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진정하고 문자 드립니다. 제 얘기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A씨는 그동안 많이 알아내시고 취재하느라 힘드셨을 텐데라며 오히려 기자를 토닥였다. 뭣도 모르고 걸리적거리게 연락을 해 왔던 자식뻘 기자의 신변도 걱정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에게 곧바로 홍삼을 보낸 것도 마음의 짐을 덜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올곧은 사람에겐 허용되지 않았다.

 

A씨는 차가워져야 한다. 냉정해야 한다. 강해져야만 한다. 전업 주부였던 중년 여성이 당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 가정을 지탱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사 몇 줄 보도되는 것 따위 중요할 리 없었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저명 언론인의 취재 요청도, 국정 감사에 와달라는 요청도 거절했을 것이다. 아무리 억울하고 또 억울해도, 세상에 목 놓아 소리치고 싶어도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지켜야 할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김문기 전 처장은 결코 목숨을 끊을 만한 잘못을 하거나 뒷거래를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김문기 전 처장의 집이 압수 수색을 당했을 때 현장에 있던 검찰 관계자가 마음이 아프다고 했을까. 부정 축재(蓄財)한 사람의 살림살이라고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 전 처장 관련 보도를 접고 나서 4개월이 흘렀다. 922, A씨에게 또 연락을 했다. 1115일 예정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를 앞두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번과 같은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고, 다만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1015,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대답을 보도할 예정이라고 전하며 당분간 자녀들에게 뉴스를 보지 못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보도한 A씨의 얘기다.

 

제 남편은 죽어서도 얼마나 피눈물 흘리고 있을까요

 

그리고 20241115.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문기 전 처장을 몰랐다고 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튿날, A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가 이렇게 바뀌었다.

 

이제 그 비가 멈추기를...”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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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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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m21c (2024-11-22)

    참으로 힘들고 불합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맑은 소식은 세상과 삶을 빛나게 한다.

  • hmoon21c@gmail.com (2024-11-22)

    참으로 힘들고 불합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맑은 소식은 세상과 삶을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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