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G20정상회담 당시 오바마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 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아
⊙ 공채시험 통해 入社하고, 소속사의 보호를 받으며, 年功序列에 의해 승진하는 시스템하에서는
경쟁력 있는 기자 못 나와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 공채시험 통해 入社하고, 소속사의 보호를 받으며, 年功序列에 의해 승진하는 시스템하에서는
경쟁력 있는 기자 못 나와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 2010년 11월 11일 오바마 미 대통령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얼마 전 EBS-TV에서 기획 특집물로 방송한 ‘왜 우리는 대학에 가야 하는가’가 세간의 화제다. 내용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현재 대학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대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와 입이 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문제는 중요한 지적이지만 어제오늘 새롭게 제기된 내용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엉뚱한 데서 비롯됐다. 5부에서 등장한 2010년 11월 G20 폐막식 영상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개최된 이 행사의 마지막 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예정에도 없던 질문 기회를 언론인들에게 제공했다. 특히 개최국인 한국 기자들에게 이 기회를 주고자 했다. 자국 대통령도 아닌 미국의 대통령에게 뜻밖의 질문권을 받아서 당황했기 때문인지 카메라에 비친 객석의 기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손을 들고 나서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름 이 침묵이 한국 기자들의 짧은 영어실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국어로 질문하면 통역이 준비돼 있다”는 친절한 부연설명까지 하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하라고 유도했다. 평소 한국의 교육에 대해 공개적으로 칭송을 하던 오바마 대통령이기에 이런 호의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객석으로 화면은 다시 돌아갔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 황당한 침묵을 깨고 나선 기자는 따로 있었다. 중국 CC-TV의 루이 청강 기자였다.
그 중국 기자는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안 하니 자신이 아시아권을 대표해 질문을 해도 좋으냐고, 유창한 영어로 물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고 싶다고 이 기자를 제지했다. 그러자 중국 기자는 다시 “한국 기자들에게 제가 대신 질문해도 될지 물어보면 어떨까요?”라며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졌다.
이 말을 듣고 오바마 대통령은 세 번이나 객석을 바라보며 한국 기자들에게 “No takers?(질문할 사람 없습니까?)”를 외쳤다. 끝내 침묵을 깨고 나선 한국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오바마는 난감한 듯 웃었다. 결국 예정에 없던 질문권은 그 중국 기자가 가져갔다.
그렇게 한국 언론의 망신스러운 장면이 세계 정상들과 타국(他國) 기자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노출됐는데, 왜 그 상황이 기사화하지 않고 있다가 4년이나 흐른 지금 교육프로그램에 등장하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만일 정치인들이 세계 정상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언론이 이를 눈감아 주었을까? 기사를 만드는 사람은 기자들이고, 기자들에 의해 보도되지 않는 사건은 뉴스가 될 수 없다는 언론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이번 경우이다. 의제(agenda)로 채택되지 않은 뉴스는 이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했다가 엉뚱한 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바마가 질문 기회 줘도 꿀먹은 벙어리가 된 한국 기자들
인터뷰는 모든 취재의 기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인터뷰 기회를 잡지 못하는 기자들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비전문인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기자생활 중 만나기 힘든 기회인 세계 권력의 정상에 있는 사람과 시나리오 없는 직접 인터뷰를 할 기회를 놓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망신스런 모습이다. 즉각적으로 어떤 취재진이 현장에 있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G20 당시 취재를 위해 등록한 내외신 기자는 4000여 명. 이들에 대한 취재지원을 하기 위해 별도의 지원단을 꾸려야 할 정도였다. 취재지원단은 그 행사가 있기 4개월 전인 7월부터 각 언론사에 G20 담당기자들을 정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철저하게 기자들의 취재를 지원하고 관리했다. 행사 즈음에는 미디어센터를 설치해 내외신 기자들에게 G20에서 다뤄질 의제에 대한 브리핑도 하루에 3~4차례씩 실시했다. 이 자리에 금감위원장까지 등장할 정도로 브리핑은 구체적인 진행상황과 그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에 의해 세계 정상들에 대한 취재를 충분히 뒷받침할 환경이었다.
실제 취재현장에 등장한 기자들은 3000명 선으로, 이 중 절반 정도가 국내 기자들이었다. 대형 국제행사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국내 주요 언론사의 경우 최소한 10명 정도로 취재팀을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몇몇 기자 중에 말주변 없는 사람들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변명이 도저히 통할 수 없는 규모이다.
이런 취재 시스템 속에서 오바마의 제의를 받아들일 기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건 한국 언론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한국 기자들 스스로도 경쟁력을 갖출 방안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의 기자들은 과연 어떤 직업관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EBS의 분석대로 단지 잘못된 대학교육 탓에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필자도 현재 대학에서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요즘 학생 중 하고 싶은 말 참아 가며 교수들 말을 듣는 역할만 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다. 많은 수업을 토론 형식로 진행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언론학도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입을 닫고 수업시간을 흘려 보내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런 태도로는 좋은 학점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따라 진행되는 청와대 기자회견
이들이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거쳐 언론사에 들어간 후는 어떤가? 취재환경은 필자가 한창 기자생활을 하던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G20 이야기를 했으니 당시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2009년 9월 30일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회견이 있었다. 주제는 2010년 G20 정상회의 유치를 홍보하는 자리였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대통령의 모두발언 이후 기자들의 문답이 이어졌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G20 의제와 친서민정책, 개헌론, 북핵 문제 등을 물었다.
당시 정국의 쟁점이었던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문제를 묻는 기자는 하나도 없었다. 이유는 G20 정상회의 유치 의미가 희석될 것을 우려한 청와대가 사전에 세종시 질문을 말아 달라고 요청했고, 소위 기자단이 이를 수용하면서 기자회견은 시나리오대로 ‘G20 유치 보고대회’로 잘 치장된 채 끝났다. 대부분의 청와대 기자회견은 돌발상황 없이 이런 시나리오와 정해진 질문자(언론사별로 배당)의 질문 순서로 진행된다. 드라마를 한 편 찍는 셈이다.
물론 언론 선진국이라는 미국에도 대통령 회견의 경우 관행적인 질문 순서가 있다. 유력 매체, 고참 순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질문을 미리 조율하진 않는다. 그래서 답에 따라서는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관습에 익숙한 오바마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우선권을 준 건 깜짝쇼가 아니다.
기자 출신 정치인은 많지만…
필자도 1996년 기자연수 케이스로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자청해 CNN 워싱턴 지부에서 인턴 기자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정치부에 배속돼 워싱턴 전체 출입처를 다 돌아다녀 볼 기회가 있었다. 백악관도 물론 포함됐다.
이곳에서 50년 동안 출입기자로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전설의 여기자 헬렌 토머스도 만났다. 그녀는 기자단 맨 앞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뭐냐. 석유냐, 이스라엘이냐”는 돌직구 질문을 거침없이 날릴 정도로 대통령과 맞서는 힘을 가진 언론인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언론은 확실히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1년이 다 되도록 국내 언론과 시나리오성 회견조차 한 번 하지 않았어도 어느 언론사 하나 심각하게 문제 삼는 곳이 없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대통령과 국민을 잇는 소통의 끈이 바로 언론인데도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 임기 4년 동안 78차례나 회견에 임했다. 월 평균 1.6회가 넘는다. 그래도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회견이 적다고 노골적으로 불평했다. 참 비교되는 장면이다.
이렇게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기자 출신 정치인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잘나가는 정치부 기자나 TV 앵커는 짧은 시간 내에 권력의 문앞에 서 있곤 한다.
언론인의 이 두 가지 얼굴을 국민들이 어떻게 지켜볼지 언론인들 스스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세계적 경쟁력이라는 틀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가 언론이라는 준엄한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어려운 언론고시를 뚫고 들어온 패기만만한 신입 기자들의 기세를 그대로 살려 할 말 하고 쓸 말 쓰는 기자로 키워 내기 위해서 어떤 언론환경이 만들어져야 할까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 언론이 본분을 제대로 못하면 혈액순환 장애에 걸린다. 한국은 지금 그런 상태이다.
선진국에는 기자 공채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언론 선진국에서 기자를 양성해 내는 방법을 한 번 유심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는 사실 언론고시라는 게 없다. 작은 지역 언론사나 군소 규모 매체에서 시작해 스카우트를 거치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형 언론사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스카우트 과정은 모두 그 기자가 쓴, 혹은 방송한 뉴스가 바탕이다. 기자의 본업인 취재력과 문장력(혹은 방송 프레젠테이션 능력)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겪어 내다 보니 늘 치열하게 취재한다. 빛이 나야 남의 눈에 띄기 때문이다.
스카우트가 거듭될수록 연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유명 언론인은 연예인 못지않은 부자이다. 세계적인 명성도 얻는다. 물론 계약제라 고용관계는 불안하다. 하지만 이런 경쟁 속에서 기자들은 정말 읽을 만한 기사를 만들어 낸다.
기사를 접하는 독자는 만족도가 높다. 그래서 우리까지 해외 유수 언론에서 다루는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다.
반면 국내 기자들은 어느 곳에서 첫발을 내딛느냐가 평생을 좌우할 정도로 언론사 선택이 중요하다. 첫발은 물론 언론고시를 통해 입사해야만 그 언론사 내 성골(聖骨)로 최고의 자리까지 성장할 수 있다.
수습 기수(期數) 문화는 법조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은 입사 후 일반 직장인과 다름없는 승진과정을 거치면서 호봉제에 의해 월급을 받고 그 언론사 사람으로 보호받으며 오래 일하다 정년퇴직하는 것을 꿈꾼다.
간혹 기자라는 신분을 적절하게 잘 이용해 정치인이나 교수 등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다른 직업을 갖는 경우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면 외부에서 스카우트돼 들어온 기자들은 ‘골품제(骨品制)’에 걸려 어느 순간 경력 단절을 겪어야 한다.
언론사 내부가 이런 분위기인 데다가 취재환경 또한 ‘언론통제’에 기반을 둔 보도지원 문화에 물들어 있으니 자신의 색채를 뚜렷하게 드러낼 기자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 없는 언론 풍토, 되돌아봐야
국내에서 좋은 언론인이 나오려면, 기업들이 무한경쟁 체제에서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는 것처럼 언론도 끊임없이 그 사회 안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경쟁할 수 있는 틀이 마련돼야 한다. 좋은 직장인으로 순치될 것이 아니라 기자로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늘 경쟁을 피할 수 없어야만 한다. 또 그런 경쟁을 통해 선택된 기자들은 그 직업만으로도 충분히 부유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쥘 수 있어야 하며, 사회적 존경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야 한눈을 팔지 않는다.
이런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당장 답을 찾기는 어렵다. 지금의 틀 속에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기자들이 손을 놓고 이 환경에 매몰돼서 세월을 보내선 안 된다. 갈 길은 멀지만, 기자들 자신의 노력에 의해 바꿀 것은 바꿔 가야 한다.
당장 올 4월에 방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질문 잘하는 한국 기자’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더 이상 세계무대에서 꿀 먹은 벙어리 같은 한국 기자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엉뚱한 데서 비롯됐다. 5부에서 등장한 2010년 11월 G20 폐막식 영상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개최된 이 행사의 마지막 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예정에도 없던 질문 기회를 언론인들에게 제공했다. 특히 개최국인 한국 기자들에게 이 기회를 주고자 했다. 자국 대통령도 아닌 미국의 대통령에게 뜻밖의 질문권을 받아서 당황했기 때문인지 카메라에 비친 객석의 기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손을 들고 나서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름 이 침묵이 한국 기자들의 짧은 영어실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국어로 질문하면 통역이 준비돼 있다”는 친절한 부연설명까지 하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하라고 유도했다. 평소 한국의 교육에 대해 공개적으로 칭송을 하던 오바마 대통령이기에 이런 호의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객석으로 화면은 다시 돌아갔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 황당한 침묵을 깨고 나선 기자는 따로 있었다. 중국 CC-TV의 루이 청강 기자였다.
그 중국 기자는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안 하니 자신이 아시아권을 대표해 질문을 해도 좋으냐고, 유창한 영어로 물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고 싶다고 이 기자를 제지했다. 그러자 중국 기자는 다시 “한국 기자들에게 제가 대신 질문해도 될지 물어보면 어떨까요?”라며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졌다.
이 말을 듣고 오바마 대통령은 세 번이나 객석을 바라보며 한국 기자들에게 “No takers?(질문할 사람 없습니까?)”를 외쳤다. 끝내 침묵을 깨고 나선 한국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오바마는 난감한 듯 웃었다. 결국 예정에 없던 질문권은 그 중국 기자가 가져갔다.
그렇게 한국 언론의 망신스러운 장면이 세계 정상들과 타국(他國) 기자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노출됐는데, 왜 그 상황이 기사화하지 않고 있다가 4년이나 흐른 지금 교육프로그램에 등장하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만일 정치인들이 세계 정상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언론이 이를 눈감아 주었을까? 기사를 만드는 사람은 기자들이고, 기자들에 의해 보도되지 않는 사건은 뉴스가 될 수 없다는 언론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이번 경우이다. 의제(agenda)로 채택되지 않은 뉴스는 이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했다가 엉뚱한 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바마가 질문 기회 줘도 꿀먹은 벙어리가 된 한국 기자들
인터뷰는 모든 취재의 기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인터뷰 기회를 잡지 못하는 기자들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비전문인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기자생활 중 만나기 힘든 기회인 세계 권력의 정상에 있는 사람과 시나리오 없는 직접 인터뷰를 할 기회를 놓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망신스런 모습이다. 즉각적으로 어떤 취재진이 현장에 있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G20 당시 취재를 위해 등록한 내외신 기자는 4000여 명. 이들에 대한 취재지원을 하기 위해 별도의 지원단을 꾸려야 할 정도였다. 취재지원단은 그 행사가 있기 4개월 전인 7월부터 각 언론사에 G20 담당기자들을 정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철저하게 기자들의 취재를 지원하고 관리했다. 행사 즈음에는 미디어센터를 설치해 내외신 기자들에게 G20에서 다뤄질 의제에 대한 브리핑도 하루에 3~4차례씩 실시했다. 이 자리에 금감위원장까지 등장할 정도로 브리핑은 구체적인 진행상황과 그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에 의해 세계 정상들에 대한 취재를 충분히 뒷받침할 환경이었다.
실제 취재현장에 등장한 기자들은 3000명 선으로, 이 중 절반 정도가 국내 기자들이었다. 대형 국제행사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국내 주요 언론사의 경우 최소한 10명 정도로 취재팀을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몇몇 기자 중에 말주변 없는 사람들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변명이 도저히 통할 수 없는 규모이다.
이런 취재 시스템 속에서 오바마의 제의를 받아들일 기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건 한국 언론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한국 기자들 스스로도 경쟁력을 갖출 방안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의 기자들은 과연 어떤 직업관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EBS의 분석대로 단지 잘못된 대학교육 탓에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필자도 현재 대학에서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요즘 학생 중 하고 싶은 말 참아 가며 교수들 말을 듣는 역할만 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다. 많은 수업을 토론 형식로 진행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언론학도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입을 닫고 수업시간을 흘려 보내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런 태도로는 좋은 학점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따라 진행되는 청와대 기자회견
이들이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거쳐 언론사에 들어간 후는 어떤가? 취재환경은 필자가 한창 기자생활을 하던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G20 이야기를 했으니 당시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2009년 9월 30일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회견이 있었다. 주제는 2010년 G20 정상회의 유치를 홍보하는 자리였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대통령의 모두발언 이후 기자들의 문답이 이어졌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G20 의제와 친서민정책, 개헌론, 북핵 문제 등을 물었다.
당시 정국의 쟁점이었던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문제를 묻는 기자는 하나도 없었다. 이유는 G20 정상회의 유치 의미가 희석될 것을 우려한 청와대가 사전에 세종시 질문을 말아 달라고 요청했고, 소위 기자단이 이를 수용하면서 기자회견은 시나리오대로 ‘G20 유치 보고대회’로 잘 치장된 채 끝났다. 대부분의 청와대 기자회견은 돌발상황 없이 이런 시나리오와 정해진 질문자(언론사별로 배당)의 질문 순서로 진행된다. 드라마를 한 편 찍는 셈이다.
물론 언론 선진국이라는 미국에도 대통령 회견의 경우 관행적인 질문 순서가 있다. 유력 매체, 고참 순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질문을 미리 조율하진 않는다. 그래서 답에 따라서는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관습에 익숙한 오바마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우선권을 준 건 깜짝쇼가 아니다.
기자 출신 정치인은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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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4일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이 전설적인 여기자 헬렌 토머스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
이곳에서 50년 동안 출입기자로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전설의 여기자 헬렌 토머스도 만났다. 그녀는 기자단 맨 앞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뭐냐. 석유냐, 이스라엘이냐”는 돌직구 질문을 거침없이 날릴 정도로 대통령과 맞서는 힘을 가진 언론인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언론은 확실히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1년이 다 되도록 국내 언론과 시나리오성 회견조차 한 번 하지 않았어도 어느 언론사 하나 심각하게 문제 삼는 곳이 없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대통령과 국민을 잇는 소통의 끈이 바로 언론인데도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 임기 4년 동안 78차례나 회견에 임했다. 월 평균 1.6회가 넘는다. 그래도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회견이 적다고 노골적으로 불평했다. 참 비교되는 장면이다.
이렇게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기자 출신 정치인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잘나가는 정치부 기자나 TV 앵커는 짧은 시간 내에 권력의 문앞에 서 있곤 한다.
언론인의 이 두 가지 얼굴을 국민들이 어떻게 지켜볼지 언론인들 스스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세계적 경쟁력이라는 틀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가 언론이라는 준엄한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어려운 언론고시를 뚫고 들어온 패기만만한 신입 기자들의 기세를 그대로 살려 할 말 하고 쓸 말 쓰는 기자로 키워 내기 위해서 어떤 언론환경이 만들어져야 할까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 언론이 본분을 제대로 못하면 혈액순환 장애에 걸린다. 한국은 지금 그런 상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언론 선진국에서 기자를 양성해 내는 방법을 한 번 유심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는 사실 언론고시라는 게 없다. 작은 지역 언론사나 군소 규모 매체에서 시작해 스카우트를 거치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형 언론사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스카우트 과정은 모두 그 기자가 쓴, 혹은 방송한 뉴스가 바탕이다. 기자의 본업인 취재력과 문장력(혹은 방송 프레젠테이션 능력)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겪어 내다 보니 늘 치열하게 취재한다. 빛이 나야 남의 눈에 띄기 때문이다.
스카우트가 거듭될수록 연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유명 언론인은 연예인 못지않은 부자이다. 세계적인 명성도 얻는다. 물론 계약제라 고용관계는 불안하다. 하지만 이런 경쟁 속에서 기자들은 정말 읽을 만한 기사를 만들어 낸다.
기사를 접하는 독자는 만족도가 높다. 그래서 우리까지 해외 유수 언론에서 다루는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다.
반면 국내 기자들은 어느 곳에서 첫발을 내딛느냐가 평생을 좌우할 정도로 언론사 선택이 중요하다. 첫발은 물론 언론고시를 통해 입사해야만 그 언론사 내 성골(聖骨)로 최고의 자리까지 성장할 수 있다.
수습 기수(期數) 문화는 법조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은 입사 후 일반 직장인과 다름없는 승진과정을 거치면서 호봉제에 의해 월급을 받고 그 언론사 사람으로 보호받으며 오래 일하다 정년퇴직하는 것을 꿈꾼다.
간혹 기자라는 신분을 적절하게 잘 이용해 정치인이나 교수 등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다른 직업을 갖는 경우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면 외부에서 스카우트돼 들어온 기자들은 ‘골품제(骨品制)’에 걸려 어느 순간 경력 단절을 겪어야 한다.
언론사 내부가 이런 분위기인 데다가 취재환경 또한 ‘언론통제’에 기반을 둔 보도지원 문화에 물들어 있으니 자신의 색채를 뚜렷하게 드러낼 기자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 없는 언론 풍토, 되돌아봐야
국내에서 좋은 언론인이 나오려면, 기업들이 무한경쟁 체제에서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는 것처럼 언론도 끊임없이 그 사회 안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경쟁할 수 있는 틀이 마련돼야 한다. 좋은 직장인으로 순치될 것이 아니라 기자로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늘 경쟁을 피할 수 없어야만 한다. 또 그런 경쟁을 통해 선택된 기자들은 그 직업만으로도 충분히 부유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쥘 수 있어야 하며, 사회적 존경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야 한눈을 팔지 않는다.
이런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당장 답을 찾기는 어렵다. 지금의 틀 속에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기자들이 손을 놓고 이 환경에 매몰돼서 세월을 보내선 안 된다. 갈 길은 멀지만, 기자들 자신의 노력에 의해 바꿀 것은 바꿔 가야 한다.
당장 올 4월에 방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질문 잘하는 한국 기자’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더 이상 세계무대에서 꿀 먹은 벙어리 같은 한국 기자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