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화제

‘호모 볼런타스’ 착한 자원봉사자들

‘더 큰 봉사로 더 큰 영향력을…’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국제로타리 3650지구 ‘로타리 하우스’ 봉사… 1년간 홀어르신 102가구 집수리
⊙ 홀어르신 1명 집수리해주면 10년 편해… 100명 도우면 1000년이 행복
⊙ “조금 있으면 급식차가 올 테니 기다렸다가 밥 먹고 가”
국제로타리 3650지구가 지난 1년 동안 홀어르신 주거환경 개선사업 ‘로타리 하우스’ 프로젝트를 펼쳤다. 지난 5월 25일 서울 도봉구 한 주택에서 마지막 봉사활동을 마쳤다. 맨 오른쪽이 서창우 총재,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정수 지역사회봉사위원장.
  빈부격차가 자꾸만 벌어지고 있다. 계층 간 소득과 교육 수준의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가난한 이들이 더 아프다. 대개 사고 위험이 높은 일을 하는 탓이다.
 
  암 사망률이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이 높은 이유는 뭘까. 치료비 부담 차이가 크겠지만 조기에 암을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여기 호모 볼런타스(Homo Volunt as)가 있다. 가난한 이를 위해 땀 흘려 봉사하고 지갑을 꺼내 성금(誠金)을 내는 인간을 그렇게 부른다. 자원봉사자들은 대개 ‘자유의지’의 인간이다. 누가 시켜 땀을 흘리고 기부하지 않는다. 구약(舊約) 시대에 재를 머리에 뿌리듯 스스로 먼지를 덮어쓴 자들이다.
 
  자발적 참여주의(Voluntarism), 자원봉사주의(Volunteerism)로 똘똘 뭉친 자들이다. 굳이 신약(新約)의 의미로 풀이하자면 ‘선한 사마리아인(the Good Samaritan)’이다.
 
  기자는 우연한 기회에 사마리아인 3명을 만났다. 좀 거창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이 표현에 민망해할 것 같다. 남을 돕는 데 능숙·익숙한 분들인데 기자가 만나 보니 ‘자중자애(自重自愛)’한 분들이었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애자생존(愛者生存)의 법칙을 몸소 체험한 자들이었다.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
 
  다음은 신약성서 루카(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이다.
 
  예수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놓았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를 보았으나 길 반대쪽으로 가버렸다. 신앙심 깊은 레위인도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이 길을 가다가 그를 보고는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혈통이 순수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마리아인을 멸시하고 경멸했다.
 
  사마리아인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그러곤 두 데나리온을 꺼내 “저 사람을 돌보아달라”고 청했다.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끝낸 예수는 율법 교사에게 물었다.
 
  “너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하자, 예수께서 답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AKS 회원이 된 두 父子
 
국제로타리 3650지구 서창우 총재와 그의 아버지 서병식씨. 부자(父子)는 로타리재단에 각각 25만 달러 이상 기부한 AKS 회원이다.
  국제로타리 3650지구(서울 북부) 총재인 서창우(徐昌佑) 한국파파존스 회장은 본업이 봉사다. 기업 활동은 부업에 가깝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봉사활동에 쓴다. 그런데 기업도 요즘 잘나간다.
 
  서 총재의 아버지 서병식(徐秉植·94) 남서울 로타리클럽 전 회장 역시 경영인에 앞서 봉사인으로 살아왔다. 부자(父子)는 로타리재단에 각각 25만 달러 이상 기부한 AKS 회원. ‘아치 클럼프 소사이어티(AKS)’는 국제로타리 6대 회장인 아치 클럼프(Arch C. Klumph)의 이름을 딴 후원회로 미화 25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최상위 후원자들을 예우하는 멤버십을 말한다.
 
  정회원이 되면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 위치한 국제로타리 세계본부 17층 아치 클럼프 소사이어티 갤러리에 초상화를 전시할 수 있다. 기념 핀과 펜던트 등의 자잘한 특전이 주어지지만, 그저 명예일 뿐이다. 서 총재의 말이다.
 
  “아버지는 올해 아흔넷의 연세에도 현역 멤버로 활동하십니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셨는데, 저도 그 덕에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AKS 기부도 부모님의 건강이 허락돼야 가능한 일입니다. 함께할 수 있어 더욱 행복해요.”
 
  두 사람은 사업을 통해 얻은 결실을 사회에 환원코자, ‘친구 따라 (강남이 아닌) 로타리에 왔다’는 로타리 정신에 맞춰 살아왔다. “누군가의 삶에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서창우)고 한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부자는 ‘정암(廷岩) 기증기금’을 설립했다. 정암은 서 전 회장의 아호. 서 총재의 말이다.
 
  “‘로타리안’(로타리클럽 회원)을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한다면 저희 가족은 나무가 여러 그루인 셈이죠. 그만큼 더 많이 맺히는 꽃과 열매를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의 말이 선하게 느껴졌다.
 
 
  ‘더 큰 봉사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자’
 
  우리나라에는 국제로타리 산하 19개 지구가 있다. 서울은 3640지구와 3650지구 2곳. 부산 3661지구, 인천 3690지구, 대구 3700지구, 광주 3710지구 등이다.
 
  서울을 동서(東西)로 가르는 한강을 기준으로 강 위쪽이 3650지구, 아래쪽이 3640지구다. 회원 수는 3650지구(2273명)가 많은데, 신규 회원은 3640지구(1803명)가 많다.
 
  서 총재는 코로나19로 대외 활동이 어려워지자, ‘더 큰 봉사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자(Do More, Grow More)’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리고 연중 프로젝트 ‘로타리 하우스’ 봉사를 진행해왔다.
 
  “낡은 홀어르신의 집을 수리해주는 봉사가 ‘로타리 하우스’ 사업입니다. 작년부터 102가구를 찾아가 곰팡이 핀 벽지, 장판을 새것으로 갈아주고, 낡은 싱크대를 교체해주었어요. 계단이나 화장실에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고, 묵은 쓰레기까지 깨끗하게 치워드렸죠.”
 

  ‘로타리 하우스’ 봉사는 국제로타리 3650지구 산하 90개 클럽 거의 대부분이 참여한 연합 봉사활동으로 진행됐다. 작년 7월부터 12월 말까지 52가구를 찾아가 집을 수리했고 올 들어 5월 25일까지 50가구를 추가로 고쳤다. 서 총재의 말이다.
 
  “‘로타리 하우스’ 봉사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전에 한 개의 클럽이 이 봉사를 했다면 일회성 봉사로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지구 내 전체 클럽이 참여해 ‘1000년의 행복’을 만드는 봉사가 되었습니다.”
 
  ― ‘1000년의 행복’ 봉사인가요.
 
  “한나절 땀을 흘리면 홀어르신 한 분이 10년 동안은 편안하게 지내시지 않겠어요? 그 봉사를 100명에게 하니, 100명 곱하기 10년 해서 1000년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1000년의 행복’인 겁니다.”
 
  그야말로 탁월한 계산이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로 봉사 기회를 잃었던 ‘로타리안’과 젊은 봉사자들을 포함, 연인원 700~800여 명이 ‘로타리 하우스’ 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지금’ 하는 게 봉사”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로타리 콘퍼런스에 참석한 셰이커 메타 회장이 ‘로타리 하우스’ 봉사 현장에 들렀다. 왼쪽 세 번째부터 서창우 총재, 셰이커 메타 국제로타리 회장, 이정수 위원장.
  서창우 총재는 코오롱그룹 이웅렬 명예회장의 처남이다. 부인인 코오롱 비영리재단 꽃과어린왕자 서창희 이사장의 오빠다. 한국파파존스는 올 상반기에 직영점과 가맹점을 포함해 전국 23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중소벤처기업 대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고 한다.
 
  “2003년 파파존스를 시작할 때부터 기회가 닿는 대로 피자를 만들어 주변 보육원, 홀어르신들을 위한 기관에 기부해왔어요. 회사가 적자가 나도 피자 트럭(일명 매직카)을 돌렸지요.
 
  어느 기자가 그래요. 저더러 봉사할 수밖에 없는 팔자라고요. 왜냐면 피자 사업이야말로 봉사 정신과 딱 맞다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래요.
 
  피자는 나올 때부터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게 롤러 칼로 자르잖아요. 혼자 다 먹지 않고 나눠 먹는 게 바로 봉사입니다. 봉사도 같이해야 더 의미가 있지요.”
 
  많은 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실천하기가 두렵거나 조심스럽다.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사실은 봉사를 지속적으로 해온 분들은 다 알고 있어요. ‘돈 벌면 나중에 많이 하겠다’ ‘마음은 가는데 너무 바빠서…’라고 말하는 분들은 앞으로도 할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분들은 실제 봉사를 거의 안 해본 분들이고요.
 
  ‘나중에’는 절대 오지 않는 시간입니다. ‘지금’ 하는 게 봉사입니다.”
 
  로타리 3650지구는 지난 4월과 5월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등지에서 산불이 ‘도깨비처럼’ 번지자 급히 1600만원의 의연금을 모았다. 올 초 1억3000만원 상당의 극빈자 안과질환 지원기금을 여의도성모병원에 전달한 일도 있다.
 
  해외 봉사나 기부도 열심이다.
 
  ‘소아마비 완전 박멸(End Polio)’을 위해 파키스탄, 터키, 스리랑카에 9만650달러를 지원했다. 또 파키스탄에만 4개의 국제 프로젝트를 지원(지금까지 6만650달러)하고 있으며, 아이티 지진(1만 달러), 터키 산불(1만 달러),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국내 19개 지구 전체와 함께 14만5000달러를 모금했다. 서 총재의 말이다.
 
  “우리가 하는 봉사와 기부는 행복을 만드는 씨앗입니다. 아울러 그 행복이 선순환 과정을 거쳐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결실이 됩니다.
 
  묵묵히 땀을 흘려온 자원봉사자들은 이미 이 세상에 도움을 주고 사랑을 나누어왔다는 점에서 지금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거나, 또 장차 행복한 인생을 사실 분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에…”
 
  상담학 박사인 이정수(李姃修) 연세다움상담코칭센터 원장은 ‘로타리 하우스’의 야전 사령관이다. 일일이 홀어르신 102가구를 찾아다니며 집수리를 총지휘했다. 평생 보지 못했던 낯선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작년 7월 26일 첫 집수리하던 기억이 제일 많이 떠오릅니다. 그날은 너무 더워 땀이 비 오듯 했어요. 봉사자들과 함께 지하실 복도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페인트칠을 다시 했지요.
 
  새집처럼 변하자 그 집 할머니가 너무 기뻐하는데, 저 역시 감동과 의지가 생겼어요.”
 
  이 원장은 현장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여러 일을 그때그때 해결하며 집수리의 다양한 노하우를 얻었다고 한다.
 
  “낯선 동네, 특히 높은 언덕길에 무척이나 촘촘히 모여 있던 낡은 집과 녹슨 문, 오래된 담벼락과 만날 수 있었어요. 그 안에 사는 이웃들…. ‘여기서 평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들과 눈빛을 교환했어요. 연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에 실제로 이분들의 삶에 새로운 활력과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3650지구 지역사회봉사위원장인 그는 “집수리 봉사를 하며 제일 먼저 놀란 것은 화려한 건물들 뒤편의 초라한 집이었다”고 한다.
 
  “마천루에 가려 볼 수 없었던 집들이 그제야 하나둘 보이는 겁니다. 어르신들이 겪는 질병과 가난도 목격할 수 있었어요. 너무 낡아 금방 부서질 듯한 집, 버리지 못하는 많은 물건이 사연 많은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어요.
 
  죽은 아들의 옷과 물건을 버리지 못해 아들 방에 못 들어가게 막았던 어느 할머니가 생각나요. 그 방을 깨끗이 치웠더라면 할머니의 아픈 기억도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LED 燈을 켰을 때 터지던 탄성
 
‘로타리 하우스’ 봉사를 끝내면 현판을 붙인다. 현판을 통해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저장 강박증’이었다. 도배와 장판 교체를 하기 위해선 우선 가재도구를 집 밖으로 내놔야 하는데, 쓰레기 더미가 많아 꼼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집은 쓰레기가 무려 2t가량이 나왔다고 한다.
 
  “좁은 방문으로 끝없이 나오는 폐기물을 나르느라 우리 ‘로타리안’들이 무척 고생했지요. 구겨진 종이를 펴는 것과 같이 다양한 물건마다 아픈 사연과 고통이 보였죠.
 
  어느 집은 다락같이 높게 되어 있는 구조의 화장실이 있었어요. 또 어떤 집은 다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불규칙한 층의 낮은 부엌도 있더군요. 무척 불편하셨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자원봉사자들(로타리안)은 “무언가 더 도와드릴 것이 없나” 하며 찾아서 봉사를 했다. 집수리 현장이 지하인 것을 알고선 제습기를 사 온 이도 있었고 공기청정기나 컴퓨터를 기증한 이도 있었다.
 
  “집수리를 완공하고 난 뒤 작은 ‘로타리 하우스’ 현판을 부착할 때는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와 가까이 연결되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죠. 아 참! 모든 공사를 마치고 LED로 교체된 등(燈)을 켰을 때 터져 나오던 탄성을 잊을 수 없어요.”
 
  그러나 홀어르신 102가구를 선정하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7가지 조건[홀어르신, 기초수급자, 75세 이상, 자가 제외(단, 소득이 전혀 없는 경우는 예외), 장애등급 보유자와 질병·난치병자, 자녀와 단절된 분, 국가유공자]을 따져 다양한 검증을 거쳤다.
 
  주민센터와 돌봄센터 담당 복지사, 생활지원사 등에게 의뢰해 추천받은 다음, 이정수 위원장이 직접 현장을 일일이 찾았다. 이 위원장은 “초기에 너무 젊은 대상자와 만났던 게 가장 좋지 않은 경험인데, 이후 철저하게 검증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 일 이후 ‘로타리 하우스’ 대상자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올리고, 주로 80세 이상에서 선정했다고 한다.
 
  비용은 한 집에 100만원이 넘지 않도록 했지만, 자재비와 인건비가 올라 평균 120만~130만원가량이 들었다. 도배와 장판 교체는 기본 사양이었고 싱크대 교체는 물론 환풍기·가스레인지·방충망·전등 교체, 방수공사, 노후 하수도 수리, 지붕공사 등에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로타리 하우스’ 사업을 위해 국제로타리 3650지구에서 모금한 액수는 9658만원(6월 10일 현재)이었다고 한다.
 
 
  “0.7평 정도? 팔 하나도 펼 수 없어”
 
국제로타리 3650지구 산하 한성클럽 회장을 지낸 김무일씨.
  국제로타리 3650지구 산하 한성클럽 회장을 지낸 김무일(金武一) 전 현대제철 부회장은 서울 서부역 인근 중림동 쪽방촌에서 보낸 몇 해 전 그해 여름과 가을, 겨울을 잊을 수 없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자원봉사의 소중한 경험을 기자에게 전해왔다.
 
  처음 ‘중림동 쪽방촌’에 들어섰을 때, 비좁은 골목길에 슬레이트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 마치 미로(迷路)를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골목에선 쿰쿰하고 역한 냄새가 진동했는데 악취가 코를 찌르는 순간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고 한다.
 
  “제가 참여하는 ‘한성클럽’은 수도권 노인복지센터와 경기도 용인의 장애인 수용시설 ‘성가원(聖家園)’ 등지를 찾아 매월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해 여름 파월(派越) 고엽제 전우를 돕기 위해 생필품과 양식을 들고 중림동 쪽방촌을 찾았죠.”
 
  무더운 날씨 탓에 방문을 활짝 열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컴컴한 쪽방에 빛바랜 속내의만 걸친 채 누워 있는 이들이 숱했다. 열기를 식히려는 듯 불편해 보이는 몸으로 골목길 바닥에 물을 뿌리며 빗자루로 쓸어내는 이도 기억에 남아 있다.
 
  “주월(駐越) 청룡부대 고엽제 전우의 쪽방에 들어서니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더군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어요.
 
  학원가 고시방이 좁다는 표현을 할 때 두 팔을 벌리면 양쪽 벽에 손이 닿는다고 하던가요? 쪽방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0.7평 정도? 팔 하나도 펼 수 없었어요.”
 
  방 천장에 머리가 닿아 똑바로 설 수도 없었고 공간이 워낙 비좁다 보니 잡다한 세간살이도 없었다. 철이 지난 옷가지, 구닥다리 텔레비전 한 대, 작은 봇짐이 전부였다.
 
  “쪽방이란 표현 그대로 방을 쪼개고 또 쪼개어 한 명씩 기거합니다. 벼랑에 내몰린 이들이 월 21만원가량을 내고 살아가고 있었어요. 고령과 병고에 시달리는 이가 대부분이었죠.”
 
 
  “여러분에게 更生의 새봄이 오길…”
 
  쪽방촌은 도시 빈민의 마지막 보루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과 갈월동 뒷골목. 그리고 중림동 쪽방촌이 불우이웃 1번지다. 지금은 정비가 그런대로 이뤄졌으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영등포구 본동과 문래동, 중구 만리동, 용산구 후암동 일대에 사는 쪽방촌 거주자를 합치면 근 2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김무일 전 부회장은 ‘그해 가을’, 영등포 쪽방촌을 찾았다. 한 노인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급식차가 올 테니 기다렸다가 밥 먹고 가. 저 귀퉁이에서 줄 서면 밥 줘.”
 

  밀짚모자를 쓰고 허리가 구부정한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강씨 할아버지였다. 영등포역 6번 출구로 나와 좌회전해 걷다 보면 ‘토마스의 집’이라는 노숙인 무료급식소가 있다. 낮 12시쯤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이 길게 줄을 늘어서기에 덩달아 섰다. 오늘 메뉴는 잡곡밥에 오이 초고추장 무침과 된장국, 멸치볶음과 김치.
 
  ‘토마스의 집’에서 밥을 먹으며 이곳 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일종의 ‘고급 정보’도 얻었다.
 
  ‘토마스의 집’에서 100m쯤 떨어진 ‘성 요셉병원’에 가면 공짜 상비약을 주고, 화요일이면 무료 이발, 근처 광야교회, 신성교회, 사랑의교회 등지에서는 영등포역 고가다리 밑에 천막을 치고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에게 간식과 음료수를 준다는 것이었다.
 
  쪽방촌 주민 조모씨는 “광야교회는 밥을 더 달라고 해도 주질 않는데, 여기는 원하는 만큼 밥을 더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토마스의 집’은 한 끼 500원. 구태여 식대를 받는 이유를 물으니, 이웃 광야교회에서 식사를 끝낸 노숙인들이 다시 ‘토마스의 집’으로 오는 이중 식사를 예방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했다.
 
 
  그해 겨울 다시 찾은 영등포 쪽방촌
 
  김무일 전 부회장은 ‘그해 겨울’, 영등포 쪽방촌을 다시 찾았다가 들렀던 ‘성공회 푸드뱅크’ 기억이 떠올랐다.
 
  도시락을 기다리던 쪽방촌 주민 80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두 줄로 늘어섰는데 한 줄은 빵줄, 다른 한 줄은 밥줄이었다. 이날 도시락은 닭볶음탕과 양파절임, 김치, 김. 하얀 스티로폼 용기에 가득 담긴 보리밥도 함께 주어졌다. 이날 푸드트럭은 평소보다 30분가량 늦은 오후 3시30분경에 도착했다. 그러나 각 50인분씩 준비된 도시락과 빵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에이 ××. 한발 늦었네!”
 
  헐레벌떡 뛰어온 상이군인 차림의 중노인이 내뱉은 말이었다.
 
  “좀 일찍 오지 그랬어.”
 
  푸른색 눈 화장을 짙게 한 50대 여성이 자기 몫의 반을 덜어주며 위로했다. 서로 안면이 있는 눈치였다. 이곳에도 낭만은 있어 보였다.
 
  83세인 정씨 할머니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대림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와 시간도 때울 겸 두어 시간을 기다린다고 했다. 할머니는 무료 도시락을 타면서 되레 역정을 냈다.
 
  “젊어서 일을 안 한 사람은 손바닥이 반들반들해. 일 안 해도 여기저기서 먹을 것 퍼주니까 얻어먹기만 하는 거지! 이 동네 사람들은 물건 아까운 줄도 모르고 막 버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정이 나빠지고 있어 다들 걱정이 많았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밥상 물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김 전 부회장의 말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던가요? 제 좌우명이 ‘가난할지라도 즐겁게 살며, 부귀하다 해도 겸손과 예의를 잊지 말자’입니다. 그해 사계(四季)봉사를 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빠른 갱생(更生)의 새봄이 다가오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한편, 지난 8월 3일 서울 영등포구,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은 서울 영등포 본동의 쪽방촌 일대(9849.9㎡)의 토지수용 보상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행복주택과 아파트 등 1190가구 주택과 상업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영등포 쪽방촌에 살던 360여 명의 주민에게 임대주택을 우선 배정할 계획이란다. 내년에 착공, 2026년 입주 예정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30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