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김정출 청구학원 이사장

“한일 관계의 든든한 가교, 세계의 주역 기른다”

  •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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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동포 2세로, 병원, 30여 개의 요양원·보육원, 청구학원 운영… 사재 지원해 《토지》 완역
⊙ 재일동포, 한국인, 일본인은 물론 아프리카 학생들도 재학… 한국어·일본어·영어 삼각 교육 시스템
⊙ 기존 민족학교와 달리 “일본 사회 주류로 진출하는 인재 양성”에 주력
⊙ “기숙사비·수업료 모두 합쳐 월 8만~9만 엔(약 80만~90만원), 연간 1000만원 남짓”
⊙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방황했던 학생들, 기숙사에서 설거지·세탁 직접 하며 일본 의·치·약대 진학”

金正出
1946년생. 일본 아오모리(青森)현 출생. 아오모리고등학교·홋카이도대 의학부 졸업 / 의료법인 정신회·사회복지법인 청구·학교법인 청구 이사장
청구학원 츠쿠바 중·고등학교 정문 앞에 선 김정출 이사장. 사진=이정현
지난 4월 8일 오전, 일본 이바라키(茨城)현 이시오카(石岡)시 츠쿠바산 자락. 만개한 벚꽃 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청구학원 츠쿠바 중·고등학교 교정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날은 제13회 입학식이 열리는 날로, 학교의 새 학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청구학원은 일본 학교교육법 제1조의 적용을 받는 이른바 ‘1조교(一條校)’로, 일본 정규 학교와 같은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 7만3000㎡(약 2만2000평)에 이르는 교정에는 테니스장만 11면이 조성돼 있으며, 모든 교과 수업은 일본어로 진행된다. 학교를 세운 김정출 이사장은 재일동포 2세로, 111개 병상을 갖춘 미노리(美野里) 병원과 30여 개의 요양원·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전 20권) 일본어판 발간을 후원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본어판은 지난해 완간되었으며, 《마이니치신문》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날 신입생 11명이 빳빳한 새 교복을 차려입고 강당에 입장하자, 학부모들로 가득한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곳에서 꼭 의대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학부모들의 속삭임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최근 청구학원은 저렴한 학비와 일본 국립대 의대 합격 실적을 바탕으로 일본 유학 시장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어·일본어·영어’ 삼각 교육 시스템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김정출 이사장은 지난 13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우리 학교는 의학부와 치의학부, 그리고 주요 국립대에 합격생을 배출하며 그 저력을 입증했습니다.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과정은 인생의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는 이어 “‘한국어·일본어·영어’의 삼각(三角) 교육 시스템을 통해 학생들이 일본 내 국립대와 의학부에 진학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인재를 키우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입학식이 끝난 뒤에도 교정에는 학생들의 웃음과 웅성거림이 남아 있었다. 이 활기 속에서 만난 김 이사장은 차분하되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의료인으로 출발해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은 자연스럽게 ‘민족 정체성’과 ‘교육’이라는 두 축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같은 날 오후, 이사장으로 근무하는 미노리 병원에서 다시 만난 김 이사장은 “단순한 학교를 넘어, 대학 진학에 강한 최고의 민족학교로 만들겠다”며 굳은 의지를 밝혔다.
 
 
  “누군가 해주길 기다리기보다 내가 직접 해보자”
 
미노리 병원 접수실 앞 김정출 이사장(왼쪽). 츠쿠바 중·고등학교의 무궁화 상징.

  - 의료인으로 시작했는데 어떻게 학교를 세우게 되었습니까.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된 ‘한국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재일동포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일본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제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사실 제 자녀들도 민족 교육을 받게 했지만, 기존의 교육 환경만으로는 일본 사회 적응과 민족 정체성 확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 미흡한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 해주길 기다리기보다 내가 직접 나서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했습니다. 물론 교육기관 설립이 개인의 힘으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믿고 뛰어들었습니다.”
 
  - 학교 법인명 ‘청구(靑丘)’는 무슨 뜻입니까.
 
  “‘청구’는 과거 중국에서 한국을 일컫던 별칭으로 ‘푸른 언덕’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이름을 직접적으로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은근하면서도 깊이 있게 우리의 뿌리와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이라 생각하여 결정했습니다.”
 
  김 이사장이 직접 작사한 교가(校歌)에는 고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자부심이 서려 있다. “백두산 한라산의 기상을 안고/ 아름다운 금수강산 위용 떨치네/ 배우고 또 배워서 선봉이 되어…”로 이어지는 가사에는 우리 땅에 대한 뜨거운 애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교 법인명인 ‘청구’ 역시 이러한 민족적 정체성을 은근하면서도 깊이 있게 나타내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정규 ‘제1조교’
 
  - 민족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외에서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혈통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서, 한국인으로서의 깊은 자부심을 품게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일반 학교에서는 결코 채워줄 수 없는 영역이죠. 일반 학교에만 다니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일본화’되어 우리 것을 잊기 마련인데, 저는 그것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유구한 역사와 독자적인 언어, 그리고 빛나는 문화가 있습니다. 비록 일본에 살고 있지만, 할아버지 세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고 한국어와 역사를 알아야 비로소 자부심이 생깁니다. 현재 한국은 디지털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앞설 만큼 저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학생들이 이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청구학원의 존재 이유입니다.”
 
  일본 현지에서 정규 ‘1조교’로 공인받기 위해서는 학교 시설과 교원 자격, 그리고 학습 지도 요령에 따른 커리큘럼까지 일본 정부가 제시하는 엄격한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1조교 지위를 획득하면 정규 교육기관으로서 다음과 같은 법적 권리와 혜택을 보장받는다.
 

  첫째, 공신력 있는 정식 학력 인정이다. 졸업과 동시에 일본 정규 학력이 인정되므로 별도의 검정고시를 거치지 않고도 국립대를 포함한 모든 상급 학교에 진학할 자격이 주어진다.
 
  둘째, 정부 보조금 수령을 통한 교육 환경 개선이다. 사립학교일지라도 운영비 일부를 일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학부모의 학비 부담 경감으로 이어진다.
 
  셋째, 사회적 복지 및 신뢰도 확보다. 학생들에게는 철도 요금 할인(학생 할인)을 비롯한 각종 복지 혜택이 일본 현지 학생들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한 사회적 신뢰도가 높아 기업 채용이나 국가 자격시험 응시 시 정규 졸업생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다.
 
 
  “일본 내 최상위권 대학 진학 목표”
 
츠쿠바 중·고등학교 테니스장.

  - 학교 운영 14년 차를 맞았습니다. 그간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무엇입니까.
 
  “단연 ‘실력으로 증명하는 학교’로 자리 잡았다는 점입니다. 일본 내 한국계 학교가 여럿 있지만, 저희는 일본 정부가 공인한 정규 교육기관(1조교)으로서 단순히 민족 교육에 머물지 않습니다. 일본 현지 학교보다 더 나은 입시 실적을 내고, 더 좋은 대학에 학생들을 보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시험에 강한 학교’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 교토국제고나 오사카 건국, 금강학교 등 기존 한국계 학교들과는 어떤 점이 다릅니까.
 
  “기존의 학교들이 해방 직후 귀국하지 못한 재일동포 자녀들의 민족 교육을 위해 세워졌다면, 우리 학교는 설립 취지부터 궤를 달리합니다. 우리는 순수하게 일본 내 최상위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진학 특화 학교’입니다. 대학 입시라는 실전적 성과를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그 인재들이 일본 사회 주류로 진출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학교의 명확한 차별점입니다.”
 
  -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오며 체감한 일본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일본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깊이 뿌리 박힌 나라입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훨씬 우호적이고 그 저력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지요. 하지만 그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함을 맹목적으로 믿기보다, 그들이 가진 엄격한 질서와 꼼꼼한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방 이후 우리 조상들이 타국 땅에서 끼니를 걱정하며 모진 세월을 견뎌온 과정을 곁에서 보고 자랐습니다. 살아계셨다면 120세쯤 되셨을 우리 1세대 동포들이 남한에서 건너와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일궈낸 눈물의 역사가 제 몸에는 ‘넋’처럼 배어 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후손들은 더 실력을 갖춰 일본 사회에서 당당히 인정받아야 합니다.”
 
  - 입시 성적, 특히 의대 진학률을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재일동포 사회에서 자녀를 의사나 변호사로 키우려는 열망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실제로 동포 자녀들이 의사가 되는 비율은 일본인보다 3~5배가량 높습니다. 전문 기술을 갖추면 차별의 벽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전문직으로 성공해 일본 사회에 깊이 편입될수록, 민족적 정체성은 점차 희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력은 갖추되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게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 학교가 단순한 입시 학원을 넘어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는 이유입니다.”
 
  - 재일동포 자녀들에게 ‘뿌리 교육’을 이토록 강조하는 핵심은 무엇입니까.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더라도 내 근간이 어디인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4대, 5대가 지나도 ‘내 뿌리는 한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내면이 단단해집니다. 성공에만 몰두해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매년 히타치 광산의 강제 징용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합니다. 선조들의 고난과 역사를 몸소 배우며 기억하는 과정이야말로, 청구학원이 일본 내 여타 민족학교들과 다른 가장 숭고한 지점입니다.”
 
  - 현재 학생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습니까.
 
  “재일동포와 한국 유학생은 물론, 순수 일본인 학생들과 중국 조선족, 심지어 아프리카 출신 학생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어우러지는 환경이라야 진정한 교육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비전과 포용력, 실력과 인성
 
  - 일본 현지 학생들은 어떤 이유로 청구학원을 선택합니까.
 
  “한국어 습득과 대학 진학이라는 두 가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옵니다. 특히 여학생들은 한류(韓流)의 영향으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고, 학교의 체계적인 진학 커리큘럼을 보고 입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한국어와 글로벌 역량을 키우기 위한 교육 과정은 어떻게 운영됩니까.
 
  “한국어 수업은 중학교 주 5시간, 고등학교는 학년에 따라 2~4시간을 배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내 학교 중 최상위 수준입니다. 여기에 영어 교육도 대폭 강화했습니다. 중학교 주 5시간에 이어 고등학교는 주 9시간에 달하는 집중 교육을 실시합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인재라야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학부모들이 청구학원을 신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우선 의대와 약대 등 명문대 진학에 대한 확실한 비전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포용력입니다.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잠시 방황했던 학생들도 우리 학교의 규칙 안에서 적응하며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이끕니다. 실력과 인성을 동시에 보듬는 것이 우리 교육의 힘입니다.”
 
 
  “돈 없는 평범한 집 아이도 의대 진학 가능”
 
점심 식사 후 학생들과 함께 식기를 치우고 있는 김정출 이사장.

  - 최근 한국에서 일본 의대 유학에 관심이 큽니다. 실제 어떤가요.
 
  “공부 실력을 떠나 학교 생활에 성실히 임할 의지만 있다면 대학 진학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특히 의·치·약대 진학 성과가 두드러지는데, 그 주역은 대부분 한국 유학생들입니다. 한국은 교육 격차가 심화되어 평범한 가정의 아이가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이곳에서는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 유학 비용이 한국의 웬만한 사교육비보다 저렴하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기숙사비와 수업료를 모두 합쳐 월 8만~9만 엔(약 80만~90만원), 연간 1000만원 남짓입니다. 강남의 고액 사교육비에 비하면 훨씬 경제적이죠. 선진국에서 이 정도 비용으로 유학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저는 경제적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치는 아이들을 위해 이 학교를 세웠습니다. 부족한 학교 운영비는 이사장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 의대 합격을 위해 학교 차원에서 어떤 맞춤형 지원을 제공합니까.
 
  “의지는 있으나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교사들이 방과 후는 물론 점심시간까지 할애하며 지도합니다. 이과 수학이나 물리, 화학 등 심화 과목은 외부 전문 강사를 초빙해 맞춤식 교육을 진행하고, 보충 수업료 또한 전액 학교에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90분의 점심시간 중 2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는 학생들, 그런 아이들이 결국 의대에 갑니다.”
 
 
  “‘지식’ 이전에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이 우리 학교의 철학”
 
청구학원 이사장실에 걸려 있는 태극기와 ‘청구학원만세’ 표구.

  - 일본 대입 시스템이 한국 학생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유리한가요.
 
  “일본 국립대에는 ‘지역 인재 선발 제도’가 있습니다. 한국의 수능 격인 공통 시험 없이 내신과 본고사, 면접만으로 선발하는 전형이죠. 일본어 시험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수학과 과학, 영어 기초가 탄탄한 한국 학생들은 본고사에서 충분히 고득점을 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면접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 기숙사 생활을 통한 ‘자립심 교육’을 특히 강조한다고 들었습니다.
 
  “교육의 시작은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기숙사생들은 식사 준비부터 설거지, 세탁까지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라던 아이들이 5~6년 뒤 몰라보게 성장한 모습을 보며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지식’ 이전에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이 우리 학교의 철학입니다.”
 
  - 디지털 기기 관리 등 생활 규칙이 엄격한 편인데,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데, 아침에 수거해 방과 후에 돌려주며, 규칙 위반 시에는 단계별 압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점차 휴대폰 너머의 세상에 눈을 돌리고, 휴대폰 통제 덕분에 학습 효율이 높아지니 학부모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노인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 한국의 극심한 ‘의대 열풍’은 어떻게 보나요.
 
  “현재 한국의 입시 현장은 비정상적인 과열 상태입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기초 과학이나 공학을 외면하고 지방 의대로만 쏠리는 현상은 국가 미래를 생각할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을 ‘자산 투자’로 보는 인식에 있습니다. 부모가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으니 자녀는 수익이 보장되는 전문직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죠.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꾸준히 배출하는 힘은 어려울 때도 기초 과학에 묵묵히 투자해 온 저력에서 나옵니다. 교육은 부(富)를 축적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숭고한 업(業)이어야 합니다.”
 
  - 한국도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합니다.
 
  “급격한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설 확충보다 중요한 것은 노인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입니다. 단순히 수명을 연장하는 것을 넘어, 노년의 인간다운 존엄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에 청년들이 출산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이 키우는 데 드는 천문학적인 교육비와 경쟁적 환경이 ‘책임질 수 없다면 낳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최근 일본도 한국의 이런 부정적인 단면을 닮아가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교육이 희망이 아닌 짐이 된 사회에서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누구나 배움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교육 개혁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재 투입해 《토지》 완역 지원
 
  - 한일 관계 개선과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구상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는지요.
 
  “한국의 청년들과 직장인들이 일본의 성공 경험과 문화를 압축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일종의 ‘한일 정경숙(政經塾)’을 설립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노하우를 공유(共有)하는 장(場)이 마련된다면 전 세계 인재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진정한 한일 관계의 도약은 한국이 스스로 더 당당해질 때 가능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국력 면에서 충분히 성장했습니다. 과거의 피해 의식이나 과장된 서사에서 벗어나, 근대사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역사적 사실 앞에 당당해질 때, 비로소 상대의 논리에서도 일리를 발견하고 차원 높은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를 일본어로 완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의 애환과 생활상을 일본 사회에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사재(私財) 6000만 엔 이상을 투입하며 완역을 지원했죠. ‘왜 무모하게 그런 데에 큰돈을 쓰느냐’는 우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문학을 통해 일본인과 우리 민족의 정서와 역사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책이 출간된 후 일본의 지식인들이 ‘한국에 이토록 위대한 문학적 자산이 있었느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일본 사회의 심장부에 우리 문화의 뿌리를 깊이 심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료인으로서 얻은 성취만큼이나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박경리 《토지》 일본어 완역본은 2025년 《마이니치신문》의 ‘제79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기획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토지》는 구한말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삶의 궤적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한국 문학은 일본 내에서 단편 위주로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토지》 20권 완역은 일본 지식인 사회에 우리 문학을 알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학교 설립을 위해 45억 엔(약 450억원)이라는 사재를 출연하셨습니다.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아내와 어머니를 수차례 설득하며 ‘이것이 내 생의 마지막 소명(召命)이자 하고 싶은 일이다, 부디 이해해 달라’고 간곡히 뜻을 전했습니다. 자식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성공했기에 결국 제 진심을 받아들여주었습니다. 과거 병원 운영이 탄탄했던 시기에 과감히 결단을 내린 덕분이지,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웠다면 아마 시도조차 못 했을 겁니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믿음 하나로 도전한 길입니다.”
 
  - 한일 관계의 굴곡 속에서 일본 내 정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일본 정부의 세금 지원을 받는 정식 학교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우리 학교가 일본 지역사회와 정부의 깊은 신뢰를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한일 관계가 진정으로 개선되려면 한국이 더 당당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이제 과거의 약소국이 아닙니다. 과장되거나 편향된 서사에서 벗어나, 근대사의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가르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일본 사립학교의 핵심은 ‘자율’과 ‘개방성’
 
  - 일본의 사립학교 제도가 한국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일본 사립학교의 핵심은 ‘자율성’과 ‘개방성’입니다. 거주지에 상관없이 전국 어디서든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고, 학교는 독자적인 교육 철학을 펼칠 수 있습니다. 운영비의 약 40%를 정부가 지원하되, 나머지 60%에 대해서는 학교가 온전히 책임을 지는 구조죠. 사립학교의 명칭만 유지할 뿐 자율성이 제한적인 한국의 현실과는 대조적입니다.”
 
  - 원래 경제학에 관심이 많으셨다고요? 의사가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 어머니가 회초리를 드시면서 ‘너 공부 잘하니 밥 굶지 않는 길로 가라’ 하셔서 의대에 간 겁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정치와 경제는 제 관심사입니다. 정치가 잘되려면 백성을 잘 먹여야 하니 경제를 알아야 하고, 경제가 돌아가려면 정치가 바로 서야 해요. 북한도 김일성이 경제를 망쳐서 저 모양이 된 것 아닙니까.”
 
  - 자녀가 3명인데 키우는 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사모님에 대한 애정도 각별해 보입니다.
 
  “셋 다 의대에 갔지만, 제가 가라고 한 적은 없어요. 집사람이 고생 많이 했지요. 애들 키우고 병원 걱정하고… 지금도 바쁘게 살아요. 아침저녁으로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나도 저 길(의사)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재수, 삼수까지 버티며 어렵게 의사가 된 아이들이 한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게 오랜 세월 쌓인 노동과 뒷바라지의 결과 같아 마음이 찡하기도 합니다.”
 
 
  ‘왕진 문화’와 ‘지역 인재 전형’
 
  - 일본의 의료 시스템 중 한국 사회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환자를 직접 찾아가는 ‘왕진 문화’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의사가 문턱을 넘는 것은 의료의 본질인 ‘돌봄’을 상징합니다. 또한 일본의 ‘지역 인재 전형’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 졸업생 중에도 이 전형으로 일본 의대에 진학한 학생이 있는데, 졸업 후 9년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받습니다. 최근 한국도 이를 도입하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연봉 3억원을 제안해도 지방에 가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정신의 차이’입니다. 도시와의 격차 문제도 있겠지만,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고 사람을 돌보겠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키워주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고국인 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한국은 지금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마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길을 가느냐는 전적으로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의 성공 경험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한국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조선 사람이 일본을 넘어 세계의 주역으로 앞서 나가는 모습을 생전에 꼭 보고 싶습니다. 그 답은 오직 ‘교육’에 있습니다. 우리 청구학원에서 길러낸 인재들이 장차 한일 관계의 든든한 가교가 될 것입니다. 나라가 미처 다 하지 못하는 일을 민간에서라도 메꾸고 싶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재를 키워내고 싶기에, 그날을 보고 싶어서… 조금 더 오래 살아야겠습니다.”⊙
 
청구학원 츠쿠바 중·고등학교 제13회 입학식 현장

“우리 청구학원은 일본인, 재일동포, 한국 유학생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


입학식에서 학생들에게 축사하는 김정출 이사장.

  2026년 4월 8일 오전, 일본 이바라키현 이시오카시 츠쿠바산 자락. 봄볕이 내려앉은 교정 위로 만개한 벚꽃 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청구학원 츠쿠바 중·고등학교 강당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학부모들과 다소 긴장한 표정의 신입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아직 어색한 공기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제13회 입학식이 조용히 막을 올리고 있었다. 행사는 일본어로 진행하면서, 중간중간에 한국어 설명이 추가되었다.
 
  “곧 입학식이 시작됩니다.”
 
  안내 방송이 흐르고, 휴대전화 전원을 확인해 달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잠시 뒤 강당 문이 열리자 검은색 교복을 입은 신입생들이 줄지어 입장했다. 박수는 크지 않았지만 길게 이어졌다. 낯선 공간,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그 속에서 한 걸음씩 내딛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오전 10시, 식장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벚꽃 잎이 꽃비처럼 쏟아졌다. 이날 입학한 신입생은 중학교 1명, 고등학교 10명. 규모는 작지만, 이들이 품은 기대와 각오는 결코 작지 않았다. 강당 입구에서 학부모들은 자녀의 옷매무새를 마지막으로 다듬어주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한국에서 건너온 부모들의 눈가에는 대견함과 걱정이 동시에 묻어났다. 낯선 타국에서 시작될 기숙사 생활을 앞둔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신입생들이 입장하자 재학생들과 교직원들은 따뜻한 박수로 이들을 맞이했다. 소수 정예 학교 특유의 밀도 높은 분위기 속에서, 경건하면서도 활기찬 출발이 이어졌다. 입학식의 하이라이트는 설립자인 김정출 이사장의 축사였다. 단상에 오른 그는 교정을 가득 채운 봄 풍경을 언급하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하고 단호했다.
 
  “우리 청구학원은 일본인, 재일동포, 한국 유학생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함께 먹고 공부하는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값진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는 특히 한국어·일본어·영어를 아우르는 ‘삼각 교육’을 강조했다. 단순한 언어 습득을 넘어, 각 언어가 담고 있는 문화와 사고를 이해할 때 비로소 세계 무대에서 통하는 인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어 일본 국립대 의대와 주요 대학, 해외 명문대로 진학한 졸업생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신입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재일동포로서 학교를 세우기까지 겪어온 시간과 그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스스로 책임져야”
 
  이어 단상에 오른 최철배 교장은 기숙사 생활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부모의 품을 떠나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일본어가 어려울 수도 있고, 외로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환경도 바뀝니다. 이곳을 ‘외로운 시골’이 아니라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받아들인다면 결과도 달라질 것입니다.”
 
  청구학원의 교육은 생활에서부터 시작된다. 학생들은 스스로 빨래하고 설거지하며 하루를 꾸린다. 지식을 넘어 삶을 관리하는 힘, ‘자립’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현재 청구학원에는 일본과 한국을 넘어 중국 조선족,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까지 함께하고 있다. 이곳이 단순한 민족학교를 넘어 다국적 교육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입학식의 마지막은 한국어 교가 감상이 장식했다. 제창 대신 음악을 듣는 방식이었지만, 강당을 채운 멜로디는 충분히 깊은 울림을 남겼다. 신입생들은 가사를 음미하며 새로운 학교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식이 끝난 뒤 교정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담임교사와 첫인사를 나누는 학생들, 기념촬영을 하는 가족들 사이로 “파이팅!”과 “간바레!”가 함께 울려 퍼졌다. 서로 다른 언어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장면은 이 학교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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