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다가오자 출마 준비하며 논란에 휘말린 문재인의 ‘낙하산 부대’
⊙ ‘비전문가 정치인’이 자신의 옛 지역구에 있는 공공기관의 수장으로 취임
⊙ 공단 직원의 금품 후원으로 제기된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 이사장의 옛 지역구 소재 노인정 대상으로 한 금품 제공 행위 3건 더 있어(2019년)
⊙ “국민연금공단의 금품 살포 전수조사하고 자금 출처 규명해야”(민주평화당)
⊙ 갖은 논란 속에서도 현직 유지한 채 출마할 수 있다는 의중 암시한 김성주
⊙ ‘비전문가 정치인’이 자신의 옛 지역구에 있는 공공기관의 수장으로 취임
⊙ 공단 직원의 금품 후원으로 제기된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 이사장의 옛 지역구 소재 노인정 대상으로 한 금품 제공 행위 3건 더 있어(2019년)
⊙ “국민연금공단의 금품 살포 전수조사하고 자금 출처 규명해야”(민주평화당)
⊙ 갖은 논란 속에서도 현직 유지한 채 출마할 수 있다는 의중 암시한 김성주
- 2016년 4월 12일, 20대 총선을 하루 앞둔 이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북 전주시를 방문해 ‘전주시 병’ 지역구에 출마한, 같은 당 김성주 후보와 유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정권 들어 각종 공공기관에 포진한 ‘낙하산 부대’가 차기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인물이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최근 국민연금공단 소속 직원들이 과거 자신 지역구의 한 노인정을 찾아 100만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제공한 일 때문에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에 휘말렸다. ‘사전 선거운동 의혹’도 제기됐다. 국민연금공단의 사회공헌사업과 인력을 동원해 자신의 옛 지역구를 챙겼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총 700조원에 달하는 ‘국민 노후자금’을 책임진 국민연금공단의 이사장이 ‘국민연금 수익률 극대화’가 아닌 자신의 정치 활동 재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면, 법적 판단을 떠나 도의적으로 이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김 이사장은 세간의 의심처럼 정치 생명을 잇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을 이용했을까. 《월간조선》은 국민연금공단의 국회 제출 자료와 자체 입수 자료 등을 종합해 김 이사장 관련 의혹을 분석했다.
‘낙선 정치인’을 ‘국민 노후자금’ 관리자로 임명한 문재인
김성주 이사장은 전북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전주 소재 풍남초등학교, 전라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왔다. 이후 소위 ‘시민운동’을 하던 김 이사장은 2002년 당시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다가 전라북도 도의원(8·9대)에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전주시 덕진구’를 떠나 ‘서울시 강남구 을’로 지역구를 바꿔 출마한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현 민주평화당 대표)의 뒤를 이어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 입성 이후 김 이사장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16년 총선 때는 재선을 노리고 선거구 재편에 의해 이름이 바뀐 자신의 지역구 ‘전주시 병’에 출마했지만, 전임자였던 정동영 국민의당 후보에게 패했다. 당시 두 사람 득표 수 차이는 ‘989표’였다.
김 이사장은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전문위원단장으로 활동했다.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맡았다. 그러다가 그해 11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앞서 밝힌 것처럼 김 이사장의 경력은 ‘연기금’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소위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국민 노후자금 관리라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비(非)전문가’에 ‘낙선 정치인’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1999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래 금융·재정 비전문가, 해당 행정 경험 없는 정치인 등이 이사장으로 선임된 사례는 없다.
김 이사장 임명 당시 보건복지부는 “제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대표적 연금 전문가였고, 정치인 입장에서 국민 여론을 잘 수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주장했지만, 고작 초선 의원의 상임위 경력 4년을 운운하면서 가입자 2150만명에 기금 규모만 602조원인 ‘세계 3대 연기금’의 수장 자리에 앉힌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 시절 국민연금이 소위 ‘국정농단’에 이용됐다고 주장한 집권 세력이 ‘정치인’을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보낸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김 이사장은 2006년 전북 도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로 전북 전주시 덕진구를 정치적 연고로 삼아왔다. 국민연금공단 본사가 있는 곳이다. 지역 이해관계나 자신의 재출마 등이 글로벌 투자의 합리적 판단에 장애로 작용할 개연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진의’와 무관하게 정권 차원에서 ‘국민 노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식구의 ‘선거용 경력 쌓기’를 지원한 것이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시 야당에서는 김 이사장 임명에 대해 “전형적인 캠코더(문재인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국민의당은 “1999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후 정치인 출신 이사장이 임용된 적이 없었다는 점은, 국민연금 이사장 자리가 그만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라는 방증”이라며 “문재인 정부 최악의 인사 참사”라고 규정했다.
‘정권 논리 동조성’ 발언으로 논란 자초
2017년 11월 김성주 이사장 취임 이후 국민연금공단은 정치 편향 논란에 휘말렸다. 정권 논리에 따라 ‘국민연금’이 정권의 ‘쌈짓돈’처럼 이용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뜻하는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가 대표적인 논란거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지난해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주주의결권을 확대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김성주 이사장의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확정했다. 개별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강제적으로 축적한 국민의 노후자금을 이용해 정권 코드에 따르지 않는 국내 기업들을 옥죄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당한 사기업 경영권 침해’ ‘연금사회주의’란 지적이 나오자, 그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오히려 중립적인 연금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공정경제추진 전략회의에서 대기업에 대한 견제 장치로 국민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앞으로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여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면서 “(대기업 경영과 관련해) 틀린 것은 바로잡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주 이사장은 최근에 문재인 정권의 ‘반일(反日)’ 기조에 동조하며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순신’을 찾고 조국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 ‘죽창가’를 운운할 당시, 김 이사장은 지난 8월 1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해당 발언은 ‘수익률 제고를 위해 냉철한 시각으로 객관적인 투자 원칙을 고수해야 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정권의 논리에 따라 투자 대상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논란이 됐다. 참고로, 2017년 11월 7일 취임 당시 김 이사장은 ‘국민이 주인인 연금’을 내세워, 기금운용의 ‘독립성’ ‘투명성’ ‘전문성’을 강조했다.
옛 지역구에서 진행된 ‘표밭 다지기’ 의심 행보
이 밖에 김성주 이사장은 ‘표밭 다지기’로 오해될 수 있는 행보를 보여 논란을 빚었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석패’한 ‘낙선 정치인’이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공공기관의 수장으로 갈 때부터 예정된 것이기도 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김 이사장의 내년 총선 출마를 ‘상식’으로 여긴다. 그에 따라 올해 김 이사장의 언행 또는 국민연금공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의도’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국민연금공단이 추석을 맞아 김 이사장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전주 덕진구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성주’ 명의로 된 현수막을 8개소에 설치해 물의를 빚었다. 이와 관련, 같은 해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서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 이사장이 취임하기 전까지는 국민연금은 단 한 번도 명절 현수막을 걸지 않았고, 타 공공기관 현수막을 보면 대부분 기관장 이름은 명시하지 않는다. 김 이사장이 국민연금을 정치적 기반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정치적 의도가 아니었다. 앞으로 정치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행동에 유의하겠다”고 사과했지만, 김 이사장 또는 국민연금공단의 행보는 올해 들어서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최근 의혹이 제기된 사안은 ‘공직선거법 위반’ 문제다. 국민연금공단 인사혁신실 직원들이 지난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김 이사장 출마가 확실시되는 전주시 덕진구 소재 한 노인정을 찾아 온누리상품권 100만원어치를 전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연금공단은 “김 이사장은 모르는 일이다. 봉투에는 이사장 이름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노인정 관계자는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사장님께서 중앙에서 저기 해서 상을 타서 그렇게 해서 저기 했다고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후원’이라도 금품 전달하며 후보자 언급했다면 ‘선거법 위반’
현행 공직선거법은 ‘기부행위’에 대한 기준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란, ‘당해 선거구 안에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 및 선거구민의 모임이나 행사 또는 당해 선거구의 밖에 있더라도 그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에 대하여 금전·물품 기타 재산상 이익의 제공, 이익 제공의 의사표시 또는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직선거법 제114조는, ‘선거 후보자’ 또는 ‘후보가 되려고 하는 자’와 그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의 배우자, 선거사무소 관계자의 후보자 또는 그 소속 정당을 위한 일체의 기부행위를 금지한다. 이들과 유관한 회사·법인·단체 임직원의 경우에도 선거 기간 전에는 당해 선거에 관해, 선거 기간에는 선거 관련 여부를 불문하고 일체의 기부행위를 할 수 없다. 만일 후보자 또는 그 소속 정당의 명의를 밝혀 기부행위를 하거나, 후보자 또는 그 소속 정당이 기부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부행위를 하는 것은 당해 선거에 관하여 후보자 또는 정당을 위한 기부행위로 간주한다.
‘후보자 또는 그 가족과 관계있는 회사’란, 후보자가 임·직원 또는 구성원으로 있거나 기금을 출연하여 설립하고 운영에 참여하고 있거나 관계 법규나 규약에 의하여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회사 기타 법인·단체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 김성주 이사장이 출마할 계획이 있다면, 그는 ‘후보가 되려고 하는 자’이다. 그가 속한 국민연금공단은 공직선거법상 ‘후보가 되려고 하는 자’와 관계있는 회사가 되므로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이 노인정에 상품권을 전달할 때 ‘김성주 이사장’을 언급하거나 그가 기부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언행을 보였다면,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공단 직원의 노인정 상품권 전달과 관련해, 지난 11월 5일 “지역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한 김 이사장은 “오해의 소지는 부인하지 않겠다” “문제 제기에 일리가 있다”면서도 “사회공헌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공단 역할이 이런 논란 때문에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직원들의 기부금 전달은 순수하고 자발적인 활동일 뿐이다. 칭찬받아야 하는 미담이 논란이 돼 아쉽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의 ‘선의’가 ‘정치인’ 출신 이사장 탓에 오해받을 수도
김성주 이사장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에 대해 정치권에서 가장 앞장서 비판하고 나선 곳은 민주평화당이다. 민주평화당은 소속 의원 5명 중 3명의 지역구가 ‘전북’이다. 그중 당대표인 정동영 의원의 경우 내년 총선에서 김 이사장과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평화당은 지난 10월 29일 논평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의 ‘기타 상품권 제공 행위’ ‘자금 출처’ 등을 전수조사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즉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상품권 제공이 확인된 S 노인정뿐이었는지, 다른 노인정들에도 광범위하게 살포되었는지 전수조사해야 한다. 자금의 출처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인 국민연금공단 돈이 이사장 쌈짓돈처럼 금품선거에 쓰였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공단 측이 거의 매주 지역구민과 지역단체장들을 줄줄이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기념품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하라. 국민연금공단이 전주시 덕진구 봉사단체들에 대해 협찬금, 지원금, 장학금을 수시로 제공한 사실도 밝혀내야 한다.”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이 《월간조선》에 제공한 ‘국민연금공단 후원물품 전달 사업 내역(2014~2019)’에 따르면, 김성주 이사장의 출마 예상 지역으로 꼽히는 전주시 덕진구에서 진행된 사업건수와 그 금액은 ▲2015년 3건(134만원) ▲2016년 4건(530만원) ▲2017년 8건(2174만원) ▲2018년 13건(7981만원) 등이다. 이 중에는 덕진구 관내 노인복지관이나 아동센터에 대한 금품 후원이 다수 포함돼 있다. ‘국민연금공단 본사 이전 3주년 기념식’도 있다. 이 같은 국민연금공단의 후원 행위는 공직선거법상 ‘의례적 행위’로 인정돼 표면적으로는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낙선 정치인’이 옛 지역구에 본사가 있는 공공기관의 수장으로 오면서 ‘선의’로 이뤄진 ‘사회공헌사업’이 상황에 따라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수도 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국민연금공단의 2019년 사회공헌사업 세부내역(~10월 15일)’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이 올해 진행한 사회공헌사업은 총 24건이다. 이 중에는 앞서 언급한 ‘상품권 논란’과 유사한 경우로 의심받을 수 있는 덕진구 관내 금품 기부행위가 3건 더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올해 들어 ‘설맞이 사회공헌 활동’ 명목으로 덕진구 인후동 1가 소재 안골노인복지관에 100만원 상당의 온누리 상품권을 후원했다. 덕진구 금암동의 금암노인복지관에는 쌀 95만원어치, 덕진구 덕진동 2가 소재 덕진노인복지관에는 72만원 상당의 ‘반찬’을 제공했다.
‘기관장 일정’에는 없는 지역행사 참석
김성주 이사장에 대해서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본연의 업무보다 지역 행사 참가 등 ‘지역구 관리’에 더 집중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업무와는 무관한 듯한 지역 행사에 다수 참여했다. 김 의원의 출마 예상 지역구는 ‘전주시 병’이다. 전주시 병 지역구는 인후3동을 제외한 덕진구 관내 지역이다.
지난 6월 21일(금), 김 이사장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1가 소재 전북은행 안골 지점 주차장에서 열린 ‘인후1동 주민노래자랑’을 찾았다. 4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춤, 노래, 악기 공연 등이 진행됐다. 김 이사장은 관람석 맨 앞줄에 앉았다. 국민연금공단이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기관장 일정’에는 해당 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다. 이는 김 이사장의 지역 행사 참석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업무가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지난 9월 23일(월)에는 덕진구 여의동 소재 조촌초등학교에서 열린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했다. 이날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10월 18일(금)에는 덕진구 금암동 소재 중앙하이츠 아파트 행사에 방문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마당에서 열린 ‘행복한 중앙하이츠 아파트 한마당 축제’에 참석해 주민들에게 인사했다. 10월 26일(토)에는 덕진구 인후동 1가의 북일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인후1동 동민애(愛) 한마음대회’ 현장에서 무대에 올라 주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와 관련해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조선시대에도 상피제(相避制)라는 제도를 두고 관리가 연고를 가진 지역에는 파견하지 않았다”면서 “대통령이 (김성주 이사장을) 임명한 것 자체가 문제고, 김 이사장이 자기 지역구에 있는 국민연금공단에 가서 지금까지 지역 활동을 한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김 이사장은 당분간 사퇴하지 않고 현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그는 차기 총선 출마를 위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 사퇴 여부’에 대해 “사퇴는 임명권자가 결정할 일이다. 시기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심지어 “나는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정부 출연기금이 50% 미만인 공공기관의 경우 이사장이 현직을 유지한 채 출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장직에서 사퇴하지 않고 총선에 나설 수도 있다고 암시한 셈이다.
도대체 김 이사장은 ‘국민 노후자금’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사퇴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까. 애초 자신의 연고지에 있는 공공기관 수장으로 왜 간 것일까. 임기를 채우지 않고 총선에 나설 계획이었다면, 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을 거절하지 않았을까.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성주’는 답변 안 해
《월간조선》은 이와 관련해서 지난 11월 11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수신자로 한 질의서를 국민연금공단에 보내 이틀 뒤인 13일까지 답변해달라고 요청했다. 공단 관계자는 “질의서를 확인했고, 답변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사 편집이 끝난 14일까지 공단 측 회신은 없었다.
〈1.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현재 논란이 된 공단 직원들의 상품권 기부가 공직선거법이 얘기하는 ‘의례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까?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을 자초한 직원들의 ‘상품권 기부’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2. 국민연금공단 상생협력부가 작성한 ‘후원물품 전달 사업 내역’에 따르면 수증자 소재지가 전주시 덕진구인 경우는 2016년도에 4건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13건으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금액도 530만원에서 약 8000만원(추산)으로 늘었습니다. 이사장이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노리고 사적으로 국민연금공단의 후원 사업을 이용했다는 비판을 들을 소지가 있는 대목 아닙니까?
3. 상기 전주시 덕진구에서 이뤄진 후원 사업 중 이사장 명의로 금품이 전달되거나 귀하를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함께 제공되지는 않았습니까?
4.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업무와 지역 주민 노래자랑, 초등학교 개교 기념식, 건강보험공단 주최 행사, 아파트 단지 행사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어서 업무 시간에 참석한 것입니까?
5. 왜 국민연금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이사장 일정’에는 해당 내용이 기록돼 있지 않습니까?
6. 최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을 유지한 채 총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을 했는데, 이에 대한 법률 검토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국민연금공단 내부 인력의 조언을 받은 것입니까?
7. 내년 총선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을 유지한 채 출마할 생각입니까? 그럴 계획이 있다면, 이는 국민 노후자금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라는 자리의 막중함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지 않습니까?
8. 전주시 덕진구에 소재한 국민연금공단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그간 각종 행사에 참석했고, 국민연금공단은 기부, 후원이란 명목으로 해당 지역에서 소위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지역 주민에 대한 ‘선심성 관광 제공’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귀하가 총선에 나서는 것은 과연 온당한 처사입니까? 법적 문제를 떠나 도의적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 않습니까?
9.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총선에 나설 계획이었다면, 애초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낙선 정치인’을 ‘국민 노후자금’ 관리자로 임명한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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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김성주 이사장은 2016년 20대 총선 때 ‘전주시 병’에서 경쟁했다. 당시 김 이사장은 정 대표보다 989표를 적게 받아 ‘석패’했다. 사진=뉴시스 |
김 이사장은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전문위원단장으로 활동했다.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맡았다. 그러다가 그해 11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앞서 밝힌 것처럼 김 이사장의 경력은 ‘연기금’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소위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국민 노후자금 관리라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비(非)전문가’에 ‘낙선 정치인’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1999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래 금융·재정 비전문가, 해당 행정 경험 없는 정치인 등이 이사장으로 선임된 사례는 없다.
김 이사장 임명 당시 보건복지부는 “제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대표적 연금 전문가였고, 정치인 입장에서 국민 여론을 잘 수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주장했지만, 고작 초선 의원의 상임위 경력 4년을 운운하면서 가입자 2150만명에 기금 규모만 602조원인 ‘세계 3대 연기금’의 수장 자리에 앉힌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 시절 국민연금이 소위 ‘국정농단’에 이용됐다고 주장한 집권 세력이 ‘정치인’을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보낸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김 이사장은 2006년 전북 도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로 전북 전주시 덕진구를 정치적 연고로 삼아왔다. 국민연금공단 본사가 있는 곳이다. 지역 이해관계나 자신의 재출마 등이 글로벌 투자의 합리적 판단에 장애로 작용할 개연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진의’와 무관하게 정권 차원에서 ‘국민 노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식구의 ‘선거용 경력 쌓기’를 지원한 것이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시 야당에서는 김 이사장 임명에 대해 “전형적인 캠코더(문재인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국민의당은 “1999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후 정치인 출신 이사장이 임용된 적이 없었다는 점은, 국민연금 이사장 자리가 그만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라는 방증”이라며 “문재인 정부 최악의 인사 참사”라고 규정했다.
‘정권 논리 동조성’ 발언으로 논란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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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4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찾은 대한항공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은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조양호 회장 퇴진’을 위한 ‘주주권 행사’를 촉구했다. 사진=뉴시스 |
김성주 이사장의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확정했다. 개별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강제적으로 축적한 국민의 노후자금을 이용해 정권 코드에 따르지 않는 국내 기업들을 옥죄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당한 사기업 경영권 침해’ ‘연금사회주의’란 지적이 나오자, 그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오히려 중립적인 연금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공정경제추진 전략회의에서 대기업에 대한 견제 장치로 국민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앞으로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여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면서 “(대기업 경영과 관련해) 틀린 것은 바로잡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주 이사장은 최근에 문재인 정권의 ‘반일(反日)’ 기조에 동조하며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순신’을 찾고 조국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 ‘죽창가’를 운운할 당시, 김 이사장은 지난 8월 1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해당 발언은 ‘수익률 제고를 위해 냉철한 시각으로 객관적인 투자 원칙을 고수해야 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정권의 논리에 따라 투자 대상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논란이 됐다. 참고로, 2017년 11월 7일 취임 당시 김 이사장은 ‘국민이 주인인 연금’을 내세워, 기금운용의 ‘독립성’ ‘투명성’ ‘전문성’을 강조했다.
옛 지역구에서 진행된 ‘표밭 다지기’ 의심 행보
이 밖에 김성주 이사장은 ‘표밭 다지기’로 오해될 수 있는 행보를 보여 논란을 빚었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석패’한 ‘낙선 정치인’이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공공기관의 수장으로 갈 때부터 예정된 것이기도 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김 이사장의 내년 총선 출마를 ‘상식’으로 여긴다. 그에 따라 올해 김 이사장의 언행 또는 국민연금공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의도’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국민연금공단이 추석을 맞아 김 이사장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전주 덕진구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성주’ 명의로 된 현수막을 8개소에 설치해 물의를 빚었다. 이와 관련, 같은 해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서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 이사장이 취임하기 전까지는 국민연금은 단 한 번도 명절 현수막을 걸지 않았고, 타 공공기관 현수막을 보면 대부분 기관장 이름은 명시하지 않는다. 김 이사장이 국민연금을 정치적 기반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정치적 의도가 아니었다. 앞으로 정치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행동에 유의하겠다”고 사과했지만, 김 이사장 또는 국민연금공단의 행보는 올해 들어서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최근 의혹이 제기된 사안은 ‘공직선거법 위반’ 문제다. 국민연금공단 인사혁신실 직원들이 지난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김 이사장 출마가 확실시되는 전주시 덕진구 소재 한 노인정을 찾아 온누리상품권 100만원어치를 전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연금공단은 “김 이사장은 모르는 일이다. 봉투에는 이사장 이름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노인정 관계자는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사장님께서 중앙에서 저기 해서 상을 타서 그렇게 해서 저기 했다고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기부행위’에 대한 기준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란, ‘당해 선거구 안에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 및 선거구민의 모임이나 행사 또는 당해 선거구의 밖에 있더라도 그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에 대하여 금전·물품 기타 재산상 이익의 제공, 이익 제공의 의사표시 또는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직선거법 제114조는, ‘선거 후보자’ 또는 ‘후보가 되려고 하는 자’와 그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의 배우자, 선거사무소 관계자의 후보자 또는 그 소속 정당을 위한 일체의 기부행위를 금지한다. 이들과 유관한 회사·법인·단체 임직원의 경우에도 선거 기간 전에는 당해 선거에 관해, 선거 기간에는 선거 관련 여부를 불문하고 일체의 기부행위를 할 수 없다. 만일 후보자 또는 그 소속 정당의 명의를 밝혀 기부행위를 하거나, 후보자 또는 그 소속 정당이 기부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부행위를 하는 것은 당해 선거에 관하여 후보자 또는 정당을 위한 기부행위로 간주한다.
‘후보자 또는 그 가족과 관계있는 회사’란, 후보자가 임·직원 또는 구성원으로 있거나 기금을 출연하여 설립하고 운영에 참여하고 있거나 관계 법규나 규약에 의하여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회사 기타 법인·단체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 김성주 이사장이 출마할 계획이 있다면, 그는 ‘후보가 되려고 하는 자’이다. 그가 속한 국민연금공단은 공직선거법상 ‘후보가 되려고 하는 자’와 관계있는 회사가 되므로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이 노인정에 상품권을 전달할 때 ‘김성주 이사장’을 언급하거나 그가 기부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언행을 보였다면,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공단 직원의 노인정 상품권 전달과 관련해, 지난 11월 5일 “지역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한 김 이사장은 “오해의 소지는 부인하지 않겠다” “문제 제기에 일리가 있다”면서도 “사회공헌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공단 역할이 이런 논란 때문에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직원들의 기부금 전달은 순수하고 자발적인 활동일 뿐이다. 칭찬받아야 하는 미담이 논란이 돼 아쉽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의 ‘선의’가 ‘정치인’ 출신 이사장 탓에 오해받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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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 인사혁신실 직원들은 지난 10월 2일, 김성주 이사장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에 있는 노인정에 ‘온누리상품권’ 100만원어치를 기부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을 초래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올해 들어 김 이사장의 옛 지역구 소재 노인정에 267만원 상당의 금품을 후원한 바 있다. 출처=국민연금공단 |
“이번 사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즉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상품권 제공이 확인된 S 노인정뿐이었는지, 다른 노인정들에도 광범위하게 살포되었는지 전수조사해야 한다. 자금의 출처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인 국민연금공단 돈이 이사장 쌈짓돈처럼 금품선거에 쓰였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공단 측이 거의 매주 지역구민과 지역단체장들을 줄줄이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기념품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하라. 국민연금공단이 전주시 덕진구 봉사단체들에 대해 협찬금, 지원금, 장학금을 수시로 제공한 사실도 밝혀내야 한다.”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이 《월간조선》에 제공한 ‘국민연금공단 후원물품 전달 사업 내역(2014~2019)’에 따르면, 김성주 이사장의 출마 예상 지역으로 꼽히는 전주시 덕진구에서 진행된 사업건수와 그 금액은 ▲2015년 3건(134만원) ▲2016년 4건(530만원) ▲2017년 8건(2174만원) ▲2018년 13건(7981만원) 등이다. 이 중에는 덕진구 관내 노인복지관이나 아동센터에 대한 금품 후원이 다수 포함돼 있다. ‘국민연금공단 본사 이전 3주년 기념식’도 있다. 이 같은 국민연금공단의 후원 행위는 공직선거법상 ‘의례적 행위’로 인정돼 표면적으로는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낙선 정치인’이 옛 지역구에 본사가 있는 공공기관의 수장으로 오면서 ‘선의’로 이뤄진 ‘사회공헌사업’이 상황에 따라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수도 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국민연금공단의 2019년 사회공헌사업 세부내역(~10월 15일)’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이 올해 진행한 사회공헌사업은 총 24건이다. 이 중에는 앞서 언급한 ‘상품권 논란’과 유사한 경우로 의심받을 수 있는 덕진구 관내 금품 기부행위가 3건 더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올해 들어 ‘설맞이 사회공헌 활동’ 명목으로 덕진구 인후동 1가 소재 안골노인복지관에 100만원 상당의 온누리 상품권을 후원했다. 덕진구 금암동의 금암노인복지관에는 쌀 95만원어치, 덕진구 덕진동 2가 소재 덕진노인복지관에는 72만원 상당의 ‘반찬’을 제공했다.
김성주 이사장에 대해서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본연의 업무보다 지역 행사 참가 등 ‘지역구 관리’에 더 집중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업무와는 무관한 듯한 지역 행사에 다수 참여했다. 김 의원의 출마 예상 지역구는 ‘전주시 병’이다. 전주시 병 지역구는 인후3동을 제외한 덕진구 관내 지역이다.
지난 6월 21일(금), 김 이사장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1가 소재 전북은행 안골 지점 주차장에서 열린 ‘인후1동 주민노래자랑’을 찾았다. 4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춤, 노래, 악기 공연 등이 진행됐다. 김 이사장은 관람석 맨 앞줄에 앉았다. 국민연금공단이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기관장 일정’에는 해당 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다. 이는 김 이사장의 지역 행사 참석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업무가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지난 9월 23일(월)에는 덕진구 여의동 소재 조촌초등학교에서 열린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했다. 이날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10월 18일(금)에는 덕진구 금암동 소재 중앙하이츠 아파트 행사에 방문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마당에서 열린 ‘행복한 중앙하이츠 아파트 한마당 축제’에 참석해 주민들에게 인사했다. 10월 26일(토)에는 덕진구 인후동 1가의 북일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인후1동 동민애(愛) 한마음대회’ 현장에서 무대에 올라 주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와 관련해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조선시대에도 상피제(相避制)라는 제도를 두고 관리가 연고를 가진 지역에는 파견하지 않았다”면서 “대통령이 (김성주 이사장을) 임명한 것 자체가 문제고, 김 이사장이 자기 지역구에 있는 국민연금공단에 가서 지금까지 지역 활동을 한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김 이사장은 당분간 사퇴하지 않고 현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그는 차기 총선 출마를 위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 사퇴 여부’에 대해 “사퇴는 임명권자가 결정할 일이다. 시기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심지어 “나는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정부 출연기금이 50% 미만인 공공기관의 경우 이사장이 현직을 유지한 채 출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장직에서 사퇴하지 않고 총선에 나설 수도 있다고 암시한 셈이다.
도대체 김 이사장은 ‘국민 노후자금’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사퇴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까. 애초 자신의 연고지에 있는 공공기관 수장으로 왜 간 것일까. 임기를 채우지 않고 총선에 나설 계획이었다면, 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을 거절하지 않았을까.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성주’는 답변 안 해
《월간조선》은 이와 관련해서 지난 11월 11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수신자로 한 질의서를 국민연금공단에 보내 이틀 뒤인 13일까지 답변해달라고 요청했다. 공단 관계자는 “질의서를 확인했고, 답변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사 편집이 끝난 14일까지 공단 측 회신은 없었다.
〈1.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현재 논란이 된 공단 직원들의 상품권 기부가 공직선거법이 얘기하는 ‘의례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까?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을 자초한 직원들의 ‘상품권 기부’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2. 국민연금공단 상생협력부가 작성한 ‘후원물품 전달 사업 내역’에 따르면 수증자 소재지가 전주시 덕진구인 경우는 2016년도에 4건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13건으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금액도 530만원에서 약 8000만원(추산)으로 늘었습니다. 이사장이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노리고 사적으로 국민연금공단의 후원 사업을 이용했다는 비판을 들을 소지가 있는 대목 아닙니까?
3. 상기 전주시 덕진구에서 이뤄진 후원 사업 중 이사장 명의로 금품이 전달되거나 귀하를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함께 제공되지는 않았습니까?
4.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업무와 지역 주민 노래자랑, 초등학교 개교 기념식, 건강보험공단 주최 행사, 아파트 단지 행사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어서 업무 시간에 참석한 것입니까?
5. 왜 국민연금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이사장 일정’에는 해당 내용이 기록돼 있지 않습니까?
6. 최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을 유지한 채 총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을 했는데, 이에 대한 법률 검토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국민연금공단 내부 인력의 조언을 받은 것입니까?
7. 내년 총선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을 유지한 채 출마할 생각입니까? 그럴 계획이 있다면, 이는 국민 노후자금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라는 자리의 막중함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지 않습니까?
8. 전주시 덕진구에 소재한 국민연금공단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그간 각종 행사에 참석했고, 국민연금공단은 기부, 후원이란 명목으로 해당 지역에서 소위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지역 주민에 대한 ‘선심성 관광 제공’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귀하가 총선에 나서는 것은 과연 온당한 처사입니까? 법적 문제를 떠나 도의적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 않습니까?
9.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총선에 나설 계획이었다면, 애초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