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경림은 1988년 펴낸 수필집 《진실의 말 자유의 말》에서 야구장에서의 폭력 사태에 대한 염려와 탄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이란 자기가 태어난 곳,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애착이 강한 법이어서 제 고장과 연고가 있다면 아무래도 더 흥미를 갖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성공하고 있는 것도 바로 여기에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채택된 프로야구의 지역 연고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질의 하나인 지역감정을 건드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이 소동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깔려 있다.”

《한국 프로야구 난투사》(2015)를 쓴 홍윤표 기자(OSEN 고문)는 ‘그라운드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묘사한다.

“1980, 1990년대에는 열흘이 멀다 하고 경기장 안팎에서 폭력행위가 벌어졌다. 때로는 권력의 부당한 개입으로 스포츠 현장이 뒤틀리는 일도 빚어졌다. 감독이 인신구속 된 참담한 사태가 거기에 결려든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시절 신문지면에는 퇴장, 징계, 벌금, 출장정지라는 낱말이 어지럽게 춤췄다. 선수와 선수, 선수와 심판, 선수와 관중, 감독, 코치와 심판, 심지어 관중과 관중 상이에도 티격태격, 옥신각신…, 난장판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지나간 우리 프로야구의 민낯이자 슬픈 자화상이다.”

1980~90년대만 해도 각 지역 관중들은 홈팀이 패하면 야유는 기본이고 돌이나 빈병을 예사로 던졌다. 화가 난 관중들은 상대 구단 버스를 향해 돌을 던졌고 심지어 불까지 질렀다. 응원단은 데모대로 변하기 일쑤였고 경찰의 사과탄, 최루탄 세례를 받고 간신히 귀가할 정도였다. 선수단 기사는 버스를 버리고 도망쳤다.

1997년 5월 2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OB와 롯데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두 경기를 모두 완봉패한 롯데 선수단 버스를 팬들이 30여분간 못가게 붙잡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선수들은 전경 버스를 타고 경기장 밖을 빠져나가거나, 관중들이 모두 귀가한 다음, 불 꺼진 버스를 타고 도둑처럼 귀가하는 상황이다. 팬들은 선수들 숙소까지 찾아가 “팀을 해체하라” “시민의 체면을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당시 신문 사회면에서도 심심찮게 관중 난동 기사가 실렸다.

으레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든지 “상대편 관중이 먼저 도발했다”든지 하는 그 나름의 ‘핑계’가 있었다. 물론 핑계가 없는, 핑계거리를 찾는, 승패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한 증오의 표출이 더 많았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프로야구 경기장 난동은 1982년 원년부터 부산-광주-대구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했으나 민주화 바람을 타고 점점 급증, 1987년 이후에는 조용하던 인천-대전에까지 확산되었다. 

1997년 6월 29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스-LG 트윈스 경기 중 3회말 해태투수 강태원의 보크 판정에 항의하러 주심에게 다가갔다가 관중이 던진 참외를 맞은 해태 김응용 감독이 뒷머리를 감싼 채 부축을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1. 야구 심판에게 주먹질, 감독에게 참외 던져

1988년 5월 19일 대전구장서 벌어진 해태—빙그레 경기서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은 일부 관중들이 빈병을 던지며 경기장으로 뛰쳐나와 우익심 김찬익씨와 1루심 백대삼씨 등 2명에게 주먹질을 하는 등 폭력을 휘둘렀다.

사건의 발단은 해태가 3—2로 이기던 6회초 1사후 해태 1번 서정환이 때린 2루 땅볼을 1루심 백대삼씨가 내야안타로 선언하면서 비롯됐다.

이에 흥분한 200여명의 관중들은 빈병과 돌을 던지며 그라운드로 내려와, 자제해 줄 것을 호소하는 심판 백씨, 김씨 등에게 마구 주먹을 휘두르며 40여분 동안 행패를 부렸다.

이 사고로 백씨와 김씨 등 2명이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응급치료를 받았으며 볼걸이 돌에 맞아 이빨이 부러졌다. 난동은 뒤늦게 출동한 경찰이 진압, 52분 만에 경기가 가까스로 속행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97년 6월 2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해태-LG전 때의 일이다. 해태 강태원에게 보크볼을 선언한 주심에게 항의하려 다가서는 김응용 해태 감독 머리 위로 관중이 던진 참외가 명중, 아찔한 순간을 연출했다.

김 감독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며 “나도 이제 늙었나 봐. 6.25 때 빗발치는 총알도 피해가며 38선을 넘었는데 말이야”라며 애써 담담히 참외 씨를 걷어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

‘이제 항의하러 나올 땐 감독들도 야구 헬멧을 써야겠군.’

그리고 정신을 차린 이후 다시 나와 심판들에게 계속 항의를 했다고 전한다.

2. 관중 사망 사건

지난 1989년 5월 31일 롯데-해태 부산 경기에서는 관중 난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관중 이성○씨가 급성 심부전증으로 쇼크사한 사건도 발생, 큰 충격을 주었다. 이날 8월말 홈팀 롯데가 8대 4로 역전시켰다가 9회초 해태가 5득점, 재역전시키자 롯데팀을 응원하던 관중들이 경기장을 향해 빈병 등을 마구 던지며 1시간 동나 소란을 피웠다.

숨진 이씨의 일행 유종현씨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회사 동료직원 7명과 함께 경기장에서 소주를 마시며 관전하던 중 8회말 롯데가 역전시키자 고함을 지르면서 열렬히 응원했는데 얼마 후 살펴보니 이씨가 입에 거품을 문 채 뒤로 넘어져 있어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30분 뒤 숨졌다는 것.

한 해태 타이거즈 외야수가 그라운드에 던져진 빈 캔을 야구 글러브에 담고 있다. 유튜브 캡처.

3. 대구구장 1000여명 관중석 의자 불태워

1992년 5월 14일밤 9시 15분께 대구 북구 고성동 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프로야구 삼성 대 빙그레 경기에서 홈팀 삼성이 더블헤더 두 게임 모두 역전패한 것이 흥분한 관중 1000여명이 구장내 쓰레기더미에 불을 지르고 의자를 부수는 등 10여분 동안 난동을 부렸다.

이날 관중 8000여명 중 1000여명은 경기가 끝난 뒤 3루 방면 관중석에 남아 의자 40여개를 부수고 대형 휴지통 10여개를 운동장 안으로 던졌으며 일부 의자와 쓰레기 더미에 불을 질렀다.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  KBS n스포츠의 특집 다큐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10인 - 최초의 사나이 헐크 이만수>의 영상이다.

4. 이만수 선수의 깡통 투척 사건

1990년 5월 29일 대구 경기에서 삼성 이만수 선수(훗날 SK 와이번스 감독 역임)가 관중석에서 깡통을 되던지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준 일도 있었다. 선수의 ‘도발’은 집단광기를 촉발시켜 야구장은 쓰레기 더미가 됐고 경기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이만수 선수는 결국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고 무기한 출장정지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경기상황을 더듬어 보자. 그날 6회까지 8대 2로 삼성이 끌려가고 있었다. 간간이 관중석에서 캔이 그라운드로 날아왔다. 7회 말 이만수가 투수 앞 땅볼로 맥없이 물러나자 1루 쪽에서 깡통이 날아왔다. 순간 울화가 치민 이만수가 그 깡통을 집어 1루 쪽 관중으로 던졌다.

훗날 이만수는 그날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KBS n스포츠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10인 - 최초의 사나이 헐크 이만수>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날 진짜 멋있는, 최소한 안타 아니면 홈런 치겠다는 그런 마음을 먹고 타석에 들어갔어요.

이상하게 방망이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투수 앞 땅볼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데, 어느 관중이 실망한 나머지 맥주 캔을 안 드시고 투척한 겁니다. (내용물이 든) 캔이 무거우니까 그라운드 그물에 맞고 떨어지면서 제 옆구리에 맞았어요.

순간적으로 모욕감을 느꼈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제가 캔을 주워서 다시 투척을 한 거예요. 불난 집에 석유를 부은 거야. 관중 1만3000명이 일제히 모든 쓰레기를 그라운드에 투척을 한 거예요. 제가 1만3000명과 싸웠어요. 완전 녹다운 당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분노를 삭이지 못한 300여명의 관중들이 이만수를 성토하며 스탠드에 방화를 하고 오물을 마구 던지는 등 계속 소동을 벌이자 경찰이 최루탄 10발을 쏘아 겨우 해산시켰다. 사진=유튜브 캡처.

관중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그라운드에 우박 같은 깡통 세례를 퍼부었다. 그 바람에 경기가 5분간이나 중단되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분노를 삭이지 못한 300여명의 관중들이 이만수를 성토하며 스탠드에 방화를 하고 오물을 마구 던지는 등 계속 소동을 벌이자 경찰이 최루탄 10발을 쏘아 겨우 해산시켰다.

결국 이만수의 사과로 겨우 수습이 되었지만 구단으로부터 무기한 출전정지 처분과 벌금 300만원을 내야했다.

삼성은 12일 만에 징계를 풀어줘 이만수는 6월 10일 LG전부터 다시 출장했다.

공교롭게도 삼성은 이만수가 결정한 사이 8연승을 거두었다. 이만수 복귀 후 다시 3연패에 빠졌다. 그러나 이만수는 그해 1982년 데뷔 이래 가장 많은 26홈런을 기록했다.

1999년 10월 20일 대구시민야구장. 플레이오프 7차전, 6회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1점 홈런을 터뜨린 롯데 4번 호세가 오물을 집어던지며 야유를 보내는 대구팬들을 향해 야구 방망이를 집어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5. 호세 방망이 투척 사건… 1999년 플레이오프 삼성 악몽

1999년 10월 20일 대구시민야구장. 3승3패. 반드시 승자를 가려야 하는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7차전. 삼성 선발 노장진과 롯데 문동환은 팽팽한 투수전을 이끌면서 최고의 명작 드라마를 시작했다.

일명 호세 방망이 투척사건으로 불린 사건의 발단은 삼성이 2대0으로 앞서가던 6회초 롯데의 검은 갈매기 호세가 추격의 고삐를 당기는 중월 1점 홈런을 친 뒤 벌어졌다.

호세는 대구팬들의 야유 속에 그라운드를 돌았고, 3루 베이스를 도는 순간, 호세 앞을 가로지르는 물병 하나가 지나갔다. 흠칫했지만 그대로 달려 홈 베이스를 밟은 호세에게 이번에는 1루쪽 관중석에서 뭔가가 날아들었고, 그것은 호세의 급소를 맞히고 말았다.

호세는 펄쩍펄쩍 뛰며 방망이를 집어들어 1루 관중석을 향해 던져버렸다. 심판은 호세에게 퇴장을 명령했다.이에 롯데 선수들은 이대로는 경기를 못하겠다며 가방을 둘러멨지만 코치와 프런트의 만류로 돌아왔다. 그러나 눈빛은 분노와 필승의 각오로 타오르고 있었다.

속개된 경기서 타석에 들어선 롯데 마해영은 곧바로 홈런을 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롯데 선수들은 더그아웃을 나와 홈런의 기쁨을 만끽했다.

노장진이 7회 선두타자 조경환에게 안타를 내주자 초조해진 삼성 서정환 감독은 임창용을 마운드에 올렸으나 김응국에게 중전안타를 맞으며 2대3으로 역전을 당했다. 그러나 삼성도 뒷심을 발휘했다. 8회, 무사 2루에서 김종훈과 이승엽의 연속타자 홈런으로 5대3으로 재역전에 성공한 삼성은 그대로 경기를 끝낼 심산이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티켓을 받기까지 남은 1이닝을 임창용이 버텨주지 못했다. 9회초 대타 임수혁에게 믿기 어려운 2점 홈런을 맞고 만 것. 삼성은 결국 연장 11회 김민재에게 결승 적시타를 내줘 손에 쥐었던 한국시리즈 티켓을 롯데에 건네고 말았다. (매일신문 2012년 6월 25일 자 인용)

6. 이만수 감독의 레이저 테러 사건

이만수는 SK 감독 첫 해인 2012년 9월 19일에는 관중이 쏜 레이저 포인트를 얼굴에 맞는 아찔한 일도 겪었다.

《한국 프로야구 난투사》에 따르면,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던 SK와 롯데의 경기가 막 끝난 직후 이만수 감독이 선수들을 맞이하는 대목에서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그의 얼굴을 향해 레이저 포인터를 쏜 것이다. 그날은 롯데가 SK에 0-7로 영봉패를 당해 2위 자리를 SK에 내주고 3위로 내려 앉은 날이었다. 승리를 거둔 SK 선수단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던 도중 녹색 레이저 포인터가 이만수 감독의 얼굴을 직접 겨냥했다.

SK 선수들이 놀란 표정으로 1루 쪽 관중석을 가리키는 모습도 보였다. 이 감독의 얼굴에 초점을 맞춘 레이저는 TV 중계화면을 탔다. 녹색 동그라미가 이 감독의 얼굴에 선명하게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