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신흥 돈주(기업가)’ 세력이 당·군부 세력과 연합하여 反김정일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해 왔다고 한다.
이번 화폐개혁 조치는 ‘신흥 돈주’들이 더 성장하기 전에 그 뿌리를 잘라내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 화폐개혁으로 인한 살인사건, 자살자·정신이상자 발생
⊙ 金日成 얼굴 담은 구권 지폐 하천에 버려
⊙ 보위부, 화폐개혁 불만자 색출 나서
이번 화폐개혁 조치는 ‘신흥 돈주’들이 더 성장하기 전에 그 뿌리를 잘라내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 화폐개혁으로 인한 살인사건, 자살자·정신이상자 발생
⊙ 金日成 얼굴 담은 구권 지폐 하천에 버려
⊙ 보위부, 화폐개혁 불만자 색출 나서
- 화폐개혁 이후 새로 발행된 북한의 지폐.
2009년 11월 30일, 북한에서 5번째 화폐개혁(또는 화폐교환)이 시행됐다. 이번 개혁은 특이하게도 과거의 교환 전례와는 달리 시행 당일 북한 언론을 통해 공표되지 않아 북한 당국의 목적이 무엇인지 관심이 고조됐다.
1959, 1979, 1992년 화폐교환은 조치 즉시 <노동신문>을 통해 사실이 공표됐다. 또 한 번의 화폐개혁은 1949년에 있었는데, 이 당시는 화폐교환이 아니라 소액 지폐 발행이었다.
북한 화폐개혁 조치가 공식 발표된 것은 화폐개혁이 시작된 5일 이후인 2009년 12월 4일이었다. 대외 언론인 <조선신보>를 통해 새 화폐의 종류가 지폐 9종(10원, 20원, 50원, 100원, 200원, 500원)과 주화 5종(1원, 50전, 10전, 5전, 1전)임이 공개되면서 화폐교환 시행 소식이 공표됐다. <조선신보>에 의하면 이에 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政令(정령)과 내각결정이 나왔다.
화폐교환은 전국적으로 동시에 시작되지 않고 지역별로 시간차를 두고 이뤄졌다. 개혁 단행일인 11월 30일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12월 1일부터는 무산과 신의주 등 지방 도시의 국가기관들을 대상으로 교환을 실시했다. 전국적으로 온 주민들이 교환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12월 2일부터였다.
<조선신보>에 의하면 화폐교환 비율은 100 대 1이며 저금소에 저축된 돈은 혜택을 주어 10 대 1로 교환을 해 준다. 교환 상한 금액은 <조선신보>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구 화폐 10만원이 상한 금액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은행에 저축되어 있는 돈에 한해서는 20만원까지 교환을 할 수 있다고 <조선신보>는 밝혔다.
그러나 당국에서는 주민들의 반발을 완화하기 위해 상한 금액을 계속 변동했다. 12월 3일에는 가구마다 기존의 10만원(신권 1000원) 교환 외에 가족 수에 한해 1인당 구권 5만원씩을 더 교환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4인 가족의 경우 30만원(신권 3000원)까지 교환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는 50만원까지는 국가에 맡길 경우, ‘보관’을 해 두었다가 후일 돌려주겠다는 지침이 하달됐다. 50만원 이상은 사실상 자기 재산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50만원 이하라도 말이 ‘보관’이지 실상은 찾을 수 없는 돈이다. 주민들이 국가에 돈을 헌납하는 꼴이 된 것이다(아래 글에서 인용한 북한 내부 소식 중 소스를 밝히지 않은 것은 필자가 대표로 있는 열린북한통신에서 발행한 내용임).
쌀값 20배, 강냉이값 32배 폭등
2009년 12월 9일에는 각종 상품에 대한 국정가격이 발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신권 기준 1kg당 쌀이 23원, 옥수수 8원, 밀가루 22원, 돼지고기 45원으로 책정됐다는 것이다(좋은벗들). 이와 함께 노동자들의 月(월) 평균 임금이 신권 기준 400원 전후로 책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소식도 있었다(데일리NK). 하지만 12월 10일 현재 시장에서는 신권 기준 가격이 통용되고 있지 않다.
화폐개혁 직후, 그 충격파가 주민들을 덮쳤다. 쌀값과 환율이 폭등한 것이다. 더불어 시장이 사실상 폐쇄됐으며 공장 및 기업소의 가동 역시 사실상 중단됐다.
쌀값을 비롯한 식량 가격은 20배가량 상승했다. 2009년 12월 2일 무산 소식에 의하면 11월 30일 1kg당 2500원이었던 쌀값이 1일에는 5만원까지 폭등했다. 주민들에게 쌀보다 주식으로 더 널리 퍼져 있는 통강냉이(옥수수)의 경우 1kg에 950원에 팔리던 것이 3만원까지 치솟았다. 쌀은 약 20배, 통강냉이는 32배 폭등한 것이다. 두부는 1200원에서 2만5000원으로 20배, 들깨는 1kg에 4000원 안팎을 유지했던 가격이 6만원으로 15배 뛰었다.
환율도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다. 평양 소식에 의하면 11월 30일까지만 하더라도 100달러에 북한 돈 36만원 선을 유지했던 환율이 12월 2일에는 60만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60만원 이상을 주더라도 환전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새로 발행되는 화폐를 기준으로 한 환율 및 물품의 국정 가격에 대한 지침이 하달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12월 8일 현재 북한 당국은 對(대)중국 무역에서 어떤 환율을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때문에 화폐개혁이 단행되고 국가에서 특정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 발생한 경제적 혼란은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게 됐다. 환전을 하거나 물품을 구매하고자 할 때 구권을 이용하면 화폐개혁 이전의 거래가격에서 폭등한 금액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당시 평양 소식에 의하면 구권을 가지고는 식량 1kg을 사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화폐개혁 실시 이후, 조정되지 않은 국정가격 역시 주민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기차를 타고 신의주에서 원산으로 가야 하는 한 북한 주민은 구권으로 기차 값이 430원이었는데 12월 6일 현재 신권으로도 430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교통비가 100배 오르는 바람에 도저히 기차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아 신의주에 발이 묶여 있다고 한다.
시장 폐쇄, 공장 기업소는 문 닫아
무산에서는 신권을 기준으로 한 기차표 값이 구권 기준 값보다 더 비싸졌다. 12월 6일부터 무산에서 평양까지 화폐개혁 전 980원(구권 시가)이었던 열차운임비를 신권으로는 1200원으로 올린다는 것이 공식 발표된 것이다. 사실상 교통비가 2000% 이상 오른 셈이다.
복수의 내부 소식통들에 의하면 기차 값뿐만 아니라 생필품인 쌀과 기름 등도 가격이 조정되지 않아 시장활동이 정체되어 있는 상태였다.
결혼식과 장례식 등 관혼상제를 치르는 데도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결혼식 및 장례식에 쓰일 음식의 재료값 등 국정가격이 발표되지 않은 가운데 가격이 폭등하고 있기 때문.
2009년 12월 9일 비로소 국정가격이 공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공시된 가격과는 달리 실제로는 더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국정가격에 의하면 쌀은 1kg에 23원에 거래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40원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좋은벗들 12월 13일). 결국 화폐개혁 이전과 같이 국정가격이 유명무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와 함께 시장은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북한 당국에서는 신권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10원과 1원, 50전 등의 잔돈은 주지 않고 있다. 공장과 기업소 역시 11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 1주일간 사실상 생산이 중지된 상태였다(좋은벗들). 경제생활 전반이 사실상 올 스톱된 것이다.
12월 8일경부터는 재정일꾼대회를 열어 국정환율을 조정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다(데일리NK). 그러나 국정환율이 무의미하고 외화 암시장 등의 비공식 환율이 북한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이전 상황을 보면, 국정환율이 새로 책정된다고 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환율이 책정된다 해도 주민들 사이에서 실질적으로 통용됐던 비공식 환율이 자리 잡기 전까지는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생필품 등의 국정가격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견된다. 12월 4일 <조선신보>는 추후 국정가격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수준으로 책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金日成 초상 그려진 지폐 하천에 버려
화폐개혁 단행 소식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허탈과 분노였다. 100 대 1의 교환 비율에 10만원 이상의 자산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다수의 인민이 이번 화폐개혁의 피해자이기에 절망과 분노는 극단에 이르러 있다.
이를 증명하듯, 화폐개혁 이후 노동자들의 기업소 출근율은 30%를 밑돌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신의주의 경우 화폐교환이 시작된 지난 1일부터 3일 사이 신의주 화학섬유공장, 시멘트공장, 강철공장, 방적기계공장을 비롯한 큰 규모의 공장, 기업소들의 출근율이 3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의 출근율은 70% 이상이었다. 이는 가장 약한 형태의 저항 표출이다.
12월 4일, 청진 지역에서는 김일성의 얼굴이 새겨진 구 화폐 100원과 1000원권이 하천에 버려져 둥둥 떠 있는 것이 발견됐다. ‘김일성의 얼굴’을 하천에 내다버렸다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는 엄청난 反(반)체제적 표현이다.
화폐개혁으로 인한 충격에 사망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12월 5일, 평양 서성구역에서는 빵장사를 하던 64세 할머니가 화폐개혁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했다. 자살자나 충격으로 인한 정신이상자도 생겨나고 있다.
적극적인 저항의 표현 형태로 살인사건이나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는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돈을 꾸어준 채무자가 옛날 돈으로 갚으려고 하자 돈 빌려준 사람은 “이 돈은 쓰레기인데 왜 지금 이 돈으로 주냐?”고 따졌다. 채무자가 “내가 이 돈으로 빌렸기 때문에 이 돈으로 준다”고 하자 격분한 채권자가 채무자를 살해한 것이다.
돈이 있는 주민들은 가지고 있는 자산을 최대한 교환하기 위해 돈이 없는 이들을 찾아가 바꾼 돈의 얼마를 떼어 줄 터이니 대신 교환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화폐개혁 단행 조치가 발표되면서, 북한 사회 전반에서도 이에 따른 후속 조치들이 뒤따랐다. 이번 조치로 인한 주민들의 동요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평성에서는 ‘화폐장사꾼’ 2명이 12월 4일 비공개 총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실은 평성 보위부 관계자를 통해 알려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장사를 해서 번 구권 1100만여 원을 아는 사람들에게 10만원씩 준 후 신권으로 바꾸게 했다. 그리고 바꾼 신권을 1 대 1 비율로 나누어 가졌는데, 이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총살당했다고 한다.
또 화폐를 버리거나 불태우는 등 화폐개혁에 반발하는 행위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엄벌한다는 비공개 지시문이 12월 3, 4일경 각 도 보위부를 통해 내려졌다고 한다. 화폐개혁 시기에 화폐교환과 관련된 부정행위를 정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철저히 색출하라는 것이다.
주민 동요 막기 위해 보안원 잠복상태
12월 4일 새벽에는 함북 청진의 수성천 강물 위에 100원, 1000원 등 구권이 많이 들어 있는 배낭을 누군가 통째로 버린 사건이 있었다. 보위부에서 이 사건의 주범을 색출하여 엄중 대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청진시 보위부와 도 보위부에서 이 사건의 主犯(주범)을 색출하기 위해 전문 그루빠를 만들어 작전에 돌입했다.
보위부는 이와 관련해 “인민들이 화폐교환 행사에 성실히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상사업을 선행하여 정치사상적으로 각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침을 하부에 내려보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특히 화폐를 버리거나 불지르는 행위에 대해서는 ‘즉시보고체계’를 세우고 앞으로 한 달 동안 비상대기 상황에 들어가도록 했다고 한다.
화폐개혁에 대한 불만 표현 및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폭동사태에 대비하여 전국적으로 보안원들이 잠복 상태에 들어가기도 했다. 주민 동향을 캐고 다니기도 하며 감시의 정도를 강화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타인과는 말을 섞지 말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을 정도다(좋은벗들).
화폐개혁 이후, 각지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고 있다. 주민 여론이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망하는 이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법일꾼들이 나서서 사고사한 것인지 반항의 표현으로 자살을 한 것인지 파악하고 있다(좋은벗들).
평양·신의주·무산·혜산 등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조치도 함께 시행되고 있다.
지난 12월 2일에는 화폐개혁과 관련하여 500원의 현금을 먼저 ‘배려금’ 명목으로 주었다. 12월 4일부터는 전국적으로 성인 1인당 백미 7kg(하루 480g/인)씩 배급을 주기 시작했다.
화폐개혁에 대한 대체적인 북한 주민의 민심은 분노와 불만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도 이번 조치로 인해 이익을 보는 계층이 있다. 수혜자들은 당의 고위간부는 물론이며 일반 주민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우선 현금 없이 물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북한 당국은 10만원(저축 50만원 한도)까지 바꾸어 주기 때문에 물건, 특히 식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장마당에 팔아 폭리를 취하고 있다.
돈을 직접 다루는 은행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의 ‘국가자금’을 직접 관리하여 신권 확보가 쉬운 사람들은 구권을 손쉽게 바꿀 수 있다.
해외에서 들어온 외국인(중국인)들과 연계된 사람들도 이 기회를 이용하여 폭리를 얻고 있다. 북한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보유한 구권은 상한 없이 교환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신흥 돈주(기업가)’의 등장
중국인이 보유한 북한 돈에 대한 화폐교환 가능 금액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고 한다. 특히 국경지방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개인 여행자들이 평양이나 내륙도시들보다는 훨씬 많다. 이 여행자들은 북한 관광과 물품 구입을 위해 환전한 북한 돈(구권)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이기에 북한 당국은 가능한 한 그들이 가진 북한 구권을 모두 교환해 주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경 지방에서는 중국인들을 통해 북한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려는 북한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인들은 가지고 있는 구권을 액수 제한 없이 신권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화폐개혁의 목적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고 있다. 하나는 경제적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함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측면, 즉 안정적 권력 승계를 위해 잠재적 반체제 세력을 소탕하기 위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라는 관측은 여러 이유로 볼 때 큰 설득력이 없다. 우선 이번 조치로 북한 정부가 물가안정 조치를 꾀하고 있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기차 값이다. 북한 당국은 명목 기차 값을 화폐개혁 이전 수준보다 인상하고 있다. 때문에 실질 기차 값은 100% 이상 폭등하고 있다.
또 하나의 근거는 북한의 인플레가 2006년 이후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매년 평균 2배 이상 쌀 가격이 폭등했다. 그러나 2007년 이후에는 대체로 1000원 후반에서 2000원 초반대에서 쌀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다. 때문에 2006년 이전에 인플레를 잡기 위해 화폐개혁을 했다고 하면 일리가 있지만 2009년 시점에 인플레를 근거로 화폐개혁을 합리화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반해 잠재적 반체제 세력 소탕이 이번 화폐개혁의 가장 큰 목적이라는 관측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이번 화폐개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계층이 ‘신흥 돈주(기업가)’ 세력이라고 말했다. ‘신흥 돈주’ 세력은 지난 2002년 7·1 경제조치 이후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100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면서 등장했다. 북한 당국은 북한 내에 이들이 1000명 내외가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신흥 돈주’의 싹을 잘라라
소식통은 “돈주들은 중국의 물건을 차떼기(대형 트럭으로 대량의 물건을 들여오는 것)로 가져와 북한의 도매상들에게 배분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거액의 북한 돈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 세력은 김정일 측근 및 군부와 사적인 관계를 맺고 권력을 등에 업어 큰돈을 벌어 왔다. 일종의 정경유착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이는 김정일도 일일이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은 이들 ‘신흥 돈주’ 세력이 당·군부 세력과 연합하여 반김정일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해 왔다고 한다. 때문에 이번 화폐개혁 조치는 ‘신흥 돈주’들이 더 성장하기 전에 그 뿌리를 잘라내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이런 ‘신흥 돈주’들이 재성장할 기반을 없애기 위해 과거 1980년대처럼 배급제도를 복원하고 시장을 박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목적으로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 조치 이후 민간의 식량 수입까지 통제하고 있다. 즉 식량을 국가가 전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시장과 돈주의 부흥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의도는 잘 관철이 될까? 세 가지 이유에서 북한의 목적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먼저 물가가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월급을 올리고, 식량 배급도 그 전보다 더 주고 있다. 그러나 월급을 올리면 물가도 올라간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줄 수 있는 식량 배급도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장이 잡힐 수는 있어도 근원적 박멸은 불가능하다. 물가가 계속 올라가고 시장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질 것이다.
둘째, 이번 조치로 ‘신흥 돈주’들은 김정일이 자신의 敵(적)임을 분명히 확인했다. 김정일은 ‘신흥 돈주’들을 박멸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흥 돈주’들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자신들이 직접 거래하는 물량을 감당할 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달러나 위안으로 富(부)를 축적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화폐개혁으로 부분적 타격을 입긴 해도 근원적 소탕은 불가능한 것이다.
김정은 후계체제에 暗雲
오히려 ‘신흥 돈주’들은 김정일과 자신들은 한 하늘에서 함께 살 수 없다는 인식을 강화하게 됐다. 이번 화폐개혁의 궁극적 목적이 반체제 세력의 뿌리를 잘라낸다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반체제 세력 형성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셋째, 이번 조치는 대다수 일반 주민의 정서도 반김정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화폐개혁 이전에 북한 주민들의 대다수는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장사 활동을 했다. 이를 김정일이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정일은 이번 화폐개혁으로 인한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임금을 인상하고 식량 배급을 늘리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임금을 신권 기준 400원(구권 기준 4만원)으로 인상하더라도 이를 통해 살 수 있는 쌀은 많아야 10kg밖에 되지 않는다.
일반 주민들은 월급만으로 도저히 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야 한다. 주민 생존에 있어 시장은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이런 시장을 김정일이 말살하려고 하니 북한 주민이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김정일은 이번 화폐개혁 조치로 일반 주민들의 공분을 사고, 신흥 돈주들의 반체제 세력화를 촉진하게 됐다. 김정일은 아들 김정은으로 안정적인 후계 승계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었으나 오히려 반체제 세력의 성장을 가져다준 것이다.
이번 화폐개혁 조치로 북한 사회에 당장 조직적인 반체제 세력의 폭동이나 쿠데타 기도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북한 반체제 세력 형성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정은 후계 체제의 앞날에 크나큰 암운이 드리운 것이다.⊙
1959, 1979, 1992년 화폐교환은 조치 즉시 <노동신문>을 통해 사실이 공표됐다. 또 한 번의 화폐개혁은 1949년에 있었는데, 이 당시는 화폐교환이 아니라 소액 지폐 발행이었다.
북한 화폐개혁 조치가 공식 발표된 것은 화폐개혁이 시작된 5일 이후인 2009년 12월 4일이었다. 대외 언론인 <조선신보>를 통해 새 화폐의 종류가 지폐 9종(10원, 20원, 50원, 100원, 200원, 500원)과 주화 5종(1원, 50전, 10전, 5전, 1전)임이 공개되면서 화폐교환 시행 소식이 공표됐다. <조선신보>에 의하면 이에 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政令(정령)과 내각결정이 나왔다.
화폐교환은 전국적으로 동시에 시작되지 않고 지역별로 시간차를 두고 이뤄졌다. 개혁 단행일인 11월 30일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12월 1일부터는 무산과 신의주 등 지방 도시의 국가기관들을 대상으로 교환을 실시했다. 전국적으로 온 주민들이 교환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12월 2일부터였다.
<조선신보>에 의하면 화폐교환 비율은 100 대 1이며 저금소에 저축된 돈은 혜택을 주어 10 대 1로 교환을 해 준다. 교환 상한 금액은 <조선신보>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구 화폐 10만원이 상한 금액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은행에 저축되어 있는 돈에 한해서는 20만원까지 교환을 할 수 있다고 <조선신보>는 밝혔다.
그러나 당국에서는 주민들의 반발을 완화하기 위해 상한 금액을 계속 변동했다. 12월 3일에는 가구마다 기존의 10만원(신권 1000원) 교환 외에 가족 수에 한해 1인당 구권 5만원씩을 더 교환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4인 가족의 경우 30만원(신권 3000원)까지 교환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는 50만원까지는 국가에 맡길 경우, ‘보관’을 해 두었다가 후일 돌려주겠다는 지침이 하달됐다. 50만원 이상은 사실상 자기 재산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50만원 이하라도 말이 ‘보관’이지 실상은 찾을 수 없는 돈이다. 주민들이 국가에 돈을 헌납하는 꼴이 된 것이다(아래 글에서 인용한 북한 내부 소식 중 소스를 밝히지 않은 것은 필자가 대표로 있는 열린북한통신에서 발행한 내용임).
쌀값 20배, 강냉이값 32배 폭등
2009년 12월 9일에는 각종 상품에 대한 국정가격이 발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신권 기준 1kg당 쌀이 23원, 옥수수 8원, 밀가루 22원, 돼지고기 45원으로 책정됐다는 것이다(좋은벗들). 이와 함께 노동자들의 月(월) 평균 임금이 신권 기준 400원 전후로 책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소식도 있었다(데일리NK). 하지만 12월 10일 현재 시장에서는 신권 기준 가격이 통용되고 있지 않다.
화폐개혁 직후, 그 충격파가 주민들을 덮쳤다. 쌀값과 환율이 폭등한 것이다. 더불어 시장이 사실상 폐쇄됐으며 공장 및 기업소의 가동 역시 사실상 중단됐다.
쌀값을 비롯한 식량 가격은 20배가량 상승했다. 2009년 12월 2일 무산 소식에 의하면 11월 30일 1kg당 2500원이었던 쌀값이 1일에는 5만원까지 폭등했다. 주민들에게 쌀보다 주식으로 더 널리 퍼져 있는 통강냉이(옥수수)의 경우 1kg에 950원에 팔리던 것이 3만원까지 치솟았다. 쌀은 약 20배, 통강냉이는 32배 폭등한 것이다. 두부는 1200원에서 2만5000원으로 20배, 들깨는 1kg에 4000원 안팎을 유지했던 가격이 6만원으로 15배 뛰었다.
환율도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다. 평양 소식에 의하면 11월 30일까지만 하더라도 100달러에 북한 돈 36만원 선을 유지했던 환율이 12월 2일에는 60만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60만원 이상을 주더라도 환전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새로 발행되는 화폐를 기준으로 한 환율 및 물품의 국정 가격에 대한 지침이 하달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12월 8일 현재 북한 당국은 對(대)중국 무역에서 어떤 환율을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때문에 화폐개혁이 단행되고 국가에서 특정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 발생한 경제적 혼란은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게 됐다. 환전을 하거나 물품을 구매하고자 할 때 구권을 이용하면 화폐개혁 이전의 거래가격에서 폭등한 금액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당시 평양 소식에 의하면 구권을 가지고는 식량 1kg을 사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화폐개혁 실시 이후, 조정되지 않은 국정가격 역시 주민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기차를 타고 신의주에서 원산으로 가야 하는 한 북한 주민은 구권으로 기차 값이 430원이었는데 12월 6일 현재 신권으로도 430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교통비가 100배 오르는 바람에 도저히 기차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아 신의주에 발이 묶여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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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는 화폐개혁 이후 상품들의 국정가격을 새로 고시했다. 사진은 북한의 백화점. |
시장 폐쇄, 공장 기업소는 문 닫아
무산에서는 신권을 기준으로 한 기차표 값이 구권 기준 값보다 더 비싸졌다. 12월 6일부터 무산에서 평양까지 화폐개혁 전 980원(구권 시가)이었던 열차운임비를 신권으로는 1200원으로 올린다는 것이 공식 발표된 것이다. 사실상 교통비가 2000% 이상 오른 셈이다.
복수의 내부 소식통들에 의하면 기차 값뿐만 아니라 생필품인 쌀과 기름 등도 가격이 조정되지 않아 시장활동이 정체되어 있는 상태였다.
결혼식과 장례식 등 관혼상제를 치르는 데도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결혼식 및 장례식에 쓰일 음식의 재료값 등 국정가격이 발표되지 않은 가운데 가격이 폭등하고 있기 때문.
2009년 12월 9일 비로소 국정가격이 공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공시된 가격과는 달리 실제로는 더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국정가격에 의하면 쌀은 1kg에 23원에 거래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40원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좋은벗들 12월 13일). 결국 화폐개혁 이전과 같이 국정가격이 유명무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와 함께 시장은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북한 당국에서는 신권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10원과 1원, 50전 등의 잔돈은 주지 않고 있다. 공장과 기업소 역시 11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 1주일간 사실상 생산이 중지된 상태였다(좋은벗들). 경제생활 전반이 사실상 올 스톱된 것이다.
12월 8일경부터는 재정일꾼대회를 열어 국정환율을 조정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다(데일리NK). 그러나 국정환율이 무의미하고 외화 암시장 등의 비공식 환율이 북한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이전 상황을 보면, 국정환율이 새로 책정된다고 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환율이 책정된다 해도 주민들 사이에서 실질적으로 통용됐던 비공식 환율이 자리 잡기 전까지는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생필품 등의 국정가격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견된다. 12월 4일 <조선신보>는 추후 국정가격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수준으로 책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金日成 초상 그려진 지폐 하천에 버려
화폐개혁 단행 소식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허탈과 분노였다. 100 대 1의 교환 비율에 10만원 이상의 자산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다수의 인민이 이번 화폐개혁의 피해자이기에 절망과 분노는 극단에 이르러 있다.
이를 증명하듯, 화폐개혁 이후 노동자들의 기업소 출근율은 30%를 밑돌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신의주의 경우 화폐교환이 시작된 지난 1일부터 3일 사이 신의주 화학섬유공장, 시멘트공장, 강철공장, 방적기계공장을 비롯한 큰 규모의 공장, 기업소들의 출근율이 3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의 출근율은 70% 이상이었다. 이는 가장 약한 형태의 저항 표출이다.
12월 4일, 청진 지역에서는 김일성의 얼굴이 새겨진 구 화폐 100원과 1000원권이 하천에 버려져 둥둥 떠 있는 것이 발견됐다. ‘김일성의 얼굴’을 하천에 내다버렸다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는 엄청난 反(반)체제적 표현이다.
화폐개혁으로 인한 충격에 사망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12월 5일, 평양 서성구역에서는 빵장사를 하던 64세 할머니가 화폐개혁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했다. 자살자나 충격으로 인한 정신이상자도 생겨나고 있다.
적극적인 저항의 표현 형태로 살인사건이나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는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돈을 꾸어준 채무자가 옛날 돈으로 갚으려고 하자 돈 빌려준 사람은 “이 돈은 쓰레기인데 왜 지금 이 돈으로 주냐?”고 따졌다. 채무자가 “내가 이 돈으로 빌렸기 때문에 이 돈으로 준다”고 하자 격분한 채권자가 채무자를 살해한 것이다.
돈이 있는 주민들은 가지고 있는 자산을 최대한 교환하기 위해 돈이 없는 이들을 찾아가 바꾼 돈의 얼마를 떼어 줄 터이니 대신 교환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화폐개혁 단행 조치가 발표되면서, 북한 사회 전반에서도 이에 따른 후속 조치들이 뒤따랐다. 이번 조치로 인한 주민들의 동요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평성에서는 ‘화폐장사꾼’ 2명이 12월 4일 비공개 총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실은 평성 보위부 관계자를 통해 알려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장사를 해서 번 구권 1100만여 원을 아는 사람들에게 10만원씩 준 후 신권으로 바꾸게 했다. 그리고 바꾼 신권을 1 대 1 비율로 나누어 가졌는데, 이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총살당했다고 한다.
또 화폐를 버리거나 불태우는 등 화폐개혁에 반발하는 행위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엄벌한다는 비공개 지시문이 12월 3, 4일경 각 도 보위부를 통해 내려졌다고 한다. 화폐개혁 시기에 화폐교환과 관련된 부정행위를 정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철저히 색출하라는 것이다.
주민 동요 막기 위해 보안원 잠복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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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으로 가져다 팔 물건들을 싣고 있는 중국 상인들. 중국 상인들은 화폐개혁 이후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큰 이익을 보았다. |
보위부는 이와 관련해 “인민들이 화폐교환 행사에 성실히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상사업을 선행하여 정치사상적으로 각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침을 하부에 내려보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특히 화폐를 버리거나 불지르는 행위에 대해서는 ‘즉시보고체계’를 세우고 앞으로 한 달 동안 비상대기 상황에 들어가도록 했다고 한다.
화폐개혁에 대한 불만 표현 및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폭동사태에 대비하여 전국적으로 보안원들이 잠복 상태에 들어가기도 했다. 주민 동향을 캐고 다니기도 하며 감시의 정도를 강화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타인과는 말을 섞지 말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을 정도다(좋은벗들).
화폐개혁 이후, 각지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고 있다. 주민 여론이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망하는 이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법일꾼들이 나서서 사고사한 것인지 반항의 표현으로 자살을 한 것인지 파악하고 있다(좋은벗들).
평양·신의주·무산·혜산 등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조치도 함께 시행되고 있다.
지난 12월 2일에는 화폐개혁과 관련하여 500원의 현금을 먼저 ‘배려금’ 명목으로 주었다. 12월 4일부터는 전국적으로 성인 1인당 백미 7kg(하루 480g/인)씩 배급을 주기 시작했다.
화폐개혁에 대한 대체적인 북한 주민의 민심은 분노와 불만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도 이번 조치로 인해 이익을 보는 계층이 있다. 수혜자들은 당의 고위간부는 물론이며 일반 주민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우선 현금 없이 물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북한 당국은 10만원(저축 50만원 한도)까지 바꾸어 주기 때문에 물건, 특히 식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장마당에 팔아 폭리를 취하고 있다.
돈을 직접 다루는 은행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의 ‘국가자금’을 직접 관리하여 신권 확보가 쉬운 사람들은 구권을 손쉽게 바꿀 수 있다.
해외에서 들어온 외국인(중국인)들과 연계된 사람들도 이 기회를 이용하여 폭리를 얻고 있다. 북한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보유한 구권은 상한 없이 교환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신흥 돈주(기업가)’의 등장
중국인이 보유한 북한 돈에 대한 화폐교환 가능 금액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고 한다. 특히 국경지방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개인 여행자들이 평양이나 내륙도시들보다는 훨씬 많다. 이 여행자들은 북한 관광과 물품 구입을 위해 환전한 북한 돈(구권)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이기에 북한 당국은 가능한 한 그들이 가진 북한 구권을 모두 교환해 주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경 지방에서는 중국인들을 통해 북한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려는 북한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인들은 가지고 있는 구권을 액수 제한 없이 신권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화폐개혁의 목적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고 있다. 하나는 경제적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함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측면, 즉 안정적 권력 승계를 위해 잠재적 반체제 세력을 소탕하기 위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라는 관측은 여러 이유로 볼 때 큰 설득력이 없다. 우선 이번 조치로 북한 정부가 물가안정 조치를 꾀하고 있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기차 값이다. 북한 당국은 명목 기차 값을 화폐개혁 이전 수준보다 인상하고 있다. 때문에 실질 기차 값은 100% 이상 폭등하고 있다.
또 하나의 근거는 북한의 인플레가 2006년 이후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매년 평균 2배 이상 쌀 가격이 폭등했다. 그러나 2007년 이후에는 대체로 1000원 후반에서 2000원 초반대에서 쌀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다. 때문에 2006년 이전에 인플레를 잡기 위해 화폐개혁을 했다고 하면 일리가 있지만 2009년 시점에 인플레를 근거로 화폐개혁을 합리화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반해 잠재적 반체제 세력 소탕이 이번 화폐개혁의 가장 큰 목적이라는 관측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이번 화폐개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계층이 ‘신흥 돈주(기업가)’ 세력이라고 말했다. ‘신흥 돈주’ 세력은 지난 2002년 7·1 경제조치 이후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100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면서 등장했다. 북한 당국은 북한 내에 이들이 1000명 내외가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신흥 돈주’의 싹을 잘라라
소식통은 “돈주들은 중국의 물건을 차떼기(대형 트럭으로 대량의 물건을 들여오는 것)로 가져와 북한의 도매상들에게 배분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거액의 북한 돈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 세력은 김정일 측근 및 군부와 사적인 관계를 맺고 권력을 등에 업어 큰돈을 벌어 왔다. 일종의 정경유착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이는 김정일도 일일이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은 이들 ‘신흥 돈주’ 세력이 당·군부 세력과 연합하여 반김정일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해 왔다고 한다. 때문에 이번 화폐개혁 조치는 ‘신흥 돈주’들이 더 성장하기 전에 그 뿌리를 잘라내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이런 ‘신흥 돈주’들이 재성장할 기반을 없애기 위해 과거 1980년대처럼 배급제도를 복원하고 시장을 박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목적으로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 조치 이후 민간의 식량 수입까지 통제하고 있다. 즉 식량을 국가가 전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시장과 돈주의 부흥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의도는 잘 관철이 될까? 세 가지 이유에서 북한의 목적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먼저 물가가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월급을 올리고, 식량 배급도 그 전보다 더 주고 있다. 그러나 월급을 올리면 물가도 올라간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줄 수 있는 식량 배급도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장이 잡힐 수는 있어도 근원적 박멸은 불가능하다. 물가가 계속 올라가고 시장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질 것이다.
둘째, 이번 조치로 ‘신흥 돈주’들은 김정일이 자신의 敵(적)임을 분명히 확인했다. 김정일은 ‘신흥 돈주’들을 박멸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흥 돈주’들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자신들이 직접 거래하는 물량을 감당할 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달러나 위안으로 富(부)를 축적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화폐개혁으로 부분적 타격을 입긴 해도 근원적 소탕은 불가능한 것이다.
김정은 후계체제에 暗雲
오히려 ‘신흥 돈주’들은 김정일과 자신들은 한 하늘에서 함께 살 수 없다는 인식을 강화하게 됐다. 이번 화폐개혁의 궁극적 목적이 반체제 세력의 뿌리를 잘라낸다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반체제 세력 형성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셋째, 이번 조치는 대다수 일반 주민의 정서도 반김정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화폐개혁 이전에 북한 주민들의 대다수는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장사 활동을 했다. 이를 김정일이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정일은 이번 화폐개혁으로 인한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임금을 인상하고 식량 배급을 늘리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임금을 신권 기준 400원(구권 기준 4만원)으로 인상하더라도 이를 통해 살 수 있는 쌀은 많아야 10kg밖에 되지 않는다.
일반 주민들은 월급만으로 도저히 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야 한다. 주민 생존에 있어 시장은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이런 시장을 김정일이 말살하려고 하니 북한 주민이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김정일은 이번 화폐개혁 조치로 일반 주민들의 공분을 사고, 신흥 돈주들의 반체제 세력화를 촉진하게 됐다. 김정일은 아들 김정은으로 안정적인 후계 승계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었으나 오히려 반체제 세력의 성장을 가져다준 것이다.
이번 화폐개혁 조치로 북한 사회에 당장 조직적인 반체제 세력의 폭동이나 쿠데타 기도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북한 반체제 세력 형성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정은 후계 체제의 앞날에 크나큰 암운이 드리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