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과정 同行 취재記 - 53년 만에 귀환한 국군포로 李完燮의 북한 최신정보 : 월간조선

북한을 탈출해 중국 延吉(연길)에 은신해 있는 국군포로 李完燮(이완섭·72)씨를 지난 9월23일 만났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白山(백산) 호텔에는 북한 咸北(함북) 道예술단이 묵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 金日成 배지를 단 북한인들이 북적댔다.

탈북자 400여 명이 동남아를 거쳐 입국한 여파 때문인지 북한 보위부원과 중국 공안들의 눈빛이 전보다 날카로웠다.

白山 호텔에서 조선족 안내인을 만나, 李完燮씨가 피신해 있는 한 아파트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북한 사람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깡마른 노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납북자가족모임」의 崔成龍(최성룡·52) 회장은 국방부를 통해 李씨가 국군포로임을 확인했고, 외교부에 「李씨의 무사귀환을 위해 중국 정부와 외교 교섭에 나서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외교부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밤 李完燮씨는 대구에 있는 형 용섭(81)씨, 수원에 사는 누나 근순(74)씨와 통화를 했다. 처음 통화는 형 용섭씨와 했다. 조그맣게 용섭씨가 동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완섭이냐, 완섭이냐』

李씨는 『형, 나 일택이야』라고 대답했다.

李씨의 어릴 적 이름이 「일택」이었다고 한다. 형 용섭씨는 동생인 것을 확인하고,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李씨도 감정이 북받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李씨는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형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씩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는 형에게 어렸을 적 함께 놀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물었다.

친구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아쉬워했고, 살아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래 살아 있었구나. 꼭 한번 봐야지』하고 다짐을 했다. 누나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의 거칠고 깡마른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53년 만에 갈치 먹는다』

다음날 아침, 오랫동안 숨어지내야 했던 李씨를 위해 崔회장이 시장에 나가서 갈치를 사왔다. 냄비에 대충 무를 깔고 갈치를 놓고 졸였다. 李씨는 갈치를 무척 맛있게 먹었다.

崔회장이 『갈치를 못 먹어 봤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53년 만에 처음 먹는다』고 했다.

李씨는 밥 한 공기를 다 먹지 못했다. 쇠고기·돼지고기는 거의 못 먹었다. 중국産 라면이 그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李씨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다. 과식하지 않고 절제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飢餓(기아)가 휩쓴 북한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李完燮씨는 황해도 사리원市 문화회관에서 일했다.

지금까지 한국에 귀환한 국군포로들은 咸北(함북) 아오지탄광 등 중국과 북한의 接境(접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다. 李씨처럼 내륙 깊숙이 살다가 탈출한 사람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李씨는 1950년 8월 피란길에 올랐다가 국군에 입대했다.

『고향집(경북 달성군)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어요. 부모형제들과 대구 근처의 산 속에서 많은 피란민들과 함께 있었지요. 軍에서 나온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모두 군대에 징집시켰어요. 대구 대건중학교 학생이었던 저는 피란 가기보다 한번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자진 입대했습니다』

李씨는 『어머니가 그때 全재산이나 다름없던 소를 팔아서 그 돈을 통째로 내게 건네줬다』며 『그 돈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은 채 포로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했다.

─당시 어느 부대로 배치됐었나요.

『대구에서 신병교육을 마치고, 2사단 병기부대에 투입됐어요. 前線에 탄약·무기를 운반해 주는 일을 했습니다. 밤낮으로 前線에 무기와 탄약을 날랐어요』

─언제 포로가 됐습니까.

『경기도 포천 북쪽 「백석산」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中共軍과 엄청난 전투가 벌어졌어요. 탄약을 함께 나르던 학도병들, 국군 장교와 사병들이 어느샌가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中共軍에게 우리가 완전히 포위된 다음에야 전원 후퇴했다는 걸 알았어요.

밥을 굶으며 3일간 도망을 치다가 산 속의 농가에서 한 끼를 겨우 먹었어요. 정신없이 쓰러져 잠을 자다가 깨어 보니 사방에 中共軍이 새카맸어요. 함께 있던 동료 세 명과 中共軍의 포로가 됐죠』

重石 탄광에서 20여 년간 강제노역

李씨는 中共軍에게 끌려가면서 참혹하게 최후를 맞은 국군들의 시신을 수없이 봤다고 한다.

『골짜기에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中共軍들이 죽은 국군의 시체를 개처럼 끌고와서 거기다 마구 쳐넣었어요. 골짜기마다 국군의 시체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어요. 차마 눈 뜨고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습니다』

李씨는 약 100명의 포로와 함께 中共軍에게 한 달간 끌려 다니다가, 북한軍에게 인계됐다. 장교들은 이동하는 도중에 하나둘씩 사라졌다. 李씨는 한국전쟁 중에 황해북도 백년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낮에는 유엔軍의 공습을 피해 지하갱도에 숨고, 밤에 일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국군포로들은 백년광산에 그대로 남겨졌다. 李씨는 『포로교환이 진행되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백년광산은 重石(중석) 등 희귀 금속을 채취하는 곳이다. 중석가루는 진폐증을 일으킨다.

『젊은 혈기에 마스크를 하지 않고, 착암기를 돌렸던 동료들은 전부 塵肺症(진폐증)으로 저 세상에 갔어요. 나는 무더운 여름에도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았지요. 동료들은 내게 독하다고, 놀려댔지만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그랬지만 나도 폐가 나빠져 담배와 술을 끊었어요』

李씨는 「중석 광산에서 20년 이상 일하면 진폐증으로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광산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1972년에 기회가 왔다. 사리원에서 열린 「道 서클 경연대회」에서 李씨가 이끄는 광산 팀이 연극으로 좋은 성적을 받게 됐다.

당시 道예술단 책임자가 李씨를 사리원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광산 측에서는 그가 국군포로라는 이유로 넘겨줄 수 없다고 했고, 道예술단이 소환명령을 냈지만, 사리원으로 옮겨가는 데 2년이 걸렸다.

전쟁보다 더 참혹했던 1990년대의 식량난

─1990년代 중반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지 않습니까. 사리원의 사정은 어땠습니까.

『사리원은 황해도의 곡창지대지만 식량난이 다른 곳보다 더 심했어요. 軍糧米(군량미)로 다 걷어 갔기 때문이죠. 「고난의 행군 시절」에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도 끔찍하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어요. 「꽃제비(부모를 잃은 고아들)」가 떼를 지어 돌아다니고, 사리원역에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길가에 시체가 있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쟁이 다시 난 것 같았어요』

─요즈음 식량 사정은 어떻습니까.

『「고난의 행군」 이후에도 언제 한번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민심이 떠났어요. 국경으로 오기 며칠 전에 사리원 장마당에 갔습니다. 보안원들이 갑자기 단속을 나왔어요. 한 할머니를 단속하다가 할머니가 안고 있던 떡이 쏟아졌는데 이걸 보안원들이 구둣발로 짓밟았어요. 할머니가 악을 쓰며 「너는 애비 에미도 없느냐」고 고함을 치자, 주변 상인들이 모두 「개새끼」라며 목소리를 합쳤어요. 집단 항거를 한 것이죠. 정말 분위기가 살벌했어요』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까.

『보안원한테 몰려가서 욕을 하는 건 생각을 못 하죠. 보안원이 사라진 후에도 사람들이 욕설을 멈추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악밖에 안 남았어요. 「이럴 바에는 전쟁을 하자」는 사람이 대다수예요. 黨의 지시를 거꾸로 관철한 사람만 사는 세상이 됐어요. 「黨만 믿다가 우리가 죽는다」고 해요. 옛날에 「黨만 믿으면 우리는 산다」라는 구호가 유행했는데, 그게 「黨만 믿으면 우리는 죽는다」로 바뀌었어요』

─요즘 電力 상황은 어떤가요.

『7~8월 비가 많이 오는 달에는 水力發電이 돌아가서 하루에 한두 시간씩 電氣가 들어와요. 겨울이나 봄에는 온 사리원 시내가 암흑 천지예요. 金正日 생일 같은 때 하루 종일 電氣를 주는데 「배려 電氣」라고 합니다』

─그러면 밤에 불은 어떻게 켭니까.

『집집마다 촛불로 연명하고 있고, 석유 등불이 있는 집은 그나마 수준이 있는 집입니다』

李씨는 사리원에서 출발한 지 닷새 만에 중국 국경에 가까운 회령에 도착했다고 한다. 다행히 水力發電이 돌아가는 때라 기차가 이 정도 속도를 냈지, 겨울이었으면 보름도 좋고, 한 달도 좋은 상황이라고 한다.

李씨는 『기차가 안 다니고, 기름값이 귀해 자동차가 거의 멈춰서서 사람들은 100리 길을 이웃 동네 다니듯 걸어다닌다』고 했다.

주민들이 金正日을 대놓고 욕한다

─2002년 7월1일의 「경제조치」로 북한경제가 시장경제로 전환되고, 장사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은데.

『장사야 하게 하지요. 하지만 개인장사는 없어요. 모두 직장에 배속돼 통제를 받고 번 돈을 국가에 세금형식으로 바쳐야 합니다. 모두 풀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크게 장사하면 무슨 트집을 걸어 자꾸 몰수하고 그래요.

밑에 보안원들은 시장에서 주민들을 뜯어서 살아가니까, 상인들이 매일 보안원들에게 시달려요. 장마당 장사는 1990년대 초반부터 다 한 것이고, 「고난의 행군」 이후에 너도나도 다 장사를 한 거예요. 그때하고 별 차이가 없어요』

─다시 식량난이 악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있는데.

『지금 아주 안 좋아요. 가을이면 쌀값이 내려가야 하는데 올해는 거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황해도에서는 식량의 대부분이 軍糧米로 나가니까 농민들이 벌써 장사길에 나섰어요. 농민의 30%가 장사를 하고 살아요. 쌀 가격이 kg당 1500원이 넘으면, 보통 백성은 굶어 죽는다고 봐야 해요. 내년 봄이 최악이 될 거예요. 집단농장에서 하는 농사에는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金正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이랄까, 평가는 어떤가요.

『사람들이 이제 대놓고 욕을 합니다.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어요. (金正日이) 先軍政治(선군정치)라고 군대만 찾아다니고, 백성은 죽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으니까. 알아서 먹고살려고 하는데 자꾸 못살게 하니까.

이젠 백성들은 국가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한쪽 귀로 듣고, 한쪽으로 흘려 보내요. 겉으론 충성하는 것처럼 하고, 뒤에선 자기 살 궁리만 해요. 겉과 속이 다른 생활을 하고 있어요 』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까.

『다 듣습니다. 전자공업, 자동차가 세계 최고라는 소문이 파다하고, 남쪽에 대한 동경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요. 한국 드라마나 라디오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보위부에서 라디오로 한국 방송 듣는 사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어요』

─남쪽의 가족을 만나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이러다가 부모형제를 만나기는커녕 고향 땅도 못 밟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뇌물을 써서 사리원 도당에 이산가족 신청을 했어요. 나중에 알아 보니 보위부 안에서 「국방군 출신은 절대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하지 말라」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해요. 헛일만 한 거죠.

北으로 올라온 의용군 출신 가운데 당성이 강한 사람만 선발하고, 선발된 후에는 교육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받아요. 남측 가족을 만났을 때 배운 대로 못 하면 비판무대에 올라 곤욕을 치릅니다』

李씨는 우연히 연락이 닿은 남쪽의 가족을 만나면, 돈을 좀 얻어 부인과 자식들(1남1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만강을 넘었다.

길을 떠나기 위해 북한 돈 3만원을 빌려서 차비를 마련했다. 한 달 평균 월급이 2500원이니, 1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이다. 李씨로서는 목숨을 건 큰돈이었다.

李씨는 가족들 때문에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 한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황해북도 道黨에서 수배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돌아가는 것을 단념했다.

다시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보위부 감옥에서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기획 脫北」 시비

李씨는 자신을 여기까지 안내한 탈북 중개인들의 손을 잡고, 『어떤 일이 있어도 집사람만은 꼭 데려와 달라』고 호소했다.

李씨는 남쪽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려고 수없이 시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을 드나드는 조선족과 줄이 닿았다. 북한을 탈출할 때 조선족들의 안내와 도움을 받았다.

이같은 과정에 대해 최근 집권당의 국회의원들은, 『「기획 탈북」이 남북관계에 긴장을 조성한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열린당 국회의원들은, 「남쪽 가족들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죽겠다」는 국군포로와 납북어부들의 간절한 소망에는 관심이 없다. 일본은 납북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일본으로 데려왔다.

왜 우리 정부와 열린당은 북한 측과 교섭을 벌여, 국군포로와 납북어부를 판문점을 통해 당당하게 데려오지 못하는 걸까? 과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李씨의 신병을 우리 측 공관원에게 넘겨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