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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폼페이 유물전에서 본 ‘파리스와 아프로디테’ 부조

서구 문명을 낳은 4개의 사과는...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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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물전에 전시된 ‘파리스와 아프로디테’ 부조 작품

지난 18일 일요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폼페이 유물전에 다녀왔다. 수많은 사람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그 인파들 속에 인상적인 프레스코화들이 수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관람객의 눈에서 빛나고 있었다.


기자에겐 파리스와 헬레네, 아프로디테가 표현된 부조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이 부조가 예술품의 하나로 제작된 것인지, 일반적인 벽 장식의 일부인지 알 순 없지만 오래 기억 속에 남았다.

 

부조 속엔 5명의 인물이 나온다. 맨 위 왼쪽에 한 사람이 손을 머리에 얹고 고뇌하고 있고 그 아래 두 여인이 앉아 있다. 한 여인이 다른 여인을 위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날개를 위로 세운 천사가 있고 그 옆에 남자가 천사와 마주보고 있다.


일반_상세페이지_병합본.jpg

 

9.jpg

폼페이 유물전에 전시된 프레스코화. 프레스코화란 석회에 모래를 섞은 회반죽을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남아 있는 동안 채색해 완성하는 회화를 가리킨다.


어떤 의미일까.

 

부조 옆에 고대 그리스어로 적힌 이름이 나온다. 맨 윗쪽 이름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로 보인다. 그리스어 철자는 Πάρις.

그리고 바로 밑에 아프로디테. 그리스어 철자로 φροδίτη.

그 곁에 헬레네로 보이는데 그리스어는 λένη. 부조에 적힌 철자와 현대 그리스어 철자가 비슷하지만 다름을 알 수 있다.

맨 오른쪽 남성 이름은 알렉산드로스로 보인다. 그리스어 철자는 Αλέξανδρος. 알렉산드로스는 파리스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부조는 그리스 비극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올림포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연회석 중심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새겨진 황금사과를 던져 놓으면서 그리스 비극이 시작된다.

 

트로이 전쟁은 세 여신인 헤라(신들의 여왕아테나(지혜의 여신아프로디테(사랑과 미의 여신)가 황금사과를 서로 가지려고 싸우면서 일어난다.

 

속칭 파리스의 사과라고 일컫는 이 이야기는 미()를 추구하는 헬레니즘 문화의 상징이다.

 

신화 얘기를 좀 더 하자면 파리스는 고심 끝에 아프로디테를 황금사과의 주인으로 택한다. 다시 말해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아프로디테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흑막이 있다. 아프로디테가 파리스를 매수해 나를 택하면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파리스, 즉 알렉산드로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헬레나로 생각하고 있었고 헬레나를 갖기 위해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황금사과를 건넨 것이다.

 

이후 파리스가 헬레네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여기서 비극이 생겨났다. 헬레네는 여신이긴 해도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헬레나였다.

 

이로 인해 결국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파리스는 아테네의 맹장(猛將)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춰 전사시키지만 전투 중 필록테테스의 활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것이 서구 문명의 상징은 황금사과 이야기다. 흔히 서구 문명을 4개의 사과로 설명하는데 이 파리스의 사과가 그중 하나다. 나머지 3개의 사과는 뭘까.

 

두 번째 사과는 기독교 문화를 탄생시킨 선악과(善惡果).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뱀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먹는다. 이후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인류 역사가 시작된다는 성경 창세기의 이야기다. 아담의 사과에서 바로 원죄(原罪)라는 헤브라이즘이 탄생했다.

 

세 번째 사과는 빌헬름(윌리엄) 텔의 사과다. 13세기 중세의 전제주의 정치와 싸우던 빌헬름 텔이 사랑하는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활로 명중시켰다는 사과 이야기는 근대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이후 스위스 독립운동에 불씨를 당겼다는 의미에서 빌헬름 텔의 사과는 혁명자유를 뜻하는 근대 정치사상을 낳았다. 그런데 빌헬름 텔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프리드리히 폰 실러(1759~1805)가 당시 구전되던 설화를 모티프로 삼아 만든 희곡의 주인공이다. 근대 정치사상이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인 사유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네 번째 사과는 뉴턴(1643~1727)의 사과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그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사과로 말미암아 근대과학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혹자는 뉴턴의 사과로 인해 세계 최초로 우주 비행을 한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 같은 우주인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과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미술평단의 기준을 거부한 사과 그림으로 20세기 회화의 거장이 된 폴 세잔(1839~1906)의 사과, 다양한 오브제로 스토리텔링 된 백설공주의 사과, 스티브 잡스의 한 입 베어 먹은 사과가 인류 문화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었다고 말한다.

입력 :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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