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삼성전자와 샤프]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샤프 추억

“샤프… 기술 사가지고 간 쪽에서 돈을 벌어야 좋아하고, 안 벌면 싫어하는 이상한 회사”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월간조선》 1984년 1월호에 삼성 이병철(李秉喆·1910~1987년) 창업주와 《조선일보》 선우휘 논설 고문의 대담이 실렸다.

작년 62일 자 일본 유력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샤프를 퇴사하고 삼성전자 LCD 사업부(현 삼성 디스플레이)에 입사한 엔지니어 타케우치 카오루의 기고문을 실은 적이 있다. 타케우치의 기고문은 국내 신문 머니투데이(작년 64일 자)에서 자세히 보도가 되었다.

 

샤프는 원래 LCD(liquid crystal display, 액정표시장치)를 가장 먼저 개발한 곳이다. 2001년 세계 LCD 시장 점유율 중 샤프가 차지하는 비율이 79.4%였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2000대 중반 이후 삼성전자에 자리를 내줬다.


화면 캡처 2023-05-25 061720.jpg

 

화면 캡처 2023-05-25 061110.jpg

삼성에 입사한 일본 샤프 출신 엔지니어 타케우치 카오루의 기고문을 실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국내 경제지 《머니투데이》


샤프가 삼성 제품에 밀리게 된 주요 원인으로 타케우치는 이렇게 밝혔다. 다음은 머니 투데이에 보도된 기사 <삼성으로 이직한 샤프 기술자> 중 일부다.

 

<(타케우치 카오루-편집자)는 샤프의 액정 디스플레이(패널)가 삼성 제품에 밀리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원가를 꼽았다. 편광판, 회로 재료 등의 조달비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재료비 등 변동비가 10달러가량 샤프가 더 높았다. 여기에 인건비, 설비 등의 고정비용은 샤프가 무려 2배 가까이 높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샤프의 60~80% 원가로 패널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타케우치는 당시 샤프의 한 간부가 자사 액정 패널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언급한 것을 떠올리며 이는 완전한 망상이었으며, 샤프 패널은 생산 비용이 높아서 수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일본 기술의 삼성 유출에 대해서 타케우치는 일본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기술 유출을 했다는 말이 있지만, LCD 기술의 유출은 1990년대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삼성과 샤프는 가메야마 공장이 생기기 전부터 기술 교류를 하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림01.jpg

과거 일본 샤프의 LCD 제품들. 사진=조선DB


다음은 타케우치의 말이다.

 

“(샤프 재직 시절) 한국에 출장을 갔더니 샤프의 상사가 한국에서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었고, 일본 유수 기업 출신 기술자들도 삼성에서 볼 수 있었다. 샤프는 시장에 투입하는 패널의 크기를 잘 읽지 못해 재고를 떠안고 손실을 내고 있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이나 대만, 중국에 가서 기술 라이선스 협약을 맺어 손실을 메우고 있었다.

 

타케우치의 이 말은 월간조선19841월호에서 삼성 이병철(李秉喆·1910~1987) 창업주와 조선일보선우휘 논설 고문이 가진 대담을 떠오르게 한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샤프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2306_190.jpg

최근 출간된 《월간조선》 대기업 창업주 인터뷰 모음집인 거인의 어깨 위에서(조선뉴스프레스 간)


다음은 월간조선이병철 창업주의 신년대담 <“정말 얘기 많이 했십니다”> 중 일부를 소개한다. 대담록은 최근 출간된 거인의 어깨 위에서에 실렸다.

 

<“반도체 산업이 없다는 건, 이거 석유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이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가부간 이걸 맹글어 봐야겠다, 그것이 경영자의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암매, 작년(1982) 여름이었지.

 

반도체는 로봇, TV 등에 널리 쓰이는 데 이것을 기초로 해서 제2, 3차 제품을 맹글지요. 그런데 이것이 모자라서 각종 전자제품 만드는 데 지장이 있십니다. 안 준다고요. 사려고 해도 일본 사람들이 안 주어요. 이번에 그걸 알았는데. 일본에 교섭이 들어갔는데 어림도 없어요. 이들이 안 준다는 이야기는 안 해. 지금 바빠서, 어쩌고 하면서 자꾸 피합니다. 제가 20년 동안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화면 캡처 2023-05-25 062047.jpg

《월간조선》 1984년 1월호에 실린

30대의 이병철 회장 모습이다.


지금 바쁘다는 데 언제 끝나느냐, 10년 걸리는가, 20년 걸리는가. 그랬더니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만, 하는 데 속으로는 한국 네까짓 게 무슨 반도체냐, 냉소하는 것이 비쳐. 환하게 보이더라고. 지는 우리를 무시하고 나는 또 지를 무시한다, 그게 부딪쳤어. 반년 이상 갔제, 아매. 더 적극적으로 나갔지. 대사관에 부탁한다, 일본의 정객을 동원한다. 각료 회담에 의제로 삼는다, 심지어 정상 회담에까지 정부에서 이 문제를 갖고 논의하고. 그래도 안 돼요.

 

그러다가 다행히 일본에 샤프라는 회사를 찾았제. 이 회사는 방침이 기술을 전부 공개하고 다른 데 파는 거예요. 돈 받고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기술을 널리 보급하자는 게 그 회사의 사풍인 겁니다. 기술을 사가지고 간 쪽에서 돈을 벌어야 좋아하고 안 벌면 싫어하는 이상한 회사라. 여기에 교섭이 들어갔제. 몇 달 시간을 달라는 거예요. 그 동안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참 많았십니다. 교섭하는 게 탄로가 났어요. 샤프가 아주 곤란하게 됐지. 기자들이 찾아가서 왜 너그만 주려고 하느냐, 딴 업자들로부터도 공박을 많이 받았지요. 국적(國賊)이다, 그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그 이야기 듣고도 샤프에서는 태연해. 기술을 줄테니까 당분간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기술은 얕은 기술이지. 그래도 우리에게는 필요하고. 그리고 미국에서 또 고급 기술이 들어오고 해서 일단 기술 도입은 성공했십니다.

 

이번에 64KD는 참 빨리 만들었어요. 일본에서는 2년 걸린다는 것을 우리는 반 년만에 했십니다. 나는 뜻밖으로 생각하지요.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삼성 반도체를 만들어 그래도 8년 동안 얕은 기술이지만 기술을 축적했거든요. 그리고 그 동안 우리가 사람을 많이 구했십니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한 600 명 됩니다. 왜 이렇게 많으냐 하면, 일본만 해도 국내에 반도체 산업이 발달해 가지고 미국에 머물러 취직을 하는데, 일류 회상의 생산부장, 그런 사람을 우리가 스카우트 했십니다. 교수하던 사람도 데려왔고 그 교수의 제자가 미국의 유명한 반도체 회사 생산부장인데 또 데려 오고.

 

그런데 이런 고급 기술자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거든요. 그 사람의 지시를 받아 실제로 작업을 감독하는 직능장급이 필요한데, 다행히 우리가 8년 동안 그런 인력을 한 700명 양성했고 그 중에서도 100명이 우수한데 그 중에서 또 엘리트인 20명을 선발,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했십니다.”>


더 자세한 글은 월간조선 대기업 창업주 인터뷰 모음집인 신간 거인의 어깨 위에서(조선뉴스프레스 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입력 : 2023.05.25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김태완 ‘Stand Up Daddy’

kimchi@chosun.com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