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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대북 전단 살포 주도하는 박상학은 누구?

"탈북 후 北에 남은 가족들과 약혼자 잔인하게 고문당해"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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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0일 오전 경기 김포시 월곶면에서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대북전단이 담긴 대형 풍선을 날려보내고 있다. 조선DB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한국 내 탈북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전단 살포를)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약 4시간 30분 만에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대북 전단 살포 금지 법률안'(가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도 "대북 삐라는 백해무익한 행위"라고 했다.

졸지에 북한 독재자의 실체를 알리는 내용의 삐라를 살포한 탈북 단체, 특히 김여정이 꼭 집어 지적한 자유북한운동연합과 이 단체를 이끌고있는 박상학 대표는 법 위반자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박 대표는 1968년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나 영재교육기관인 제1고등학교와 김책공업종학대학 체신과(무선공학 초단파 전공)를 졸업했다. 부모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북송교포 출신이다. 대학 졸업 이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산하 속도전 지도국 선전지도원으로 근무하는 등 나름 북한 엘리트 코스도 밟은 박 대표는 1997년 황장엽 망명 사태에 충격을 받고 탈북을 결심한 아버지에 이끌려 선택의 여지 없이 1999년 여름 탈북했다.
 
2000년 2월 한국에 정착한 박 대표는 처음엔 ‘조용히’ 살았다. 전공을 살려 서울대 모바일연구소에서 일했고, 통일 전문 매체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약혼자에게 가해진 보복 소식을 들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박 대표의 숙부를 숙청하고, 그의 약혼자를 두 달 동안 잔인하게 고문했다.
 
분노한 박 대표는 2003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한인권운동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북 전단 살포에 나섰다. 이후 그는 남북한 정부에 공히 요주의 인물로 분류됐다. 2011년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으로부터 독침 테러 위협까지 받았다. 기자는 2013년 한국에 침투했다가 구속된 북한 공작원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북한 보위부로부터 한국에 침투하면 북한인권운동을 펼치는 탈북자 박상학에게 접근하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중 생활고를 겪는 자들을 다시 귀북(歸北)시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인권 문제를 제기, 남한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상황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2013년 미국 인권재단으로부터 국제 인권상 하벨상을 수상한 박 대표는 여전히 대북 전단 살포를 주도하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는 북한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다.

북한 주민에 대한 선전 효과가 큰 까닭이다.

지난 2014년 10월엔 북한이 우리 민간단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날린 대북 전단 풍선에 고사총을 쏘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이듬해인 2015년엔 탈북민 단체가 천안함 폭침 5주기를 맞아 대북 전단을 살포하려 하자 북한이 "살포 시 물리적 타격을 가할 테니 인근 주민은 대피하라"고 경고하는 일도 있었다.

2018년 채택된 4·27 판문점 선언에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등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한다'는 구절이 담긴 데에는 북측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기에 언급된 '전단 살포'는 민간이 아닌 군·정보 당국 차원의 전단 살포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많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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