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甲濟의 시각

중국에 속아 ‘自衛的 핵무장’ 카드를 버리면 안 된다

한국이 美日의 미사일 방어망에 가세하는 것도 중국의 核미사일을 무력화시키는 匕首이다

  •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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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환영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유명한 평화주의자의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은 핵(核)무기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39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한 달 전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질라드였다. 아인슈타인처럼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 온 유대인 과학자였다. 그는 나중에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부인이 유대인으로서 무솔리니의 탄압을 받자 미국으로 피신)와 함께 흑연을 감속재(減速材)로 이용, 최초의 연쇄반응을 성공시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原子爐)를 만든 사람이다.
 
  질라드는 친구인 아인슈타인에게,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이 핵분열에 성공하였으며 가공할 신무기(新武器)를 만들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견한 질량-에너지 등식(等式)인 E = mc²이 핵폭탄 개발의 원리가 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친구의 설명을 듣고는 곧 깨달았다. 핵분열과 연쇄반응이 핵폭탄 제조로 연결된다는 것을. 질라드는 미국도 대응책을 세워야 하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올리자고 했다. 초안은 질라드가 쓰고, 아인슈타인은 교정을 보고 서명하였다. 이 편지는 아인슈타인-질라드 편지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어떻게 편지를 전달하느냐였다. 질라드는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 국민적 영웅이 된 찰스 린드버그의 도움을 받으려 하였으나, 그가 고립주의자이고, 친(親)나치 인물임을 알고는 포기하였다. 이 편지는 알렉산더 삭스라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구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맨해튼 계획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왼쪽)과 질라드(오른쪽)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 개발을 촉구했다.
  1939년 10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 직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 명의의 편지를 받은 루스벨트는 군사문제 고문인 와트슨에게 이를 건네면서 “행동이 필요해”라고 했다. 과학자들로 급조(急造)된 위원회는 대통령에게 대응책을 건의, 육군이 관할하는 핵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계획’이 시작되었다.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맨해튼 계획엔 한때 13만명이 종사하였고, 20억 달러(요사이 가치로는 230억 달러)가 들어갔다. 90%가 원자로 등 시설을 짓는 데, 10%가 폭탄 제조, 설계 등에 쓰였다.
 
  아인슈타인은 당초의 핵 개발 계획이 느리게 진전되자 1940년 3월 다시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썼다. ‘베를린에선 우라늄 프로젝트가 급진전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였다. 대통령은 긴급 대책 회의를 소집하고, 아인슈타인도 참여시키도록 지시하였으나 그는 감기에 걸렸다면서 자리를 피했다.
 
  1945년 3월이 되자 종말이 가까워진 독일이 핵폭탄을 개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미국의 핵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한 질라드는 원자폭탄의 파괴력을 잘 알아 사용을 중단시키려고 했다. 그는 다시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질라드와 과학자들을 만나줄 것을 건의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대통령은 전달된 편지를 읽지 않았다. 루스벨트가 4월 12일에 죽은 뒤 이 편지가 집무실에서 발견되어 트루먼 후임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그는 편지를 번스 국무장관에게 주었고 번스는 질라드를 만났으나 건의를 묵살했다.
 
 
  原爆 사용 반대 건의
 
  질라드는 독일이 망한 후 핵폭탄이 일본에 투하될 것임이 확실해지자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70명의 과학자로부터 서명을 받아 1945년 7월 17일에 트루먼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이 탄원서에서 질라드는 ‘우리가 개발한 원자폭탄은 첫 단계에 불과하고 앞으로 이를 발전시킬 경우 거의 무한한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사용하기 전에 먼저 일본에 최후통첩을 할 것을 건의하였다. 즉 미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조건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뒤 일본이 이를 거부하면 그 이후 신중하게 판단, 사용을 검토해 달라고 하였다.
 
  이 탄원서는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원자폭탄을 쓰지 않고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 일본에 상륙전을 펼 경우 미군 피해는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 원자폭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않아 엄청난 인명(人命) 피해가 났다는 비난을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맨해튼 계획을 지휘하던 글로브 장군은 질라드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고, 서명자 거의 전원을 해고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에 핵폭탄 제조 요청 편지를 쓴 걸 후회하면서도 독일의 핵 개발 정보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려 했다. 아인슈타인 자신은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FBI가, 그의 평화주의적 성향 때문에 보안에 위험을 주는 인물이란 판정을 하였던 것이다.
 
 
  나가사키의 不運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헨리 루이스 스팀슨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전쟁성 장관이었다. 그는 공화당원이었으나 민주당인 루스벨트와 트루먼 정부하에서 요직을 맡았다. 국익(國益)만 생각하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자세 덕분이었다. 1945년에 그가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할 때 나이는 78세였다. 미국 지도부 인사들 중 최연장자(最年長者)였고, 공직(公職)경력이 화려했다. 이런 권위로 해서 대통령도 그를 존중했다. 1893년에 그는 마벨 웰링턴 화이트와 결혼, 신혼여행을 일본 교토로 갔다. 그는 1000년 고도(古都)의 아름다움, 일본인들의 정직과 예절에 반했다.
 
  1945년 미국 지도부는 개발에 성공한 원자폭탄을 투하할 후보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1차 후보지로 추천된 곳은 히로시마, 교토, 니가타, 고쿠라였다. 이들 도시는 그때까지 폭격을 당하지 않았으며 군(軍) 시설이 있었다. 스팀슨은 교토를 제외시켰다. 신혼여행 때의 좋은 인상도 한 이유였다. 일본의 정신이 담긴 이 도시를 파괴하면 민심(民心)이 흉흉해져 전후(戰後)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원폭 투하지 선정위원회는 제외된 교토 대신에 나가사키를 집어넣었다.
 
  1945년 8월 6일 새벽 사이판 옆에 있는 티니안섬을 출발한 미군의 B-29 폭격기는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했다. ‘리틀 보이’라는 별명을 가진 우라늄탄(彈)이었다. 570m 상공에서 폭탄이 터져 7만명이 목숨을 잃고 후유증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8월 9일 새벽, 소련이 대일(對日)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를 침공하였다. 이날 오전 티니안을 이륙한 미군 B-29는 요코하마 상공에서 호위 전투기와 합류한 뒤 목표지인 북(北)규슈 고쿠라 상공에 도착했다. 고쿠라의 하늘은 안개와 연기가 가득했다. B-29는 몇 번 상공을 선회했으나 투하 목표물을 육안(肉眼)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기장(機長)은 B-29를 대체 목표지인 나가사키로 돌렸다. 여기도 구름이 가득했다. 기름이 줄어드는 B-29가 마지막으로 상공을 선회하는데 구름이 갈라지면서 아래로 미쓰비시 중공업 건물이 보였다. 거기를 향해 ‘팻맨’이란 별명을 가진 플루토늄탄을 투하했다. 약 500m 상공에서 터졌다. 오전 11시가 지난 시점이었다. 이 플루토늄탄은 폭발력이 TNT 기준으로 2만t이었다. 히로시마 원폭(原爆)보다 40% 더 강한 것이었으나 나가사키에는 산이 많아 피해는 덜했다.
 
  만약 미국이 원자폭탄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군은 1945년 말에 일본에 상륙할 예정이었고, 소련군은 8월 9일에 만주를 침공하기 시작하였으니, 한반도 전체가 소련군에 점령되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폭 투하는 일본의 조기(早期) 항복을 불러 38선 이남(以南)을 자유지역으로 확보하도록 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自衛的 核무장론에 압도적 지지 여론
 
자위적 핵무장을 지지하는 정몽준 의원.
  지금 한국에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이들도 아인슈타인처럼 ‘최후의 자위적(自衛的) 수단’임을 강조한다. 아인슈타인이 나치 독일의 핵 개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핵폭탄 개발을 건의한 것처럼 이들도 북한의 핵무장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목적을 강조하고, 북한이 핵무장을 폐기하면 한국도 같이 폐기한다는 조건을 달자고 한다.
 
  2013년 초, 북한 김정은 정권이 세 번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强行)하자 자위적 핵무장론이 공론화(公論化)되었다. 보수단체들이 핵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언론도 처음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핵무장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집권 새누리당도 가세하였다.
 
  당 대표를 지낸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특히 왕성한 활동을 했는데, 외신(外信) 인터뷰와 워싱턴 출장 강연을 통하여 자위적 핵 개발의 불가피성을 호소하였다. 그는 지난봄 카네기 재단이 주최한 ‘2013 국제 핵정책 콘퍼런스’에 참석, “한국은 국가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NPT 10조에 의거, NPT에서 탈퇴할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에는 이렇게 경고하기도 했다.
 
  “북한이 계속 핵 보유를 고집하면, 한국도 이 옵션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북한은 알아야 합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핵 확산은 중국이 감싸고 있는 북한 때문에 초래될 것입니다. 저는 중국에 묻고 싶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전술핵을 재도입하길 원합니까? 아니면 자체적으로 핵 보유 능력을 개발하기를 원합니까?”
 
  김정은 정권이 한국에 대한 핵 선제(先制)공격 운운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반도로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외국 언론도 핵무장론의 대두를 보도하였다.
 
  한국의 여론도 압도적으로 자위적 핵무장 지지였다.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은 3월 23일 정기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응답자의 68.6%가 남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뉴욕타임스》는 2013년 6월의 미중(美中)정상회담 직후의 평론기사(데이비드 생거 기자 작성)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고, 시진핑도 동의하였다고 썼다.
 
  “북한이 현재와 같은 길을 가면 한국과 일본도 핵 개발 유혹에 빠지고, 미국은 더 많은 병력을 태평양 지역에 배치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북한의 非核化’
 
  2013년 5월 초 워싱턴에서 회담한 박근혜(朴槿惠)-오바마 대통령이 공동으로 발표한 ‘한미(韓美)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Republic of Korea are determined to achieve the peaceful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미국과 한국 두 나라는 북한의 평화적 비핵화를 달성할 결심이다…”
 
  ‘the peaceful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란 말은 의미 있는 용어이다. 북핵(北核) 관련 외교문서나 남북관계 합의문엔 ‘한반도의 비핵화(非核化)’로 나왔다. 북한 정권은 ‘한반도의 비핵화’란 용어 속에 미국 핵무기의 반입 금지, 한국의 핵무장 반대, 주한미군 기지 조사 등의 의미를 포함시켰다. 요컨대 미국의 핵 문제와 북한의 핵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는 뜻으로 만든 말이 ‘한반도의 비핵화’이다. 이미 한국에선 미국의 전술핵이 철수했다. 한국은 핵무장을 위한 재처리 시설과 농축 시설이 없다. 즉 한국엔 ‘비핵화’할 대상이 없다. 그럼에도 6자회담은 합의문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채택함으로써 북한의 용어혼란 전술에 말려들었다.
 
  최근 공개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엔 6자회담 북한 대표 김계관이 한국 대통령을 앉혀놓고 이런 말을 한다.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交戰) 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 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 한다.”
 
  노무현은 이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도 한마디 반박을 하지 않았다. 미국과 전쟁 중이므로 핵무기는 숨기겠다는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한국만의 비핵화, 주한미군의 비핵화, 더 나아가서 주한미군 철수를 함축한다. 그런 점에서 한미 두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라고 정확한 용어를 쓴 것은 발전이었다.
 
  한미공동선언엔 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미국은 확장된 억지력과 핵 및 재래식 무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미 군사력을 동원하여 확고하게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약속을 견지한다.”(The United States remains firmly committed to the defense of the Republic of Korea, including through extended deterrence and the full range of U.S. military capabilities, both conventional and nuclear.)
 
  한국이 남침(南侵)당할 때 핵무기 사용도 불사(不辭)한다는 강한 표현이었다.
 
 
  “연합사 戰力은 1조3000억 달러짜리”
 
  한미 사이에 진행되는 원자력 협정 개정 협상에서도 한국 측은 사용후(使用後) 핵연료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두 나라는 2014년 3월에 만료되는 기존 협정을 2016년까지 2년 연장하기로 해놓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국이 재처리 및 농축 시설을 갖는 게 핵 개발로 직결되는 일은 아니지만 유사시 핵무장을 선택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다.
 
  2015년으로 예정된 한미연합사 해체도 한국 측의 요구에 의하여 무기(無期)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개월 전 만난 정부 안보부서의 한 고위 당국자는 “박근혜 정부가 한미연합사 체제를 유지하기로 하였다”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한미연합사가 전시에 동원할 수 있는 전력(戰力)을 계산해 보니 1조3000억 달러어치였습니다. 우리 두 나라가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해놓았기에 북괴가 남침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통합된 전시(戰時)작전권을 이원화(二元化)시키고 연합사를 해체하면 이 자원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잖아요? 보충하려면 얼마나 많은 국민세금을 써야 합니까?”
 
  우리 정부는, 2015년으로 예정된 한미연합사 해체 시기를 재연기, 또는 무기연기시켜 사실상 한미동맹군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미국의 반응도 호의적이라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08년 10월 강연에서, 한미연합사 해체를 가져오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결정이 북한 정권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놀라운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북한은 한국보다 미국을 더 불신하고 두려워합니다. 유사시에 미국이 작통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북한을 더욱 두렵게 하여 남북 간 대화와 협상이나 신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은 북한이 무력(武力) 도발을 할 때만 행사된다. 도발을 안 하면 미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강도질을 안 하면 형사를 겁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위해서는 다자(多者) 안보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태라면, 이 대화 체제에서 미국이 너무 커보이게 되고 이것은 다자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나는 작통권의 환수를 남북 간의 신뢰구축에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추진하였습니다.>
 
  노무현은 적군이 우리 동맹군에 대하여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한미연합사 해체를 핵심으로 하는 전시작전권 전환을 결정했다고 고백한 셈이다. 그래놓고 이게 남북 간 신뢰구축이라고 주장하였다. 강도가 마음대로 부잣집을 털 수 있도록 경비원을 내보내는 게 강도와 부자 사이의 신뢰구축이란 식이다. 한미연합사가 있어야 북한은 불안해질 것이고 그래야 도발을 막을 수 있다. 북한의 두려움을 없앤다는 건 무슨 뜻인가? 도발해도 응징받지 않을 것이란 믿음 아닌가? 북한이 안심하게 되면 도발 가능성은 높아지고, 한국은 불안해진다.
 
 
  ‘有關 핵무기 개발’의 의미
 
  올해 초부터 한국에서 본격화된 자위적 핵무장론을, 미국과 중국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한국 정부도 이를 외교 카드로 삼고 있으며, 미국 정부도 중국을 압박할 때 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하였으나,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희망적 관측이 한국의 언론 보도를 통해 확산되면서 여름부터는 자위적 핵무장론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고 있다. 오랜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영향이 남아 친중(親中)성향이 강한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권은 북핵 문제 해결을 중국에 부탁하여 풀려는 생각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2013년 6월 말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정상(頂上)회담을 가졌다.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회담을 거쳐 발표된 ‘한중(韓中) 미래비전 공동성명’엔 진전된 표현이 없었다. 성명의 핵심은 아래 대목이다.
 
  <한국 측은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와 관련, 양측은 유관(有關)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였다.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가 공동이익에 부합함을 확인하고 이를 위하여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여기서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쪽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중국이 이런 표현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한국만이 그런 주장을 하였다고 명기(明記)한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 문장이다. <유관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였다>는데 ‘유관 핵무기 개발’은 무슨 뜻인가? 북한의 핵 개발과 유관한 핵 개발, 즉 한국과 일본의 핵 개발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표현이다.
 
  그런 핵 개발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였다>고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핵 개발을 저지할 수 있고, 중국을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카드, 즉 ‘한국의 자위적 핵 개발 카드’를 포기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 외교부는 ‘유관 핵무기 개발’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해석 문제가 나올 정도의 애매모호한 표현은 중국의 북핵 해결 의지가 우리가 바라는 수준이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親中·反日 노선의 위험성
 
  중국은 또 한국과 미국에 유리한 용어인 ‘북한의 비핵화’는 거부하고 중국과 북한에 유리한 ‘한반도 비핵화’를 넣도록 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박근혜-오바마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란 용어 대신에 ‘북한의 비핵화’라고 올바르게 썼는데, 박 대통령은 중국에 대하여는 이를 관철시키지 못하였다.
 
  중국은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척하면서 분위기를 띄운 뒤 실리(實理)를 챙긴 셈이다. 이런 중국을 상대할 때 한국은 반드시 비수(匕首)를 가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환영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한미동맹 덕분이었다. 한미동맹은 한미일(韓美日)동맹 구조의 일부이므로 한일관계가 나빠지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은 한미동맹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한다. 박근혜 정부의 친중반일(親中反日) 노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인 일본과 멀어지고 공산독재국가인 중국과 친해지면 한국의 국익이 증진되나?
 
  작년 8월 이명박(李明博) 당시 대통령의 독도(獨島) 방문과 천황 비판 발언 이후 한일관계는 외교적으론 사실상 단교(斷交) 상태이다. 그 사이 일본에선 아베 정권이 압도적 국민 지지로 전례 없이 강력해졌는데, 지지의 원천은 보통 일본인들의 반중(反中) 감정이다. 일본에선 “아베 총리의 최고 선거운동원은 이명박이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외교적 갈등의 수준을 떠나 양쪽 국민감정의 악화로 치닫는 양상이다. 한국 언론의 일본 비판이 사실을 떠난 억측과 비약일 때도 있다. 한일 갈등의 결과가 한국의 국익에 끼칠 득실(得失)에 대한 냉정한 계산도 실종 상태이다.
 
  중국은 세계 패권(覇權)을 놓고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군사력과 과학기술력이 없다. 명(明), 송(宋), 한(漢) 등 역대 한족(漢族) 왕조는 문화대국(大國)이었지만 군사약국(弱國)이었다. 다만 중국은 동북아(東北亞)에서는 패권국가가 되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한미일동맹을 깨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거나 해체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경우 한국의 종북(從北)세력은 종중(從中)세력화할 것이다. 일부 한국인의 기질 속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근성(根性)이 남아 있다. 이들이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한국을 중립화(中立化)하자고 나올 것이다. 이는 중국 공산독재 체제의 인력권(引力圈)으로 한국을 밀어넣게 될 것이다.
 
  중국은 개인의 인권(人權)과 자유 등 인류보편적 가치를 한 번도 구현한 적이 없는 나라이다. GDP 규모(구매력 기준)가 EU(유럽연합)와 미국을 능가하는 한중일 사이의 경제협력 관계는 외교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질적(質的)·양적(量的)으로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 경제적 보복을 하면 쌍방이 다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경제의 힘이 갈등의 한계를 설정할지 주목된다.
 
 
  核미사일 實戰배치
 
  박근혜-시진핑 회담은, 한국의 자위적 핵 개발 필요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북한 정권이 시간을 끌면서 핵무기를 소형화(小型化)하여 이미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에 탑재, 휴전선 북방에 실전(實戰)배치하는 상황을 저지할 수 있는 행동을 중국에 기대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시간문제인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배치’를 한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이렇다.
 
  1. 북한의 독재자가 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는 걸 말릴 사람이 없다. 발사 단추를 누르면 7분 안에 서울 상공에서 터진다. 한국은 이를 요격할 수단이 없다. 완벽한 핵미사일 방어망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개발될 것 같지 않다. 서울,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에 한국 인구의 반(半), 경제력의 거의 70%가 집중되어 있다. 핵폭탄이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곳이다. 핵 선제공격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회복이 불가능한 괴멸적(壞滅的)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 독재자는 핵 단추를 누르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2. 미국이 제공한다는 핵우산은 이런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나? 7분이면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김정은에게 애매모호한 ‘핵우산’ 약속이 억지력으로 먹힐까? 핵미사일로 선제공격을 당한 한국은 사실상 국가기능을 상실한다. 미국이 이미 망해버린 나라를 구출하기 위하여, 평양을 핵무기로 보복공격할 수 있을까? 북한 정권은 핵미사일로 수도권을 전멸시킨 다음 미국에 “만약 우리를 공격하면 미국 본토는 물론이고 일본, 오키나와, 괌에 있는 미군 기지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미국은 회복불능의 한국을 위하여 그런 공격을 감수하고, 즉 미국의 한 도시를 희생시킬 각오를 하고 핵무기를 쓸 것인가? 미국의 대통령이, 의회가, 언론이 이를 결단, 허용할 것인가?
 
  3. 서울의 위치와 집중도 때문에 북한 정권의 핵미사일 실전배치는 한국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실전배치는 그 자체가 이미 한국의 파멸을 예정하는 것이므로 이를 금지선으로 설정해야 한다. 핵미사일 실전배치를 허용하면 한국은 북한 정권의 인질이 되든지 미국에 종속되어 국가적 독립성을 잃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하는 것은 선전포고에 준하는 행동이므로 이를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우리는 국가 생존 차원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 반드시 이를 저지할 것이다.”
 
  4. 한국은 국가 생존 차원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실전배치를 하지 못하도록 사전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시설 파괴, 기술자 무력화(無力化), 북한 정권 붕괴 작전 등도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및 공동사용권 확보, 핵잠수함 상시(常時) 파견, 한미연합사 해체 작업 중단 등. 국방비를 GDP의 4%까지 증액하겠다는 각오도 천명할 필요가 있다. 전면전(全面戰)을 각오하고서라도 적의 핵미사일 배치는 막겠다고 나서든지 자위적 핵무장에 착수해야 국가 자격이 있다. 핵 문제는 이 정도의 국가적 결단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핵을 개발하기로 한 북한이 체제의 명운(命運)을 거기에 걸었으니 그걸 막겠다는 한국도 같은 수준의 결단을 해야 맞다.
 
 
  從北세력의 존재
 
지난 3월 11일 서울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좌파단체 회원들이 ‘2013 키 리졸브, 독수리연습’ 중단 요구 집회를 벌이고 있다.
  북한 정권은 한국이 갖지 못한 두 개의 전략무기를 갖고 있다. 하나는 핵무기와 다른 하나는 한국 내의 종북세력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 두 가지 신기(神器)를 전략적·정치적으로 결합시키면 한국을 공산화할 수 있다 믿고 있다. 개방에 나서지 않고 군사적 모험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무너지지 않는 이유이다.
 
  예컨대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으로 기습 남침, 서울을 포위한 다음, ‘현 위치 휴전’을 제의하고, 불응하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남한 내 종북세력에 지령, 평화지상(至上)주의를 내세우면서 현 위치 휴전제의를 받아들이자고 선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 포위된 한국 정부가 결사(決死)항전을 결심하지 못하고 ‘현 위치 휴전’을 받아들이면 대한민국은 소멸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김정일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라고 말하였다(국정원 요약 보고서). 적의 핵 개발을 저지해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이적(利敵)행위를 했다는 일종의 고백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林東源)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부시 대통령은 핵 의혹을 조작해 제네바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썼다. 북한 정권도 인정한 비밀 핵 개발을 ‘조작’이라고 조작, 일방적으로 적 편을 들었다. 퇴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미국은,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핵까지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증거를 내놔야 할 것입니다”(2004년 6월 15일, MBC 특별대담)라고 애써 북을 감쌌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간첩 등 대공(對共)사범 3538명을 사면, 대한민국 파괴의 자유를 주었다. 국회엔 지금 28명의 반공법-국보법 위반 전력자(前歷者)가 들어가 있다. 19대 국회가 개원할 때 민주당 127석 가운데 35%인 44명이 전과자였고 그 가운데 절반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자였다.
 
  2009년 7월 폴란드를 방문 중이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바르샤바 영빈관에서 유럽의 유력 뉴스전문채널 ‘유로뉴스(Euro News)’와 인터뷰를 갖고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북한에)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사회의 개방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핵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적의 핵 개발을 돕는 것보다 더 큰 반역은 없다. 미국은 소련에 핵 관련 정보를 제공한 과학자 부부를 사형에 처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좌파정권의 핵 개발 지원 의혹을 제기만 했을 뿐 후속 조사는 하지 않았다. 조사를 불가능하게 만들 만큼 한국 내 종북-좌파세력은 강대하다. 자위적 핵무장론은 이들에 대한 견제도 될 것이다.
 
 
  한국판 ‘스타워즈’ 전략
 
  중국 지도부는 미일이 건설 중인 미사일 방어망에 한국이 가입하는 사태를 가장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한미일의 미사일 방어망이 완성되면(기술적 문제로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북한 핵미사일뿐 아니라 중국의 핵미사일 또한 무력화(無力化)된다. 중국이 미국을 핵미사일로 위협할 수 없게 된다면 전략적, 외교적 위상이 약해진다. 중국의 핵미사일 기지는 중국의 동해안에 집중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 쏘아 올린 미사일을 요격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가 한국이다. 한국이 미국 및 일본과 협력, 미사일 방어망을 완성하면 중국 핵미사일의 전략적 영향력은 약해진다. 중국이 한국의 미사일 방어망 가입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이것이 자위적 핵무장론과 함께 우리의 유력한 대중(對中) 카드라는 이야기이다.
 
  소련을 붕괴시킨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스타워즈’ 전략과 비슷한 개념이다. 레이건은 1970년대의 데탕트 정책, 즉 대소(對蘇)유화정책을 뒤엎는 대소강경책을 지속하려면 국내의 지지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감세(減稅)에 의한 경기회복에 성공하여 지지층을 단단히 했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대소 비판 연설로 보수층을 단결시켰다. 그런 다음 군비증강 정책을 밀어붙여 소련이 출혈(出血) 경쟁을 하도록 유도했다. 레이건은 1970년대의 소련이 고유가(高油價)의 득을 많이 보면서 경제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고, 월남적화(越南赤化)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군사적 모험주의로 해서 경제가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 소련의 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소련 체제를 붕괴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본 것이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공산권 붕괴의 공(功)을 레이건에게 전적으로 돌리고 있다. 대처는 레이건 대통령이 우직하게 밀어붙인, ‘스타워즈’로 불린 ‘우주 전쟁 계획(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이 소련제국 붕괴를 가져온 결정적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SDI란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할 수 있는 기술과 방어망을 가리킨다.
 
 
  소련, 군비경쟁에 손 든 뒤 개혁 개방의 길로
 
레이건 대통령은 대처 영국 수상에게 SDI를 통해 소련을 압박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사람을 달에 착륙시켰던 그 국가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별들의 전쟁’ 계획, 즉 미사일 방어망 연구를 시작하려고 하자 소련 지도부는 겁을 집어먹었다. 미국과 맞서 그런 미사일 방어기술을 개발하고 배치하려면 소련의 경제력과 과학기술력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국가재정(財政)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부문의 무기(武器)개발에 들어갈 돈도 이 대응조치에 전용(轉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
 
  그 이후 소련의 대미(對美)정책은 SDI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집중되었다. 레이건은 소련의 이런 초조한 자세를 잘 알아 SDI를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척했다. 당시 기술로는 완벽한 핵미사일 방어망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레이건은 모른 척하고 이 계획을 밀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처 수상에게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계획을 밀고 나간다면 소련의 경제에 큰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소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결국 소련은 미국의 도전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즉 군비경쟁을 포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대미 우위의 군사력만이 소련 지도부로 하여금 개혁을 거부하도록 한 마지막 보루였으니까. 그런 근거가 무너지면 비로소 경제개혁으로써 국민들을 먹여 살릴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레이건은 SDI를 추진할 때부터 대처 수상에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이것만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배우 시절 좌익과 대결하면서 공산주의의 속성을 체험했던 레이건의 이 무서운 일관성이 소련 군사제국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했으며 그 길은 공산권 해체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核, 김정은의 核
 
  한국이 핵무장과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추진하면 북한 정권은 자신들의 핵이 무력화되는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핵으로 한국을 적화시킬 수도 없고 체제유지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될 때 개혁 개방에 의한 체제유지 방안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북한처럼 취약한 체제는 일단 개혁 개방에 나서면 무너진다. 권력층의 노선 투쟁과 주민들의 불만 폭발이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문제는 북한 정권이 무너지거나 교체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거의 통설(通說)로 굳어지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후회하였다고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핵 보유가 공포의 균형을 이뤄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다는 견해도 있다. 민주국가인 한국의 핵 보유도 동북아에서 같은 역할을 할지 모른다. 한국의 핵무장이 일본의 핵무장을 유발(誘發)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일본은 이미 결심만 하면 6개월 안에 핵무기를 대량 제조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 일본이 핵무장을 결심한다면 그것은 북한 정권 때문이지 한국의 핵무장 때문은 아닐 것이다. 미국, 영국처럼 민주화된 나라가 가진 핵무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난 150년간 민주국가끼리는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미국 정부에 핵 개발을 건의하기로 결심한 것은 히틀러의 핵 개발 때문이었다. 한국의 핵무장론은 히틀러보다 더한 북한의 독재자가 핵폭탄을 들고 있기 때문에 정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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