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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인터뷰

노동 문제 전문가 김태기 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대통령제 국가에서 노동계와 정책 연대하는 나라는 南美 일부 국가뿐”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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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계에 NL, PD는 더 이상 없다. 자기들끼리 노동권력을 놓고 싸우는 것일 뿐
⊙ ‘마음에 안 드는 정부가 들어서면 무너뜨리겠다’는 노조
⊙ 노조 사무실이 회사 안에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
⊙ 비정규직이 제로인 국가는 없어
⊙ 노조의 힘을 스스로 절제한 스웨덴을 배워야

김태기
1956년생. 경동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아이오와대 경제학 석·박사 /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김영삼 정부 청와대 교육 및 노동개혁 담당,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사정위원회 공약위원, 열림포럼 대표,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역임. 現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저서 《협상의 원칙》 《분쟁과 협상》 《불평등의 기원》 등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노동 이슈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우리나라의 노동 문제는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지킬 수 있느냐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사안입니다.”
 
  김태기 전(前)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노동 문제의 현실에 밝은 경제학자다. 1996년 단국대 교수로 임용되기 전에 8년 동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냈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비서실에 교육 및 노동개혁을 위해 파견 근무를 했다. 이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한 노동 분야의 최고 학자로 꼽힌다.
 

  ― 왜 이번 대선에서는 노동 문제가 빠졌을까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의 본심은 친(親)노조인데 오히려 친기업 얘기를 하면서 속마음을 감추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상균 전(前) 민주노총위원장을 사면해 노동부 장관에 발탁하겠다는 얘기가 본심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이하 국힘) 후보는 민주노총(이하 민노총)보다 덜 강경한 한국노총(이하 한노총)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노동 개혁 소리를 못 하는 것 같고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유일하게 ‘노동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노동개혁에 대한 의지를 밝힌 정도입니다.”
 
 
  노조는 ‘모순의 87 체제’ 압축판
 
2021년 10월 20일 민노총 노조원들이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 인근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집회를 열었다.
  ― 노동조합이 뭡니까.
 
  “노조는 사회적 약자, 저임금 근로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보장은 여기서 비롯됩니다. 근로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도록 파업이라는 무기를 갖고 사업주와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조는 사회적 강자와 고임금 근로자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비정상적인 제도로 변질했습니다.”
 
  ― 왜 변질했습니까.
 
  “어느 나라든 노조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아요. 법으로 노조 설립을 보장해도 노조를 관리하는 비용이 들어가고, 사업주가 협상에 응해서 성과를 거둬야 작동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노조는 기업의 규모가 크고 조직화가 쉬운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에 집중됐습니다. 정작 임금 인상이 어렵고, 노동력 이동이 많은 중소기업에는 노조가 설립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한노총보다 제1노총으로 급성장한 민노총이 뚜렷합니다. 민노총 사업장은 조합원 숫자가 평균 1800명으로 한노총보다 5배나 많습니다.”
 
  ― 정작 노조가 필요한 중소기업에는 없군요.
 
  “우리나라에서 노동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노조 문제나 일자리 문제를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 산업화와 연결돼 있습니다. 노동운동이 불붙은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입니다. 노동운동은 파업권을 이용해 정치적 힘을 키움으로써 민주주의를 왜곡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독과점적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거의 노조가 만들어졌고,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독과점적 지위는 임금 인상에 이용돼 노동시장이 양극화됐습니다. 1987년에 개정된 헌법에 ‘경제 민주화’라는 조항이 들어가면서 노동 문제는 단순히 단결권을 넘어 소득분배, 자본주의의 문제로까지 커졌습니다. 중산층이 커진 덕분에 민주화가 성공했지만, 민주화 이후 중산층은 오히려 줄고 소외됐습니다. 경제 민주화의 혜택이 소수의 독과점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에게 돌아가면서 고임금 일자리는 줄고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 중산층이 저소득층화되는 모순이 생겼습니다. 이런 점에서 노동 문제가 ‘모순의 87 체제’를 압축하고 있다고 봅니다.”
 
 
  노조로 인해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벌어져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 공기업 위주로 노조가 발족됐다. 2019년 1월 31일,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민노총 금속노조와 현대·기아차 노조원들.
  ― 노조로 인해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커졌군요.
 
  “그렇죠. 격차를 줄이기보다 키우는 모순에 빠졌습니다. 노동계는 격차를 줄인다며 사회개혁을 내세우고 총파업까지 벌였지만, 노조의 양보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노동계의 요구는 현실과 동떨어지고 무리해 오히려 노조의 특권만 키웠습니다. 기업을 넘어 근로자들이 쉽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노조 조직을 산업별로 전환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개별 노조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무늬만 산업별로 바꾸고, 실제로는 기업별 노조를 유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업별 노조의 이점과 산업별 노조의 이점은 대기업 노조의 협상력만 키웠습니다.”
 
  ― 대기업 노조만 혜택을 봤네요.
 
  “노동시장의 현실이 괴리되면 약자적 위치에 있는 근로자만 늘어나고, 노동법의 혜택은 강자적 위치의 근로자에게 돌아갑니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거나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사람은 아웃사이더로 약자적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청년은 물론, 노동시장을 떠났다가 복귀하는 여성들이 그렇습니다.”
 
  김태기 교수가 말한 바로는, 민간 기업에서의 노조 조직률은 격차가 크다. 1000인 이상 기업에서의 조직률은 70%, 300인 이상은 57%이지만 100~299인 기업에서의 조직률은 15%로 뚝 떨어진다. 3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노조 조직률은 0.2%로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통상 우리는 300인 미만의 사업장을 중소기업이라고 한다.
 
 
  노동법 보호받으면 ‘공식 부문’, 보호 못 받으면 ‘비공식 부문’이라는 남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오른쪽)는 집권 이후 정치와 노동을 분리시켰다.
  ― ‘노조가 법(法) 위에 있다’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기본적으로 노동계가 정치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정의당, 민주당의 행태는 엄밀히 말해 노조가 불법 파업을 벌여도 눈을 감아주고 ‘정책 연대’도 하니까요.”
 
  ― 노조와 정책 연대하는 나라가 별로 없습니까.
 
  “정상적인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노동계 지지 선언은 받을 수 있지만, 정책 연대는 할 수가 없습니다. 노동계와 손잡으면, 노동계 이외의 쪽에서 지지를 얻을 수 없으니까요. 대통령제 국가에서 유일하게 노동계가 기득권 정치와 손잡는 국가는 남미 일부 국가입니다. 포퓰리즘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부터 남미의 최강국 브라질, 석유 부국에서 최빈곤 국가로 전락한 베네수엘라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남미는 노조가 정치권력과 결탁해 소수임에도 경제 정책뿐 아니라 선거에서 또한 영향력을 키워 다수를 희생시킵니다. 결국 남미의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정도를 넘어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공식 부문,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공식 부문으로 나누어지는 최악의 구조입니다.”
 
  ― 노동계와 정치가 손잡으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모든 국민이 잘사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에 편입된 국민만을 위한 국가가 됩니다. 유럽의 경우 노동계와 정당이 연계했지만 1980년대 이후에 결별했습니다. 정당이 노총과 손을 잡았더니 어느 순간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노동당 출신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집권 이후에 돌아섰고, 사회민주당의 독일의 슈뢰더 총리도 노총과 거리를 뒀습니다. 유럽에서 여전히 정치와 노동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부 유럽 국가는 남미처럼 되고 있습니다.”
 
 
 
민노총 강령은 북한 노동당과 비슷

 
일부 남미 국가에서는 정치권과 노동계가 정책 연대를 한다. 노동당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Lula) 다 실바 브라질 전 대통령.
  우리나라 노동계는 한노총과 민노총의 양대 산맥으로 돼 있다. 한노총은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을 중시하는 경제적 조합주의와 협력적 노사관계를 추구해왔다. 반면 민노총은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를 표방하고 투쟁적 노동운동과 대립적 노사관계를 추구했다. 한노총이 어용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한노총도 정치적 조합으로 기울어졌다.
 
  ― 민노총은 강성, 한노총은 상대적으로 덜 강성이라고 하죠.
 
  “그건 옛날 얘기이고, 이제는 한노총이 민노총을 따라가는 상황이 됐죠. 민노총은 1995년에 설립됐지만, 기존 노조와의 조직 대상 중복을 금지하는 복수노조금지조항이 노동법 개정으로 1999년에 폐지된 이후 합법적 지위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민노총은 투쟁적 노동운동을 멈추지 않았고 노동계가 한노총과 민노총으로 분열되면서 임금인상, 고용보호 요구는 경쟁적으로 강화됐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노동계의 분열을 피하고 노조의 책무를 의식해 단일 노총을 지향하는데 우리나라는 쪼개진 겁니다. 결국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 소속 노조의 이익을 챙기는 데 치우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더 악화했습니다. 서로 경쟁하다 보니 그동안 헌법에 충실했던 한노총이 민노총과 대결하면서 물들어갔습니다.”
 
  ― 그 얘기는 민노총은 헌법에 충실하지 않다는 건가요.
 
  “민노총은 강령에서 자본과 정부를 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념적으로 사회주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게다가 ‘통일’ ‘민족’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데 어떻게 보면 북한 노동당과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보급한다는 이유로 교육서적을 많이 만들었고, 우리나라에도 흘러들면서 학생운동이 1980년대 좌경화됐습니다. 좌파 운동권이 민주화 이후 노동운동을 주도하면서 1990년대 만들어진 민노총의 강령은 북한의 노동당을 추종하는 냄새가 물씬 납니다. 헌법을 준수하면서 노동기본권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헌법에 대한 존중은 희박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민노총이라는 호랑이 등에 탄 것
 
2016년 12월 17일,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8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 문재인 정부에 민노총의 지분이 있다고들 하죠.
 
  “틀린 말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는 촛불을 동원한 세력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세력을 동원하려면 조직화한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직화한 힘이 제일 센 곳은 민노총, 전교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호랑이 등에 탄 것과 다름없죠.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뛰어나온 100만 명을 동원하고, 그들을 선동할 수 있는 곳은 그들뿐입니다.”
 
  ― 자영업자들이 거리 두기 때문에 못 살겠다고 뛰쳐나와도 몇백 명뿐이더군요.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조직화를 하지 않으면 힘이 없습니다. 민노총의 응집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죠. 그들에게 자본과 정부는 무너뜨려야 하는 존재입니다. 자기들이 볼 때 못마땅한 정부는 세력을 동원해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무너뜨리겠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그 국민이 투표를 통해 만든 대통령이고, 그 대통령이 구성한 내각인데 노조가 무너뜨리겠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 노동운동을 하더라도 헌법을 준수하도록 할 수는 없습니까.
 
  “저는 정치권에서 우리나라 노동계에 헌법을 준수한다는 선서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부정한다면 이 땅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노동운동을 하라고 해야 합니다. 정치권이 민노총 눈치나 보고 분명하게 말을 못 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 우리의 노조 역사는 다른 국가보다 훨씬 짧지 않습니까.
 
  “짧죠. 사실 초기 노동운동은 정부가 상당 부분적으로 허용해줬습니다. 헌법에 노조 설립 권리를 부여한 국가는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은 법률에 규정하고 있죠. 우리는 초창기에 북한에 맞서고,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조를 일부러 보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노총 출신이 장관을 맡는 일도 꽤 많았습니다. 1980년대에는 노조 외에 별도로 노사 협의회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근로자들의 불만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메커니즘을 모두 만들어준 셈입니다.”
 
 
 
NL, PD 얘기는 진부… 노조끼리 자리싸움하는 것

 
  ― 태동은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호시탐탐 우리 체제를 무너뜨리려던 북한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했습니다. 그렇기에 노조가 자본주의 정신을 훼손하거나, 지나치게 파업을 하려 할 때는 정부가 막았습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상당히 달라집니다. 학생운동 출신들이 노동운동에 뛰어들면서 변질하기 시작했는데, 대중운동이라는 것이 데모도 하고 원래 그렇기는 합니다. 1990년대 초까지는 괜찮았는데, 민노총이 만들어지고 DJ 정부 때 이들이 합법화되면서 헌법 질서를 무시하는 태도가 굳어졌습니다. 민노총의 강령 문제도 그때 명확하게 따졌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쳐버렸죠.”
 
  ― 결국 민노총이 문제네요.
 
  “민노총의 가장 큰 문제는 소수의 사람이 뒤에서 조직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입니다. 다수의 조합원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부 힘 있는 소수 집행부가 밀어붙이면 그들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민노총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 대회를 보면, 대의원 대부분이 행동력이 강한 세력 출신입니다. 그들이 소수라고 하더라도 결집력이 강하니까 자기들이 전체 권력을 쥐고 흔드는 형국입니다.”
 
  ― NL 계파, PD 계파, 뭐 그런 얘기인가요.
 
  “항간에 그런 얘기가 돌지만 의미 없고, 실제로는 헤게모니 싸움입니다. 자기들끼리 자리싸움, 권력싸움입니다. 586들에게 주사파 얘기를 하면 아마 피식 웃을 겁니다. ‘주사파가 언젯적 얘기냐며 우리는 떠난 지 오래다’라고 할 겁니다. 민노총도 마찬가지입니다. NL이니 PD니 큰 의미 없습니다. 민노총은 이미 학생운동 출신이 떠나고 현장 노동자가 세력화돼 있는데, 무슨 NL이고 PD입니까. 그냥 자기들끼리 노동 권력을 놓고 싸우는 겁니다.”
 
 
  노조가 사측으로부터 월급·사무실·자동차 받아놓고서도 파업하는 이유
 
  김태기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다룰 수 있는 어젠다가 너무 방대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일반적인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강성 노조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사람 중에 막상 노조의 어떤 부분이 문제냐고 물으면 주저하는 이들이 많아서다.
 
  “민노총이 진정 있는 노동운동을 하고 싶다면 낮은 곳, 소외된 곳, 열악한 곳을 찾는 것이 맞겠죠. 그런데 노조는 대기업에, 공기업에 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낙후된 중소기업에까지 가서 노동운동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중소기업을 헐뜯는 것은 아니고, 막상 가보면 중소기업 사장이나 직원이나 똑같이 작업복 입고 일하는 곳이 대부분이잖습니까.”
 
  ― 거기서 투쟁을 해봐야 나올 것이 없다는 거죠.
 
  “은행 노조위원장 하면 은행장 대접을 해줍니다. 월급 주고, 사무실 주고, 심지어 자동차도 제공합니다. 거기에 이미 길들었는데 왜 중소기업에 가서 노동운동을 하겠습니까.”
 

  ―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은가요.
 
  “노조 사무실이 회사 안에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유럽의 은행 노조는 우리나라로 치면 은행이 밀집해 있는 명동 한복판에 노조 사무실이 있습니다. 특정 은행 직원이 아니라 은행 노조에 소속된 모든 사람이 애로사항을 갖고 노조 사무실을 찾습니다. 제대로 된 노동운동을 하려면 노조원을 만나서 그들의 상황을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노조 사무실은 빌딩 한가운데에, 경비까지 삼엄한 곳에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쉽게 들락거릴 수도 없습니다. 그게 무슨 노동조합입니까. 노조라는 간판을 걸고 자기들 기득권 지키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 그래서 귀족 노조라는 말이 생긴 거군요.
 
  “노조는 근로자의 자주적 결사체이기 때문에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조합원이 부담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등 일부 국가는 노조에 대한 회사의 지원을 노동법에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미국의 경우 노조의 금품지급 요구는 노조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로 금지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회사가 노조 집행부에 월급 주고, 사무실 주고, 그러니 귀족 노조일 수밖에요. 노조 집행부가 아닌 일반 노조원들은 ‘어용 노조’라고 비판을 하겠죠. 그들에게 부지런히 일하는 모양새를 보여줘야 하니까, 노조 집행부는 사측으로부터 받을 것은 다 받아놓고 부지런히 파업을 또 하는 겁니다. 노조원에게 인정받기 위해 투쟁적 모습을 보이는 거죠.”
 
 
  미국의 노조 사무총장은 20년씩 하기도
 
  김태기 교수의 얘기를 듣다 보니 우리나라 노조는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들은 단일 노조를 표방하는데, 우리는 거대 노조가 2개나 있고, 노조 사무실은 당연히 사측 빌딩에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우리만의 특색이란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노조는 글로벌 기준으로 봤을 때 정상이 아니라는 소리다.
 
  ― 해외에서는 노조위원장이 어떤 대접을 받습니까.
 
  “유럽의 노조위원장은 전문가 출신이 많습니다. 산별 교섭을 하기 때문에 산업, 경제 전반에 대해 얘기를 할 만한 상당한 식견을 갖춰야 합니다. 사측과의 협상 자리에는 변호사들이 나갑니다. 사측과 노조 모두 전문가들끼리 대결하는 구도입니다. 노조위원장 선임은 조합원이 하지만, 현장에서 커온 사람보다는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뽑죠. 노동운동을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 영역으로 간주합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좌파 엘리트 계층이 노동운동의 주요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미국은 현장 출신이 노조위원장을 맡지만, 노조 안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은 전문가들이 합니다. 사무총장이 노동복지사업을 하는데 돈도 굴릴 줄 알아야 하고, 마케팅도 해야 하고 조직을 다루는 전문적 스킬이 필요합니다. 미국은 노조위원장을 20년씩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조 사무총장도 잘 바꾸지 않습니다. 노동운동에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노조가 철저히 조합원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군요.
 
  “당연합니다. 우리나라 노조처럼 정치 노선을 걷지 않습니다.”
 
 
  4.5일제 근무 공약은 코미디 같은 발상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으로 ‘비정규직 제로’를 내걸었다.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 노동 전문가로서 문재인 정부 때 일어난 ‘인국공 사태(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비정규직이 나쁜 겁니까? 비정규직 중에 자신이 원하는 자발적 비정규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근무시간을 최소화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하고 싶은 사람, 육아를 하면서 하루에 3~4시간만 일하고 싶은 여성들, 특정 직무에만 소질이 있어서 하루에 몇 시간 그 업무만 하고 싶은 사람들은 비정규직인데 그렇게 일하면 안 됩니까? 미국은 비정규직이라는 말 대신에 임시직(temporary work)이라고 표현합니다. 고용 형태는 다양합니다. 일의 특성상 하루에 12시간 근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3시간만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규직은 선(善)이고 비정규직은 악(惡)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아예 공약으로 ‘비정규직 제로’를 내걸었습니다.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흑백 논리에 빠진 겁니다. 세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지도 않고, 모든 직업을 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생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에 비정규직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 그래도 자신이 정규직이기를 바라는 사람이 비정규 직원이면 속상하죠.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장경제 질서하에서 비정규직이란 자연발생적인 것인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로운 노동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겁니다. 모든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난센스입니다. 민노총이 대립 구도를 만들고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것은 평등의 극치입니다. 모든 사람은 정규직이고 똑같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자체를 부인하기보다 오히려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격차를 없애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과적입니다. 2007년에 제정해 시행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이 법이 시행된 지 10년 이상이 지나도록 아직도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고 있지 않다면 법 개정을 해서라도 해결책을 연구해야 합니다.”
 
  ― 이번 대선에서 주 4일제도 다시 불붙었죠. 이재명 후보가 4.5일제를 들고나왔는데요.
 
  “진보는 근로시간 줄이는 것이 마치 진보의 가치인 양 말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기업이 4.5일 근무제를 시행하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한 것은 코미디예요. 그런 제도를 시행했다가 폐기한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됩니다. 주 4.5일제를 하라고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 국가는 어떨 때 나서야 합니까.
 
  “근로조건에 국가가 개입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불리한 어려운 근로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최저임금 같은 것이죠. 헌법에도 근로조건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잘나가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를 보호하는 일을 우선합니다.”
 
 
  노조에 사회적 책임 지워야
 
  ― 사측에서는 노조가 파업한다고 하면 상당 부분 얘기를 들어주지 않습니까.
 
  “회사가 노조를 탄압해서도 안 되지만, 노조가 툭하면 불법 파업하고 폭력을 행하는 것도 근절돼야죠. 일반 시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꽹과리치고 난리 법석 떠는 것은 정말 반문명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나라 노조는 헌법에서 지위를 보장받고 특권을 누리지만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헌법 정신과 반대로 자본과 정부를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고 법치주의를 흔들었습니다. 단위 노동조합은 파업권을 남용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노조 단체는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노조가 분열돼 경쟁을 벌이고 무리하게 임금을 인상하고 고용 보험을 강화하고 조직 확대 경쟁을 벌였습니다.”
 
  ― 노조가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까요.
 
  “아주 쉬운 일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우선 임금인상 요구와 정보공개 등 노조의 운영을 합리화해야 합니다. 노조 운영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내부에 불신이 커졌습니다. 노조가 집행한 운영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 어려운 내용이 아니지 않습니까.”
 
  ― 다른 국가들은 어떻습니까.
 
  “미국의 경우 노조의 전투적 노동운동은 1980년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법치주의 확립으로 완전히 꺾였죠.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항공관제사 파업에 대해 ‘공공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라고 하면서 1만3000명의 공공노조 소속 항공관제사를 해고했습니다. 이런 법치주의 확립 노동개혁은 공공개혁과 교육개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영국은 1970년대 초반 ‘누가 영국을 지배하나(Who governs Britain?)’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조의 힘이 막강했습니다. 석유 위기 와중에도 노조가 파업권을 남발해 임금을 과도하게 인상해 영국의 인플레이션과 고실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70년대 말에 노동당은 총선에서 참패했고, 보수당은 당의 제1강령으로 ‘노조의 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내걸었습니다. 노조가 강력히 반발했지만 대처 총리가 ‘대안이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며 노동개혁을 밀어붙인 사례는 유명하죠. 영국의 노동개혁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정치·경제 이념 지도까지 바꿨습니다. 노조 조직률이 가장 높은 스웨덴은 ‘복지정책이 복지를 망친다’며 1992년 대대적인 노동개혁에 나섰죠. 스웨덴 노조는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 개혁이 불가피하다며 협력했습니다.”
 
 
  노동정치의 힘을 나쁘게 쓰는 국가는 모두 망했다
 
  ― 북유럽 얘기를 들으면 가끔 부럽습니다. 노조가 스스로 협력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노동정치란 노조가 단체 교섭과 파업의 힘을 배경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노동정치의 힘을 나쁘게 쓰는 국가는 모두 망했습니다. 북부 유럽 국가는 ‘노조의 힘을 절제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것을 깨닫고 절제했습니다. 스웨덴은 고임금 근로자가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처럼 저임금 근로자를 배려하는 ‘연대임금정책(solidarity wage policy)’이라는 것을 썼습니다. 미국은 유럽보다 사회주의적 색채가 연해서 철저히 시장이 결정하는데, 노조와 회사의 힘이 대등합니다. 가령 노조가 파업하겠다고 선언하면, 사측은 ‘우리는 대체 근로를 할게’라고 선언합니다. 대체 근로로 생산성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우리처럼 공장 가동이 완전히 중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 자율적 자정 능력이 없다면 법으로라도 해야겠죠.
 
  “노사의 힘을 균형 있게 만들고 노조도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지게 하여야 합니다.”
 
 
  70년이 넘은 우리나라 노동법
 
2018년 7월 13일, 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 상경 총파업 결의대회. 재벌의 불법파견 금지, 원하청불공정거래 개선, 금속산업 노사공동위원회 설치를 촉구했다.
  김태기 교수가 말한 바로는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1953년 한국전쟁 와중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유럽법과 미국법을 따라 만들어진 일본 법의 상당 부분을 베꼈다고 한다. 그 법의 테두리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노동법은 일자리와 소득에 직접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법은 환경 변화에 지나치게 낙후돼 있어요. 일단 회사에 취업하면 해고를 사실상 금지하는 노동법에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월급이 자동으로 올라가게끔 돼 있습니다. 기술이 바뀌면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근로 조건을 변경해야 하지만, 노동법은 노조의 동의까지 요구합니다. 이런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돼 기술이 시시각각 변하고 근로자와 사업주의 경계가 무너지는 마당에 공장시대에 만들어진 노동법을 지금이라도 현대화해야 합니다.”
 
  ― 21세기와 맞지 않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죠.
 
  “플랫폼 노동자가 빠르게 증가하는데 이분들은 사업주이면서 근로자입니다. 그들은 어느 범주에 넣어야 할까요. 현재의 실정에 걸맞은 노동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실상 멈춘 상태입니다. 노동법을 현대화하는 데 노동계도 협력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를 내세우고 권력과 자본의 탄압을 분쇄한다는 등의 멘탈로는 곤란합니다. 노사갈등이 효과적으로 해결되게 하여야 합니다. 노사가 힘의 균형을 잃다 보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파업의 빈도가 훨씬 높고 지속시간이 길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법에서 사업주가 노조의 강경 투쟁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고, 반면에 사업주가 노조 활동을 방해하지 못하는 장치만 매우 엄격합니다. 노사의 게임의 룰을 규정하는 부당노동행위는 사업주에게만 있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 처벌까지 합니다.”
 
  ― 대선 주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습니까.
 
  “일자리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합니다. 일자리 정책 결정의 무대를 평평하게 하려면 정치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공공의 이익보다 노조의 이익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정부는 법과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부문부터 노동개혁을 추진해 민간부문으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공공부문 노조가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개혁에 협력하도록 설득하려면 정부가 개혁 철학을 분명하게 확립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노동운동가인 월트 로이트 자동차 노조위원장은 ‘자유경영이 없다면 자유노동도 없고, 자유사회를 위한 자유노동과 자유경영이 함께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네덜란드 노총위원장이었던 빔 콕 총리는 개혁에 반발하는 노동계를 ‘의견이 달라도 대화할 가치가 있다’며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정치적 리더들이 노동계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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