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첫 대통령 선거에서 文 뽑았지만… ‘잘못된 선택’ 대가 치르는 중
⊙ 악성댓글에 괴로운 나날들… ‘문빠’들의 신상 털기 가장 두려워
⊙ 넷플릭스 보고 운동하는 게 낙인 평범한 20대… ‘일베·토착왜구’ 프레임 어이없어
⊙ 정치 활동 계획? 어불성설, 평범하게 주임, 대리 진급하는 게 꿈
⊙ ‘무죄’ 받을 때까지 항소할 것… 아니면 ‘표현의 자유 억압’한 역대급 사례 될 것
⊙ 악성댓글에 괴로운 나날들… ‘문빠’들의 신상 털기 가장 두려워
⊙ 넷플릭스 보고 운동하는 게 낙인 평범한 20대… ‘일베·토착왜구’ 프레임 어이없어
⊙ 정치 활동 계획? 어불성설, 평범하게 주임, 대리 진급하는 게 꿈
⊙ ‘무죄’ 받을 때까지 항소할 것… 아니면 ‘표현의 자유 억압’한 역대급 사례 될 것
- 지난해 11월 단국대 천안캠퍼스 내에 문재인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여서 벌금형을 받은 김군. 지난 7월 5일 천안역 인근 카페에서 그가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사진=박지현 기자
선입견이었다. 야심한 밤, 반(反)정부 대자보(大字報)를 붙였다가 법정에 선 청년. 강골(强骨) 기질이 얼굴에 묻어날 것 같았다. 이를테면 날카로운 눈매와 앙다문 입술. 지난 7월 5일, 천안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군(25)은 예상 밖이었다. 요컨대 금방이라도 발라드를 부를 것 같은 외모였다. 만화 장르로 치면, 무협보다는 순정에 가까웠다. 연분홍빛 남방을 입고 나온 그는 차가운 ‘흑당라테’를 시켰다. 요즘 유행하는 음료다.
- (인터뷰를) 거절할 줄 알았다. 언론의 주목이 부담스럽지 않나.
“엄청 부담스럽고 떨린다. 경찰조사, 법정출석 모두 생전 처음 겪는데다, 언론에서 내 얘기에 관심을 갖는 것도 난생처음이니 어리둥절하고 복잡하고…. (이때 목이 탔는지 음료를 반 이상 마신다) 무엇보다 신원이 노출될까 두려운 마음이 크다. 그런데 죄지은 게 아니니까, 신원 보장이 되는 범위에서 인터뷰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문을 받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은 그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하다. 어딘가 ‘이상하다’. 취업준비생이었던 김군은 어느 날 생각했다. ‘아, 이건(국정 방향) 아닌 것 같은데….’ 많은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최대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래서 떠올린 게 대자보다. 지난해 11월 24일, 새벽 3시쯤. 단국대 천안캠퍼스를 찾았다. 소속 학생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였다. 그리고 교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총 8장이었다. 며칠 후,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고압적인 말투였다. 조사를 받으러 갔고, 법정에까지 섰다. 두 차례 재판 끝에 지난 6월 23일, 법원은 ‘50만원 벌금’ 판결을 내렸다. 25세, ‘빨간 줄’이 그였다.
― 요즘 일과는 어떻게 되나.
“재판 과정에서 취업이 돼, 정시 출퇴근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 회사에서는 당신이 ‘대자보 김군’인 걸 모르겠다.
“당연하지. 아직까지 아무래도 사회적인 시선은 부정적이지 않겠나. 이런 리스크를 안고 하루하루 지내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회사로 전화가 오면 깜짝깜짝 놀란다. 권고사직 당하진 않을까, 매일 걱정한다. 구직 중에도 늘 조마조마했다. 행여 이 사실이 알려져 입사 취소가 될까 봐….”
― 특정 집단의 신상 캐기 시도는 없었나.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다. 악성댓글은 많이 달렸다. ‘고문을 받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최루탄도 안 맞아 본 게’, 뭐 이런. 은근 상처더라. 일전에 문 대통령이 방문했던 아산의 반찬가게 아시잖나. 이 근처다. 대통령의 근황 질문에 ‘거지 같아요’라고 했다가 신상이 털렸고, 지지자들이 찾아와 장사도 못 하게 했다. 개인이 감내할 수 있는 정도가 있을 텐데, ‘그들’은 그걸 넘어서더라, 결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가 붙인 대자보는 문재인 정부의 친중(親中) 정책을 풍자·비판한 내용이었다. ‘현재 남조선의 식민지화 단계는 다음과 같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제목 아래, “중국에서 미세먼지를 날려도 자국민 탓이라며 트럭 운전사 생계를 박살 내는 나라” “정부가 삼성반도체 정보 공개해서 중국에 30년 노하우 기밀 넘겨주는 나라” “전 국민에게 건강보험료 뜯어서 중국인들 의료관광 시켜주는 나라” 등이 적혀 있었다. 배경에는 시진핑의 얼굴이 새겨졌다.
학교 측이 “피해 없다”는데도 처벌
― 대자보를 왜 새벽에 붙였나.
“야심한 시각에 붙여야지, 하고 작정한 건 아니었다. 낮에 볼일 보고, 어쩌다 보니 그 시각이 된 거다. 난생처음 붙여본 거라 떨리더라.”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 지난해 12월 초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천안동남경찰서였다. “김○○ 맞지? 잘못했으니까 조사받으러 와.” 관등성명도, 전후 상황 설명도 없었다. 김군은 “인격모독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죄를 지었으니 조사받으러 오라’니…. 혐의가 인정되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무슨 죄냐고 물으니, ‘일단 건조물침입죄’라고 하더라.”
― ‘일단’ 건조물침입죄면 다른 죄도 있다는 뜻이었나.
“그리고 ‘대자보 부착 관련, 다른 죄도 해당 법이 있으면 물을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살면서 무단횡단도 한 번 안 했다. 그런 나를 말 한마디로 ‘죄인’으로 만들더라. 조사과정도 부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건조물침입죄로 불러놓고 건조물 침입과 무관한 내용을 신문했다. 대자보 부착 경위와 함께 붙인 사람이 누군지 말하라고 집요하게, 또 위압적으로 물었다. 수사 당국이 권력에 충성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잠깐, ‘건조물침입죄’가 뭔지 살펴본다. 건물, 선박, 항공기 등에 무단으로 침입하거나 퇴거 요구를 받고도 응하지 않은 경우 적용된다. 이때 중요한 건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단국대 학생팀 A 과장이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그렇다. A 과장은 “내가 피해자로 올라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후 지난 5월 20일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도 출석한 그는 “대자보로 인해 학교는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서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 문제가 과연 재판까지 가야 할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피해자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건조물침입죄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가 아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 경찰은 어떻게 알고 전화했나. 학교에서 신고를 한 건가.
“아니다. 대자보를 본 교수들이 총장에게 연락했고, 총장이 학생팀에 연락한 걸로 안다. 이후 학생팀에서는 ‘신고’가 아니라, 협조 차원에서 경찰에 알렸다. 2년 전 정부를 비판한 대자보가 붙어 경찰이 학교 측에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는데, A 과장이 그걸 기억하고 업무 협조 차 대자보 부착 사실을 알린 거다. A 과장은 ‘종종 불법 종교단체들이 와서 대자보를 붙이는데 떼어내면서 한 번도 건조물 침입으로 고소하거나 죄를 물은 적이 없다’고 했다.”
― 혹시 학교 기물을 파손했나.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들어갔다거나.
“전혀. 차를 타고 차단기가 올라갔을 때 얌전히 입장했다. 건조물침입죄라니.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건물에 무단으로 들어가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고 절도, 폭행, 성폭행한 이들에게 씌우는 죄명 중 하나더라. 변호사가 그러더라. 이게 죄가 되려면 대학 건물에 배달 전단 돌리는 분까지 다 처벌을 해야 하는 거라고. 특히 단국대 호수는 사람이 엄청 드나드는 곳이다.”
법정 서니 죄인 된 기분
경찰 조사 이후 지난 1월,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김군을 ‘벌금 100만원’으로 약식기소했다. 정식 재판을 마음먹었다.
― 정식재판을 청구할 생각은 어떻게 했나.
“혼자였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벌금을 냈을 거다. 주변 사람들이 힘이 돼줬다. 도와주고 싶다며 전화를 건 기자들도 있었다.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는 분도 많았다. 직접 전화를 건 변호사도 있었다. 그래도 막상 재판까지 가려니 생각이 많아지긴 하더라.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지금도 많은 분이 힘이 되어주고 있다.”
― 법정에 섰을 때 심경은.
“무서웠다. 정말 무섭더라. 경찰 조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힘내라고 했지만, 막상 법정에 서니 정말….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리 죄가 없더라도 거기 서면, 중압감에 ‘내가 정말 죄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검사 쪽 증인으로 나온 단국대 학생팀 과장이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이게 재판까지 올 일이냐’고 했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가 조금씩 올라갔다.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은 짧았다. 10분 내외. 100년 인생, 그 하세월 중 단 10분. 그는 “그 짧은 시간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 이 사실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말했나. 그들의 반응은?
“맨 처음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몇 달 혼자 속앓이하다가 법원 출석 명령이 떨어졌을 때 말씀드렸다. ‘죄를 짓지 않았다면, 당당하게 조사받고 절차대로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알게 된 친구들은 ‘그게 무슨 죄가 되냐’며 화를 냈다.”
두 차례 재판 후, 선고일은 지난 6월 23일이었다. 판결문은 “김군과 변호인은 침입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나, 김군이 학교의 직원이나 학생이 아닌 사실, 캠퍼스 및 건물이 24시간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장소는 아닌 사실이 인정되고, 정치적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기 위해 (새벽) 3시10분경 캠퍼스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 피해자 측의 의사로 인정되는바, 이 사건 공소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벌금은 50만원으로 깎였지만, 김군은 항소를 준비 중이다.
― 항소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나.
“무죄를 받는 게 가장 큰 목표다. 항소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이는 개인의 이익 여하 문제만은 아니다. ‘유죄’로 남는다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희대의 사례가 된다. 대자보를 붙이면 빨간 줄을 긋는데 누가 붙이려 하겠나. 정부를 상대로 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강압적으로 위축되는 계기가 될 거다.”
한때 문재인 지지자
― 문재인 비판 대자보였다. 문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던 적도 있었나.
“물론. 2017년 대선이 생애 첫 투표였다. 그때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다. 인생 첫 투표에서 찍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 얼마나 기대가 컸겠나. 박근혜 정권에 대한 반발도 한몫했다. 예체능 전공인 나는 특히 정유라 사건에 엄청 분노했다. 그때 ‘정의’를 강조한 사람이 문 대통령이잖나. ‘아, 이 사람이라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줄 수 있겠구나’. 그런데 지금은? 잘못된 선택을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는 “그때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주변 또래 친구들도 대부분 돌아섰다”면서 “그 계기는 한두 가지로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다.
“인권변호사라는 사람이 ‘표현의 자유’가 짓밟힌 사례에 침묵하고 있다. 만약 반대의 경우였다면, 앞장서서 ‘세상에 이게 말이 되냐’고 할 사람이지 않나. 후보 당시, TV에 나와 대통령 되면 비방을 감수할 건지 묻는 앵커에게 ‘그래서 국민들 기분이 풀린다면 참겠다’고 했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법원의 판결은 존중해야겠지만, 이는 그럴 만한 일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취지의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 문 대통령이 바로 앞에 있다고 치자. 무슨 말을 하고 싶나.
“아, 너무 많은데…. 우선 정치를 좀 대국적(大局的)으로 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한때 지지자로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번 건 관련해서는, 정권의 핵심 인사로 있는 전대협 출신들에게 묻고 싶다. ‘여의도 가시더니 대자보 붙이던 시절은 다 잊으셨습니까?’ 문 대통령과 운동권 세력은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를 숙주(宿主)로 기생(寄生)하고 있는 집단 같다. 민주, 인권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그 소중한 가치를 제발 제자리로 돌려놔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보수의 지령을 받은 인물?
이쯤에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김군은 인터뷰 때 많이 떨었다. 기사상에서는 ‘말 잘하는 친구’로 보일 수 있는데, 이는 윤문(潤文) 덕이다. 어느 정도냐면, 예상 질의까지 준비해왔다. 질문을 하나 던지면 “어…” 하며 종이를 뒤적였다. 굳이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를 ‘기획된 인물’로 보는 일부 시각 때문이다. 혹자는 김군을 “거대 보수 세력, 혹은 일베의 지령을 받은 인물”이라고 했다. 아무리 뜯어봐도, 그러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언론 인터뷰가 마냥 떨리는 여느 20대였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신(新)전대협’ 회원이다. 과거 해산한 전대협을 풍자한 청년 집단이다. 세간에서는 흔히 ‘보수 청년 단체’로 부르지만, 막상 이들은 “좌우, 진보와 보수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민주 진영’”이라 말한다. 대자보도 이곳에서 만들었다.
― 신전대협과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전역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풍자가 재밌어서 가입했다. 특히 ‘문재인 왕씨리즈’가 인상적이었다. 경제왕 문재인(마차가 말을 끄는 기적의 소득주도성장), 기부왕 문재인(나라까지 기부하는 통 큰 지도자), 고용왕 문재인(절대 해고하지 않는다), 외교왕 문재인(기적의 A4용지 외교술) 등으로 풍자한 내용이다.”
‘지령설’을 확인해봤다.
― 대자보 붙이기 전,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낸 적이 있나.
“전혀. 말했듯, 전공이 예체능이다. 그 분야에만 푹 파묻혀 살았다.”
그러더니 그 ‘예체능’ 분야에 대한 얘기를 한동안 한다. 이때만큼은 말이 유수 같다. 신원이 특정될 수 있어 이 내용은 오프더레코드다.
“정치? 전혀 관심 없었다. 그러다 의경으로 복무하면서 서서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 같다. 집회, 시위 현장에 나가 경찰버스에서 동기들이랑 ‘저 사람들은 왜 저럴까?’ 하며 한번쯤 생각해보게 됐다.”
― 정치 이념이 따로 있나.
“없다. 보수나 진보로 특정 지었다면 신전대협에 가입하지도 않았을 거다.”
― 일각에서는 김군을 ‘보수’로 본다.
“보수, 진보라는 이념을 가질 만큼 배움이 있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만 가지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 갇히는 걸 경계한다. 이념이 없어도 잘잘못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문재인을 비판했으니 보수다?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는데 좌우가 왜 나오나. 좌든 우든 잘못했으면 비판받아야 마땅한 거 아닌가. 그 비판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발전해나갈 수 있다면 더더욱. 대자보를 붙인 걸 그런 차원으로 봐야지, 안타깝다.”
― 일베 회원인가.
“에휴…. 안 그래도 ‘일베다’ ‘토착왜구다’라는 얘기는 댓글에서 많이 봤다. 일베는 ‘눈팅’도 한 번 안 해봤다. 최근에는 외려 소위 말하는 진보 커뮤니티에 가끔 들어가는 편이다. 신상이 털렸는지 보려고. 물론 토착왜구도 아니다. 일본 얘기도 잘 안 한다.”
― 혹시 나중에 실명과 얼굴을 밝히면서 ‘내가 그때 김군’이라며 본격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낸다거나 하는 계획이 있는 건 아닌가.
“전혀 아니다. 평범하게, 조용하게 살고 싶다. 근데 자꾸 이런 식으로 몰아가면 그럴 수밖에 없다. 자꾸 일을 키우면 어쨌든 더 빨리 신상이 공개될 것이고, 일반 회사에서는 반기지 않을 테니까 ‘대자보 김군’이 직업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 최근에 읽은 책은 뭔가.
“음…. 《팩트풀니스(Factfulness)》를 재밌게 봤다. 사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가난하다’ ‘힘들다’가 아니라 빈곤율과 경제성장률을 따지는. 성격상 사실관계가 분명한 걸 좋아한다.”
― 학창 시절은 어땠나. 반골(反骨) 기질이 좀 있었나.
“친구들이랑 시시콜콜한 얘기 하면서 활발하게 지냈다. 나쁜 짓 한 적 없는 모범생이었고, 운동도 좋아했고. 반골이라…. 그냥 옛날부터 그른 것에 대해서는 ‘아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조율하고 타협점을 찾았다. 집단 내에서는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개별적으로 움직이기보다 연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면서 집단이, 사회가 조금씩 변화해나가는 걸 체험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군에서는 선임들의 강압적인 문화를 그렇게 조금씩 개선한 적이 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꿈”
― 이번 사건이 20년 남짓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보통,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살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지 않나. 이번에 정말 깊게 생각해봤다.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2020년도에 살며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희구(希求)할 줄이야. 평범했던 삶에 아주 우연히 이런 숙명(?)이랄까, 그게 쥐어졌다.”
― 그간 누렸던 ‘평범함’이 비범(非凡)해져 버렸네.
“둘 다 공기 같은 거다. 없어 봐야 안다. 정말.”
― ‘단국대 대자보’ 사건이 이 시대에 던진 메시지는 뭘까.
“인권을 외쳤던 사람들이 거꾸로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민주를 외쳤던 사람들이 거꾸로 독재로 향한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역으로 다시 검증해야 할 때’라는 걸 알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말미. 녹음기를 끄고 그에게 말했다. “실례지만 이미지가 의외라서 놀랐다”고. 그는 ‘뿔이라도 달렸을 줄 알았냐’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저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냥… 이 나이 또래 남자애들처럼 시답잖은 농담하는 거 좋아하고 넷플릭스 찾아보고… (이때 〈종이의집〉이 재미있다며 추천한다) 선생님 말 잘 들었고요, 무단횡단 한 번 안 하고 살던 어느 날, 대자보 한 번 붙였다가 이렇게 됐네요, 하하.”
허탈한 웃음이었다. 앞이 창창한 나이. 꿈을 물었다. 역시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남들처럼 주임 달고, 대리도 달고, 그저 그렇게. 20대 청년이 대자보를 붙이는 것이 비범해지는 사회가 아닌 곳에서.⊙
- (인터뷰를) 거절할 줄 알았다. 언론의 주목이 부담스럽지 않나.
“엄청 부담스럽고 떨린다. 경찰조사, 법정출석 모두 생전 처음 겪는데다, 언론에서 내 얘기에 관심을 갖는 것도 난생처음이니 어리둥절하고 복잡하고…. (이때 목이 탔는지 음료를 반 이상 마신다) 무엇보다 신원이 노출될까 두려운 마음이 크다. 그런데 죄지은 게 아니니까, 신원 보장이 되는 범위에서 인터뷰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문을 받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은 그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하다. 어딘가 ‘이상하다’. 취업준비생이었던 김군은 어느 날 생각했다. ‘아, 이건(국정 방향) 아닌 것 같은데….’ 많은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최대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래서 떠올린 게 대자보다. 지난해 11월 24일, 새벽 3시쯤. 단국대 천안캠퍼스를 찾았다. 소속 학생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였다. 그리고 교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총 8장이었다. 며칠 후,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고압적인 말투였다. 조사를 받으러 갔고, 법정에까지 섰다. 두 차례 재판 끝에 지난 6월 23일, 법원은 ‘50만원 벌금’ 판결을 내렸다. 25세, ‘빨간 줄’이 그였다.
― 요즘 일과는 어떻게 되나.
“재판 과정에서 취업이 돼, 정시 출퇴근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 회사에서는 당신이 ‘대자보 김군’인 걸 모르겠다.
“당연하지. 아직까지 아무래도 사회적인 시선은 부정적이지 않겠나. 이런 리스크를 안고 하루하루 지내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회사로 전화가 오면 깜짝깜짝 놀란다. 권고사직 당하진 않을까, 매일 걱정한다. 구직 중에도 늘 조마조마했다. 행여 이 사실이 알려져 입사 취소가 될까 봐….”
― 특정 집단의 신상 캐기 시도는 없었나.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다. 악성댓글은 많이 달렸다. ‘고문을 받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최루탄도 안 맞아 본 게’, 뭐 이런. 은근 상처더라. 일전에 문 대통령이 방문했던 아산의 반찬가게 아시잖나. 이 근처다. 대통령의 근황 질문에 ‘거지 같아요’라고 했다가 신상이 털렸고, 지지자들이 찾아와 장사도 못 하게 했다. 개인이 감내할 수 있는 정도가 있을 텐데, ‘그들’은 그걸 넘어서더라, 결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가 붙인 대자보는 문재인 정부의 친중(親中) 정책을 풍자·비판한 내용이었다. ‘현재 남조선의 식민지화 단계는 다음과 같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제목 아래, “중국에서 미세먼지를 날려도 자국민 탓이라며 트럭 운전사 생계를 박살 내는 나라” “정부가 삼성반도체 정보 공개해서 중국에 30년 노하우 기밀 넘겨주는 나라” “전 국민에게 건강보험료 뜯어서 중국인들 의료관광 시켜주는 나라” 등이 적혀 있었다. 배경에는 시진핑의 얼굴이 새겨졌다.
학교 측이 “피해 없다”는데도 처벌
![]() |
김군이 지난해 붙인 대자보. 문 정부의 친중(親中) 정책을 풍자·비판하고 있다. |
“야심한 시각에 붙여야지, 하고 작정한 건 아니었다. 낮에 볼일 보고, 어쩌다 보니 그 시각이 된 거다. 난생처음 붙여본 거라 떨리더라.”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 지난해 12월 초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천안동남경찰서였다. “김○○ 맞지? 잘못했으니까 조사받으러 와.” 관등성명도, 전후 상황 설명도 없었다. 김군은 “인격모독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죄를 지었으니 조사받으러 오라’니…. 혐의가 인정되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무슨 죄냐고 물으니, ‘일단 건조물침입죄’라고 하더라.”
― ‘일단’ 건조물침입죄면 다른 죄도 있다는 뜻이었나.
“그리고 ‘대자보 부착 관련, 다른 죄도 해당 법이 있으면 물을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살면서 무단횡단도 한 번 안 했다. 그런 나를 말 한마디로 ‘죄인’으로 만들더라. 조사과정도 부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건조물침입죄로 불러놓고 건조물 침입과 무관한 내용을 신문했다. 대자보 부착 경위와 함께 붙인 사람이 누군지 말하라고 집요하게, 또 위압적으로 물었다. 수사 당국이 권력에 충성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잠깐, ‘건조물침입죄’가 뭔지 살펴본다. 건물, 선박, 항공기 등에 무단으로 침입하거나 퇴거 요구를 받고도 응하지 않은 경우 적용된다. 이때 중요한 건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단국대 학생팀 A 과장이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그렇다. A 과장은 “내가 피해자로 올라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후 지난 5월 20일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도 출석한 그는 “대자보로 인해 학교는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서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 문제가 과연 재판까지 가야 할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피해자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건조물침입죄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가 아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 경찰은 어떻게 알고 전화했나. 학교에서 신고를 한 건가.
“아니다. 대자보를 본 교수들이 총장에게 연락했고, 총장이 학생팀에 연락한 걸로 안다. 이후 학생팀에서는 ‘신고’가 아니라, 협조 차원에서 경찰에 알렸다. 2년 전 정부를 비판한 대자보가 붙어 경찰이 학교 측에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는데, A 과장이 그걸 기억하고 업무 협조 차 대자보 부착 사실을 알린 거다. A 과장은 ‘종종 불법 종교단체들이 와서 대자보를 붙이는데 떼어내면서 한 번도 건조물 침입으로 고소하거나 죄를 물은 적이 없다’고 했다.”
― 혹시 학교 기물을 파손했나.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들어갔다거나.
“전혀. 차를 타고 차단기가 올라갔을 때 얌전히 입장했다. 건조물침입죄라니.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건물에 무단으로 들어가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고 절도, 폭행, 성폭행한 이들에게 씌우는 죄명 중 하나더라. 변호사가 그러더라. 이게 죄가 되려면 대학 건물에 배달 전단 돌리는 분까지 다 처벌을 해야 하는 거라고. 특히 단국대 호수는 사람이 엄청 드나드는 곳이다.”
법정 서니 죄인 된 기분
![]() |
지난 6월 23일, 대전지검 천안지청의 판결문 전문. 이 사건의 공소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 형에 처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김군 제공 |
― 정식재판을 청구할 생각은 어떻게 했나.
“혼자였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벌금을 냈을 거다. 주변 사람들이 힘이 돼줬다. 도와주고 싶다며 전화를 건 기자들도 있었다.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는 분도 많았다. 직접 전화를 건 변호사도 있었다. 그래도 막상 재판까지 가려니 생각이 많아지긴 하더라.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지금도 많은 분이 힘이 되어주고 있다.”
― 법정에 섰을 때 심경은.
“무서웠다. 정말 무섭더라. 경찰 조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힘내라고 했지만, 막상 법정에 서니 정말….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리 죄가 없더라도 거기 서면, 중압감에 ‘내가 정말 죄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검사 쪽 증인으로 나온 단국대 학생팀 과장이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이게 재판까지 올 일이냐’고 했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가 조금씩 올라갔다.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은 짧았다. 10분 내외. 100년 인생, 그 하세월 중 단 10분. 그는 “그 짧은 시간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 이 사실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말했나. 그들의 반응은?
“맨 처음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몇 달 혼자 속앓이하다가 법원 출석 명령이 떨어졌을 때 말씀드렸다. ‘죄를 짓지 않았다면, 당당하게 조사받고 절차대로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알게 된 친구들은 ‘그게 무슨 죄가 되냐’며 화를 냈다.”
두 차례 재판 후, 선고일은 지난 6월 23일이었다. 판결문은 “김군과 변호인은 침입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나, 김군이 학교의 직원이나 학생이 아닌 사실, 캠퍼스 및 건물이 24시간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장소는 아닌 사실이 인정되고, 정치적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기 위해 (새벽) 3시10분경 캠퍼스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 피해자 측의 의사로 인정되는바, 이 사건 공소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벌금은 50만원으로 깎였지만, 김군은 항소를 준비 중이다.
― 항소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나.
“무죄를 받는 게 가장 큰 목표다. 항소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이는 개인의 이익 여하 문제만은 아니다. ‘유죄’로 남는다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희대의 사례가 된다. 대자보를 붙이면 빨간 줄을 긋는데 누가 붙이려 하겠나. 정부를 상대로 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강압적으로 위축되는 계기가 될 거다.”
![]() |
김군은 한때 문재인 지지자였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 방송에서 대통령이 되면 자신에 대한 비방을 참겠다고 말하는 모습. 사진=방송화면 캡처 |
“물론. 2017년 대선이 생애 첫 투표였다. 그때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다. 인생 첫 투표에서 찍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 얼마나 기대가 컸겠나. 박근혜 정권에 대한 반발도 한몫했다. 예체능 전공인 나는 특히 정유라 사건에 엄청 분노했다. 그때 ‘정의’를 강조한 사람이 문 대통령이잖나. ‘아, 이 사람이라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줄 수 있겠구나’. 그런데 지금은? 잘못된 선택을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는 “그때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주변 또래 친구들도 대부분 돌아섰다”면서 “그 계기는 한두 가지로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다.
“인권변호사라는 사람이 ‘표현의 자유’가 짓밟힌 사례에 침묵하고 있다. 만약 반대의 경우였다면, 앞장서서 ‘세상에 이게 말이 되냐’고 할 사람이지 않나. 후보 당시, TV에 나와 대통령 되면 비방을 감수할 건지 묻는 앵커에게 ‘그래서 국민들 기분이 풀린다면 참겠다’고 했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법원의 판결은 존중해야겠지만, 이는 그럴 만한 일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취지의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 문 대통령이 바로 앞에 있다고 치자. 무슨 말을 하고 싶나.
“아, 너무 많은데…. 우선 정치를 좀 대국적(大局的)으로 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한때 지지자로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번 건 관련해서는, 정권의 핵심 인사로 있는 전대협 출신들에게 묻고 싶다. ‘여의도 가시더니 대자보 붙이던 시절은 다 잊으셨습니까?’ 문 대통령과 운동권 세력은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를 숙주(宿主)로 기생(寄生)하고 있는 집단 같다. 민주, 인권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그 소중한 가치를 제발 제자리로 돌려놔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보수의 지령을 받은 인물?
![]() |
김군은 기존의 ‘전대협’을 풍자한 청년 단체 新전대협 회원이다. 군대 전역 후 소셜미디어에서 우연히 신전대협의 ‘문재인 왕씨리즈’를 재밌게 봐 가입하게 됐다. |
― 신전대협과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전역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풍자가 재밌어서 가입했다. 특히 ‘문재인 왕씨리즈’가 인상적이었다. 경제왕 문재인(마차가 말을 끄는 기적의 소득주도성장), 기부왕 문재인(나라까지 기부하는 통 큰 지도자), 고용왕 문재인(절대 해고하지 않는다), 외교왕 문재인(기적의 A4용지 외교술) 등으로 풍자한 내용이다.”
‘지령설’을 확인해봤다.
― 대자보 붙이기 전,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낸 적이 있나.
“전혀. 말했듯, 전공이 예체능이다. 그 분야에만 푹 파묻혀 살았다.”
그러더니 그 ‘예체능’ 분야에 대한 얘기를 한동안 한다. 이때만큼은 말이 유수 같다. 신원이 특정될 수 있어 이 내용은 오프더레코드다.
“정치? 전혀 관심 없었다. 그러다 의경으로 복무하면서 서서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 같다. 집회, 시위 현장에 나가 경찰버스에서 동기들이랑 ‘저 사람들은 왜 저럴까?’ 하며 한번쯤 생각해보게 됐다.”
― 정치 이념이 따로 있나.
“없다. 보수나 진보로 특정 지었다면 신전대협에 가입하지도 않았을 거다.”
― 일각에서는 김군을 ‘보수’로 본다.
“보수, 진보라는 이념을 가질 만큼 배움이 있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만 가지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 갇히는 걸 경계한다. 이념이 없어도 잘잘못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문재인을 비판했으니 보수다?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는데 좌우가 왜 나오나. 좌든 우든 잘못했으면 비판받아야 마땅한 거 아닌가. 그 비판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발전해나갈 수 있다면 더더욱. 대자보를 붙인 걸 그런 차원으로 봐야지, 안타깝다.”
― 일베 회원인가.
“에휴…. 안 그래도 ‘일베다’ ‘토착왜구다’라는 얘기는 댓글에서 많이 봤다. 일베는 ‘눈팅’도 한 번 안 해봤다. 최근에는 외려 소위 말하는 진보 커뮤니티에 가끔 들어가는 편이다. 신상이 털렸는지 보려고. 물론 토착왜구도 아니다. 일본 얘기도 잘 안 한다.”
― 혹시 나중에 실명과 얼굴을 밝히면서 ‘내가 그때 김군’이라며 본격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낸다거나 하는 계획이 있는 건 아닌가.
“전혀 아니다. 평범하게, 조용하게 살고 싶다. 근데 자꾸 이런 식으로 몰아가면 그럴 수밖에 없다. 자꾸 일을 키우면 어쨌든 더 빨리 신상이 공개될 것이고, 일반 회사에서는 반기지 않을 테니까 ‘대자보 김군’이 직업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 최근에 읽은 책은 뭔가.
“음…. 《팩트풀니스(Factfulness)》를 재밌게 봤다. 사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가난하다’ ‘힘들다’가 아니라 빈곤율과 경제성장률을 따지는. 성격상 사실관계가 분명한 걸 좋아한다.”
― 학창 시절은 어땠나. 반골(反骨) 기질이 좀 있었나.
“친구들이랑 시시콜콜한 얘기 하면서 활발하게 지냈다. 나쁜 짓 한 적 없는 모범생이었고, 운동도 좋아했고. 반골이라…. 그냥 옛날부터 그른 것에 대해서는 ‘아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조율하고 타협점을 찾았다. 집단 내에서는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개별적으로 움직이기보다 연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면서 집단이, 사회가 조금씩 변화해나가는 걸 체험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군에서는 선임들의 강압적인 문화를 그렇게 조금씩 개선한 적이 있다.”
― 이번 사건이 20년 남짓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보통,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살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지 않나. 이번에 정말 깊게 생각해봤다.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2020년도에 살며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희구(希求)할 줄이야. 평범했던 삶에 아주 우연히 이런 숙명(?)이랄까, 그게 쥐어졌다.”
― 그간 누렸던 ‘평범함’이 비범(非凡)해져 버렸네.
“둘 다 공기 같은 거다. 없어 봐야 안다. 정말.”
― ‘단국대 대자보’ 사건이 이 시대에 던진 메시지는 뭘까.
“인권을 외쳤던 사람들이 거꾸로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민주를 외쳤던 사람들이 거꾸로 독재로 향한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역으로 다시 검증해야 할 때’라는 걸 알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말미. 녹음기를 끄고 그에게 말했다. “실례지만 이미지가 의외라서 놀랐다”고. 그는 ‘뿔이라도 달렸을 줄 알았냐’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저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냥… 이 나이 또래 남자애들처럼 시답잖은 농담하는 거 좋아하고 넷플릭스 찾아보고… (이때 〈종이의집〉이 재미있다며 추천한다) 선생님 말 잘 들었고요, 무단횡단 한 번 안 하고 살던 어느 날, 대자보 한 번 붙였다가 이렇게 됐네요, 하하.”
허탈한 웃음이었다. 앞이 창창한 나이. 꿈을 물었다. 역시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남들처럼 주임 달고, 대리도 달고, 그저 그렇게. 20대 청년이 대자보를 붙이는 것이 비범해지는 사회가 아닌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