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판의 전성시대 ① 빽판의 추억

[阿Q의 ‘비밥바 룰라’] 빽판의 천국 청계천 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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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만들어진 빽판들.  빽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금발의 서양미인 재킷 사진들은 미군들이 즐겨보던 각종 해외 오락잡지 등에서 발췌했다고 한다.

[편집자 주] 팝송의 국내 유입 역사는 바로 ‘빽판’의 역사다.
대중문화의 흑역사에서 찾은 빽판의 기록을 담은 《빽판의 전성시대》(스코어 刊)가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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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씨가 펴낸 《빽판의 전성시대》(스코어 刊)
‘빽판’은 음반 판권 소유자와 라이선스(사용권) 계약 없이 불법으로 제작해 유통시킨 해적 음반을 지칭한다.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국외 음악 중에서 국내 음반사와 계약해 들어오는 라이선스 음반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음반 수입이 전혀 없었던 1960년대엔 지상파 라디오에서도 빽판을 이용했다.
 
《월간조선》은 1950년대부터 LP시대를 마감한 1990년대까지의 빽판의 역사를 10회에 걸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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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판의 추억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씨는 잊을 수 없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1973년 12월 어느 날, 동네 친구 집에서 우연하게 딥 퍼플의 ‘Highway Star’를 듣게 된다. 즐겨 들었던 영화나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와는 달리 강렬한 노래는 소름 돋는 전율을 안겨주었다.
 
처음 본 검은색의 동그란 물체는 불법으로 제작된 해적판 LP, 즉 빽판이었다. 중학생이 된 1974년부터 수업이 끝나면 무엇에 홀린 듯 동네 음반 가게들을 매일 같이 순례했다. 당시 필자가 거주했던 서울 동작구 상도3동에서 노량진역까지는 10개가 넘는 레코드 가게들이 성업했다. 주인의 취향에 따라 취급하는 음악 장르의 비중이 각각 달랐다.
 
클래식 음반의 인기도 상당했지만 가요 음반과 팝송 빽판을 파는 곳이 가장 많았다. 청년문화시대였기에 학생층에서 좋아했던 국내외 포크가수와 록 음반을 취급하는 곳도 많았다.
 
특히 70년대에 유행했던 다이아몬드 스텝의 고고춤을 출 수 있는 신나는 팝송판과 비틀스, 씨씨알(CCR), 벤처스 등 기타 사운드가 매력적인 외국 밴드 빽판의 인기는 대단했다.
 
동네 음반가게들은 대부분 신보로 나온 최신 팝송 빽판들을 팔았다. 한 음반 가게 주인이 “청계천에 가면 금지곡까지 수록된 빽판을 살 수 있다”는 솔깃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때부터 주말이 되면 버스를 타고 청계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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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레코드 가게 진열대 모습이다.

빽판의 천국 - 청계천 세운상가
 
빽판은 유통과 제작의 중심지였던 청계천 세운상가를 상징하는 여러 키워드 중 핵심이었다.

1970년대 당시 청계천 4가에는 빽판을 판매하는 도매상과 소매상들이 밀집해 있었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빽판의 음질과 상태는 라이선스에 비해 열악했다. 70~80년대에 제작된 빽판의 재킷은 조악한 종이로 인쇄해 쉽게 훼손되어 너덜너덜거렸다.
 
물자가 넉넉지 못했던 당시에 귀했던 청색, 녹색 테이프로 테두리를 테이핑한 빽판은 자랑거리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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