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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와 앨범

양순열의 〈꿈과 사랑-어머니 나 안의 나, 나 밖의 나〉, 안희숙의 〈드뷔시 imagesⅡ〉

아름다운 것은 도덕적으로 선한 것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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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과 사랑, 어머니 連作… 슬픔, 恨 담은 환상적 이미지
⊙ 드뷔시 imagesⅡ… 건반으로 그린 황량한 사원과 일그러진 달. 몽환적인 이미지
화가 양순열. 중견화가인 그녀는 ‘꿈과 사랑’, ‘어머니’를 주제로 한 연작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
  양순열(梁順烈·60) 화가의 아틀리에(서울 평창동 소재)를 찾았다. 중견화가인 그녀는 ‘꿈과 사랑’, ‘어머니’를 주제로 한 연작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 곱고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색의 실험을 통해 존재의 향기를 드러내려 하지만 그녀만의 ‘미(美)의 이데아’가 무언지 꼬집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난 5월 30일 자신의 아틀리에로 미술평론가 로버트 모건(Robert C. Morgan)과 철학자 김연숙, 미술평론가 이태호가 찾아와 그녀의 그림세계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순열은 자신의 화업(畵業)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버림도 아깝고 버리지 않음도 아까운 뫼비우스의 띠 같은 미술의 세계에서 옳음도 그름도 없는 나와의 긴 싸움이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길을 잃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그의 그림은 대체로 여성성이 느껴진다. 색채가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애매한, 그러나 그녀만의 통찰력을 통해 구체적인 일관성이 두드러진다. 2012년 작인 〈꿈과 사랑-어머니 21〉, 2014년 작인 〈꿈과 사랑-어머니 하늘가는 하늘새1〉을 보라.
 
  꿈속에 있는 듯 차분하고 정적이지만 슬픔, 애절함, 한(恨)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화가는 의식 혹은 무의식 중에 참되거나 선한 것 같은 정신적 가치를 그림에 드러내려 한다. 색에서 미의 역설적인 의미인 추(醜)를 찾기란 어렵다. 철학자 칸트가 얘기하듯, “아름다운 것은 도덕적으로 선한 것의 상징”에 충실하다.
 
 
  어머니, 여성성, 자연, 삶의 무한성
 
양순열의 2012년 작 〈꿈과 사랑–어머니 21〉.
  미의 상징으로 화가가 천착하려는 대상은 여성이다. 여성 중에서도 어머니(모성)에 집중한다.
 
  2014년 작 〈꿈과 사랑-어머니 나 안의 나, 나 밖의 나〉는 대형작(112.1×162.2cm)이다. 흰 여백의 가운데 자리잡은 구(球)형은 원만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한국적 미의 원형이 자연스러운 구의 형태다. 여백은 백색이다. 백색은 밝음을 의미한다. 삼베, 무명의 색깔인 백색은 우리 민족의 삶과 밀착된 색이다.
 
2014년 작 〈꿈과 사랑–어머니 나 안의 나, 나 밖의 나〉.
  한국적 미와 백색, 둥근 구는 어머니라는 상징으로 완성된다. 여성을 드러내는 완벽한 상징을 화가는 어머니로 표현한다. 어머니는 고요, 평화, 조화를 내포하는 단어다. 어머니라는 단어에는 투쟁, 파괴, 불협화음이 들어있지 않다. 또 왁자지껄한 소음이나 갈등, 고통이 없다. 실망감이나 환멸감도 없다. 어머니는 삶의 본질에 가까운 ‘자연’과 같은 존재다. 화가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연의 관심이 사람으로 옮겨졌고, 한번 태어난 인생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의문을 던지기도 했어요.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 인간의 꿈과 사랑의 힘에 대한 관심을 가지다가 점점 ‘어머니’에 대한 주제에 천착하게 됐습니다.”
 
2014년 작 〈꿈과 사랑–어머니 하늘가는 하늘새1〉.
  양순열에 있어 어머니는 칸트가 말하는 ‘숭고(崇高)’와 맥이 닿아 있다. 그렇다고 위협적인 자연의 위대함, 황량하고 거친 바위나 산맥을 통해 숭고를 드러내지 않는다. 양순열에게 숭고란 인내하는 어머니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삶의 무한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미술평론가 로버트 모건은 그녀의 그림에 ‘밝은 힘’이 있다고 했다.
 
  “양순열 작품에는 여성성이 구체적인데 최근 미술에서 드러나는 정치성과는 크게 차별적입니다. 오히려 그런 정치적인 경향에 대안적인 면을 양순열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어요. 불교적 혹은 유교적 이미지도 작품 속에 겹쳐서 드러나는데 모성애가 가지는 근본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결론을 내려고 하진 않습니다. 그녀의 그림에는 뭔가 안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기자는 화가에게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어머니일 수 있지만 어머니는 너무 원초적 존재여서 다양한 방식의 아름다움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조심스레 지적하고 싶다.
 
 
  회화풍의 그림 같은 곡, 드뷔시의 〈영상(images) Ⅰ,Ⅱ〉
 
클로드 드뷔시. 그의 인상주의적 작곡은 유럽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바그너 이후 가장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쇼팽을 듣다가 드뷔시를 들었다. 드뷔시를 듣다가 쇼팽을 들었다. 〈야상곡〉 같은 쇼팽의 작품은 내면적 울림이 풍부한 낭만적 명상을 끌어내는 곡이다.
 
  반면 드뷔시의 몇몇 작품은 극단적으로 감각을 ‘괴롭히는’ 곡이다. 감각의 저 밑바닥에서 쿵쾅쿵쾅 마음의 음계를 두드린다. 그걸 파격적 음악문법이라고 해야 할까. 미의 역설이라고 해야 할까.
 
  드뷔시의 〈영상(images) Ⅰ,Ⅱ〉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림으로 치면 빨강, 파랑, 하양 같은 원색이 난무하고 섬세하게 감각을 다투는 듯하다. 때론 유머스러운 일면도 드러낸다.
 
연세대 음대 명예교수인 안희숙 교수의 피아노 독주회 실황 테이프. 드뷔시의 〈영상(images) Ⅰ,Ⅱ〉가 담겨 있다.
  드뷔시의 음악은 정교한 사실화보다 모네, 마네, 르누아르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에 가깝다. 쇼팽에서 느끼는 평화롭거나 정적인 음악과 다르다.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핏빛 같은 나신이 등장하는 그림 같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을 색채로 표현했다면 드뷔시는 색채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신이 창조한 우주는 총체적으로 평가돼야 하는 통일체다. 그림자가 빛을 더욱 밝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는 다양한 역설로 존재한다. 드뷔시의 음악세계가 그렇다.
 
  안희숙(安熙淑·86) 연세대 음대 명예교수의 연주로 드뷔시의 〈영상Ⅱ〉를 다시 들었다.(1990년 7월 지구레코드 발매) 안 교수는 한국 클래식계의 1.5세대 피아니스트. 한국 근대 문화예술계의 팔방미인 석영(夕影) 안석주(安碩柱·1901~50)의 차녀다.
 
  드뷔시의 색채를 찾으려고 붓을 놀리듯 건반을 오가는 손길이 느껴졌다. 건반에 담긴 진지한 탐색과 도전이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갖게했다. 〈영상Ⅱ〉에 대해 안 교수는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음악과 달리 환상적인 톤의 흐름이 강조되는 곡이다. 빠른 역동성보다는 피아니시모(pianissimo·매우 여리게)가 보다 중요한 곡”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젊은 시절, 한국의 작곡계가 활발해지기 시작할 무렵인 1960~70년대 작곡가 나운영을 비롯해 박재영, 이영자, 나인용, 김동환, 이찬해, 김청묵 등의 신곡들을 도맡아 초연했다. 안 교수는 “제가 이 난곡(難曲)들을 어찌 연주할 수 있었을까. 꿈만 같다. 그 시절엔 도전 속에서 살았다. 그래도 그땐 젊었으니까…”라고 말했다.
 
 
  難曲 연주에 담긴 감동
 
안희숙 교수는 한국의 작곡계가 활발해지기 시작할 무렵인 1960~70년대 작곡가 나운영을 비롯해 박재영, 이영자, 나인용, 김동환, 이찬해, 김청묵 등의 신곡들을 도맡아 초연했다.
  두 달간 반복해서 안 교수의 〈영상Ⅱ〉 연주를 들었다. 건반에 소리를 새기려 한 작곡가와 피아니스트의 마음을 쫓아가 보았다. 나뭇잎을 스치는 종소리, 황량한 사원과 일그러진 달, 동화 속 금빛 물고기… 몽환적이며 회화풍의 인상적인 음악이었다. 특히 2악장에서 드뷔시만의 향취가 짙었다고 할까.
 
안희숙 교수의 연주회 모습이다.
  하지만 때론 듣기를 몇 번이고 중단해야 했다. 건반은 이색적이었지만 너무 자극적으로 들렸다. 피아니스트의 단단한 연주와 별개로 말이다. 그것은 듣는 이의 마음 때문이리라. 일상에 지쳐 마음이 괴로울 때는 들리는 음악 역시 괴로워서 들을 수 없었다. 왜 환상적인 곡이 괴롭게 느껴져야 했는지… 음악이란 마력을 체험하고 말았다.
 
  한국인 작곡가 김청묵의 〈무궁동(Perpetuum Mobile for Paino)〉도 안 교수의 연주로 들었다. 1984년 작곡된 〈무궁동〉은 타악기적 음악 어법을 사용, 한국의 전통적인 다듬이질을 소재로 한 곡이다. 피아노도 타악기의 일종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곡은 다듬이질 소리가 계속되듯 빠른 속도로 쉴 새 없이 연주된다. 피아노의 기교를 강조한 점에서 〈영상Ⅱ〉와 닮은 데가 많았다. 세련되면서도 다소 거칠고, 그러면서도 눈과 귀로 보여주려는 듯하다.
 
  지금까지 한국 클래식계는 너무 연주자 중심으로 흘러왔다. 작곡가가 아무리 좋은 곡을 남겨도 연주가가 외면하면 잊힐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은 달콤하고 귀에 익은 곡만 연주하는 풍토가 짙다. 중국이나 일본 교향악단들은 어찌됐든 자기네 창작곡을 줄기차게 연주한다. 많은 제자들을 키워 낸 안 교수는 국내 작곡가가 열심히 만든 곡들의 초연을 자주 도맡아 연주했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열정을 기억하고 음반으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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