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갤러리마리에서 김창훈 씨.
서울 종로구 신문로 갤러리 마리(대표 정마리)에서 10월 15일 개막한 특별전 'Art Beyond Fame'은 음악으로 맺어진 두 가수의 예술적 변주를 담았다. '영원한 디바' 김완선이 자기 감정을 담아낸 10여 점의 '인연, 그물' 작품을 선보인 가운데, 1970년대 한국 록을 대표한 그룹 산울림 멤버 김창훈이 112점의 기록적 회화로 40년 음악 인생 뒤에 찾은 새로운 언어를 펼쳐 보였다.
가수 겸 배우 김창완의 친동생인 김창훈 씨는 시노래 작곡 1000곡을 완성한 뒤 반년 남짓 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에 매진해 왔다. 기자는 전시장에서 천재연구가 조성관 작가(지니어스 테이블 대표)와 함께 그를 만나 작품 세계와 창작 철학을 들었다.
화풍,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정립
"나만의 화풍이 정립되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했습니다. 나만의 기준이 필요했어요."
김창훈 씨는 우연과 필연이 반복되는 그림 작업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고 했다. 3막 4장의 연극처럼 막이 진행될수록 미궁과 후회에 빠지기도 하고, 새로운 희열과 긍지가 생기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거치는 가운데 나의 그림은 형상화되고 구체화되었습니다. 나의 그림은 그리기 쉬워야 해요. 생각하게 하고 싶고, 상상의 세계로, 쉬운 추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습니다. 쉽지만 무한한 상상과 미적 아름다움을 줄 수 있으면서 싫증나지 않을, 정교하고 섬세한 그림. 그런 걸 추구하고 싶습니다."
그는 솔직히 처음부터 그림에 대한 철학과 미학이 구축되거나 정립돼 있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미술에 대한 열망으로 그리기를 시작한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 번뇌와 재기를 거듭한 끝에 어느 순간 자신이 잘 해낼 수 있고, 좋아하는 모습의 그림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림의 황금률, 마음이 정해준다
김창훈 씨는 자신의 그림에도 황금률(Golden Rule)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근거나 과학적 수치를 댈 수는 없지만, 그의 마음과 생각이 정해 주는 위치와 크기와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그 황금률을 따르려고 캔버스를 바라보며 여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순간적으로 응답이 와요. 그때 재빨리 메모하거나 바로 작업에 돌입합니다."
이제 서서히 그가 펼쳐 나가고 싶은 그림의 주제와 표현방법에 대한 생각이 정착되어 가는 듯하다. 미니멀리즘 색면추상을 기본으로 하되, 구상적 요소를 담아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작업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심화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첫째, 꽃을 주제로 한 정물 추상. 둘째, 얼굴을 주제로 한 인물 추상. 셋째, 자연의 풍치를 담은 풍경 추상. 넷째, 음악을 주제로 한 음악 추상. 네 가지 주제를 한데 묶는 공통분모는 미니멀리즘 색면 추상이다.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는 그림"
"질리거나 물리지 않는 그림, 그게 제가 추구하는 그림관입니다."
김창훈 씨는 나 스스로 내 그림에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그림, 양심에 찔리지 않는 그림,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거만스러운 그림, 떠나보낼 때 애착이 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바다의 수평선과 대지의 지평선처럼 그림에도 평평하게 되려는 어떤 힘이 있어 보입니다. 그게 균형과 조화인 듯해요."
그는 그림을 그려가며, 완성된 그림일지라도 불균형과 부조화가 보이는 그림이 있다고 했다. 거기엔 불명확하지만 어떤 임계점 또는 허용되는 한계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을 그리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색과 형태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 그림의 수평선과 지평선을 향한 끝없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 비우기와 덜어내기
면과 선과 점으로 구성된 형태와 색상의 배치와 조화를 모색하는 과정은 때로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의식과 우연의 몸짓에 맡긴다. 즉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가 적절히 타협하고 어느 지점에 도달할 때 그의 그림은 완성된다.
김창훈 씨가 추구하는 그림의 핵심 가치는 '비우기'와 '덜어내기'다.
"도대체 비우고 덜어내면서 뭘 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림에 몰입하다 보면 어떤 관성에 이끌려서 나도 모르게 '채우기'에 급급한 경우를 경험합니다. 다행히 그걸 인식하는 순간 '채우기'를 멈추고 잠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는 색을 더하려 하고 면을 나누려 하고 무언가 더 채우려 했던 자신을 발견하곤 원점과 본심으로 돌아가 또다시 '비우기'와 '덜어내기'로 생각을 채운다고 했다. 미니멀리즘 색면 추상, 바로 그가 그리려는 그것이다.
노래처럼 그림도 매일 그려야
시노래 작곡 1000곡을 마무리하고 남아 있는 창작력이 그림으로 옮겨간 지 반년 남짓 지났다. 이제 시노래 작업은 멈추었고 악상도 멈추었다. 그 대상이 그림으로 바뀌었을 뿐, 종일 작곡 대신 그림 작업에 몰두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의 깨달음이 다가왔다고 했다.
"그렇구나! 기타를 매일 쳐야 손가락이 굳지 않는 것처럼, 노래도 매일 불러야 목이 녹슬지 않는 것처럼, 그림도 매일 그려야 붓놀림이 손목과 어깨에 배어드는 것 같습니다. 연습과 훈련이 중단 없이 지속되어야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는 김창훈 씨와 함께 그림을 둘러본 기자의 짧은 소감이다.

〈Rainy Day〉 제목처럼 비 오는 날의 감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흘러내린 흰색과 회색의 물감이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처럼 보이고, 검은색 면은 젖은 도시의 그림자를 닮았다. 화면 곳곳에 번진 질감은 비가 스며든 흔적처럼 남아 있다. 좌상단과 우하단의 노란색은 회색빛 풍경 속에서도 남은 온기와 희망을 암시한다.
〈Carpe Diem〉 보라색 배경이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시간의 흐름과 하루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 위에 노랑, 청록, 주황, 흰색이 소용돌이치며 부딪힌다. 생의 에너지와 감정이 동시에 터져나오는 장면 같다. 배경의 고요함과 중심부의 폭발이 대조를 이루며, '현재를 붙잡으라'는 제목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전한다.
〈Fly High / Han River〉 〈Fly High〉는 대각선의 색면이 위로 치솟으며 상승의 리듬을 만든다. 종이비행기 형태는 자유와 열망을 상징한다. 반면 〈Han River〉는 단정한 색면으로 도시의 수평선을 단순화했다. 강물 위의 작은 형태들이 고요함을 더한다. 두 작품 모두 색채와 구조로 에너지와 정적을 대조시키며, 도시와 인간의 움직임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Piano Ensemble〉 검정과 흰색이 교차하며 피아노 건반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물감은 중력에 이끌려 흘러내리고, 형태는 서서히 무너진다. 음악이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는 듯한 인상이다. 겹겹이 쌓인 붓질은 다양한 음색이 한데 섞인 합주의 순간을 그린다. 연주의 여운과 시간의 소멸이 한 화면에 녹아 있다.
〈Universe Ⅰ〉 굵은 흰색 선이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궤도처럼 이어진다. 검정과 원색의 배경 위에서 선들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그 자체로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준다. 두텁게 올린 물감의 질감은 작가의 몸짓을 그대로 드러내며 생동감을 준다. 혼돈과 조화가 공존하는 우주의 질서를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