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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북한법 어디까지 왔나

한국 문화 막고, 경제 교류 준비하는 북한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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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위에 노동당 규약, 그 위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김씨 3대의 ‘교시’
⊙ 권리 없고 의무만 있는 북한
⊙ 남한의 노래, 드라마 유포 금지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되고 열흘 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 통과시켜
⊙ ‘전람회법’ 제정해 경제 교류 준비하는 북한
북한의 ‘1972년 사회주의 헌법 발표’를 기리는 전시물. 평양의 조선혁명박물관에 있다. 사진=《로동신문》 캡처
  문화는 막되, 돈은 받겠다? 북한은 코로나19 종식을 기다리며 ‘우리식 개방’을 준비 중이다. 김정은 정권 들어 유독 변화가 눈에 띄는 분야가 있다. 바로 ‘법’이다.
 
  그동안 북한의 변화를 추적할 때 법을 관찰하는 건 경시되어왔다. 북한이 법보다 ‘수령님의 교시’나 노동당 규약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할까. 북한 법률이 느리게 변화한 탓도 있을 터다.
 
  북한법의 특성을 간단히 살펴보자. 대한민국과 북한의 법률에 공통점이 있긴 하다. 둘 다 대륙법계다.
 

  법은 크게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로 나뉜다. 대륙법계는 독일과 프랑스 등 대륙에서 형성되어 발전해온 법률의 계통이다. 《로마법 대전》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성문법(成文法)주의가 특징이다. 어떤 행위를 따질 때, 법률로 제정되어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법규가 관습에 우선한다는 뜻이다.
 
  영미법은 원칙적으로 불문법(不文法)이다. 문서로 쓰인 법률이 아닌 판례(判例)로 판단한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로스쿨 학생들이 판례를 외우느라 골치를 앓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재판을 할 때, 철저히 판례로 법리(法理)를 따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륙법적 근간에, 판례를 중시하는 영미법적 요소가 더해져 왔다.
 
  북한 헌법은 소련 군정(軍政) 기간인 1948년 선포됐다. 크게 소련 법률을 따른 대륙법계에 속하는 이유다. 첫 북한 헌법의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이었다. 이후 5번의 개정을 거쳤다.
 
 
  私法 없는 북한법
 
  1972년 제6차 개정을 통해 북한 헌법은 크게 바뀐다. 명칭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으로 바꿨다. 이름대로 1972년 헌법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주체사상이 헌법 구문에 등장했다. 노동당의 1당 독재와 국가주석체제가 확립됐다.
 
  법학계에선 영미법계나 대륙법계 외에 사회주의 법계를 별도로 인정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대륙법계에 속하지만, 내용과 역할을 볼 때 독자적인 법계가 아니냐고 주장하는 측이 있어서다.
 
  사회주의 법률의 큰 특징은 사적(私的) 분야를 법으로 규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공사법(公私法) 이원체제다. 공법(公法)은 정부기관이나 공적인 단체 혹은 이들과 개인이 함께 연관된 분야를 다루는 법이다. 헌법, 행정법, 형법 등이 속한다. 사법(私法)은 개인의 의무와 권리에 관한 법이다. 민법과 상법이 사법이다. 자본주의가 있는 곳엔 사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法治 인정 안 하는 북한
 
  북한법의 특징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법치(法治)를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헌법 제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모든 활동에는 당연히 사법(司法) 영역도 포함된다. 법리와 상관없이 당의 결정에 따라야 한단 얘기다.
 
  조선노동당의 강령인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제4조 제8항은 이렇다. ‘우리 당의 혁명사상 당의 로선과 정책에 대하여 시비중상하거나 반대하는 반당적인 행위에 대하여서는 추호도 융화묵과하지 말아야 하며, 부르죠아사상, 사대주의사상을 온갖 반당적, 반혁명적사상 조류를 반대하여 날카롭게 투쟁하며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진리성과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조선노동당의 결정이란 건 누가 내리는 걸까. 지난 1월 평양에선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2021년 1월 5~12일)가 열렸다. 여기에서 당 규약 변경이 결정된 사실이 뒤늦게 한국에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일부 언론은 개정 당 규약에서 ‘김일성’ ‘김정일’ ‘선군’ 등의 용어가 빠진 점을 조명하며, 마치 북한이 정상 국가로 나아가고 있는 듯이 해설했다. 당 규약 개정을 알린 결정서를 보면 틀린 해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해당 부분이다.
 
  ‘조선로동당의 창건자, 건설자이시며 영원한 수령이신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혁명사상과 업적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빛내여 나가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의지를 반영하였다.’
 
  조선노동당은 김일성·김정일의 당이란 얘기다.
 
 
  법보다 ‘김정은 말씀’이 우위
 
북한 곳곳에 붙어 있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구호. 김정숙평양제사공장이다. 사진=《로동신문》 캡처
  북한 헌법을 읽어보면 서문에서부터 이질적인 단어가 등장한다. ‘인덕(人德)정치’다. 해당 대목이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어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
 
  예상치 못한 맥락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유교적 단어에서, 어쩔 수 없이 법치가 아닌 인치(人治)가 연상된다.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리홍수 부교수는 인덕정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덕정치는 사랑과 믿음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정치이다.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인덕정치의 기본 핵이며 근본 바탕이다. 인민을 혁명동지로, 스승으로 여기고 따뜻이 이끌어주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은정 깊은 혜택을 베풀어주며 충성과 보답을 낳게 하는 정치가 인덕정치이다.”
 
  흡사 조선 시대 왕이 갖춰야 할 태도를 제안하는 신하의 글 같다.
 
  둘째, 다른 곳에서 법규범력이 발생할 수 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법률 외의 다른 것들이 법처럼 적용된단 뜻이다. 예를 들면, 김씨 3대의 이른바 교시와 말씀, 당 지시와 규약, 당의 결정 등이다.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도 해당된다. 북한 헌법 11조에 명시되어 있듯, 김씨 3대의 교시와 말씀, 당의 규약은 법보다 위에 있다.
 
  대한민국은 법적인 판단을 할 때, 법령과 판례를 참고하지만, 북한은 노동당 규약과 해설서, 당 총비서 교시 및 해설서를 먼저 참고해야 한다. 북한에서 재판소는 최종적인 법해석기관이 아닌, 당의 결정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당연히 판검사 위에 노동당이 있다.
 
  셋째,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배경엔 집단주의가 있다. 북한 헌법에는 극도의 집단주의가 스며 있다. 북한 헌법 제63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
 
  개인의 권리마저도 집단주의에 기초하고 있단 얘기다. 천부인권을 부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거나 선천적인 문제가 있어 전체, 즉 공화국 인민에 속하지 않게 된 개인(공화국 적대자)은 북한에서 가혹한 처지에 빠질 수 있다. 수용소행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전체에 속하지 않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북한 헌법 제81조는 ‘공민은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단결을 견결히 수호하여야 한다. 공민은 조직과 집단을 귀중히 여기며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몸 바쳐 일하는 기풍을 높이 발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북에선 권리마저도 실질적으로는 의무로 작용한다.
 
 
  북한판 신앙의 자유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북한의 자유권은 남한의 자유와 다르다. 국가로부터의 자유, 방어적 성격으로서 개개인이 누리는 권리가 아니다. 국가에 의한 자유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는 자유는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는 법률로 제한할 수 없는 권리라는 걸 분명히 한다. ‘1.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북한 헌법에도 여러 자유가 열거되어 있다. 신앙의 자유, 신체의 자유, 서신의 자유, 언론출판집회 결사의 자유, 정당의 자유, 거주 여행의 자유 등이다. 신앙의 자유를 보자.
 
  ‘헌법 제68조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 데 리용할 수 없다.’
 
  1972년 헌법에 ‘모든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되어 있던 것이 1992년 개정하며 변화한 규정이다.
 
  북한은 정말 신앙의 자유를 보장할까. 《로동신문》 2019년 9월 19일 자엔 ‘피의 교훈을 남긴 42시간’이라는 글이 실렸다. 여기에 종교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조국이 전쟁의 불길 속에서 준엄한 시련을 겪던 시기 선천땅에서 (반동단체인) 《치안대》에 가담한 자의 60% 이상이 종교신자였다고 한다. 평양과 신의주를 잇는 교통상 유리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선천땅을 조선에 대한 종교 침투에 적합한 지역으로 삼은 미제는 해방 전부터 《자선》과 《박애》의 간판 밑에 수많은 선교사들을 들이밀어 미국식 생활양식과 숭미노예굴종사상을 퍼뜨렸다. 이렇게 길들여진 악질 종교인들 대부분이 반동단체들에 가담하여 우리 인민의 참다운 삶의 요람인 공화국 정권을 말살하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였던 것이다. 지금 적대세력들이 우리 내부에 종교와 미신 등 부르죠아사상독소를 류포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책동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말살하려는 저들의 음흉한 목적을 손쉽게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종교를 사상적 독소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북한 헌법에 명시된 신앙의 자유라는 것은 국가를 위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를 뜻한단 걸 알 수 있다.
 
 
  헌법 고쳐 김정은 지위 다져
 
  넷째, 법을 정권의 도구로 활용한다. 권력 구도를 수정하고 혈연세습 구도를 굳히려 할 때마다 헌법을 바꿨다. 북한의 헌법 개정을 보면 권력 구도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김정은 집권 시기에만 10년 동안 5번 헌법을 개정했다(2012년, 2013년, 2016년, 2019년 4월, 2019년 8월). 평균 2년에 1회 헌법을 수정했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헌법이 개정됐다. 2019년 4월 개정 헌법은 100조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라 명시했다. 김정은을 법적인 국가수반의 지위에 올려놨다.
 
  2019년 8월 헌법 개정에선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전체 조선인민의 총의에 따라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하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는 선거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인민회의 대의원을 겸직하지 않는단 뜻이다.
 
  국무위원회 위원장, 즉 김정은에게 최고인민회의 법령, 국무위원회의 중요 정령과 결정을 공포하는 권한도 부여했다. 국무위원장이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보다 우위에 있다고 헌법으로 명시한 셈이다. 국무위원장이 다른 나라에 주재하는 외교 대표를 임명 또는 소환(해임)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김정은이 헌법 조문상으로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핵무기 금지한 법도 있어

 
북한이 제작한 지능형 손전화(스마트폰) 법전 ‘의무 2.0’. 사진=‘메아리’ 제공
  다섯째, 일부 선언적이고 장식적인 법규정이 있다. 실제로 효력이 없는 조항을 그저 장식처럼 넣어놨단 얘기다.
 
  핵 환경법이 그 예다. 환경보호법 제7조다. ‘핵무기·화학무기의 개발·시험·사용 금지 원칙. 핵무기, 화학무기의 개발과 시험, 사용을 금지하고 환경의 파괴를 막는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관한 정책이다. 국가는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핵무기, 화학무기의 개발과 시험, 사용으로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한다.’
 
  핵무기 사용을 금지한단 얘기다. 북한은 2000년대 들어 총 6차례 핵실험을 했다.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 조항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67조다.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국가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조건을 보장한다.’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당 1당 독재 체제다.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가 우리 당의 최고강령’이란 말이 최근 발행된 《로동신문》에도 등장한다(2021년 10월 28일 자 ‘우리식 사회주의의 정치사상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가시며’).
 
  북한에서도 느리지만 조금씩 법치로 향하는 변화가 있어 왔다. 그러나 그 방향은 ‘사회주의 법치’다. 1982년 12월 15일 김정일은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강화할데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주장했다. 사회주의 법무생활이란 말 그대로 사회주의 사회에 사는 모든 사회성원들이 법규범과 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그 요구대로 활동하는 사회생활이다.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위해 법전을 발간해 인민에게 공개했다. 2012년에 발간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법전》 제2판의 발간사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사회주의법은 모든 공민들의 사회생활, 사회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규제하는 공동규범이고 준칙이다. 온 사회에 준법기풍을 확립하고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를 더욱 튼튼히 다지고 빛내기 위해서는 모든 공민들이 사회주의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규범을 자각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여겨야 한다.’
 
  법률을 스마트폰으로 열람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출시했다. 앱의 이름은 ‘의무 2.0’이다.
 
  조선중앙통신의 10월 23일 보도를 보면, 모범준법군(시·구역) 칭호를 제정하는 내용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지난 18일 발표됐다. 보도에는 ‘김정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대중 자신의 사업으로 전환시켜나감으로써 혁명적 준법기풍을 확립하고 우리의 국가사회제도를 공고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한 군(시·구역)들을 국가적으로 표창하기 위하여’라고 취지가 나와 있다. 이어 평안북도 창성군에 모범준법군칭호가 수여되었다는 보도가 11월 4일에 나왔다.
 
  북한이 강조하는 ‘준법’이 대한민국의 ‘준법’과 같다고 볼 순 없다. 북한의 ‘법’ 자체가 성문화된 법령만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자보호법 개정
 
  일부 법 제정 분야에선 국제적인 법규 수준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일부 보인다. 예를 들면 인권 관련 법령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를 진행한다. UPR은 193개 유엔 회원국이 자국의 인권 현황과 자국이 스스로 한 인권 관련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다른 회원국과 함께 검토하는 제도다. 인권이사회의 47개 이사국으로 구성된 실무그룹이 진행한다. 실무그룹은 심사 대상 국가를 주제로 3시간30분 동안 회의를 연다. ‘상호 대화(interactive dialogue)’다. 한 주기인 4년 6개월 동안 순차적으로 전체 회원국의 인권 상황을 검토한다.
 
  김정은 정권 들어 특정 부문에서는 조금씩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관한 부분이다. 제2차 UPR을 위해 스스로 제출한 보고서에 여성의 사회 진출 장려를 강조해놨다. 2014년 기준으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 여성 비율이 20%가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서는 ‘북한장애자보호전략’을 수립하고, 아동의 권리를 위해서는 ‘아동질병통합관리확장전략’을 수립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2013년 11월 ‘장애자보호법’을 개정했다. ‘장애자후원기금’을 설립한다는 조항과 장애인 복지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장애인과 여성에 관한 정책 변화는 북한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다.
 
 
 
남조선 콘텐츠 금지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2020년 5월 31일 대북전단을 북한으로 보내는 모습. 민주당이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킨 후 중단됐다. 사진=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가장 최근에 제정된 법률 두 가지는 북한 내부 상황을 짐작게 한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청년교양보장법’이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12차 전원회의에서 세 가지 법을 채택했다. 그중 하나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다.
 
  ‘반사회주의사상문화의 유입, 유포 행위를 철저히 막고 우리의 사상, 우리의 정신, 우리의 문화를 굳건히 수호함으로써 사상진지, 혁명진지, 계급진지를 더욱 강화하는데서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준칙들을 규제’한 법이라고 한다. 세부 처벌조항은 다음의 행위들을 금지한다.
 
  〈▲남조선(한국)의 문화콘텐츠의 시청 및 유포 ▲음란물 제작 및 유포 ▲등록되지 않은 TV, 라디오,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의 사용 ▲열람이 금지된 영화, 녹화편집물, 도서를 시청하거나 보관〉
 
  처벌 강도는 가혹하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의 문화나 공화국(북한)을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편집물을 보거나 유입한 자는 최고 10년의 노동교화형을 받을 수 있다. ‘많은 양’의 콘텐츠를 들여오면 사형에 처한다.
 
  성(性) 녹화물 또는 미신을 설교한 도서와 사진, 그림을 보았거나 보관한 자는 최소 5년에서 최고 15년까지의 교화형에 처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직접 제작하고 유포한 경우엔 무기(無期) 노동교화형 혹은 사형에 처할 수 있다.
 
  남한식으로 노래해서도 안 된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시행령 제32조는 ‘남조선식으로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남조선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남조선식 서체로 인쇄물을 만든 자는 정상에 따라 노동단련형으로부터 2년까지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고 정해놨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제정되고 정확히 열흘 뒤, 한국의 국회에선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일명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표결로 강제 종결하고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북전단은 북한에 외부의 실상을 알려주는 상당히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북한이 주장하는 반동사상의 공급 원천이란 얘기다.
 
 
  청년교양보장법 제정
 
북한은 ‘청년교양보장법’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제정하며 청년층에 대한 사상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로동신문》 캡처
  지난 9월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에선 세 가지 법령이 채택됐다. ‘시·군발전법’과 ‘청년교양보장법’ ‘인민경제계획법’이다. 이 중 문제가 되는 게 청년교양보장법이다. 역시 북한식 표현으로 권리인 양 ‘보장’이라 표현했지만, 어떤 부문의 교양은 쌓지 말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으로 판단된다. 세부 조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 4월 8일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서 한 발언을 보면,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은 당세포들이 이뤄야 할 10가지 과업 중 하나로 ‘청년교양’을 들었다.
 
  김정은은 ‘지금 우리 청년들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적지 않고 새 세대들의 사상정신상태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며, ‘당원들에게 청년들을 맡아 교양하고 키울데 대한 분공을 주고 정상적으로 총화대책하여 당원들이 의식적으로 청년교양에 관심을 돌리며 특히 자녀교양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단장, 언행,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어머니처럼 세심히 보살피며 정신문화생활과 경제도덕생활을 바르게, 고상하게 해나가도록 늘 교양하고 통제하여야 한다’는 구절도 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북한의 청년교양보장법은 유엔이 명시한 국제 인권규범을 위반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사상 침투는 사력을 다해 막으면서, 경제와 관련한 법령은 정비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난 10월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17차 전원회의에서 ‘국제상품전람회법’을 채택했다.
 
  조선중앙TV는 ‘국제상품전람회의 조직과 운영에서 지도와 질서를 확립해 인민의 생명, 건강,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며 나라의 대외 경제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는 데서 나오는 실무적 문제들을 세분화, 구체화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금융시장에도 관심
 
북한에선 각종 전람회가 열리고 있다. 조선로동당 창건 76주년을 기념해 연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이 10월 11일 개막했다. 사진=《로동신문》 캡처
  전람회법 채택에 맞춰, 조선민족보험총회사는 ‘전람회보험’ 상품을 소개했다. 전람회보험은 ‘전람회 기간에 각종 자연재해와 우발적 사고들로 전람회 참가자들이 입게 되는 여러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고 대외무역 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기 위한’ 보험이다.
 
  조선민족보험총회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보험 설명에는 ‘보험 업무의 정보화, 과학화 수준을 높여 상품 전람회의 안전성과 권위를 높이고 전람회 참가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진행하는 상품 전람회들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하도록 고무 추동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설명도 달려 있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박람회는 물론 국제 전람회도 열어 경제 활성화를 꾀해보려는 의도가 읽힌다.
 
  지난 6월 25일엔 김일성종합대학 게시판에 눈에 띄는 글이 등장했다. ‘현대국제금융시장과 그 특징’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재정금융학부의 리경호가 작성했다. 첫 대목이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대외경제관계를 확대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국제금융시장에 주동적으로 진출하여 금융활동을 공세적으로 벌리자면 현대국제금융시장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국제금융 거래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뒤따라온다. 김일성종합대학 게시판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온 힘을 다해 발전시키자는 둥 정치적인 글만 주로 올라온다. 순수하게 학문적인 글은 극히 드물다. 북한 당국이 국제금융 거래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화는 막고 물질만 받아들이려는 북한의 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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