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日이 건설해 온 비대칭적 속도전의 핵심은 ‘核과 WMD(대량살상무기), 장사정포, 특수전과 재편성된 재래전력의 융합을 통해 한미연합전력에 대한 구조적 열세를 일거에 역전시키는 것’
“軍 수뇌부는 북한과의 전쟁수행은 연합사에 맡겨놓고 진급이나 보직에 연연하다 보니 어떤 군사력을 어떤 방향으로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 플랜이 없다. 때문에 국방부장관이나 참모총장이 바뀔 때마다 개인적 성향에 의해 군사력 건설방향이 요동쳐”
⊙ 현재와 같은 高비용 低효율 방위산업 구조로는 정예 첨단과학기술군, 방위산업 신경제 성장동력화
달성 불가능
⊙ “수조원 쏟아부은 C4I(지휘자동화체계)는 육·해·공군뿐만 아니라 각군 기관별로 제각각 개발
운영하는 바람에 상호운용성 없어 실패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
⊙ 정부 R&D 예산 중 국방분야는 연간 2조원, 지식경제부는 4조5000억원을 사용. 지경부는 이 예산을
적극 활용해 연간 수출 4000억 달러 성취. 국방분야 수출액은 연평균 3억 달러에 불과
⊙ 방위산업제품 수출 발목 잡는 기술료. 국방과학연구소는 “기술료 징수하여 직원들 복리후생비로
쓰겠다”는 입장
“軍 수뇌부는 북한과의 전쟁수행은 연합사에 맡겨놓고 진급이나 보직에 연연하다 보니 어떤 군사력을 어떤 방향으로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 플랜이 없다. 때문에 국방부장관이나 참모총장이 바뀔 때마다 개인적 성향에 의해 군사력 건설방향이 요동쳐”
⊙ 현재와 같은 高비용 低효율 방위산업 구조로는 정예 첨단과학기술군, 방위산업 신경제 성장동력화
달성 불가능
⊙ “수조원 쏟아부은 C4I(지휘자동화체계)는 육·해·공군뿐만 아니라 각군 기관별로 제각각 개발
운영하는 바람에 상호운용성 없어 실패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
⊙ 정부 R&D 예산 중 국방분야는 연간 2조원, 지식경제부는 4조5000억원을 사용. 지경부는 이 예산을
적극 활용해 연간 수출 4000억 달러 성취. 국방분야 수출액은 연평균 3억 달러에 불과
⊙ 방위산업제품 수출 발목 잡는 기술료. 국방과학연구소는 “기술료 징수하여 직원들 복리후생비로
쓰겠다”는 입장
■ 완성단계 들어선 金正日의 ‘비대칭적 속도전’
천안함이 두 동강 나 침몰한 원인이 어뢰로 인한 사고로 잠정 결론이 나면서 우리 안보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군(軍)의 위기관리능력을 질타한 후 5월 9일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장 李相禹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를 설치하고 이희원(李熙元)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안보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이번 천안함 사건에 대해 안보전문가들은 “우리 군의 무능한 위기징후 분석능력, 미숙한 현장 대응, 지휘보고체계의 붕괴 등 위기대응능력에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고 직후 천안함장이 사고 상황을 군 통신망이 아닌 휴대폰으로 2함대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도대체 지금까지 군 통신망 현대화에 쏟아부은 예산이 얼마인데…” 하는 탄식이 쏟아졌다.
군은 지금까지 C4I(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Intelligence의 약자로 첨단 장비와 컴퓨터, 통신이 결합된 지휘자동화체계)의 구축으로 확고한 대북(對北) 우위를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하자 해군은 KNTDS(전술지휘통제 시스템)에서 천안함이 사라진 현황을 제때 추적해 내지 못했고,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은 사고 상황을 대통령보다 뒤늦게 보고받는 등 지휘 자동화체계는 무용지물이었다.
현재까지 천안함 공격이 북한 측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없지만 사고조사 관련 전문가들은 여러 정황을 분석한 결과 북한 측 소행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추정대로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도발임이 확실하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총체적인 경계작전임무 실패
천안함은 각종 함포 이외에 잠수함을 탐지 공격하는 각종 무기체계를 탑재하고 있다. 이런 전투함이 접적(接敵)지역에서 경비작전 중 적국(敵國) 잠수함(혹은 잠수정)이 발사한 단 한 방의 어뢰에 피격돼 침몰했다면 한국군은 총체적으로 경계작전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북한 잠수함(혹은 잠수정)이 야간에 적국 해안에 은밀히 침투, 매복해 있다가 경비 항해 중인 초계함을 공격했다면 적극적인 작전을 전개했다는 뜻이 된다. 우리 군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대북(對北) 도청, 감청, 암호해독, 위성감시, 전파감시체계 등 정보수집 시스템을 통해 이런 위기징후를 사전에 입수 분석하여 위협에 대비했어야 정상이다.
불행하게도 천안함 승조원들은 어떤 위기징후도 사전에 인식하지 못한 채 당직자를 제외한 요원들은 운동복을 입고 운동 중에, 혹은 휴식 중 어뢰에 피격돼 초계함 한 척과 46명의 고귀한 인명이 희생당하는 비참한 패전(敗戰)을 했다.
송영무(宋永武) 전 해군참모총장은 “우리 해군 지휘부는 대청해전 이후 북한의 보복공격을 우려하여 접적지역에서 작전 중인 함정들에 고속 기동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 이 와중에 천안함이 접적지역에서, 그것도 백령도에서 불과 1.6km 지점까지 바짝 접근하여 시속 5~6노트의 저속으로 항해한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해안에서는 어선까지 동원해 대잠훈련을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 왔지만, 백령도 주변에선 적 잠수함이 활동하기 곤란할 것이라는 예단하에 대잠훈련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 “적에게 우리 허점을 찔려 기습을 당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사전문가들은 “어떤 변명과 현란한 수사가 있더라도 이번 천안함 사건은 우리 군의 경계작전 실패라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2함대로부터 넓은 경비구역을 할당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백령도 가까이 접근하여 저속 항해를 하도록 한 천안함장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예비역 해군 수뇌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군 세계에서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는 잠언(箴言)이다. 6·25 당시 미(美) CIA 국장이었던 로스코 힐렌쾨터는 CIA가 북한의 기습남침을 예측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6·25 휴전 이래 북에 가장 비참한 패전을 당한 우리 군 수뇌부가 경계실패에 대해 국민들에게 참회나 반성, 사과를 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은 바 없다.
북한의 비대칭전 전력 완성단계
북한은 잠수함 자체의 성능은 우리 해군보다 뒤처지지만 한국군보다 운용 역사도 길고 척수도 월등히 많다. 수중전 능력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최근 들어 북한이 비대칭전력(핵·생화학무기·미사일이나 그 투발체계 등을 이용해 재래식 정규전이 아닌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능력) 건설이 완성단계에 들어섰음을 공공연하게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천안함의 건조가격(탑재 무기 가격 포함)은 약 1400억원으로 추산되는 반면 천안함을 한 방에 침몰시킨 어뢰는 국제시장에서 10억~15억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격이 북한 측 소행이 확실하다면 북한은 우리 전투함에 대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비대칭전력을 행사해 큰 전과를 올린 셈이다.
북한이 건설 중인 ‘비대칭전력의 정점(頂點)’이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와 사이버전 능력이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의 권태영 박사는 “핵무기도 문제지만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의 질과 양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도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신형 대함(對艦)미사일(KN-01)과 지대지(地對地)미사일(KN-02)의 능력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KN-01은 노후한 실크 웜 미사일 대체용으로 사거리가 120~160km로 연장되고 정확도도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KN-02는 소련의 이동식 단거리 미사일 SS-21의 개량형으로 사거리 120km, 고체연료로 추진되어 이동식으로 5분 내 발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 미사일들은 오산 미 공군기지 및 2함대가 위치한 평택기지를 직접 위협할 수 있어 주한 미 공군 및 우리 구축함 세력에 비상이 걸렸다.
2007년 당시 연합사 사령관이었던 버웰 벨 대장과 월터 샤프 현 사령관은 “북한이 이 두 가지 미사일을 양산하여 휴전선 가까이 배치할 경우 수도권을 타격할 수 있는 240mm 방사포와 170mm 자주포 등 장사정 포보다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권태영 박사는 “현재 우리 군은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뿐만 아니라 특수전과 재래전을 뒤섞은 배합전 전력 위협에도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한이 한국군의 첨단 군사 네트워크와 전자장비를 일거에 마비시킬 수 있는 전자기 펄스무기(EMP·Electro Magnetic Pulse)를 이미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결론적으로 북한은 핵·미사일·생화학무기·장사정포·특수부대라는 5대 위협에 더해 사이버전과 정치 군사 심리전, EMP 능력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비대칭 위협을 과거보다 현격하게 증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金正日의 ‘판가리 전략’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는 “북한이 1999년 7월 발표한 ‘미제(美帝)와 판가리 결전준비 차원에서의 작전계획’과 2004년 4월 김정일이 지시한 ‘개전(開戰) 24시간 내 당·군·민 총동원 태세’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올 2월 11일 북한군 인사 때 김정일의 최측근 인물인 김영춘 차수를 인민무력부장(한국의 국방부장관)에 임명한 것도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춘은 동해 앞바다 잠수정 침투 사건(1998), 대포동 1호 발사(1998), 제1차 연평해전(1999), 제2차 연평해전(2002), 대포동 2호 발사 및 핵 실험(2006) 등 각종 도발을 주도해 온 북한 군부 강경파의 대부(代父)로 알려졌다.
홍 대표는 “김영춘과 같은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핵과 비대칭전력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조기 적화하기 위해 경주해 온 모든 준비가 완료됐음을 상징하는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대북(對北) 군사전문가들은 북한 군사력이 비대칭으로 전환한 변곡점을 김정일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된 1991년으로 꼽았다. 이때부터 김정일은 6·25 실패 교훈과 첨단무기를 동원해 족집게식 파괴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걸프전 충격에 대한 대응책 차원에서 ‘비대칭적 속도전’으로 급속 전환했다는 것이다.
홍성민 대표는 김정일이 건설해 온 비대칭적 속도전의 핵심은 ‘핵과 WMD, 장사정포, 특수전과 재편성된 재래전력의 융합을 통해 한미연합전력에 대한 구조적 열세를 일거에 역전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북한군은 비대칭적 속도전을 통해 ▲한반도 전역을 동시 전장화하고 ▲핵과 미사일을 동원하여 미군 증원 차단 ▲한미연합전력의 조기경보체제에 대한 원천적 기만 ▲재래전력과 특수전 부대의 융합 ▲비대칭전력과 재편된 재래전력의 융합을 통한 타격력과 심리적 충격효과 극대화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작전을 개전 후 5~7일 이내의 단기 속결전으로 치러 한반도를 적화(赤化)한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 북한의 비대칭 위협은 한미 연합전력에 맡기고 재래식 군사력 건설에 올인 중인 한국군
그렇다면 북한의 ‘비대칭적 속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군의 전력건설은 제대로 되고 있는가? 군사전문가들은 우리 군이 북의 비대칭전력에 대비하려면 북한의 약점을 정확하게 타격 격멸할 수 있는 수단의 확보가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은 봉건세습 왕조체제로서 1인지배체제라는 취약점이 있다. 우리 군이 유사시 적의 지도부를 결정적으로 제거하는 참수작전 능력을 보유하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무력화시키는 EMP 폭탄이나 레이저 파괴무기, 원거리 정밀타격능력 등을 보유해 북한군에 대한 역(逆)비대칭 전력을 건설하면 북한의 군사적 태세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취재 결과 우리 군의 방위력 개선은 이와는 정반대로 움직여왔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기업 관계자는 “우리 군은 대부분의 군사력 건설을 대북(對北) 정규전 위주로 진행해 옴으로써 북한의 비대칭적 속도전에 대응하기 곤란한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홍성민 대표는 “북한의 비대칭적 속도전에 대한 대응방안이 한미 연합방위체제인데, 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 한미연합사 해체, 전작권 전환 등으로 그 근본을 흔들어놓는 바람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된 ‘국방개혁 2020’은 한미연합사 해체 및 전작권 전환에 대비하기 위해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총 621조원의 국방비를 투입하여 인력 위주, 재래전력 위주였던 우리 군을 소수 정예병력 및 첨단장비 위주의 질적 구조로 재편한다는 것이 기본 골격이다.
이 정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 이상희(李相憙) 국방부장관 주도하에 ‘국방개혁 기본계획(2009~2020)’으로 변경되면서 전력투자에 대한 내용이 일부 조정됐다. 그런데 다수의 군사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 기본계획은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개악(改惡)”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명한 이유는 조정된 전력투자비 약 200조원 중 25%에 해당하는 50조원을 다연장포(29조원), 자주포(10조원), 신형전차(9조원) 등 재래식 전력건설에 할당한 반면 공중급유기, 고(高)고도 무인정찰기, 해군의 3000t급 차기 잠수함 도입 등 전략무기 획득사업은 모두 연기시켰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기에 박격포로 대응?
이에 대해 <조선일보>(2009년 7월 21일자)는 ‘구한말(舊韓末) 같은 군사적 열세의 비운 되풀이 말아야’라는 칼럼에서 ‘육군 전력 증강비 50조원의 절반인 25조원은 미국의 최신예 전투기 F-22를 100대 구입할 수 있는 예산’이라면서 ‘미국이 F-22의 해외 판매를 금지하고 있어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F-22 100대면 북한은 물론 주변국에 대한 위협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사전문가의 말이다.
“17대 국회에서 2008년 국방예산을 심의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는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이에 대한 대응전력 건설이 첨예한 관심사로 대두한 때였어요. 그런데 우리 군은 북한 핵이나 미사일에 대비하는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전혀 소요제기를 하지 않았어요.
대신 무려 4조원을 들여 4.2인치 박격포를 120mm 박격포로 교체하겠다고 하지를 않나, 육군 전차와 장갑차, 자주포와 탄약운반 장갑차 소요를 세 배로 늘린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겁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쏴 대는 판에 우리 군은 박격포, 장갑차 타령이나 하고 나섰으니 핵무기에 박격포, 장갑차로 대응하겠다는 뜻인지…. 국회 국방위가 고위 장성들을 질타하고 국회 직권으로 고(高)고도 무인정찰기(UAV), 탄도탄 조기경보 레이더, 방사능 탐지세트, 합동직격탄(JDAM·항공기에서 투하하는 정밀유도폭탄), 레이저 유도폭탄, 지하시설 파괴탄, 현무(국산 지대지 순항미사일) 성능개량 예산 등을 증액시킨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군사전문가는 “북한은 핵을 기반으로 한반도를 조기 적화한다는 이른바 ‘판가리 전략’을 완성하고 입체전·정보전·과학전·원격전·정밀전으로 진화한 데 비해 우리 군은 6·25 때의 전쟁방식인 기동전·화력전·소모전에 중점을 둔 군사력을 건설하고 있다”면서 “과연 북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함택영(咸澤英)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오늘날 남한이 군사력에서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부문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미국에 의존하는 독자적 전략기획 능력의 부재(不在)”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저렴한 비용으로 억지력을 확보하기 때문에 남한의 군비증강을 통한 안보의 추구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남북한의 군비투자에는 이미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 휘청거리는 방위산업 ‘수출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은 가능할까?
우리 군의 무기체계 개발과 획득 관련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부서가 방위사업청(청장 卞武根·이하 방사청으로 표기)과 국방과학연구소(소장 朴昌奎·이하 국과연으로 표기)다. 이명박 정부가 ‘방위산업의 수출산업화를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이라는 목표를 현장에서 추진하는 곳도 이 두 부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월 1일 출범한 방사청 홈페이지에는 ‘방위사업청 개청으로 최적의 무기체계 획득이 가능하여 적기에, 질 좋은 제품을 경제적으로 획득하고 국방획득업무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획득관련 비리발생의 악순환을 차단…(중략)…고객지향의 방위사업행정을 구현하여 국민에게는 예산절감, 기업에는 최선의 행정서비스를, 소요군에는 우수한 장비를 적시에 제공’이라고 업무를 소개하고 있다.
박정희(朴正熙) 정권 시절인 1970년 8월 출범한 국과연은 국내 산업기반이 전무(全無)하던 시절에 군의 기본화기 개발에 성공했고, 국방과학 기술수준을 선진국의 70% 수준까지 발전시키는 주역이었다. 국과연의 연구개발 덕에 우리나라는 155mm 자주포(K-9)의 터키 수출(약 3억3000만 달러), 기본훈련기(KT-1)의 인도네시아(8300만 달러)와 터키 수출(3억5000만 달러), 차기 전차(K-2)의 터키 기술협력 수출 등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이 두 부서가 21세기 북한의 비대칭적 속도전 위협에 맞서는 전력건설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방위산업을 수출산업으로 발전시켜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소화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국과연의 역할에 대한 불신은 도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방위력 개선사업은 방위사업청이 중심이 되어 국과연이 설계 및 개발을, 방산기업은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이중 구조로 진행돼 왔다. 기술축적은 국과연 중심이며 기업들은 양산을 맡는 이중구조는, 결과적으로 기업이 관(官)의 하청업체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초래했다. 이런 구조하에서 추진된 주요 프로젝트들은 어떤 결과를 낳고 있을까.
지난 5월 12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열린 ‘제8회 요르단 특수작전무기전시회(SOFEX)’에는 우리나라 7개 방산기업이 참여하여 K-21 차기 보병장갑차, T-50 고등훈련기, 70mm 다연장포, K-3 기관총과 K-11 복합소총 등의 세일즈에 나섰다. 현지에서는 우리 방산무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고 한다.
K-2 흑표전차 파워팩은 어떻게 됐나?
그러나 이런 국산무기 호평의 이면에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다. K-2 전차(흑표), 차기 보병장갑차(K-21),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천마, 비호 등 주요 무기체계 개발사업 과정에서 핵심기술 개발에 실패하거나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K-2 흑표전차 개발사업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3조9022억원을 들여 국내 연구개발을 통해 370여 대의 전차를 확보하는 사업이다. 연구개발은 국과연 주관, 주포는 현대 위아, 조준경과 컴퓨터는 삼성탈레스, 체계종합은 로템, 특수장갑은 삼양 컴텍이 담당한다.
양산된 K-2 전차가 군에 납품되는 시기는 2011년부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변무근 방위사업청장이 2009년 11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 “K-2 개발과정에서 1500마력 엔진에 중대한 결함이 발생해 내년도에 편성된 882억원의 전차 구매 예산을 집행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국과연은 K-2 전차 개발과정에서 처음에는 핵심부품인 파워팩(엔진과 변속기)을 독일 MTU사(社) 제품을 구입해 쓰기로 했다가 뒤늦게 국산화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개발과정에서 원천기술 부재로 독자개발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당분간 독일제 파워팩을 사다 써야 할 상황이 됐다. 상황을 간파한 MTU 측은 “한국에서 일정 수량 이상을 구매해야만 파워팩을 판매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삼성테크윈에서 자주포 수출업무를 담당하다 최근 퇴직하여 방산수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하섭 대표는 “전 세계에서 1500마력짜리 전차 엔진을 독자개발한 나라는 독일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다른 선진국들도 전차의 파워팩은 독일제를 사다 쓰고 있다고 한다. 수입해다 쓰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국과연은 ‘국산화’라는 명제에 집착하여 722억원이나 들여 파워팩 개발에 나섰다가 진퇴양난의 상황이 됐다. 김 대표는 “파워팩 독자개발에 K-2 R&D 예산의 20~30%를 투입한 것은 경제성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헬기 잡는 장갑차’ ‘물에 뜨는 장갑차’로 유명세를 탄 K-21 보병장갑차는 어떤가. K-21은 작년 11월 30일 육군 모 사단에서 실전배치 10일 만에 도하훈련 도중 수중에서 엔진이 멎는 사고가 발생해 탑승자들이 비상탈출하는 등 망신살이 뻗쳤다. 군에서는 단순 사고, 혹은 운전병 실수라는 입장이지만 제품 자체에 설계 결함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各軍별로 따로 노는 C4I 구축사업
군이 4조7000억원을 들여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TICN(전술정보통신체계) 구축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파행을 겪고 있다. 탈락한 삼성탈레스가 방사청을 상대로 ‘전술정보체계 입찰절차 진행중단’ 가처분신청을 제기하여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고, 이에 불복한 방사청이 사업 강행을 선언했기 때문.
TICN 사업은 2020년까지 육·해·공군의 각종 무선장비들을 현대화하는 사업으로 ‘전투무선체계(TMMR)’ 등 6개 분야로 구성돼 있다. 삼성탈레스는 “TICN 사업의 일환인 전투무선체계 사업에서 우리가 예산 3000억원을 절감하고 개발 기간을 1년 단축하는 제안으로 최초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는데 경쟁사가 제기한 민원을 이유로 평가 기준을 바꿔 재심사하는 등 우선협상 대상자를 바꾸려고 한다”면서 입찰을 중단시켜 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문제가 된 TICN 사업은 우리 군이 전작권 전환을 맞아 군 전력의 첨단화를 위해 추진 중인 C4I의 핵심 프로젝트다. 즉 군사 전문 정보통신망을 구축하여 우리 군이 보유한 육·해·공군 무기체계의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북한의 비대칭전력에 대처한다는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군이 C4I 구축을 위해 추진해 온 프로젝트는 ▲합참지휘소 자동화체계(CPAS) ▲KJCCS(CPAS의 성능개량 및 확장사업) ▲연합지휘통신체계(AKJCCS·한국군 주도의 연합지휘통신체계를 개발, 미국 측 C4I 체계와 연동시키는 프로젝트) ▲SPIDER ▲TICN 등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IT강국이고, 전자통신 관련산업과 인프라, 기술인력이 풍부해 C4I 분야에서 충분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었다.
그러나 수조 원을 들여 추진 중인 C4I는 전작권 환수시기인 2012년은 물론 국방개혁 완성시기인 2020년에도 전력화가 불가능할 것이란 불길한 예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의 권태영 박사는 “수조 원을 쏟아부어 개발 중인 C4I는 육·해·공군뿐만 아니라 각군 기관별로 인프라와 데이터베이스 등 C4I 체계에 필요한 요소들을 제각각 개발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운용성이 갖춰지지 않아 실패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땅에서는 3군이 통합된 역량을 발휘하는 C4I가 아니라 각군이 필요한 대로 별도로 개발하는 바람에 돈은 돈대로 들면서 육상 해상 공중 및 정찰위성 등이 상호 연결 지휘가 불가능한 해괴한 C4I 구축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육군 무기 상호간에도 정보교환 불가능
육·해·공군이야 원래부터 각군별 장벽이 너무 높으니 상호 호환이 어렵다 치자. 그렇다면 해당 군은 그런 장벽이 없으니 해당 군이 보유한 다양한 무기체계는 상호 호환성이 있어야 정상이다. 또 다른 군사전문가의 증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육군의 경우 장갑차와 전차, 자주포, 천마(한국형 단거리 미사일), 비호(저고도 항공기 요격용 대공 방어무기) 등 각각의 무기에 전혀 다른 컴퓨터 기종이 탑재되는 바람에 무기체계 상호간 데이터 링크가 안돼 정보교환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 전문가는 “연구개발 과정에서 각각의 무기에 탑재될 컴퓨터 프로토콜을 통일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는데, 국과연 연구진이 자기 편한 기종을 탑재하다 보니 이런 웃지 못할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사례에서 보듯 오늘날 국내 방위산업은 고(高)비용 저(低)효율 구조의 전형이다. 지난 2008년 10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방위산업 재정지출 성과와 과제’라는 보고서에는 우리 방산분야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방위산업의 경우 시설가동률은 50~60% 수준(제조업 평균 77.2%), 연평균 매출액 4조8000억원, 1인당 평균 부가가치 생산액은 6500만원 등으로 민수산업에 비해 현격히 낮은 생산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은 2007년 기준 세계 5위의 무기수입국으로 무기산업 적자규모는 2003년 4억7000만 달러에서 2007년 15억9300만 달러로 3.4배 늘어난 반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무기수출 규모는 연평균 2억8000만 달러로 세계 17위라고 분석했다.
예산정책처는 국내 방위산업계가 재래식 무기에 대한 자주적 공급능력은 확보했지만 한국의 국방과학기술 수준이 선진국 대비 50~70%, 설계기술 수준은 30~40%에 그치는 등 첨단무기기술을 축적하지 못해 핵심 군사력의 해외의존도가 지속적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현재의 고비용 저효율 방위산업 재정지출 구조에서 국방개혁 2020 예산계획으로는 정예 첨단과학기술군, 방위산업 신경제 성장동력화 달성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무늬만 국산화한 무기체계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지난 1974년부터 2007년까지 34년간 전력투자비(방위력 개선비) 93조원 중 35%인 33조원을 국내 방위산업계에 지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잡아먹고도 주요 무기체계 개발사업들이 원하는 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방위산업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 군은 북한의 비대칭전력에는 한미연합 방위능력으로 대응하는 원칙을 세워놓았습니다. 북한과의 전쟁수행은 연합사에 맡겨놓고 자신들은 진급이나 보직에 연연하다 보니 어떤 군사력을 어떤 방향으로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 플랜이 없어요. 때문에 국방부장관이나 참모총장이 바뀔 때마다 개인적 성향에 의해 군사력 건설방향이 요동을 칩니다. 또 대부분의 지휘관이 미국 유학을 경험했기 때문에 미국식 사고에 젖어 무기체계는 돈이 얼마가 들든 무조건 작전요구성능(ROC)을 최고 수준으로 요구합니다. 국내 기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니 직도입 사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자주국방’이란 대의명분 때문에 비싼 돈 주고 기술을 도입해다가 무늬만 국산화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다른 방산기업 관계자는 관(官) 주도 방식의 방산 연구개발(R&D) 시스템 덕분에 가격이 비싸져 수출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어떤 무기가 국산화 개발되어 군에 납품되고 수출도 하려면 가격이 중요합니다. 이를 방위산업에서는 ‘양산단가’라고 하죠. 문제는 국과연의 기술진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양산단가가 얼마가 될 것인지는 관심도 없이 지나치게 안전계수(safety factor)를 높이 책정합니다. 예를 들어 항공기에서 알루미늄을 써도 충분한 부품을 안전성을 강화한다면서 티타늄을 써야 한다고 규정해 놓습니다. 티타늄은 알루미늄에 비해 질기고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가격이 30배나 비싸요. 이런 요소들이 쌓여 결국 항공기 가격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웅변하는 사례가 KT-1이다. KT-1은 처음엔 엔진 출력이 550마력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출발했으나 개발 과정에서 안전계수를 계속 높이는 바람에 기체 중량이 크게 늘어나 엔진 출력이 950마력으로 늘어났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전문가는 “이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아반떼를 개발하려다 그랜저 2.7급을 만든 격”이라면서 “국과연이 개발하는 무기체계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 예산낭비, 시간낭비를 일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T-50은 벤츠를 운전연수용으로 쓰는 것”
산업연구원의 안영수(安永守) 박사는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은 국내에 엄청난 산업파급효과를 가져왔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방산 R&D의 모순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프로젝트”라고 지적했다.
“고등훈련기는 쉽게 말하면 자동차 운전학원이나 면허시험장에서나 쓰는 연습용 차와 같습니다. 목적에 충실한 훈련기라면 고도의 기능이나 최첨단 기능을 집어넣을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공군은 고등훈련기 개발 과정에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높은 작전요구성능을 원했습니다. 그 덕에 일각에서는 ‘벤츠나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운전연습용으로 쓰는 것이나 다름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합니다.”
공군의 높은 작전요구성능을 충족시키려다 보니 가격이 계속 높아졌고, 결국 ‘훈련기 분야의 벤츠’란 별칭이 붙은 이 훈련기는 비싼 가격 때문에 아직도 수출시장을 개척하지 못해 관계자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안영수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정부 R&D 예산 중 국방분야는 연간 2조원(정부 전체 R&D 예산의 15%), 지식경제부는 4조5000억원(40%)을 사용한다. 지경부는 이 R&D 예산을 적극 활용해 연간 수출 4000억 달러라는 성취를 이루어냈다. 반면 국방분야의 수출액은 고작 연평균 3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안 박사는 “방위산업은 투입(input) 대비 산출(output) 면에서, 산업파급효과 면에서 거의 제로 수준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리 군은 무기체계 개발과정에서 남북 대치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세계 최고 성능을 지향해 왔다. 덕분에 국제시장에서 무기 성능은 고평가를 받고 있지만 국가이미지, 브랜드 로열티가 선진국보다 열세이기 때문에 가격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우리 방산제품이 성능은 우수하나 가격이 비싸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안영수 박사의 말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어떤 장비나 무기를 개발할 때 첫 번째 고려 요소가 ‘해외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해외에서 팔리는 제품이라야만 개발에 돌입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산업인 자동차, 조선, 전자 등이 ‘수출’에 올인하여 성공한 것과 똑같은 이치죠. 반면 우리 방사청과 국과연의 지금까지의 임무는 내수조달, 수입대체였어요. 이런 내수 위주 마인드가 수출 위주로 바뀌지 않는 한 국방부가 제시한 ‘2012년 방산제품 수출 30억 달러 달성, 2020년 방산제품 수출 세계 10위권 진입’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국과연의 시대적 역할은 끝났다”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는 “내수 하던 사람에게 수출업무를 맡기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서 “국과연이 초창기에는 역사적 책무를 다했지만 30여 년 기술기획, 출연금통제, 업체조정 업무를 독점하다 보니 이제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아니라 국방관리연구소로 전락했다”고 질타했다. 그의 말이다.
“1970년대엔 민간분야의 기술기반이 취약해 국과연 주도로 무기체계를 국산화해 왔지만 이제는 민간부문이 오히려 국과연을 앞지르는 상황입니다. 5공 정권이 출범하면서 우리가 극비리에 추진해 왔던 핵·미사일 관련 연구인력들이 대거 해직됐어요. 김대중 정부 시절 IMF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래식 무기 관련 인력들은 대부분 살아남은 반면 C4I 등 첨단전력 인력들은 대규모 구조조정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국과연의 맨파워가 크게 저하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과연이 과거처럼 모든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민간기업은 하청을 받는 방식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우리 국방 R&D에 고질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전문가는 “국과연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전략적 분야의 연구개발은 기피하는 대신 비교적 손쉬운 일반무기체계 개발에 주력하고, 이들 무기체계의 양산화를 추진함으로써 재래식 전력 중심으로 전력증강 방향이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7년 김명자(金明子) 의원도 방사청 국정감사 때 “국과연이 개발 위험도가 없는 체계개발에 주력해 우리나라가 전차, 장갑차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고 발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익명의 방산전문가는 “국과연이 방산분야의 모든 개발을 독점하려 할 것이 아니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처럼 국가적 핵심기술, 요소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나머지는 기업에 맡기는 식으로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안영수 박사는 “국과연의 시대적 역할은 끝났다”면서 “국과연이 주도하는 연구개발 방식의 개편 없이 방위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는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즉 국과연은 위상배열 레이더(AESA), 전자기 펄스 기술(EMP), 레이저 파괴무기, 스텔스 기술 등 돈을 주고도 해외에서 사올 수 없는 국가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전략무기체계 연구에 전력하고, 전술무기체계는 민간 방산기업이 R&D를 담당하는 쪽으로 개편해야 방산제품 수출에 돌파구가 열릴 것이란 지적이다.
방산수출 발목 잡는 기술료
최근 들어 방위사업청을 비롯하여 국내 방산기업들은 수출에 사활을 걸고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코트라(KOTRA) 내에 방위사업제품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방산수출지원단까지 설치하는 등 수출 총력전 체제로 들어선 느낌이다.
지난 1988년부터 98년까지 11년에 걸쳐 국내 개발된 KT-1 기본훈련기는 지난 2004년 국내 공급이 완료됐고, T-50 고등훈련기도 국내 공급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국내 방산기업들은 제품 양산을 위해 엄청난 시설과 인력을 투자했으나 국내 공급물량 생산이 끝나는 바람에 수출을 통해 살길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전체 매출의 100%가 방산분야인 삼성탈레스의 경우 김인수(金寅洙) 사장이 수출본부장을 겸직하고 직접 월 2회 해외 마케팅을 위해 해외 출장을 나간다. 삼성탈레스 직원들은 “2012년에 매출 1조원 달성, 총매출 중 30%는 수출로 벌어들인다. 방산분야에서도 애니콜 휴대폰 신화를 창조하자”는 각오라고 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삼성탈레스는 이라크에 차세대 VHS 장비(8600만 달러), 영국군에 휴대용 열상장비 수출, 말레이시아에 멀티채널 라디오 시스템(8000만 달러) 등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테크윈에서 자주포 수출을 담당했던 김하섭 씨는 1998년부터 K-9 자주포의 수출전략을 세우고 세계 시장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는 “방산제품 수출에는 한 프로젝트당 최소 7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출에 목숨을 건 방산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기술료다. 국과연이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할 경우 국과연은 규정에 의거하여 기술료를 징수한다. 현재 기술료 조항을 보면 방산제품 수출은 국내 순조달가격의 2%, 기술만 수출할 경우 수출가격의 1%를 선금으로 내고, 외국 회사가 한국 기술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여 자국에서 사용할 때는 3%, 제3국에 수출할 때는 수출가의 5%를 추가로 내도록 규정되어 있다.
정부는 1995년 방위산업 육성법에 기술료 조항을 제정하여 정부 예산으로 개발된 국방기술을 업체가 사용할 경우 기술료를 징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방산수출 육성과 민수분야에서 국방기술 활용을 높이기 위해 기술료 징수를 2006년까지 유예했다.
유예기간이 만료된 2007년부터 국과연은 방산물자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기술료 징수에 나섰다. 기술료를 둘러싸고 업계와 국과연의 감정이 격화된 것은 국과연이 “방산업체로부터 징수한 기술료를 직원들의 인센티브 및 복지후생에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가동률이 일반 제조업체보다 낮은 데다가 해외에서 선진국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업계 입장에서는 기술료 부담이 만만치 않아 반발하고 있다.
흑표전차 수출에 1250억원의 기술료 부과
현재 기술료 문제로 국과연과 마찰을 빚고 있는 회사는 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 삼성테크윈, 두산인프라코어, 풍산 등 7~8개 회사로 알려졌다.
KAI가 터키에 수출하는 KT-1은 현지 실정에 맞게 개량하고 일부 파트는 대응구매(off set) 방식으로 터키에서 하청생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과연은 “하청생산을 위해 KT-1의 기술도면이 해외로 나간 것은 기술이전에 해당하니 기술수출 기술료 134억원과 물자수출 기술료 23억원 등 157억원을 납부하라”는 입장이다.
반면 KAI는 “단순 하청생산에 사용되는 도면은 기술이전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료를 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방사청이 중재에 나서 기술료는 38억원으로 정리됐다. KAI 측은 “8억~9억원 선이 적절하다”면서 “대통령은 방산무기 수출을 독려하는 판에 실무부서인 방사청과 국과연은 기술료 부과로 수출에 재를 뿌리고 있는 셈”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터키에 K-2 흑표전차 기술을 수출 예정인 로템도 ‘기술료’ 날벼락을 맞았다. 총 수출금액이 4000억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1250억원을 기술료로 내라는 통보를 받고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해외 방산수출시장 확보를 위해서는 가격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인데 막대한 기술료 때문에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업계에서는 “기술료 산정 과정에서 업체가 개발한 분야에 대한 기여도를 반영해 줄 것과, 방산수출 30억 달러 달성 등 수출경쟁력이 확보될 때까지 기술료 감면을 연장해 달라”는 입장이다.
김하섭 대표는 “기술료는 당연히 내야 하지만 업계가 낸 기술료를 국과연 연구원들의 복지에 쓰는 것은 큰 문제”라면서 “차라리 이 돈을 방산물자 수출 지원비용으로 쓰면 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기술료 감면 요구에 대해 방사청은 이런 입장을 내놓았다.
“국방과학기술은 국민의 세금과 연구원의 노력으로 개발된 것이며, 이러한 국방과학기술을 이용하는 자는 방위사업법 관련규정에 의거하여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로 개발된 국방과학기술은 방산업체가 물자수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외국에 덤으로 얹어준다든가 아니면 끼워팔기용으로 치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방위산업 수출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은 가능할까?
국가가 존재하는 한 방위산업은 반드시 육성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방위사업청과 국과연이 자주국방에 지대한 공헌을 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김정일의 북한이 비대칭적 속도전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방사청과 국과연은 과거의 타성에 젖어 역비대칭 전략무기 개발보다는 재래식 군사력 건설에 매달려 왔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이번 천안함 쇼크로 인해 방사청과 국과연의 역할과 사명, 성격과 임무에 대한 본질적 개혁을 통해 우리 군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WMD에 대한 역비대칭전력 건설에 나서야 한다.
남북 분단이라는 군사대치상황은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 무기체계의 실험장이다. 이런 여건을 감안한 무기체계를 개발하여 수출산업으로 육성함으로써 또 하나의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현 정부의 과제다. 이명박 정부는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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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50 고등훈련기. 공군에서 너무 높은 작전요구성능(ROC)을 원하면서 훈련기치고는 너무 많은 기능이 들어가는 바람에 ‘훈련기 분야의 벤츠’라는 별명을 얻었다. |
이번 천안함 사건에 대해 안보전문가들은 “우리 군의 무능한 위기징후 분석능력, 미숙한 현장 대응, 지휘보고체계의 붕괴 등 위기대응능력에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고 직후 천안함장이 사고 상황을 군 통신망이 아닌 휴대폰으로 2함대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도대체 지금까지 군 통신망 현대화에 쏟아부은 예산이 얼마인데…” 하는 탄식이 쏟아졌다.
군은 지금까지 C4I(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Intelligence의 약자로 첨단 장비와 컴퓨터, 통신이 결합된 지휘자동화체계)의 구축으로 확고한 대북(對北) 우위를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하자 해군은 KNTDS(전술지휘통제 시스템)에서 천안함이 사라진 현황을 제때 추적해 내지 못했고,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은 사고 상황을 대통령보다 뒤늦게 보고받는 등 지휘 자동화체계는 무용지물이었다.
현재까지 천안함 공격이 북한 측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없지만 사고조사 관련 전문가들은 여러 정황을 분석한 결과 북한 측 소행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추정대로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도발임이 확실하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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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동강 난 천안함. 천안함 사건은 우리 군의 총체적인 경계작전 실패의 참혹한 결과다. |
총체적인 경계작전임무 실패
천안함은 각종 함포 이외에 잠수함을 탐지 공격하는 각종 무기체계를 탑재하고 있다. 이런 전투함이 접적(接敵)지역에서 경비작전 중 적국(敵國) 잠수함(혹은 잠수정)이 발사한 단 한 방의 어뢰에 피격돼 침몰했다면 한국군은 총체적으로 경계작전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북한 잠수함(혹은 잠수정)이 야간에 적국 해안에 은밀히 침투, 매복해 있다가 경비 항해 중인 초계함을 공격했다면 적극적인 작전을 전개했다는 뜻이 된다. 우리 군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대북(對北) 도청, 감청, 암호해독, 위성감시, 전파감시체계 등 정보수집 시스템을 통해 이런 위기징후를 사전에 입수 분석하여 위협에 대비했어야 정상이다.
불행하게도 천안함 승조원들은 어떤 위기징후도 사전에 인식하지 못한 채 당직자를 제외한 요원들은 운동복을 입고 운동 중에, 혹은 휴식 중 어뢰에 피격돼 초계함 한 척과 46명의 고귀한 인명이 희생당하는 비참한 패전(敗戰)을 했다.
송영무(宋永武) 전 해군참모총장은 “우리 해군 지휘부는 대청해전 이후 북한의 보복공격을 우려하여 접적지역에서 작전 중인 함정들에 고속 기동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 이 와중에 천안함이 접적지역에서, 그것도 백령도에서 불과 1.6km 지점까지 바짝 접근하여 시속 5~6노트의 저속으로 항해한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해안에서는 어선까지 동원해 대잠훈련을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 왔지만, 백령도 주변에선 적 잠수함이 활동하기 곤란할 것이라는 예단하에 대잠훈련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 “적에게 우리 허점을 찔려 기습을 당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사전문가들은 “어떤 변명과 현란한 수사가 있더라도 이번 천안함 사건은 우리 군의 경계작전 실패라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2함대로부터 넓은 경비구역을 할당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백령도 가까이 접근하여 저속 항해를 하도록 한 천안함장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예비역 해군 수뇌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군 세계에서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는 잠언(箴言)이다. 6·25 당시 미(美) CIA 국장이었던 로스코 힐렌쾨터는 CIA가 북한의 기습남침을 예측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6·25 휴전 이래 북에 가장 비참한 패전을 당한 우리 군 수뇌부가 경계실패에 대해 국민들에게 참회나 반성, 사과를 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은 바 없다.
북한의 비대칭전 전력 완성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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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장사정포. 여기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전력은 무엇일까? |
천안함의 건조가격(탑재 무기 가격 포함)은 약 1400억원으로 추산되는 반면 천안함을 한 방에 침몰시킨 어뢰는 국제시장에서 10억~15억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격이 북한 측 소행이 확실하다면 북한은 우리 전투함에 대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비대칭전력을 행사해 큰 전과를 올린 셈이다.
북한이 건설 중인 ‘비대칭전력의 정점(頂點)’이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와 사이버전 능력이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의 권태영 박사는 “핵무기도 문제지만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의 질과 양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도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신형 대함(對艦)미사일(KN-01)과 지대지(地對地)미사일(KN-02)의 능력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KN-01은 노후한 실크 웜 미사일 대체용으로 사거리가 120~160km로 연장되고 정확도도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KN-02는 소련의 이동식 단거리 미사일 SS-21의 개량형으로 사거리 120km, 고체연료로 추진되어 이동식으로 5분 내 발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 미사일들은 오산 미 공군기지 및 2함대가 위치한 평택기지를 직접 위협할 수 있어 주한 미 공군 및 우리 구축함 세력에 비상이 걸렸다.
2007년 당시 연합사 사령관이었던 버웰 벨 대장과 월터 샤프 현 사령관은 “북한이 이 두 가지 미사일을 양산하여 휴전선 가까이 배치할 경우 수도권을 타격할 수 있는 240mm 방사포와 170mm 자주포 등 장사정 포보다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권태영 박사는 “현재 우리 군은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뿐만 아니라 특수전과 재래전을 뒤섞은 배합전 전력 위협에도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한이 한국군의 첨단 군사 네트워크와 전자장비를 일거에 마비시킬 수 있는 전자기 펄스무기(EMP·Electro Magnetic Pulse)를 이미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결론적으로 북한은 핵·미사일·생화학무기·장사정포·특수부대라는 5대 위협에 더해 사이버전과 정치 군사 심리전, EMP 능력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비대칭 위협을 과거보다 현격하게 증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金正日의 ‘판가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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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춘 북한 인민무력부장. 김정일은 올 2월 군부 내의 강경파 김영춘을 우리의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해 대남 군사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
홍 대표는 “김영춘과 같은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핵과 비대칭전력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조기 적화하기 위해 경주해 온 모든 준비가 완료됐음을 상징하는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대북(對北) 군사전문가들은 북한 군사력이 비대칭으로 전환한 변곡점을 김정일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된 1991년으로 꼽았다. 이때부터 김정일은 6·25 실패 교훈과 첨단무기를 동원해 족집게식 파괴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걸프전 충격에 대한 대응책 차원에서 ‘비대칭적 속도전’으로 급속 전환했다는 것이다.
홍성민 대표는 김정일이 건설해 온 비대칭적 속도전의 핵심은 ‘핵과 WMD, 장사정포, 특수전과 재편성된 재래전력의 융합을 통해 한미연합전력에 대한 구조적 열세를 일거에 역전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북한군은 비대칭적 속도전을 통해 ▲한반도 전역을 동시 전장화하고 ▲핵과 미사일을 동원하여 미군 증원 차단 ▲한미연합전력의 조기경보체제에 대한 원천적 기만 ▲재래전력과 특수전 부대의 융합 ▲비대칭전력과 재편된 재래전력의 융합을 통한 타격력과 심리적 충격효과 극대화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작전을 개전 후 5~7일 이내의 단기 속결전으로 치러 한반도를 적화(赤化)한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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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군의 군사퍼레이드 장면. 김정일은 인민군을 ‘비대칭적 속도전’으로 탈바꿈시켜 한반도를 적화한다는 이른바‘판가리 전략’이 완성단계임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다. |
■ 북한의 비대칭 위협은 한미 연합전력에 맡기고 재래식 군사력 건설에 올인 중인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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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비대칭적 속도전으로 진화하는 사이, 우리 군은 전차, 장갑차 등 재래전 능력 강화에 매진하면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
북한은 봉건세습 왕조체제로서 1인지배체제라는 취약점이 있다. 우리 군이 유사시 적의 지도부를 결정적으로 제거하는 참수작전 능력을 보유하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무력화시키는 EMP 폭탄이나 레이저 파괴무기, 원거리 정밀타격능력 등을 보유해 북한군에 대한 역(逆)비대칭 전력을 건설하면 북한의 군사적 태세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취재 결과 우리 군의 방위력 개선은 이와는 정반대로 움직여왔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기업 관계자는 “우리 군은 대부분의 군사력 건설을 대북(對北) 정규전 위주로 진행해 옴으로써 북한의 비대칭적 속도전에 대응하기 곤란한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홍성민 대표는 “북한의 비대칭적 속도전에 대한 대응방안이 한미 연합방위체제인데, 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 한미연합사 해체, 전작권 전환 등으로 그 근본을 흔들어놓는 바람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된 ‘국방개혁 2020’은 한미연합사 해체 및 전작권 전환에 대비하기 위해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총 621조원의 국방비를 투입하여 인력 위주, 재래전력 위주였던 우리 군을 소수 정예병력 및 첨단장비 위주의 질적 구조로 재편한다는 것이 기본 골격이다.
이 정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 이상희(李相憙) 국방부장관 주도하에 ‘국방개혁 기본계획(2009~2020)’으로 변경되면서 전력투자에 대한 내용이 일부 조정됐다. 그런데 다수의 군사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 기본계획은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개악(改惡)”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명한 이유는 조정된 전력투자비 약 200조원 중 25%에 해당하는 50조원을 다연장포(29조원), 자주포(10조원), 신형전차(9조원) 등 재래식 전력건설에 할당한 반면 공중급유기, 고(高)고도 무인정찰기, 해군의 3000t급 차기 잠수함 도입 등 전략무기 획득사업은 모두 연기시켰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기에 박격포로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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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정부 시절 투명한 군 획득사업을 목표로 출범한 방위사업청. |
“17대 국회에서 2008년 국방예산을 심의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는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이에 대한 대응전력 건설이 첨예한 관심사로 대두한 때였어요. 그런데 우리 군은 북한 핵이나 미사일에 대비하는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전혀 소요제기를 하지 않았어요.
대신 무려 4조원을 들여 4.2인치 박격포를 120mm 박격포로 교체하겠다고 하지를 않나, 육군 전차와 장갑차, 자주포와 탄약운반 장갑차 소요를 세 배로 늘린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겁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쏴 대는 판에 우리 군은 박격포, 장갑차 타령이나 하고 나섰으니 핵무기에 박격포, 장갑차로 대응하겠다는 뜻인지…. 국회 국방위가 고위 장성들을 질타하고 국회 직권으로 고(高)고도 무인정찰기(UAV), 탄도탄 조기경보 레이더, 방사능 탐지세트, 합동직격탄(JDAM·항공기에서 투하하는 정밀유도폭탄), 레이저 유도폭탄, 지하시설 파괴탄, 현무(국산 지대지 순항미사일) 성능개량 예산 등을 증액시킨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군사전문가는 “북한은 핵을 기반으로 한반도를 조기 적화한다는 이른바 ‘판가리 전략’을 완성하고 입체전·정보전·과학전·원격전·정밀전으로 진화한 데 비해 우리 군은 6·25 때의 전쟁방식인 기동전·화력전·소모전에 중점을 둔 군사력을 건설하고 있다”면서 “과연 북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함택영(咸澤英)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오늘날 남한이 군사력에서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부문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미국에 의존하는 독자적 전략기획 능력의 부재(不在)”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저렴한 비용으로 억지력을 확보하기 때문에 남한의 군비증강을 통한 안보의 추구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남북한의 군비투자에는 이미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 휘청거리는 방위산업 ‘수출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은 가능할까?
우리 군의 무기체계 개발과 획득 관련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부서가 방위사업청(청장 卞武根·이하 방사청으로 표기)과 국방과학연구소(소장 朴昌奎·이하 국과연으로 표기)다. 이명박 정부가 ‘방위산업의 수출산업화를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이라는 목표를 현장에서 추진하는 곳도 이 두 부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월 1일 출범한 방사청 홈페이지에는 ‘방위사업청 개청으로 최적의 무기체계 획득이 가능하여 적기에, 질 좋은 제품을 경제적으로 획득하고 국방획득업무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획득관련 비리발생의 악순환을 차단…(중략)…고객지향의 방위사업행정을 구현하여 국민에게는 예산절감, 기업에는 최선의 행정서비스를, 소요군에는 우수한 장비를 적시에 제공’이라고 업무를 소개하고 있다.
박정희(朴正熙) 정권 시절인 1970년 8월 출범한 국과연은 국내 산업기반이 전무(全無)하던 시절에 군의 기본화기 개발에 성공했고, 국방과학 기술수준을 선진국의 70% 수준까지 발전시키는 주역이었다. 국과연의 연구개발 덕에 우리나라는 155mm 자주포(K-9)의 터키 수출(약 3억3000만 달러), 기본훈련기(KT-1)의 인도네시아(8300만 달러)와 터키 수출(3억5000만 달러), 차기 전차(K-2)의 터키 기술협력 수출 등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이 두 부서가 21세기 북한의 비대칭적 속도전 위협에 맞서는 전력건설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방위산업을 수출산업으로 발전시켜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소화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국과연의 역할에 대한 불신은 도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방위력 개선사업은 방위사업청이 중심이 되어 국과연이 설계 및 개발을, 방산기업은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이중 구조로 진행돼 왔다. 기술축적은 국과연 중심이며 기업들은 양산을 맡는 이중구조는, 결과적으로 기업이 관(官)의 하청업체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초래했다. 이런 구조하에서 추진된 주요 프로젝트들은 어떤 결과를 낳고 있을까.
지난 5월 12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열린 ‘제8회 요르단 특수작전무기전시회(SOFEX)’에는 우리나라 7개 방산기업이 참여하여 K-21 차기 보병장갑차, T-50 고등훈련기, 70mm 다연장포, K-3 기관총과 K-11 복합소총 등의 세일즈에 나섰다. 현지에서는 우리 방산무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고 한다.
K-2 흑표전차 파워팩은 어떻게 됐나?
그러나 이런 국산무기 호평의 이면에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다. K-2 전차(흑표), 차기 보병장갑차(K-21),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천마, 비호 등 주요 무기체계 개발사업 과정에서 핵심기술 개발에 실패하거나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K-2 흑표전차 개발사업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3조9022억원을 들여 국내 연구개발을 통해 370여 대의 전차를 확보하는 사업이다. 연구개발은 국과연 주관, 주포는 현대 위아, 조준경과 컴퓨터는 삼성탈레스, 체계종합은 로템, 특수장갑은 삼양 컴텍이 담당한다.
양산된 K-2 전차가 군에 납품되는 시기는 2011년부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변무근 방위사업청장이 2009년 11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 “K-2 개발과정에서 1500마력 엔진에 중대한 결함이 발생해 내년도에 편성된 882억원의 전차 구매 예산을 집행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국과연은 K-2 전차 개발과정에서 처음에는 핵심부품인 파워팩(엔진과 변속기)을 독일 MTU사(社) 제품을 구입해 쓰기로 했다가 뒤늦게 국산화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개발과정에서 원천기술 부재로 독자개발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당분간 독일제 파워팩을 사다 써야 할 상황이 됐다. 상황을 간파한 MTU 측은 “한국에서 일정 수량 이상을 구매해야만 파워팩을 판매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삼성테크윈에서 자주포 수출업무를 담당하다 최근 퇴직하여 방산수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하섭 대표는 “전 세계에서 1500마력짜리 전차 엔진을 독자개발한 나라는 독일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다른 선진국들도 전차의 파워팩은 독일제를 사다 쓰고 있다고 한다. 수입해다 쓰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국과연은 ‘국산화’라는 명제에 집착하여 722억원이나 들여 파워팩 개발에 나섰다가 진퇴양난의 상황이 됐다. 김 대표는 “파워팩 독자개발에 K-2 R&D 예산의 20~30%를 투입한 것은 경제성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헬기 잡는 장갑차’ ‘물에 뜨는 장갑차’로 유명세를 탄 K-21 보병장갑차는 어떤가. K-21은 작년 11월 30일 육군 모 사단에서 실전배치 10일 만에 도하훈련 도중 수중에서 엔진이 멎는 사고가 발생해 탑승자들이 비상탈출하는 등 망신살이 뻗쳤다. 군에서는 단순 사고, 혹은 운전병 실수라는 입장이지만 제품 자체에 설계 결함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各軍별로 따로 노는 C4I 구축사업
군이 4조7000억원을 들여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TICN(전술정보통신체계) 구축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파행을 겪고 있다. 탈락한 삼성탈레스가 방사청을 상대로 ‘전술정보체계 입찰절차 진행중단’ 가처분신청을 제기하여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고, 이에 불복한 방사청이 사업 강행을 선언했기 때문.
TICN 사업은 2020년까지 육·해·공군의 각종 무선장비들을 현대화하는 사업으로 ‘전투무선체계(TMMR)’ 등 6개 분야로 구성돼 있다. 삼성탈레스는 “TICN 사업의 일환인 전투무선체계 사업에서 우리가 예산 3000억원을 절감하고 개발 기간을 1년 단축하는 제안으로 최초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는데 경쟁사가 제기한 민원을 이유로 평가 기준을 바꿔 재심사하는 등 우선협상 대상자를 바꾸려고 한다”면서 입찰을 중단시켜 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문제가 된 TICN 사업은 우리 군이 전작권 전환을 맞아 군 전력의 첨단화를 위해 추진 중인 C4I의 핵심 프로젝트다. 즉 군사 전문 정보통신망을 구축하여 우리 군이 보유한 육·해·공군 무기체계의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북한의 비대칭전력에 대처한다는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군이 C4I 구축을 위해 추진해 온 프로젝트는 ▲합참지휘소 자동화체계(CPAS) ▲KJCCS(CPAS의 성능개량 및 확장사업) ▲연합지휘통신체계(AKJCCS·한국군 주도의 연합지휘통신체계를 개발, 미국 측 C4I 체계와 연동시키는 프로젝트) ▲SPIDER ▲TICN 등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IT강국이고, 전자통신 관련산업과 인프라, 기술인력이 풍부해 C4I 분야에서 충분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었다.
그러나 수조 원을 들여 추진 중인 C4I는 전작권 환수시기인 2012년은 물론 국방개혁 완성시기인 2020년에도 전력화가 불가능할 것이란 불길한 예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의 권태영 박사는 “수조 원을 쏟아부어 개발 중인 C4I는 육·해·공군뿐만 아니라 각군 기관별로 인프라와 데이터베이스 등 C4I 체계에 필요한 요소들을 제각각 개발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운용성이 갖춰지지 않아 실패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땅에서는 3군이 통합된 역량을 발휘하는 C4I가 아니라 각군이 필요한 대로 별도로 개발하는 바람에 돈은 돈대로 들면서 육상 해상 공중 및 정찰위성 등이 상호 연결 지휘가 불가능한 해괴한 C4I 구축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육군 무기 상호간에도 정보교환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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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자주국방을 목표로 문을 연 국방과학연구소. |
육군의 경우 장갑차와 전차, 자주포, 천마(한국형 단거리 미사일), 비호(저고도 항공기 요격용 대공 방어무기) 등 각각의 무기에 전혀 다른 컴퓨터 기종이 탑재되는 바람에 무기체계 상호간 데이터 링크가 안돼 정보교환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 전문가는 “연구개발 과정에서 각각의 무기에 탑재될 컴퓨터 프로토콜을 통일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는데, 국과연 연구진이 자기 편한 기종을 탑재하다 보니 이런 웃지 못할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사례에서 보듯 오늘날 국내 방위산업은 고(高)비용 저(低)효율 구조의 전형이다. 지난 2008년 10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방위산업 재정지출 성과와 과제’라는 보고서에는 우리 방산분야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방위산업의 경우 시설가동률은 50~60% 수준(제조업 평균 77.2%), 연평균 매출액 4조8000억원, 1인당 평균 부가가치 생산액은 6500만원 등으로 민수산업에 비해 현격히 낮은 생산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은 2007년 기준 세계 5위의 무기수입국으로 무기산업 적자규모는 2003년 4억7000만 달러에서 2007년 15억9300만 달러로 3.4배 늘어난 반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무기수출 규모는 연평균 2억8000만 달러로 세계 17위라고 분석했다.
예산정책처는 국내 방위산업계가 재래식 무기에 대한 자주적 공급능력은 확보했지만 한국의 국방과학기술 수준이 선진국 대비 50~70%, 설계기술 수준은 30~40%에 그치는 등 첨단무기기술을 축적하지 못해 핵심 군사력의 해외의존도가 지속적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현재의 고비용 저효율 방위산업 재정지출 구조에서 국방개혁 2020 예산계획으로는 정예 첨단과학기술군, 방위산업 신경제 성장동력화 달성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무늬만 국산화한 무기체계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지난 1974년부터 2007년까지 34년간 전력투자비(방위력 개선비) 93조원 중 35%인 33조원을 국내 방위산업계에 지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잡아먹고도 주요 무기체계 개발사업들이 원하는 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방위산업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 군은 북한의 비대칭전력에는 한미연합 방위능력으로 대응하는 원칙을 세워놓았습니다. 북한과의 전쟁수행은 연합사에 맡겨놓고 자신들은 진급이나 보직에 연연하다 보니 어떤 군사력을 어떤 방향으로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 플랜이 없어요. 때문에 국방부장관이나 참모총장이 바뀔 때마다 개인적 성향에 의해 군사력 건설방향이 요동을 칩니다. 또 대부분의 지휘관이 미국 유학을 경험했기 때문에 미국식 사고에 젖어 무기체계는 돈이 얼마가 들든 무조건 작전요구성능(ROC)을 최고 수준으로 요구합니다. 국내 기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니 직도입 사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자주국방’이란 대의명분 때문에 비싼 돈 주고 기술을 도입해다가 무늬만 국산화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다른 방산기업 관계자는 관(官) 주도 방식의 방산 연구개발(R&D) 시스템 덕분에 가격이 비싸져 수출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어떤 무기가 국산화 개발되어 군에 납품되고 수출도 하려면 가격이 중요합니다. 이를 방위산업에서는 ‘양산단가’라고 하죠. 문제는 국과연의 기술진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양산단가가 얼마가 될 것인지는 관심도 없이 지나치게 안전계수(safety factor)를 높이 책정합니다. 예를 들어 항공기에서 알루미늄을 써도 충분한 부품을 안전성을 강화한다면서 티타늄을 써야 한다고 규정해 놓습니다. 티타늄은 알루미늄에 비해 질기고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가격이 30배나 비싸요. 이런 요소들이 쌓여 결국 항공기 가격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웅변하는 사례가 KT-1이다. KT-1은 처음엔 엔진 출력이 550마력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출발했으나 개발 과정에서 안전계수를 계속 높이는 바람에 기체 중량이 크게 늘어나 엔진 출력이 950마력으로 늘어났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전문가는 “이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아반떼를 개발하려다 그랜저 2.7급을 만든 격”이라면서 “국과연이 개발하는 무기체계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 예산낭비, 시간낭비를 일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T-50은 벤츠를 운전연수용으로 쓰는 것”
산업연구원의 안영수(安永守) 박사는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은 국내에 엄청난 산업파급효과를 가져왔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방산 R&D의 모순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프로젝트”라고 지적했다.
“고등훈련기는 쉽게 말하면 자동차 운전학원이나 면허시험장에서나 쓰는 연습용 차와 같습니다. 목적에 충실한 훈련기라면 고도의 기능이나 최첨단 기능을 집어넣을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공군은 고등훈련기 개발 과정에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높은 작전요구성능을 원했습니다. 그 덕에 일각에서는 ‘벤츠나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운전연습용으로 쓰는 것이나 다름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합니다.”
공군의 높은 작전요구성능을 충족시키려다 보니 가격이 계속 높아졌고, 결국 ‘훈련기 분야의 벤츠’란 별칭이 붙은 이 훈련기는 비싼 가격 때문에 아직도 수출시장을 개척하지 못해 관계자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안영수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정부 R&D 예산 중 국방분야는 연간 2조원(정부 전체 R&D 예산의 15%), 지식경제부는 4조5000억원(40%)을 사용한다. 지경부는 이 R&D 예산을 적극 활용해 연간 수출 4000억 달러라는 성취를 이루어냈다. 반면 국방분야의 수출액은 고작 연평균 3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안 박사는 “방위산업은 투입(input) 대비 산출(output) 면에서, 산업파급효과 면에서 거의 제로 수준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리 군은 무기체계 개발과정에서 남북 대치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세계 최고 성능을 지향해 왔다. 덕분에 국제시장에서 무기 성능은 고평가를 받고 있지만 국가이미지, 브랜드 로열티가 선진국보다 열세이기 때문에 가격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우리 방산제품이 성능은 우수하나 가격이 비싸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안영수 박사의 말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어떤 장비나 무기를 개발할 때 첫 번째 고려 요소가 ‘해외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해외에서 팔리는 제품이라야만 개발에 돌입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산업인 자동차, 조선, 전자 등이 ‘수출’에 올인하여 성공한 것과 똑같은 이치죠. 반면 우리 방사청과 국과연의 지금까지의 임무는 내수조달, 수입대체였어요. 이런 내수 위주 마인드가 수출 위주로 바뀌지 않는 한 국방부가 제시한 ‘2012년 방산제품 수출 30억 달러 달성, 2020년 방산제품 수출 세계 10위권 진입’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국과연의 시대적 역할은 끝났다”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는 “내수 하던 사람에게 수출업무를 맡기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서 “국과연이 초창기에는 역사적 책무를 다했지만 30여 년 기술기획, 출연금통제, 업체조정 업무를 독점하다 보니 이제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아니라 국방관리연구소로 전락했다”고 질타했다. 그의 말이다.
“1970년대엔 민간분야의 기술기반이 취약해 국과연 주도로 무기체계를 국산화해 왔지만 이제는 민간부문이 오히려 국과연을 앞지르는 상황입니다. 5공 정권이 출범하면서 우리가 극비리에 추진해 왔던 핵·미사일 관련 연구인력들이 대거 해직됐어요. 김대중 정부 시절 IMF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래식 무기 관련 인력들은 대부분 살아남은 반면 C4I 등 첨단전력 인력들은 대규모 구조조정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국과연의 맨파워가 크게 저하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과연이 과거처럼 모든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민간기업은 하청을 받는 방식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우리 국방 R&D에 고질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전문가는 “국과연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전략적 분야의 연구개발은 기피하는 대신 비교적 손쉬운 일반무기체계 개발에 주력하고, 이들 무기체계의 양산화를 추진함으로써 재래식 전력 중심으로 전력증강 방향이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7년 김명자(金明子) 의원도 방사청 국정감사 때 “국과연이 개발 위험도가 없는 체계개발에 주력해 우리나라가 전차, 장갑차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고 발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익명의 방산전문가는 “국과연이 방산분야의 모든 개발을 독점하려 할 것이 아니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처럼 국가적 핵심기술, 요소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나머지는 기업에 맡기는 식으로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안영수 박사는 “국과연의 시대적 역할은 끝났다”면서 “국과연이 주도하는 연구개발 방식의 개편 없이 방위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는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즉 국과연은 위상배열 레이더(AESA), 전자기 펄스 기술(EMP), 레이저 파괴무기, 스텔스 기술 등 돈을 주고도 해외에서 사올 수 없는 국가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전략무기체계 연구에 전력하고, 전술무기체계는 민간 방산기업이 R&D를 담당하는 쪽으로 개편해야 방산제품 수출에 돌파구가 열릴 것이란 지적이다.
방산수출 발목 잡는 기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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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9 자주포. 방산기업들은 무기수출 과정에서 기술료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
최근 들어 방위사업청을 비롯하여 국내 방산기업들은 수출에 사활을 걸고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코트라(KOTRA) 내에 방위사업제품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방산수출지원단까지 설치하는 등 수출 총력전 체제로 들어선 느낌이다.
지난 1988년부터 98년까지 11년에 걸쳐 국내 개발된 KT-1 기본훈련기는 지난 2004년 국내 공급이 완료됐고, T-50 고등훈련기도 국내 공급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국내 방산기업들은 제품 양산을 위해 엄청난 시설과 인력을 투자했으나 국내 공급물량 생산이 끝나는 바람에 수출을 통해 살길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전체 매출의 100%가 방산분야인 삼성탈레스의 경우 김인수(金寅洙) 사장이 수출본부장을 겸직하고 직접 월 2회 해외 마케팅을 위해 해외 출장을 나간다. 삼성탈레스 직원들은 “2012년에 매출 1조원 달성, 총매출 중 30%는 수출로 벌어들인다. 방산분야에서도 애니콜 휴대폰 신화를 창조하자”는 각오라고 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삼성탈레스는 이라크에 차세대 VHS 장비(8600만 달러), 영국군에 휴대용 열상장비 수출, 말레이시아에 멀티채널 라디오 시스템(8000만 달러) 등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테크윈에서 자주포 수출을 담당했던 김하섭 씨는 1998년부터 K-9 자주포의 수출전략을 세우고 세계 시장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는 “방산제품 수출에는 한 프로젝트당 최소 7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출에 목숨을 건 방산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기술료다. 국과연이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할 경우 국과연은 규정에 의거하여 기술료를 징수한다. 현재 기술료 조항을 보면 방산제품 수출은 국내 순조달가격의 2%, 기술만 수출할 경우 수출가격의 1%를 선금으로 내고, 외국 회사가 한국 기술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여 자국에서 사용할 때는 3%, 제3국에 수출할 때는 수출가의 5%를 추가로 내도록 규정되어 있다.
정부는 1995년 방위산업 육성법에 기술료 조항을 제정하여 정부 예산으로 개발된 국방기술을 업체가 사용할 경우 기술료를 징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방산수출 육성과 민수분야에서 국방기술 활용을 높이기 위해 기술료 징수를 2006년까지 유예했다.
유예기간이 만료된 2007년부터 국과연은 방산물자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기술료 징수에 나섰다. 기술료를 둘러싸고 업계와 국과연의 감정이 격화된 것은 국과연이 “방산업체로부터 징수한 기술료를 직원들의 인센티브 및 복지후생에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가동률이 일반 제조업체보다 낮은 데다가 해외에서 선진국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업계 입장에서는 기술료 부담이 만만치 않아 반발하고 있다.
흑표전차 수출에 1250억원의 기술료 부과
현재 기술료 문제로 국과연과 마찰을 빚고 있는 회사는 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 삼성테크윈, 두산인프라코어, 풍산 등 7~8개 회사로 알려졌다.
KAI가 터키에 수출하는 KT-1은 현지 실정에 맞게 개량하고 일부 파트는 대응구매(off set) 방식으로 터키에서 하청생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과연은 “하청생산을 위해 KT-1의 기술도면이 해외로 나간 것은 기술이전에 해당하니 기술수출 기술료 134억원과 물자수출 기술료 23억원 등 157억원을 납부하라”는 입장이다.
반면 KAI는 “단순 하청생산에 사용되는 도면은 기술이전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료를 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방사청이 중재에 나서 기술료는 38억원으로 정리됐다. KAI 측은 “8억~9억원 선이 적절하다”면서 “대통령은 방산무기 수출을 독려하는 판에 실무부서인 방사청과 국과연은 기술료 부과로 수출에 재를 뿌리고 있는 셈”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터키에 K-2 흑표전차 기술을 수출 예정인 로템도 ‘기술료’ 날벼락을 맞았다. 총 수출금액이 4000억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1250억원을 기술료로 내라는 통보를 받고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해외 방산수출시장 확보를 위해서는 가격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인데 막대한 기술료 때문에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업계에서는 “기술료 산정 과정에서 업체가 개발한 분야에 대한 기여도를 반영해 줄 것과, 방산수출 30억 달러 달성 등 수출경쟁력이 확보될 때까지 기술료 감면을 연장해 달라”는 입장이다.
김하섭 대표는 “기술료는 당연히 내야 하지만 업계가 낸 기술료를 국과연 연구원들의 복지에 쓰는 것은 큰 문제”라면서 “차라리 이 돈을 방산물자 수출 지원비용으로 쓰면 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기술료 감면 요구에 대해 방사청은 이런 입장을 내놓았다.
“국방과학기술은 국민의 세금과 연구원의 노력으로 개발된 것이며, 이러한 국방과학기술을 이용하는 자는 방위사업법 관련규정에 의거하여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로 개발된 국방과학기술은 방산업체가 물자수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외국에 덤으로 얹어준다든가 아니면 끼워팔기용으로 치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방위산업 수출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은 가능할까?
국가가 존재하는 한 방위산업은 반드시 육성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방위사업청과 국과연이 자주국방에 지대한 공헌을 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김정일의 북한이 비대칭적 속도전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방사청과 국과연은 과거의 타성에 젖어 역비대칭 전략무기 개발보다는 재래식 군사력 건설에 매달려 왔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이번 천안함 쇼크로 인해 방사청과 국과연의 역할과 사명, 성격과 임무에 대한 본질적 개혁을 통해 우리 군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WMD에 대한 역비대칭전력 건설에 나서야 한다.
남북 분단이라는 군사대치상황은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 무기체계의 실험장이다. 이런 여건을 감안한 무기체계를 개발하여 수출산업으로 육성함으로써 또 하나의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현 정부의 과제다. 이명박 정부는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