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圭炯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실내악(室內樂)을 좋아하세요? : 월간조선

실내악(室內樂)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7세기 바로크 시대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18세기와 19세기 귀족사회에서 음악가들이나 음악애호가들이 실내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즐기면서였다. 이런 형태의 음악을 실내악, 즉 Chamber Music이라 불렀다. 여기서 chamber는 방을 뜻한다.

이러한 실내악은 관현악과 비교해서 소규모의 연주형태인데, 주로 2개 이상의 악기에 의한 소규모의 음악을 뜻한다. 실내악은 말 그대로 실내에서 주로 연주되나, 큰 음악당에서도 자주 연주되고 야외에서도 연주될 수 있다. 물론 세종 체임버홀, 금호아트홀처럼 실내악 전문 연주장에서 연주될 때 가장 이상적이지만, 유명 실내악단이 내한해 대규모 콘서트 홀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실내악의 편성은 가장 작은 조합인 2중주부터 3중주, 4중주, 5중주, 6중주, 7중주, 8중주 등 매우 다양하며, 실내악 중에는 가장 규모가 큰 실내 관현악단(Chamber Orchestra)까지 존재한다. 오페라, 교향곡처럼 웅장한 맛은 없어도 아기자기한 앙상블을 즐길 수 있고, 수많은 조합이 가능한 매우 매력적인 음악장르이다. 그래서 음악 팬 중에는 실내악만 집중적으로 듣는 분들이 있다. 실내악은 앙상블의 예술이다. 연주자끼리 친밀한 분위기에서 교감을 나누며 섬세하게 협력해 나가는 것이 바로 실내악의 묘미라 할 것이다.

2중주와 3중주

자, 그러면 두개의 악기가 어우러지는 가장 단순한 조합의 이중주(二重奏·duo)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2중주가 단순한 조합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조합이 가능하다. 하나의 선율악기와 피아노가 어우러지는 것이 2중주에서 가장 흔한 형태이다. 즉 피아노와 바이올린·첼로와 같은 선율악기가 어우러진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같은 것들이 가장 일반적이다. 이러한 형태의 곡으로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같은 걸작들이 있다.

그러나 생소한 조합의 곡들도 많다. 두 대의 피아노를 같이 연주하는 피아노 듀오도 가능하다. 그리고 두 개의 선율악기가 조합되는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어 두개의 바이올린,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같이 연주하는 2중주가 그것이다. 희귀한 조합의 연주곡도 있는데, 그 좋은 예가 우리나라에서 인기 TV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혜린의 테마’로 쓰여 유명해졌던 니콜로 파가니니(Paganini)의 ‘기타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e단조 Op.27-6’이다. 이 곡 중 안단테 부분을 사용한 혜린의 테마는 서정적이고 애절한 선율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Gill Shaham)과 기타리스트 외란 쇨셔(Goran Solscher)는 이 생소한 곡을 녹음해 높은 매출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3중주(trio)도 여러 조합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가 조합되는 피아노 트리오가 가장 선호된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이러한 형태를 정립했다 하는데, 이 장르의 가장 걸작은 베토벤의 3중주이다. 그중에서도 ‘유령’이라는 부제를 가진 Op.70-1과 베토벤의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大公)을 위해 헌정한 ‘대공’ Op.97이 가장 유명하다.

현악4중주는 베토벤에서 절정 이뤄

현악4중주를 절정에 올려놓은 베토벤.

4중주(quartet)에서도 여러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그러나 4중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형태일 뿐 아니라 실내악을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조합이 바로 현악4중주(string quartet)이다.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이 형태는 많은 음악 팬에 의해 음악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이며 완벽한 조합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실내악에서 피아노가 다른 악기를 압도하는 경향이 보이기도 하는데, 현악4중주에서는 피아노 없이 현악기 4개가 절묘하고 고르게 융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이 음악형태는 역시 베토벤에서 절정을 이룬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전집, 특히 후기 현악4중주집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불멸의 위치를 차지한다. 필자는 예전에 어느 유명한 미국 음악평론가의 책에서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사이클은 베토벤의 9개 교향곡 전집이 아니라 그의 현악4중주집이라 주장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교향곡 사이클도 전부 위대한 곡들이지만 각 곡의 질적 균등성(質的均等性)이라는 점에서는 현악4중주 전곡이 더 위대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음악애호가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겠지만,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그만큼 베토벤의 현악4중주 사이클의 위대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리라. 이 사이클은 어느 현악4중주단이건 꼭 도전해 보고 싶지만 너무나도 우뚝 솟아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고산준봉(高山峻峰)과 같은 존재이다. 고금(古今)의 유명 현악4중주단들에 의한 멋진 연주가 즐비하니 애호가들은 본인 입맛에 맞게 고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현악4중주 부흥시킨 브람스

슈만과 멘델스존 이후 침체기를 겪었던 현악4중주는 브람스에 이르러 부흥을 이루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현악4중주의 걸작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가족과 화목하게 실내악 연주를 하기 위해(참고로 슈베르트는 비올라를 연주했다) ‘가정용’으로 현악4중주를 작곡했던 슈베르트는 나중에 전문적으로 현악4중주곡들을 썼는데, 특히 ‘죽음과 소녀’는 스토리를 가진 매우 극적인 작품으로 이 곡을 듣다 보면 마치 작은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풍부하고 다양한 음향을 즐길 수 있다. 수많은 현악4중주단이 이 곡을 녹음했고 동명의 연극과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필자는 이탈리아 4중주단(Quartetto Italiano)의 화려하고 비장미 넘치는 연주를 특히 선호한다.

슈만과 멘델스존도 좋은 현악4중주를 남겼는데 두 사람의 사후(死後) 좋은 현악4중주가 작곡되지 않은 ‘침묵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멘델스존 사후 26년 만에 브람스가 다시 현악4중주를 중흥시켰고 그 뒤를 이어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자크, 스메타나, 보로딘과 같은 훌륭한 현악4중주곡 작곡가들이 계속 나왔다. 20세기에도 알반 베르그와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현악4중주의 명곡들이 작곡됐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현악4중주는 꾸준히 작곡되고 있는 음악형식이다.

4중주에는 현악4중주 이외에도 피아노4중주(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나 관악4중주(목관악기로 이루어지는 목관4중주와 금관악기 4개로 이루어지는 금관4중주)가 있다.

5중주(quintet)가 되면 구성이 더 복잡해진다. 현악4중주에 첼로나 비올라가 추가되는 현악5중주, 그리고 현악4중주에 피아노가 더해지는 피아노 5중주도 있고, 관악기 5개가 어울리는 관악5중주도 있다.

현악5중주는 하이든과 동시대를 살았던 보케리니의 독무대였다. 그는 무려 120개가 넘는 현악5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현악4중주+첼로의 조합을 이용한 현악5중주 Op.11-5는 특히 인기가 높다. ‘보케리니의 미뉴엣(Minuet)’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는 선율은 바로 이 곡의 3악장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모두 좋은 현악5중주곡들을 남긴 반면 의아하게도 하이든은 한 곡도 남기지 않았다.

가장 인기 있는 5중주곡은 슈베르트의 ‘송어’

5중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은 단연코 슈베르트의 피아노5중주 ‘송어’이다. 5악장으로 구성돼 있는 이 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라는 매우 독특한 콤비네이션을 택했다. 청명하기 짝이 없는 이 곡은 대중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 왔다. 하나 지적하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웬일인지 이 곡을 ‘숭어’라고 잘못 불러 왔다. 숭어는 바다에 사는 큰 물고기로, 슈베르트가 묘사하고자 했던 것은 민물에 뛰노는 송어(Die Forelle)였기에 이 곡의 제목을 앞으로는 ‘송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필자가 5중주에서 ‘송어’만큼 많이 듣는 곡은 다름 아닌 클라리넷 5중주이다. 클라리넷은 현악기와 잘 블렌드(blend)되는 목관악기이기에 현악4중주와 클라리넷이 만나 펼쳐지는 클라리넷 5중주의 명곡들은 단아한 멋을 풍긴다. 모차르트, 베버, 브람스가 이 장르의 걸작을 남겼다.

특히 브람스의 작품은 쓸쓸함이 넘치는 명곡이다. 어디에선가 ‘가을에 가장 듣기 좋은 곡’으로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가 꼽힌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모차르트, 베버, 브람스 전부 다 당대의 명 클라리넷 주자들을 위해 이 곡들을 작곡했다고 하는데, 요즘도 명 클라리넷 주자와 명 현악4중주단이 함께 모여 훌륭한 연주를 하며, 좋은 녹음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제르바즈 드 파이에, 카를 라이스터, 데이비드 쉬프린 등 당대 최고의 클라리넷 주자들도 예외 없이 훌륭한 녹음을 남겼다.

6중주 이상은 관현악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실내악의 성격이 약해지기에 작품들이 많지 않다. 그중에서는 브람스의 현악6중주,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남긴 8중주가 유명하나 연주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서울 스프링 실내악 국제페스티벌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실내악에 대한 소개 글을 써 봤다. 서두에도 얘기했지만 실내악은 앙상블의 예술이다. 연주자끼리 친밀한 분위기에서 교감을 나누며 섬세하게 협력해 나가는 것이 바로 실내악의 묘미라 할 것이다.

이러한 실내악에 대한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국제규모의 페스티벌인 서울 스프링 실내악 국제 페스티벌(SSF, 집행위원장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운영총감독 김영호 연세대 음대교수, www.seoulspring.org)이 2006년 ‘동서양의 만남’이란 주제로 처음 열렸고, 올해 벌써 5년째를 맞는다. 작년은 ‘B4＋, 베토벤과 함께 시련을 넘어 희망으로’라는 주제로 주피터 현악4중주단, 에벤 4중주단 등 저명한 해외 현악4중주단을 비롯해 여러 연주단체에 의해 국내 최초로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 연주가 펼쳐지기도 했다.

올해는 5월 5일 특별히 올해 새롭게 조성된 한강시민공원 여의지구 플로팅 스테이지에서 무료로 시민에게 개방되는 ‘시민과 함께하는 가족 음악회’를 필두로 5월 18일까지 광화문에 위치한 세종 체임버홀을 중심으로 시내 곳곳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Unfinished Journey(못다한 여정)’로서 슈베르트의 작품을 위주로 공연될 예정이다. 슈베르트는 31세가 채 되지 않아 요절(夭折)하였지만 손수 작곡한 1000여 개의 작품을 통하여 음악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음악과 삶을 기념하여 아직 끝나지 않은 슈베르트의 여정을 이번 2010 서울스프링실내악 축제에서 그려낼 예정이다.

서울문화재단은 국제적 축제 개최를 통해 서울의 문화도시 브랜드를 강화하고 국내에서 침체된 실내악 분야를 활성화하여 신진 연주자를 육성하고, 다양한 계층 시민들이 클래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자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개최해 왔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탱글우드 페스티벌 같은 세계적인 음악축제를 원대한 목표로 삼은 SSF. 올해도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예술감독을 필두로 한국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다수의 음악가가 주축이 되어 해외의 유명 연주자들과 조화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名 바리톤 홀츠마이어 초청

오스트리아 출신의 명(名) 바리톤 볼프강 홀츠마이어.

작년도에 강동석과 SSF는 대원음악대상을 수상했으며, SSF의 운영위원인 첼리스트 양성원은 대원음악상 연주자상을 받았기에 올해 공연은 자축하는 축제로서의 감격까지 가미됐다 하겠다. 5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브랜드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공연 중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명(名) 바리톤인 볼프강 홀츠마이어(Wolfgang Holzmair)가 5월 14일과 16일 세종 체임버홀에서 ‘Winterreise / 겨울나그네’ 와 ‘Die sch쮤ne M쮒llerin /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부르는 공연이다. 그의 정교한 발성으로 슈베르트의 걸작 연가곡을 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된다.

세계 정상급의 피아노 트리오인 칼리히슈타인-라레도-로빈슨 트리오.

세계 정상급의 피아노 트리오인 칼리히슈타인-라레도-로빈슨 트리오(Kalichstein-Laredo-Robinson Trio)도 눈에 띄는 초청자이다. 필자는 박사과정 유학시절에 오하이오 대학 음악당에 초청된 이 트리오의 연주를 보고 감명을 받았었는데 20여년 만에 그들을 실황으로 다시 보게 돼 기쁜 마음이다. 프랑스의 클라리넷 악대 레봉벡과 함께 떠나는 ‘80분간의 세계일주’ 는 흥겨운 음악극 형태로 진행되는 공연이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5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열릴 ‘가족음악회-세 남자의 못다한 사랑이야기’는 타임머신으로 슈베르트, 슈만, 쇼팽에게 전화를 해 그들과 통화하며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 이외에도 강동석, 양성원, 신수정, 김대진, 이경선, 김상진, 최희연을 위시한 한국의 대표적 음악가들과 필립 뮬러 등 여러 외국 초청자들이 혼연일체가 된 즐거운 축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