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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강 이만섭 추모 학술 세미나' 모습이다. |
“정치와 사랑은 계산하면 안 된다”고 말한 정치인이 있다.
평생을 의회주의자로 여야가 대치할 때 고비고비마다 대화와 타협을 외친 고(故) 이만섭 전 국회의장(1932~2015)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12월 14일은 청강(靑江) 이만섭 의장 추모 3주기 날이었다. 그를 그리워하는 학자와 정치인들이 모여 국회에서 ‘청강 이만섭 추모 학술 세미나 및 평전 출간 기념식’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어지러운 현 정국에 이만섭 전 의장이 더욱 생각난다”(정세균 전 국회의장)며 고인을 추억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축사(동영상)를 통해 “이만섭은 생전 ‘정치와 사랑은 계산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소신과 원칙을 지켜온 정치 역정은 신념이 가득 찬 인생이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직전 국회의장인 정세균 의원은 “살아 계셨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조언을 받았을 텐데 일찍 별세해 아쉽다”고 대(大) 정치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청강의 고교(대륜고) 후배인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은 “국민의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해외에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동포들이 많다”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삶을 사셨던 ‘참 정치인’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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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생전 모습이다. 2009년 12월 7일 오후 연세대학교 연희관에서 열린 '이만섭 홀' 헌정식에서 자신의 흉상 부조를 바라보고 있다. |
“이만섭의 리더십은 비당파적인 ‘의회관리형’ 스타일”
이날 세미나에는 이만섭 전 의장의 정치역정과 삶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5시간가량 치열하게 이어졌다.
김용철 전남대 교수는 <국회의장 리더십 스타일과 정치적 가치관>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역대 국회의장과 비교해 이만섭의 리더십 스타일을 분석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13~19대 국회에서 이루어진 소관 상임위원회 안건의 직권상정은 총 87건이었다. 이는 국회의장 1인당 평균 6.2건에 해당한다.
15대 국회의 의장을 지낸 김수한(8건)과 박준규(11건), 17대 국회의 김원기(16건), 18대 국회의 김형호(13건)와 박희태(26건)는 평균 수치를 상회했다. 이만섭 의장의 경우, 14대 국회에서 0건, 그리고 16대 국회에서 1건을 기록해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의사진행을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김 교수는 “총 직권상정 건수의 관점에서 판단할 때, 이만섭의 리더십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유형에 가까웠으며, 특히 14대 국회보다 16대 국회에서 더욱 중립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이만섭은 14대와 16대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비당파적인 ‘의회관리형’의 리더십 스타일을 발휘했었다”고 분석했다.
<이만섭 정계 입문 과정: 보수기득권 세력유지와 그 교체의 기로에 서다>를 발표한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냉철함과 열정을 가진 정치인이자 기자적 정치인으로 이만섭을 평가했다.
이 교수는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도운 박정희 후보가 당선된 이후 이만섭은 정계에 진출해 세상을 변화시킬 꿈을 이룰 수 있는 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며 “박정희는 청와대에 입성해 자신을 도울 것을 권고했지만 이만섭은 밖에서 돕는 것을 주장해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로 입후보해 당선됐다”고 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이만섭을 자주 불러 여러 문제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정치 스타일이 바뀌었지만, 박 대통령은 3선 개헌 전까지만 해도 이만섭처럼 직언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이만섭을 자주 불러 여러 문제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정치 스타일이 바뀌었지만, 박 대통령은 3선 개헌 전까지만 해도 이만섭처럼 직언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러나 1966년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비판하다가 이병철과 이맹희에 의해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다가 낙선할 뻔했다. 제7대 국회의원 임기 중이던 1969년 정구영 등과 함께 3선 개헌에 반대했다가 정권 실세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질 등을 선행 조건으로 내걸고 찬성으로 선회하였다. 실제로 3선 개헌 이후 김형욱은 경질되었고, 이후락은 주일대사로 나가게 되었다.
이완범 교수는 “이만섭은 이 일로 말미암아 이후락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7대 대선과 8대 총선을 앞두고 주일대사에서 중앙정보부장으로 복귀한 이후락은 이만섭을 낙선시키기 위해 다양한 공작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완범 교수는 “이만섭은 이 일로 말미암아 이후락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7대 대선과 8대 총선을 앞두고 주일대사에서 중앙정보부장으로 복귀한 이후락은 이만섭을 낙선시키기 위해 다양한 공작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만섭, 약소국·분단국·개발도상국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고민해”
김상준 연세대 교수는 <국제정치 시각에서 본 이만섭: 비전과 실용의 조합>의 논문을 통해 이 전 의장의 외교적 관점에서의 통찰력을 분석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만섭은 오랫동안 국회 외통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일반적으로 많은 국회의원이 국내 정치에 몰두하거나, 자신의 지역구에 의정활동을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이만섭은 국가 운명을 늘 염두에 두고 약소국, 분단국, 개발도상국인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어떠한 태도와 입장, 그리고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김 교수는 “국가를 다루는 학문인 정치학에서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우리나라는 어떠한 국가인가, 또는 우리나라는 어떠한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 등의 생각과 인식을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이라고 한다. 이만섭은 바로 국가정체성에 매우 관심이 높았던 정치인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만섭 국회의장의 정치적인 삶: 의회주의>를 발표한 윤대엽 대전대 교수는 “유신의 불가피한 선택과 ‘의회주의자 이만섭’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등에 대해 시대상황과 근대화 과제 등을 고려해 평가해야 한다”며 이만섭과 박정희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윤 교수는 “헌정 70년의 한국 정치사에서 이만섭의 정치적인 삶은 어떤 의미로 기억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이만섭의 정치적인 삶을 관통하는 정치소신은 ‘국회가 명실상부한 정치의 본산이 되고 이를 무대로 민주정치를 활성화하는 것’에 있었다. 이만섭이 14대 국회에서 ‘변칙 없는 민주국회’, 그리고 16대 국회의장 시절 ‘날치기는 없다’고 강조한 정치원칙은 다름 아닌 의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토론자로 나선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5·16 쿠데타와 유신을 지지한 배경 등이 중요한 이슈가 돼야 한다. 당시 신생국가로서 가장 큰 숙제는 민주화와 산업화였다. 이 둘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만섭의 선택은 불가피했다”며 “전두환 정권시절 직선제를 제안한 이만섭의 노력, 날치기 통과를 거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정치적 평가를 내렸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군인의 정치적 개입에 대한 지식인의 우려가 있었음에도 기득권 세력의 교체를 주장하는 것이 당시 시대 상황이었다. 의회주의자로서 이만섭은 ‘5.16 당시 박정희 지지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 주장, 3선 개선에 반대하다 조건부로 수용한 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했다.
“이만섭은 중도 중립인이 아니라 균형감 갖춘 정치인”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는 “이만섭은 우리시대 마지막 지조 있는 정치인이었다. 향후 이런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좀 더 일찍 정치를 그만두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며 개인적 소견을 말했다.
박한규 경희대 교수는 “이만섭은 중도 중립인이 아니라 균형감을 갖춘 소신있는 정치인이자 대화와 타협을 중시했던 정치인”이라며 “세계사를 통해 대화와 타협을 주장하는 정치인이 많지만 그의 실천적 행로는 한국 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홍용표 한양대 교수는 “원칙과 소신을 가지면서 유연성을 가진 정치인”으로 이만섭을 평가한 뒤 “국제정치에 해박한 지식과 문제의식을 정확히 가졌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외국과의 동맹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등 국제사회를 잘 이해한 정치인”이라고 했다.
(이 글은 ‘이만섭 평전 발간 위원’인 황한택씨와 사상호씨가 도움을 주었음을 밝혀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