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효성)는 8월 28일(화) KBS 이사 11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기로 의결했다. 이들은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거쳐 정식으로 임명되며, 임기는 3년이다.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호선(互選)으로 선임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KBS 이사 11명은 방송법에서 정한 ‘각 분야의 대표성’ 등 이사 선임 기준에 따라 지난 7월 27일 방송통신위원회 제39차 전체회의에서 선정한 후보자 39명 중 상임위원들의 무기명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각 분야의 대표성’보다는 ‘코드’가 우선적으로 작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김상근 현 이사장과 강형철 이사(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조용환 이사(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작년 이후 KBS 제2노조(이른바 ‘새노조’) 등이 앞장서서 구(舊)여권 추천 강규형 이사 등을 몰아낸 후 현 정권에 의해 임명된 사람들이다.
새로 구성되는 KBS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맡을 것으로 유력시되는 김상근 현 이사장은 지난 1월 4일 현 정권에 의해 해임된 강규형 이사의 후임으로 들어왔다. 1970년대 이후 기독교계를 기반으로 한 재야운동과 언론개혁운동, 통일운동 등을 벌여온 소위 진보 진영의 원로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장을, 노무현 정권하에서는 법무부 감찰위원회 초대 위원장,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권 이후에는 광우병 촛불사태 지지 재야원로 선언에 동참했고, 천안함 폭침 1년 후인 2011년 3월에는 한명숙 전 총리,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대한 납득할 만한 추가조사와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 민주수호 원탁회의' 등에 적극 참여했다. 2016년 최순실 사태 와중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비상시국대책회의 상임의장을 맡아 활동했다. 2010년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가 발표한 친북반국가 행위자 100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조용환 이사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멤버다. 2011년 민주당이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했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에 대해 "신뢰한다"면서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표현을 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여기에 더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은… 독점자본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역할” 운운하는 1980년대의 기고문도 논란이 되는 바람에 결국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낙마했다. 작년 12월 구 여권 추천인 김경민 이사(한양대 교수)가 노조의 압박 등으로 사퇴하자, 그 뒤를 이었다.
강형철 이사(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금년 2월 이인호 전 KBS 이사장이 사퇴한 후 후임으로 들어왔다. YTN 기자 출신으로, 한국방송학회 회장을 지냈다.
KBS 공영방송노조(위원장 성창경)는 이 세 사람에 대해 “KBS를 문재인 정권에 갖다 바친 이사들”이라고 비판했다. 미디어연대도 “국민의 방송인 KBS를 정권 품에 안겨 땡문뉴스방송으로 타락시킨 양승동 사장을 탄생시킨 주역이자, 방송 공정성을 훼손하고 비상식적인 기구를 만들어 보복이나 일삼다 시청률이 추락하는 등 국민에 외면당하는 KBS를 만드는 데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라고 이들을 비판했다.
이 세 사람 말고도 김영근, 문건영, 박옥희, 김경달 이사 내정자가 여권 추천으로 분류된다.
김영근 내정자는 KBS 기자 출신으로 KBS라디오 앵커, KBS이사회 사무국장, 해설위원 등을 지냈다. 그는 해설위원 시절인 2016년 2월 “한중교역량은 미국과 일본을 합한 것보다 많고 가장 큰 무역흑자도 중국에서 나오는 게 현실”이라며 “대외의존형인 우리의 경제적 이익과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군사안보적 이익 그 어느 쪽도 버릴 수 없다. 사드 배치 논의가 공식화됐지만 최종 결정까지는 굳이 서두를 수 없는 이유”라는 논평을 내보냈다가 논란을 빚었다. 친(親)노조(언노련 산하 KBS본부노조)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근 내정자에 대해 '진보 성향'인 방송독립시민행동은 “1996년 기자 시절, 부적절한 행위로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면서 “그가 부적격자임을 알고 방송위에 전달했지만, 방송위는 임명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문건영 내정자는 환경운동연합 공익환경법률센터 운영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등을 지낸 여성 변호사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변호사들의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박옥희 내정자는 강성 페미니스트 잡지인 <이프>의 대표이사 겸 발행인을 지낸 여성운동가다. <서울신문> <여성신문>에서 일했고, 문화세상 이프토피아 대표, 21C여성포럼 대표, 살림정치 여성행동 대표, 한국여성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김경달 내정자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네이버 동영상서비스실장, 네오터치포인트 대표 등을 지낸 ‘뉴미디어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야권 추천 이사 내정자는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황우섭 전 KBS심의실장, 천영식 전 대통령 국정홍보비서관, 서재석 전 KBS 아트비전 사장, 바른미래당이 추천한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네 명이다.
황우섭 내정자는 KBS PD 출신으로 KBS 공영노조위원장과 KBS 심의실장을 지냈다. 심의실장 시절에는 좌파 성향 프로그램들의 문제점을 자주 지적, 언노련 및 KBS본부노조(언노련 산하. 소위 ‘새노조’)와 갈등을 빚었다. 황우섭 내정자에 대해 KBS본부노조는 “공영방송 훼손과 제작 자율성을 노골적으로 침해한 자”라면서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황 내정자는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KBS의 좌편향과 편파보도가 심각하다”면서 “KBS는 물론 이사회가 제 역할과 의무를 다하는지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천영식 내정자는 <문화일보> 전국부장, 정치부장 등을 지낸 기자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다. 청와대에서 나온 후에는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이 만든 펜앤마이크에서 상무 겸 편집부국장으로 일했다.
서재석 내정자는 길환영-고대영 사장 시절 KBS 편성국장, 정책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보수 성향이지만, 중도적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른미래당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열린우리당 대구시당 위원장, 제3사무부총장과 국민의당 혁신위원장 등을 지냈다.
KBS공영방송노조(위원장 성창경)은 KBS 이사 인선에 대해 8월 29일 성명을 내고“우려했던 대로 여권 추천이사들은 그 나물에 그 밥, '문재인 정권의 KBS 장악용 이사'라는 점에서 기대할 것도 없는 면면”이라면서“시민단체 등에서 좌편향적인 활동을 하던 인물 등 KBS 이사로서는 부적격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하였다”고 비판했다. 공영방송노조는“새로 선임된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KBS의 편파, 왜곡 보도를 비판하거나 특정 노조 위주의 노영방송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호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야권 추천 이사들에게 “여권이사의 독주, 노조의 전횡, 사측의 마구잡이 경영, 편파, 왜곡 보도 등과 치열하게 싸우기 바란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